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답사/느림보의 山城 山寺 찾기

부흥백제군 발길 따라 백제의 山城 山寺 찾아(여는 글)

느림보 이방주 2020. 5. 21. 09:01

여는 글

부흥백제군 발길 따라

백제의 山城 山寺 찾아

    

 

세종시 전동면에 운주산성이 있다. 나는 운주산성을 그냥 산책 삼아 다녔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우거진 고즈넉한 산성길이 상쾌하고 좋았다. 독립기념관 푸른 지붕으로부터 공주 공산성까지 먹줄을 튕겨 놓은 정상의 그 한가운데쯤에 백제의 얼 탑이 있다. 백제의 얼이 왜 이곳에 모여서 탑으로 불끈 솟아 있을까. 그건 그냥 지나는 궁금증이었다. 돌아내려오는 길은 온통 활엽수가 하늘을 가려주는 오솔길이다. 그렇게 십리 길은 그냥 만족스런 산책길일 뿐이었다.

성 아래 고산사라는 절이 있다. 오래된 절이 아니라 큰 관심은 없었다. 어느 추운 겨울날 지나는 길에 들렀다가 백제국의자대왕위혼비’ ‘백제루’ ‘백제극락보전’ ‘도침당이런 비와 전각을 보고 바로 스님을 찾았다. 이날 나는 백제부흥운동, 부흥백제국, 주류성 이런 단어들에 빠져버렸다. 그래서 나의 부흥백제군 발길을 따라가는 산성 산사 답사의 발길이 시작되었다. 이날 고산사 정대스님은 나를 꽁꽁 묶어놓은 어둠의 껍데기를 깨어주는 망치와 정이 되었다.

비암사에 갔다가 어느 문화해설사에게 비암사 연기설화를 들었다. 설화는 전설이고 전설은 역사의 실마리가 된다. 그리스의 신화인지 전설인지로 여겼던 서사시 일리아드》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트로이의 목마는 독일의 하인리히 슐리만이라는 엉뚱한 고고학자에 의해 트로이 유적을 발견되어 역사가 되었다. 비암사의 뱀굴 전설도 언젠가는 부흥백제의 마지막 동굴로 밝혀질 것이라는 아련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 나는 첫 번째 증거물로 연기지역 일대에서 발견되는 신비로운 불비상이라고 믿고 있다. 불비상은 국보가 된 미술품이 아니라 백제 유민의 한을 달래주는 부처님이라는 연화사 운주스님의 말씀에 공감한다.

2007년부터 2017년까지 10여 년 동안 충청 전라지역을 중심으로 산성 167개를 답사했다. 또한 산성 아래에 있는 산사 45곳을 참배했다. 답사 끝에 나만의 결론을 어렴풋이 얻어내게 되었다. 우리나라 산성은 모성母城이 있으면 그보다 작은 자성子城이 있고, 그 사이에 보루堡壘가 있어서 중국의 만리장성과 같은 거대한 산성을 이룬다. 세종시 운주산성에서 공주, 부여, 청양, 예산, 부안의 우금산성으로 연결되는 산성의 띠나, 옥천의 관산성에서 대전, 회인, 청주의 낭비성까지 이어지는 산성의 줄기, 세종시 부강면의 금강주변을 둘러싼 크고 작은 산성은 모두 이어진 하나의 성으로 보였다. 산성은 공격과 방어의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청주 와우산토성, 당산토성, 청주읍성, 상당산성처럼 나성羅城을 이루어 보민保民 산성 역할을 하는 성도 있어서 백성을 사랑하는 정치인들의 배려도 엿볼 수 있었다. 보민 산성의 내부에는 사찰이 있어서 피난한 백성들의 정신적 안식처가 되었다. 이것은 유럽의 성안에 있는 성당이나 인도의 거대한 성안에 있는 힌두사원과도 역할과 의미가 상통한다. 또한 부흥백제군길과 관련된 산성 아래의 산사들은 대부분 본당이 극락전, 극락보전으로 아미타부처님을 본존불로 모시고 있다. 이것은 건립당시에 정토 신앙이 대세였던 의미 이외에도 백제 역대 왕과 억울하게 죽은 백제유민들의 극락왕생을 발원했고, 지금까지 15백년간이나 영산대재가 지속되는 연유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산성과 산사는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이 산성과 함께 산사를 답사한 까닭이다.

2017년에 낸 수필집 가림성 사랑나무(수필과비평사)에는 그동안 답사한 산성 산사 가운데 백제부흥운동에 근거지가 되었던 산성, 백제와 신라 고구려의 쟁패의 현장이 되었던 충청지역의 산성, 금강유역을 지키던 백제의 산성, 청주 나성이라 여겨지는 산성 48개와 산사 20여 곳을 가려 실었다. 그러나 이 책은 10여 년간 약 1400km 이상을 발로 걸어 답사한 만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종아리를 온통 가시에 찔리고 긁혀 얻은 만큼의 감동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내가 살고 있는 청주나 가까운 세종시, 부흥백제군길을 조성하여 관광자원으로 삼은 홍성, 예산, 청양이나 부여, 공주의 문화담당자에게, 그리고 지방신문의 문화담당 기자에게 가림성 사랑나무를 우송했지만 아무런 반응을 얻어내지 못하였다. 나는 심하게 좌절하였다.

지금까지 백제 부흥운동사를 연구한 논문이나 저서를 보면 부흥백제의 수도라고 할 수 있는 주류성의 위치에 대해 설이 분분하다. ‘주류성이란 이름이 일본서기에만 전해지고 우리 역사에서는 묻혀버렸기 때문이다. 북쪽으로부터 세종시 전의면 운주산성, 홍성의 장곡산성 또는 학성산성, 청양의 두릉윤성, 예산의 임존성, 서천의 건지산성, 그리고 부안의 우금산성이 그것이다. 7개의 산성 중에서 모두 답사하고 부안의 우금산성만은 가지 못했었다. 이런 부안의 우금산성과 부흥백제군과 나당연합군의 격전지였던 대전의 월평동산성(내사지성內斯只城으로 추정됨)을 답사하지 못하고 백제부흥운동을 테마로 한 가림성 사랑나무를 낸 것은 나의 성급함으로 보여 많이 후회하였다.

최근에 도서출판 밥북의 주계수 사장께서 가림성 사랑나무를 보고 그냥 버리기 아깝다 하여 다시 펴낼 것을 제안해 왔다. 나는 뛸 듯이 기뻤다. 이참에 부안의 우금산성과 대전의 월평동산성을 답사하여 보완하고 가림성 사랑나무에서 부흥백제군과 관련한 산성 산사와 백제 신라의 쟁패의 현장이 되었던 산성 산사만 골라 이 책을 다시 내기로 하였다. 가림성 사랑나무의 때를 벗기고 금관을 씌워주는 도서출판 밥북의 주계수 사장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한편 이 책의 발판이 된 가림성 사랑나무를 내 주시고 재판을 허락해준 수필과비평사 서정환사장님께도 감사드린다.

이 책이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백제 역사를 다시 찾아주고, 백제 산성이 그냥 산책하는 길이 아니라 검이불누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라는 백제 문화의 정신을 깨우치는 정과 망치가 된다면 내 종아리의 상처도 아름다운 꽃으로 다시 피어날 것으로 믿는다.

 

 

20203

 

수름재 느림보 서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