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게 준비하고 미래를 꿈꾸는 여행
-신금철의 『가족 그 아름다운 화소』에 붙여-
이방주(수필가, 문학평론가)
신금철 수필가는 40여년을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봉직한 평생교단교사이다. 부군이신 임갑수 선생님도 역시 40년을 중등학교 교직에 몸담아 청주시내 명문 중학교 교장으로 퇴직한 분이다. 아들만 셋을 둔 부부는 며느리까지 교직에 있으므로 온전한 교육가족이다. 아내는 안온하고 남편은 인자하고 자상하다. 두 분만 보면 이 댁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세 아들은 능력 있고 활기차게 사회에 봉사하고 있다. 며느리들도 훌륭하게 사회에 기여하면서 품위 있게 가정을 다독여가고 있다. 아들은 아버지를 닮고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닮았다.
신금철 수필가는 충북은 물론 대한민국 수필문단의 큰 기둥인 반숙자 수필가에게 창작을 공부하고 2000년 월간 『한국문인』에서 신인상을 받아 수필 문단에 발을 디딘 중견수필가이다. 그 후 충북수필문학회 부회장으로 봉사하였고 부회장 임기가 끝나고서도 계속 동인지 편집위원으로 임원들을 도와주는 지방문단을 조용히 지원하는 문인이다. 또 청주시에서 지원하고 세계직지문화협회에서 시행하는 청주시 1인1책 만들기 사업에 지도강사로 참여하여 수필의 저변확대에도 무한 봉사를 하고 있다. 이런 모습은 경륜, 나이를 불문하고 수필문학이라는 한곳에 눈을 둔 모습이라 보여서 모든 문인들의 귀감이 되었다.
신금철 수필가는 수필집 『숨어서 피는 꽃』(2008) 『호랑나비 羽化』(2017) 등2권의 수필집을 냈고 지방 일간지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그런 작가의 공적이 문학적 성과를 인정받아 충북수필문학상을 비롯하여 많은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이와 같이 신금철수필가는 젊은 고희를 자랑하면서 산다. 젊은 고희를 자랑하듯 5,6년 전부터 청주교육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교실과 인연이 되어 치열하게 창작이론을 공부한다. 사진 예술가인 부군과 함께 현장을 답사하고 여행하면서 여행에서 얻은 소재를 작품에 담아 풀어놓는다. 2018년에는 수필 창작 교실에서 함께 공부하는 문우들과 무심수필문학회를 창립하고 초대 회장이 되어 2년 만에 전국적인 수필문학 동인회로 성장시켰다. 가정에서 가족을 사랑하듯 문우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다독이며 궂은일에 앞장서는 어머니 같은 경영의 결과이다. 이제 수필문학의 제 3시대를 무심수필문학회가 주도적으로 열어 가는데 앞장서고 있다.
여행기 초고를 받아보고 여는 지면마다 감동하고 때로 부럽기도 하고 은근히 질투가 나기도 했다. 여간해서는 가족에 대한 자랑을 하지 않는 선생님이 이번에 가족 여행기 『유럽을 담다』를 펴내면서 많은 고심을 한 흔적이 보인다. 그런 고심과 함께 읽는 내내 감동의 연속이었다. 나도 한때 아들과 함께 15박 16일간 서유럽 배낭여행을 한 적이 있는데 대부분의 여정이 비슷하여 이해도 빨랐다. 다만 우리는 유레일을 비롯한 대중교통을 이용한데 비해 작가는 렌트카를 이용한 점이 달랐다.
언젠가 『빼빼가족, 버스 몰고 세계여행』이라는 가족 여행기를 읽고 부러워한 적이 있다. 오십대 아버지 어머니와 1녀2남이 개조한 버스를 몰고 블라디보스톡에서 시베리아를 건너 유럽을 돌아 실크로드를 통해 1년 만에 귀국하는 여행이었다. 이들도 떠남에 문제가 많았다. 가장은 하던 일을 중단해야 한다는 것, 자녀들은 학업을 중단해야 하는 것, 여행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살던 집을 팔아야 하는 문제 등이 걸림돌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을 가족이 함께 해결하고 양보하고 어루만지면서 그 가정을 성장할 수 있다고 본다.
개인의 삶이든 가족의 살림살이든 변화가 곧 발전이다. 변화는 생각이 바뀌고 가치관이 신선해져서 역동적인 인생을 꾸리게 된다. 여행은 삶의 공간을 바꾸는 일이기에 이러한 변화에 동력이 된다. 가족이라도 서로의 원만한 관계가 매우 소중하다. 여행은 가치관의 변화와 아울러 가족이라도 서로 몰랐던 것을 발견하고 이해하게 되어 관계의 변화를 가져온다는데 커다란 의미가 있을 것이다.
가족여행을 준비하는 느낌은 부부라 하더라도 서로 조금 다르다고 한다. 여성들은 대개 편안하고 행복한 감정으로 준비하는 반면 남성들은 다녀오면 편안하고 행복하게 변화할 것이라고 기대하며 준비한다고 한다. 여행 후일담을 귀 기울여 들어보면 여성들은 여행 중에도 추억을 남기려고 하고 다녀와서도 추억을 기억한다. 남성들은 추억은 기억하지 못하고 사실만을 기억한다. 남성들은 사실에 충실한 반면 여성들은 추억과 감정에 예민하다는 말이다. 여성은 현재의 행복을 추구하며 여행하고 남성은 미래 행복을 꿈꾼다는 말이다. 가족이 함께 여행하면서 모두 행복하고 편안하려면 부부를 비롯한 가족 간에 서로의 이러한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여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현재의 행복이 미래로 이어지는 여행으로 살아가는데 커다란 에너지로 거듭날 것이라고 본다.
신금철 수필가와 함께 문학 활동을 하는 문우의 한 사람으로 『유럽을 담다』를 읽는 동안 내내 부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그것은 내외분이 서로 존경하고 끊임없이 아끼고 사랑하며 사는 모습이 은은하게 드러나 있고, 아드님이 부모님에게 무한 존경심으로 모시고 있으며 부모님 또한 자녀에 대한 사랑이 진솔하고 희생적이라는 점이었다.
둘째는 두 분의 두터운 신앙심이었다. 진실한 삶과 그침 없는 사랑은 결국 신앙에서 나온다고 본다. 신앙에 대한 신념은 결국 가족에 대한 신뢰에서부터 출발한다. 사랑은 부부의 사랑에서 가족의 사랑에 이어지고 그리고 사회와 국가에 대한 사랑이 종교적 신념으로 발전한다고 믿는다.
셋째는 문학에 대한 사랑과 함께 자신의 미래에 대한 믿음과 설계의 모습이다. 가족 여행 중에도 가족에 대한 믿음과 사랑 뿐 아니라 작가 자신의 과거에 대한 믿음과 미래에 대한 설계를 내비치고 있다. 작가의 미래에 문학이 있고 그것은 젊은 고희를 지켜나가는데 깊은 의미를 주는 삶의 한 과제이다.
작가는 부군과 아들에 대한 끝없는 믿음과 사랑은 이렇게 표현했다.
프랑스를 출발하여 17일이나 운전대를 잡은 아들이 너무 힘들어 보인다고 남편이 운전대를 잡았다. 아들은 걱정되는지 만류했지만 남편은 베테랑 운전기사답게 시속 150km로 달렸다.
아들이 운전할 때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시원하게 뚫린 독일의 아우토반을 달리는 그가 멋져 보였다. 남편은 독일의 아우토반을 달리며 갑자기 ‘아빠의 청춘’ 노래를 불러 우리를 웃게 해주었다. 남편은 나이에 비해 모험심이 있고, 무엇이든 해보려는 의지가 강하여 내가 든든하게 기대고 사는 나만의 노거수老巨樹이다. 그의 마음이 영원히 청춘이기를 기도한다.
그리 높은 산은 보이지 않았다. 도로 옆에 쌓인 눈은 녹지 않아 봄 속의 겨울이다. 하늘은 우리의 얼마 남지 않은 여정을 위해 푸르고 구름은 유유히 흐른다.
-하이델부르그-
여정이 얼마 남지 않은 독일 여행에서 부군에 대한 믿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노년에도 멋있게 운전하는 남편, 아들에 대한 사랑을 행동으로 보여 주는 남편, 아내에 대한 사랑을 즐거운 노래로 화답하는 남편의 모습에서 무한한 믿음을 주었을 것이다. 수필은 기억의 해석이다. 과거의 체험을 불러와 객관화 과정을 거쳐 현재의 시점에서 현재의 가치관으로 해석하는 과정이다. 이에 비해 기행수필은 현재의 체험을 현재의 가치관으로 해석하고 평가하는 작업이다. 기행 수필의 체험은 일상적 삶의 공간을 벗어난 새로운 세계의 체험을 인식의 틀에 불러들여 해석해낸 글이다. 남편에 대한 믿음은 공간의 변화에서도 변하지 않는다. 남편의 행동에 대한 해석은 시공을 초월하여 작가의 인식의 틀에 들어와 있다. 다시 말하면 변하지 않는 가치로 변화된 공간의 체험을 변함없는 믿음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믿음으로 살아온 부부는 모두가 행복하다. 남편은 믿음을 주어 행복하고 아내는 믿음으로 사랑을 받아 행복하고 아들은 그런 부모에 대한 무한한 존경과 신뢰로 행복할 것이다. 이러한 믿음을 주는 남편의 모습은 어느 사이에 아들에게 전승되고 있음을 다음과 같이 보여 준다.
뒤 타이어가 펑크가 나 있었다. 당황한 아들의 낯빛을 보고 나는 덜컥 겁이 났다. 그때 침착한 남편은 보조타이어를 찾아내어 아들과 함께 비바람을 맞으며 20여분 끝에 타이어 교체를 끝낼 수 있었다.
날씨는 더욱 추워지고 설상가상으로 천둥소리까지 요란하여 내 가슴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비바람과 추위에도 힘든 내색 없이 타이어 교체를 끝내는 남편이 그 어느 때보다 믿음직스럽고 멋져 보였다. 아들의 존재가 더 소중해 보였다. 그 어떤 어려움도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어 헤쳐 나갈 수 있음에 감사했다.
-베르동Vardons 계곡의 양떼-
위기 상황이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두 남자가 되어 있다. 두 남자가 되어 한 여자의 안위를 위해서 늠름하게 위기를 물리치는 모습이다. 마치 멋진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천둥, 비바람, 추위 같은 난관 속에서 위기를 해결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듯 묘사되었다. 여기서 아버지는 가장을 넘어 한 여자를 사랑하는 ‘사나이’의 모습이다. 이러한 멋진 남성미는 바로 아들에게 전수된다. 이 한 사건은 그냥 하나의 일화가 아니라 이 가정에 미치는 어떠한 위기 속에서도 여성 가족 구성원을 보호하는 속에서 어려움 없이 멋지게 해결할 것이라는 믿음을 상징한다. 작가 가정의 평상시 모습을 상징하는 삶의 한 단면이어서 모든 독자의 부러움을 살 것이다.
남편과 아들의 대화는 정겹게 들려 나는 행복에 젖는다. 비에 젖은 나무들의 속삭임과 작은 꽃들의 웃음소리, 내 입가엔 미소가 흐르고 이탈리아의 비 오는 아침에도 축복의 인사를 보낸다. 온갖 시름 다 잊고 쌓였던 슬픔은 다 날려 안개 속에 던지고 즐거움만 싣고 달린다. 곡예를 하듯 구불구불한 산길을 아들의 안전을 위해 기도를 잊지 않았다.
-친퀜테레-
우리민족의 전통적 윤리의식 가운데 쉽고도 어려운 덕목이 바로 부자유친父子有親이다. 곧 다 알면서도 실행은 쉽지 않다는 말이다. 아버지와 아들에 친함이 있어야 한다는 말은 부자간에 친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말일 수도 있다. 쉽지 않기에 오륜으로 정하지 않았을까 한다. 세대 간의 갈등을 예견한 탁견이다. 현대인은 이러한 덕목을 과거의 시선으로 해석하여 쓸데없는 일이라 하지만 오늘날의 가치로 해석하면 이만큼 가정의 평화를 가져오는 덕목도 없을 것이다. 나는 때로 ‘親’의 전제 조건으로 ‘新’을 생각하기도 한다. 그 근거로 ‘大學’에 ‘大學之道는 在明明德하고 在親民하며 在止於至善’이라 했다. 대학의 길은 밝은 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이끌며 지극한 선에 머무르는데 있다고 생각하면 ‘親民’은 곧 ‘新民’이다. 친민이란 대학을 공부한 지도자들이 백성을 늘 새로운 가치의 세계로 이끌어 나가야 사회가 발전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니 부자유친이란 세대 간의 시선을 구세대인 아버지는 아들에게 신세대인 아들은 아버지에게 가까이 맞추어 늘 새롭게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 변화를 의미한다. 누구나 조금씩 변하면 조금씩 관계가 가까워진다. 차안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대화가 정겹게 보이는 것은 부자에게 有新이 있는 부자유친이란 의미이다. 이를 바라보는 아내, 어머니는 ‘비에 젖은 나무들의 속삭임과 작은 꽃들의 웃음소리, 내 입가엔 미소가 흐르고’ 온갖 시름과 슬픔은 안개 속에 묻히게 마련이다. 삶의 구불구불한 길도 이 가정은 곡예를 하지 않고 즐겁게 질주할 것이라 믿는다.
오늘도 해님은 인색하다. 창문을 열고 호수를 바라보니 차지만 상큼한 바람이 귀밑머리를 날린다.
부드러운 바람이 좋다. 언제, 또 호수를 곁에 두고 밤새 이야기하고, 호수의 노래에 잠을 깨고 잠이 드는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았다.
여행을 떠나기 전 나 자신과 약속했던 ‘새로운 내가 되어 돌아가자’라던 말을 생각했다.
이기적이고, 냉정하고, 참을성도 부족하고, 너그럽지 못하고 …. 나의 부족함을 들추어보니 부족함이 너무도 많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초라해지는 자신을 일으켜 세우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세상에 흠 없이 완벽한 사람은 없으리라. 부족함을 채우며 더 성실하게 살아가리라 다짐을 했다.
-귀국길에 오르다-
신금철 수필가는 귀국길에 오르면서 자신을 돌아본다. 수필은 고백의 문학이라고 한다. 고백은 자신을 돌아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자신을 돌아보고 그대로 토로하는 것이 수필적 고백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객관화하는 것이 바로 성찰이고 성찰한 것을 고백하는 것이 진정한 수필적 고백이다. 세상에 흠 없이 완벽한 사람이 없으리라는 생각은 자신의 부족함에 좌절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 객관화가 곧 성실하게 살아갈 다짐의 주춧돌이 된다.
신금철 수필의 성실에는 분명 사랑에 대한 성실, 신앙에 대한 성실, 문학에 대한 성실일 것이라 믿는다. 가정은 작은 사회이다. 한 가정이 건전하다는 것은 건전한 사회를 만들게 마련이다. 한 가정은 건전한 사회를 건설하는 주추가 되고 한 장의 벽돌이 된다. 이 가정의 모범적인 사랑이 가정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로 확산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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