느림보수필창작 교실/등단 추천작품

장은영의 <둔주봉 하산길에서> <영원한 동행>

느림보 이방주 2020. 1. 12. 16:56

<신인상 심사평>

 

장은영의 <둔주봉 하산길에서> <영원한 동행>

 

이방주

 

장은영의 <둔주봉 하산길에서><영원한 동행>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이 두 작품은 인생의 여정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일상을 소재로 철학적 의미를 찾아낸 수작이다. 수필은 체험과 사실의 문학이라고 한다. 그러나 체험의 진정성도 중요하지만 체험에 내재된 삶의 의미를 궁구해내는 과정에서 오는 미적 울림도 매우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수필적 상상이다.

<둔주봉 하산길에서>의 둔주봉은 한반도 지형을 조망하는 봉우리로 유명한 옥천에 있는 작은 산이다. 작가는 평탄한 내리막길을 버리고 가파르고 위험한 길을 택해서 남편의 도움으로 어렵게 하산한다. 비로소 평탄한 오솔길에 이르렀을 때 지난날의 어려웠던 삶의 과정에서 자신을 지탱해 준 남편의 사랑을 생각한다. ‘하산길이라는 단순한 소재로 삶의 여정이라는 철학적 의미를 역동성 있는 상상으로 확산시킨 점이 수필문학의 양식적 독자성을 충분히 수용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영원한 동행>은 마을에 새로 이사한 한 노인을 보면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단순한 것 같지만 남에게서 나를 발견하는 상상의 역동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상상은 어머니와 동일시한 대상과 영원한 동행이라는 인간 사랑의 원형적 사고에 귀결된다.

이 두 작품은 수필이 일상을 소화하는 정도에 따라 얼마나 큰 울림을 주는 예술로 승화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 하겠다. 소재를 대하는 독창적인 상상과 인식의 방법은 물론 이야기를 잔잔한 속삭임으로 풀어가는 구성력에도 높은 점수를 주어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둔주봉 하산길에서

 

장은영

 

둔주봉을 딛고 올라서니 좌우가 뒤집어진 한반도지형이 반긴다. 금강물이 흐르다가 돌연 산을 휘돌아 굽이치며 빚어낸 솜씨가 가히 절경이다. 화폭 한가운데 척하니 자리 잡은 한반도지형을 동해와 서해가 손을 맞잡아 감싸 안고, 그 물의 끝자락을 다시 산이 두 팔 벌려 끌어안고 있다. 산수화 한 점을 바라보듯 잔잔한 즐거움이 인다. 물은 산을 휘감아 내면서 속진마저 감아냈는가. 탈속한 정경에 마음이 끌리면서 공연히 설렌다. 멀리 대청호반 물길을 따라 완만한 구불거림으로 드러누운 수변길이 풍치를 돋운다. 길은 한 손엔 산영이 투영된 호수를, 다른 한 손엔 막 가을 채비를 시작한 산자락 끝을 붙잡고 유유자적이다. 눈길 마주치는 곳마다 아름다운 그림이 걸려있다. 인간의 작위적 태깔이 없으니, 제가 에덴동산이련가. 내려다보는 마음이 쇄락하다.

산은 올라왔으니 내려가야 한다. 남들은 온 길을 되돌아 하산하지만 우리는 금정골을 향해 발길을 재촉한다. 올라오는 길과 반대방향이다. 유리구슬처럼 투명한 하늘과 딱 어울리는 길을 찾아 예까지 왔으니, 우리도 유유자적 실컷 걸어보자꾸나 남편과 손바닥 마주치며 이미 금정골 하산으로 마음은 하나가 되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길이 험하기 짝이 없다. 분명 길을 잘못 들었다. 점심을 먹은 식당 여주인 말대로라면 가끔 비탈길이 있긴 하지만 가족과 커피를 나누며 여유롭게 걸을만한 길이어야 한다. 그런데 가파른 길, 게다가 자갈로 뒤덮인 미끄러운 벼랑길이 까마득하다. 의지할 수 있는 건 겨우 지름 1정도에 불과한 하얀 줄뿐이다. 가파른 자갈길을 끈 하나에 의지해 내려가자니 불안하기 짝이 없다. 앙세지 못한 나로서는 두려움을 넘어 공포인 걸 어찌하랴.

애초 내 능력을 과신하고 어쭙잖은 선택을 한 것이 문제였다. 낡아빠진 이정표에 금정골이 없는 걸 보았을 때 좀 더 신중했어야 했다. 적어도 잠깐의 갈등과 고민이라도 있어야 했다. 앞서 걷던 젊은 부부의 망설임 없는 하산길에 미혹되어 가당찮은 허세가 옆구리를 부추기는 걸 눈치 채지 못한 게 실수였다. ‘까짓것 우리라고 못 갈쏘냐. 시간이 더 걸릴 뿐이겠지했으니. 빗나간 선택 덕분에 순탄치 않은 길을 걷고, 유유자적 거닐자던 물길도 서산으로 기우는 해를 의식하며 미아가 될까 몸을 사려야 했으니 허허실실 웃을 수밖에. 미혹에 이끌린 빗나간 선택은 때로 삶을 어긋나게 만든다는 걸 새삼 되새김질한다.

내 입 속에 소태나무를 키운 때가 있었다. 남편이 친구를 믿고 시작한 사업이 실패로 끝나면서 낭패를 보았다. 덜컥 믿었던 친구에게 뒤통수를 맞고 나서야 그것이 미혹이었음을 깨달았으니 참 어리석은 삶의 선택이었다. 소태나무는 한번 맛보면 잊을 수 없을 만큼 쓴 맛이 난다. 내가 어렸을 때 아기의 젖을 떼기 위해 엄마 젖꼭지에 바르던 것도 소태였다는 기억이 난다. 인생의 소태맛이 무에 좋다고 추억할까. 비록 내 삶의 옹두리로 남아있긴 하지만, 이미 구겨진 삶의 한 조각을 다시 푸새하여 팽팽하게 다림질할 수는 없겠지만, 덧없는 욕심을 버리고 미혹을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으니, 이만하면 내 인생을 탄탄하게 만들어준 값진 수확이었노라고 그저 자위할 뿐이다.

남편이 배낭에서 장갑을 꺼내 건네주면서 몸을 뒤로 돌려 뒷걸음으로 내려가라고 한다. 한결 나았다. 몸을 뒤로 돌려 줄을 잡고 올려다보는데 불현듯 남편 등에 매달린 배낭이 눈에 들어온다. 순간 뭉클해졌다. 나는 빈손인데. 빈손으로 내려가면서 배낭 무게까지 감당해야하는 남편에게 나만 힘든 것처럼 아우성쳤구나. 남편에게 미안했다. 나는 늘 그렇게 어이없는 투정을 해온 것 같았다. 별안간 예전에 어리석은 선택으로 구겨지고 힘들었던 때가 생각났다. , 남편은 그 때도 오늘처럼 나보다 더 힘들었음에도 내색 없이 견디어 냈겠구나 하는데 생각이 미치자 울컥 가슴이 치밀어 올랐다.

갑자기 경사가 급해지고 미끄럽다. 드러난 나무뿌리를 겨우 밟으며 간신히 내려간다. 남편은 행여 내가 미끄러질세라 전전긍긍한다. 나는 남편의 안전에 마음을 둘 겨를이 없다. 그 사건이 있을 때도 난 오늘처럼 나 혼자만 아프다고 소리 질렀을 뿐 남편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었다. 아무 말 없었지만, 분명 나를 눌렀던 만큼의 무게 위에 아내를 향한 미안한 마음의 짐이 더 큰 무게로 보태어져 짓눌렀으리라. 거기에 덧대어 내 불평과 원망의 독설까지 짊어져야 했으니. 내가 맛본 소태보다 얼마나 더 쓴 맛이었을까. 어쩌면 남편은 나의 철저한 외면 옆에서 절대고독을 느끼며 그 쓴 맛을 견디어냈을는지도 모르겠다. 평생을 기대며 같이 살아가야할 사람에게 내 기분과 아픔만 우선했던 옹졸함이 한없이 부끄럽다. 미안함과 애잔함이 밀물처럼 밀려와 온통 에워싸면서 괜스레 눈물이 돈다.

벼랑길을 내려서니 산세가 급히 숨을 고른다. 우리도 잠시 숨을 고르기로 했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안간힘을 쓰느라 시끌벅적했던 심장도 한시름 놓았는지 조용하다. 멀리 나뭇가지 사이로 호수가 보이는 걸 보니 길이 멀지 않았구나 위로가 된다. 상수리 아람이 떨어져 길 위에 지천이다. 몇 알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한두 개 남은 밤알이 떨어지면서 숲의 소리를 만들고, 나뭇가지 틈새를 헤집고 불어오는 바람은 떡갈나무 잎을 흔들어 숲의 소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금세 아까의 두려움은 사라지고 숲이 만들어 내는 소리가 하모니로 들리는 걸 보니 삶이란 영위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오래 전 맛본 소태나무의 쓴 맛은 깡그리 잊고 지금은 안온한 삶의 세레나데를 부르고 있지 않은가.

강가에 내려서자 호젓한 오솔길이다. 식당 여주인이 말해주었던 예쁜 오솔길이 바로 여기구나. 언제 또 다시 아픔으로 구부러진 오솔길을 걷게 될지, 내 울타리 안에 소태나무가 자랄는지 모른다. 인생이란 어차피 그런 거니까. 그렇다 해도 함께 줄을 잡고 내려왔던 오늘처럼 웃으며 가련다. 잡은 두 손을 놓지 않고, 어깨를 맞대고, 같이 걸어가면 그뿐이니까. 호주머니 속의 상수리나무 열매가 서로 부딪치며 달그락거린다. 경쾌한 음률이다. 나도 남편과 어깨를 부딪치며 남은 인생길을 경쾌한 음률로 걸어가리라. 산이나 삶이나 하산길이 더 조심스럽다.

물은 머문 듯 흐르고 바람은 낮다. 노을에 내려앉은 윤슬이 신비롭다.



영원한 동행

 

장은영

 

사실 난 그 노인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그저 근래 보이기 시작한 걸로 보아 새로 이사를 왔다는 것과, 출입하는 통로로 봐서 뒷동에 사는 분일 거라고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아침 9시 무렵, 나는 습관적으로 노인을 기다린다.

자그맣고 가녀린 체구와 몸가짐, 고개를 약간 숙인 채 조심조심 걷는 걸음걸이, 심지어 옷매무새까지, 노인은 어머니를 거짓말처럼 쏙 빼 닮았다. 어머니를 쏙 빼닮은 노인을, 어머니가 떠난 시간에 매일 보게 되다니. 괜한 벌짓거리라는 걸 잘 알면서도 엄마가 노인을 보내주셨구나하면서 그리움에 젖는다.

노인을 처음 본 그 날 오후, 어머니의 마지막 거처였던 노인병원을 찾았다. 마당엔 어머니와 산책하던 그때처럼 오후의 태양이 잔뜩 내려앉아 쉬고 있었다. 담장 곁 살피꽃밭 앞에 어머니의 휠체어가 서있다. 어머니는 휠체어에 앉아 나를 내려다보고, 나는 휠체어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 ‘지금까지 지내 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 잠시 어머니의 부재를 잊은 채 마주보며 함께 불렀던 찬송가를 흥얼거렸다. 어머니가 노년에 즐겨 부르던 감사찬송이다. 어머니의 목소리다. 문득 고개를 쳐드니 어머니는 뵈지 않고 얄밉도록 투명한 하늘에 그리움만 가득했다.

어머니는 작고 가녀린 외모와는 달리 여장부였다. 음전하지만 당당했고 도전적이었다. 그 어려운 시절, 다섯 자녀를 대학까지 가르친 것도, 넉넉지는 않아도 궁색하지 않게 공부할 수 있었던 것도 어머니의 성품 덕분이다. 우리가 성가한 후 어머니는 당신을 위한 도전을 시작했다. 왕복 300리 길 노인대학도, 80세를 훌쩍 넘긴 뒤 혼자만의 외국여행도, 게이트볼 선수로 외국 출정은 물론 심판 자격 취득까지도 어머니에겐 한낱 당연한 일상이었다. 그런 어머니가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병실 침대에 종일 누워 있어야만 했으니. 견디기 힘든 고문이었으리라. 그랬기 때문일까. 어머니는 특유의 강한 삶의 끈을 너무 쉽게 놓아버렸다. 올 하나 흐트러짐 없이 꼿꼿하던 어머니의 성품은 고왔던 자태와 함께 생기를 잃고 점점 사위어갔다.

집중치료실에 머물던 어머니가 어려운 고비를 용케 넘기고 다시 일반병실로 돌아왔나 싶었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이울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핏줄이 드러난 앙상한 손을 잡아주는 것뿐이었다. 삭정이처럼 바싹 마른 몸은 너무 작아져 버렸다. 누군가 건드리기만 해도 금세 부스러질 것 같았다. 작아진 몸을 잔뜩 웅크리고 누운 어머니를 차마 쳐다볼 수가 없어 이불을 꼭꼭 눌러 덮어주고 뒤돌아 앉아 울었다. 어머니는 이미 소멸의 길로 접어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인간의 생명을 유한한 존재로 만드신 하나님의 섭리를 원망하기도 했다.

5인실에 머물던 어머니를 1인실로 옮겼다. 이미 마음의 준비는 했었지만 막상 1인실로 옮기고 보니 커다란 쇳덩이가 가슴을 철커덕 내리쳤다. 숨이 턱 막혔다. 어머니의 가쁜 숨소리와 어머니의 상태를 알리는 기계 소리만 방안을 휘감고 있었다. 두려움이 괴물처럼 다가왔다. 수치가 떨어질 때마다 가슴이 콩닥대고, 조금 오르면 괜찮아 지려나 기대하고. 수없이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서서히 다가오는 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미동도 없는 어머니의 귀에 대고 고마워 엄마. 그리고 미안해하고 말했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생명을 가진 건 언젠간 소멸되기 마련이다. 그 소멸의 과정을 지켜봐야하는 병실의 적막감이 무섭도록 깊게 내려앉고 있었다.

어머니는 늘 나를 믿어주셨다. 요양보호사를 향해 의기양양 엄지척하며 우리 큰딸하셨다. 세상을 당당하게 잘 살라는 당부는 아니었을까. 그러나 난 어머니에게 자랑스러운 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좋은 딸은 아니었다. 매일 요양병원에 가는 게 힘들어 적당한 핑계거리를 찾은 때도 있었다. 어머니라면 그랬을까. 자식이란 부모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야 비로소 제 도리를 깨우치는 미련한 존재인가 보다.

어머니가 숨을 거두기 전에 작별예배를 드렸다. ‘내 기도하는 그 시간.’ 우리를 키우면서 힘들 때마다 위로와 힘을 얻었다고 하셨던, 어머니의 찬송가다. 온종일 미동도 않던 어머니 입에서 으으으어억하는 소리가 났다. 필경 소리 내어 부르진 못하지만 함께 찬송하신 것이리라. 그리고 우리가 어머니를 위해 기도할 때 남겨질 자식을 위해 안간힘으로 기도하는 몸부림이었으리라. 마지막 순간에도 자식 걱정에 목이 메었을 어머니 마음을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

어머니는 끔찍이도 사랑했던 다섯 자식의 품에 안겨 긴 잠에 빠져들었다. 천사가 와서 수종했을까? 어머니의 잠든 얼굴은 지극히 평온했다. 그 얼굴을 만져보고 볼을 비벼보았지만 내 볼을 엄마 볼에 대고 비벼줄 때마다 아기처럼 좋아하시던 어머니는 끝내 웃지 않았다. 우리는 어머니를 아버지 곁에 누였다.

삶과 죽음은 이렇듯 찰나의 순간으로 이어져 있나보다. 오죽하면 우리 조상들이 상여머리에서 북망산 멀다더니 냇물 건너 북망산이로구나.’ 하고 읊었을까. 삶과 죽음이 냇물 하나 거리에 불과하다는 뜻이니, 죽음은 지척에 있는 셈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다지도 눈앞의 것에만 매달려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는 걸까. 아니 어쩌면 죽음이 지척에 있다지만 그 순간이 언제일지 모르기에 내일을 꿈꾸며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인생에 완전한 소멸은 없다는 생각을 한다. 어머니는 부재하지만, 어머니는 이제 그리움으로, 추억으로 생성되어 내 속에 깊은 그림자로 탁본한 듯 새겨져 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때로는 삶의 지혜로, 때로는 위로와 힘으로, 넉넉한 사랑으로 여전히 내 삶을 다독이며 내 안에 살아있지 않은가. 비록 생명체는 아니지만 꺼지지 않는 잉걸불로 나와 함께 살아감을, 그리고 오늘도 나는 여전히 그 불길의 끈을 붙잡고 있음을 어찌 부인하랴. 영원한 동행임을 부인할 수 있으랴.

할머니 나오셨다고 소리치는 남편의 목소리가 들린다. 부리나케 창가로 달려간다. 뒷동 노인을 보며 어머니와 동행의 하루를 시작한다. 자그맣고 가녀린 노인의 어깨 위로 어머니의 잔영이 내려앉는다.



<수상소감>

 

곱고 다양한 색깔로 채울 삶을 기대하며

 

장은영

 

문득, 눈 덮인 하얀 운동장을 걷다가 뒤돌아서서 내 앞에 찍혀있는 발자국을 바라보며 뒷걸음질로 걸었던 어릴 적 기억이 납니다. 또렷한 두 줄 발자국이 참 멋있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걸어온 내 인생길을 뒷걸음질로 걸으며 바라보면 내가 찍어놓은 발자국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뒤돌아서서 바라보니 상처 난 발자국과 환하게 웃는 발자국이 나란히 걸어오는 게 보입니다. 갈 길이 무에 그리 바빴던지 부지런히 앞만 보고 걸었구나 싶습니다. 그렇게 걸어온 길이니 놓쳐버린 것도, 잃어버린 것도 많았겠지요. 다른 사람의 기대와 요구에 맞춰 살기보다 나 자신에게 충실하고 진실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인생길 느지막이 지나온 내 삶의 발자국을 음미하며 돌아보게 해줄 수필과의 동행을 시작합니다. 수필을 통해 나 자신을 정직하게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삶을 바라보는 눈과 마음이 열리고 나의 진짜 모습이 찾아지지 않을까요? 더 곱고 다양한 색깔로 내 삶의 남은 부분이 채워지리라 기대해 봅니다. 늦은 나이의 시작이 열없고 우세스럽지만 오래 묵은 삶이니 수필의 향기도 짙으리라 은근슬쩍 어이없는 욕심도 내봅니다.

착한 오지랖으로 씨앗을 뿌려 준 친구와 그 씨앗의 싹을 틔우고 가꾸어 주신 지도 선생님, 힘들다는 투정을 다독여 준 남편 덕분입니다. 그 고마움 잊지 않고 서툴고 느린 걸음일지라도 꾸준히 걸어가겠습니다.

    


 

약력

 

청주교육대학교,

청주교육대학교대학원(석사과정)졸업.

초등학교장 퇴직

청주교육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교실 수료

52jey@hanmail.net

전화 : 010- 

주소 청주시 서원구 수곡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