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소식을 전하는 봄까치꽃
2020년 3월 7일
미호천에서
봄까치꽃을 아시나요? 아 그럼 큰개불알풀꽃은 아시겠지요?
봄까치꽃이 피었다. 봄이다. 이 꽃이 아마도 이미 피었을 텐데 게으른 나는 처음 본다. 볕은 따뜻해도 바람에 찬 기운은 남았다. 자전거를 타고 무심천으로 나가는데 율량천 생태관찰로 끄트머리 양지쪽 언덕에 소복하게 피었다. 아주 소복소복하다. 보랏빛 무늬를 수놓은 비단을 깔아놓은 듯하다. 따사로운 오전 열시 볕을 받아 연보라 꽃잎이 앙증맞다. 아기 엄지손톱보다도 작은 꽃이 꽃잎이 넷이다. 그런데 그 작은 꽃잎이 가운데로 갈수록 엷어지고 주름이 네 개이다. 작으니까 여럿이 모여서 피는지도 모르겠다. 밤하늘에 별처럼, 여름 계곡에 반딧불처럼……. 봄을 알리는 꽃으로 별꽃보다는 좀 크지만 이렇게 작은 꽃이 있는 것도 신비스럽다.
봄까치꽃이란 이름은 사실은 본래 이름이 아니다. 열매가 개의 불알 모양으로 생겼다고 해서 우리나라에서는 큰개불알풀꽃이라 한다. 그런데 일설에서는 이 식물이 왜래식물이라 본디부터 우리말 이름은 없었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처음에는 일본 이름을 그대로 번역하여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그리 크지도 않은데 왜 ‘큰’을 붙여 큰개불알풀꽃이라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름이 듣기에 민망했는지 아니면 해동하면 제일 먼저 피어서 봄소식을 전해 주어서 그랬는지 봄까치꽃이란 이름으로 바뀌었다. 그 이름이 훨씬 부르기는 낫다. 큰개불알풀은 나물로도 먹는데 나물 캐는 아낙네들이 붙였는지 ‘땅의 비단[地錦]’ 이라고도 불렀다. 참 낭만적인 이름이다. 서양에서는 꽃 모양을 보고 지었는지, 꽃술 모양을 보고 지었는지, 잎 모양을 보고 지었는지 ‘새의 눈[bird‘s eye]라고 부른다고 한다. 하긴 작은 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수술 두 개가 꼭 참새 눈알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무튼 모두 이름을 자기 경험과 느낌을 가지고 짓게 마련이라 생각한다. 은연중에 이름에 그 시대를 살던 민중의 사상이 담기게 마련이다.
봄까치꽃 이름 얘기를 하다 보니 그 학명까지 생각하게 된다. 그 학명은 Veronica persica Poir라고 하는데 여기서 베로니카는 진실한 모습을 뜻하는 어휘에서 연유되었다고 한다. 역사인지 전설인지 모르지만 성녀 베로니카가 있었다고 한다. 바티칸의 성베드로 성당에서 성녀 베로니카 상을 본 것도 같다. 베로니카 성녀는 AD 1세기경 살았던 예루살렘의 여인으로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짊어지고 피땀을 흘리며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갈 때 수건으로 그리스도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었다고 한다. 그 바람에 그 수건에 새겨진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이 오늘까지 전해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성녀 베로니카 상에는 예수의 얼굴이 흐릿한 영상으로 남아 있는 수건을 들고 있었다. 그리스도가 성녀 베로니카를 통하여 그 모습을 남겨 후세까지 전하게 되었다니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봄까치꽃이 베로니카의 이름을 본받아 좋은 이름을 가졌으니 축복받을 일이다.
봄까치꽃은 봄소식을 전하는 반가운 꽃이다. 그래서 이 꽃의 꽃말이 기쁜 소식이다. 봄까치꽃은 사람들이 기다리는 봄을 제일 먼저 전해준다. 큰개불알풀은 두해살이 풀이기에 겨울 동안 밭이나 따뜻한 두둑에 파랗게 남아 있다가 봄기운이 돌기만 하면 바로 꽃을 피우는 것이다.
베로니카 성녀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성스러운 모습을 전하듯 봄의 소식을 전하는 봄까치꽃이 이제는 우리 마음 속에도 봄을 전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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