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과 함께 남은 구라산성謳羅山城(구녀성)
상당산성 답사를 마치고 정오가 다 되어 구라산성으로 출발했다. 미원면과 내수읍의 통로인 이티재 휴게소 마당은 이제 휴게소가 아니다. 상당산성에서 내려오는 한남금북정맥 마루금이 이티재를 건너면 바로 구라산성을 지나 질마재로 향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구라산성으로 올라가는 정맥을 마구 훼손하여 건물을 짓고 있다. 새 건물의 규모가 커서 진입로를 찾을 수 없다. 이티는 보은에서 미원 낭성을 거쳐 고개를 넘어 초정을 지나 내수, 진천 소두머니를 지나면 농다리를 건너 진천 만뢰산성으로 통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이다. 농다리 주변에서는 진천에서 구라산성을 가기 위해 농다리를 지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공사장이 끝날 무렵 한남금북정맥 들머리를 발견했다. 오솔길에 들어서니 바로 아름다운 솔숲이다. 솔바람이 불어 땀을 씻어간다. 이티재에서 구라산성까지 2km도 안 된다. 호젓한 오솔길에 질마재부터 걸어온다는 노인 한 분을 만났다. 땀도 흘리지 않는다. 도사 같다.
마지막 된비알을 한 10여 분 숨 가쁘게 올랐다. 잡목 사이로 성벽이 보였다. 질현성보다 더 높고 규모가 크다. 바로 성벽으로 갈까 하다가 잡목이 너무 많아 그대로 성으로 올라갔다. 남문지로 보이는 성벽 위이다. 버릇처럼 오른 쪽으로 성벽 위를 걸었다. 돌은 검게 산화되었다. 자연석을 다듬지 않고 그냥 쌓았는데 거의 무너졌다. 그런데 언뜻 보아도 내외 협축 석성이다. 외벽과 내벽의 높이는 달라도 내외의 성벽이 모두 석성이다. 길은 전혀 없다. 기록에 둘레가 860m되는 테뫼식 석축산성이라니까 상당히 큰 성이다. 우거진 나뭇가지를 헤치고 성벽 위를 걸으면서도 계속 외벽을 살폈다. 성벽이 워낙 높고 수직이라 외벽이 보이지 않는다. 한 150m쯤 가다가 되돌아왔다.
성의 내부는 평평한 대지이다. 평평한 곳에 우물도 건물지도 찾을 수 없을 만큼 나무가 우거졌다. 구려사라는 성내 사찰이 있어서 절터와 최근까지 탑이 남아 있었다고 하나 찾을 수 없다. 서벽 위를 걸었다. 성은 구라산의 정상에 띠를 두르듯이 돌려 축성한 것이 아니라 동남쪽 50m 아래로 비스듬히 내려가 있다. 서벽은 남벽에 비해 높지 않고 거의 무너졌다.
남벽이 궁금해져서 견딜 수 없다. 구녀성 전설에 나오는 무덤 11기를 확인해야 한다. 구녀산 정상까지 갔다가 되돌아 내려오니 동쪽 구릉에 무덤이 있었다. 무덤은 아래위로 나뉘어 11기가 있고 위에는 상돌도 있었다. 누군가 상돌에 술잔을 부어 놓은 흔적이 남았다. 이곳까지 올라와 잔을 따르는 정성이 아름답다. 우리나라 사람만큼 낭만적인 민족도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정작 산성에 다니면서 말로만 안타깝다 되뇌며 딱한 영혼들에게 맑은 술 한잔 베풀 줄 몰랐다.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나의 좁은 아량이 부끄럽다. 묘지는 누군가 해마다 벌초까지 하는 것 같다. 봉분이 뚜렷하지는 못하지만 깨끗이 정리되어 있다. 제절에 패랭이꽃이 처절하다.
<구녀성 전설>
오랜 옛날 구녀산 정상에 아들 하나와 아홉 딸을 가진 홀어미가 있었다. 그런데 이들 남매들은 사이가 좋지 않아 항상 다툼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마침내 그들은 생사를 걸고 내기를 하기에 이르렀다. 아홉 자매가 구녀산정에 성을 쌓는 동안 아들은 나막신을 신고 서울을 다녀오기로 했다. 내기에서 지는 편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것으로 약속을 했다.
이리해서 마침내 아홉 딸은 돌을 운반해서 성을 쌓기 시작 했고, 아들은 나막신을 신고 서울을 향해 출발을 했다. 한편 자식들의 이와 같은 생사를 건 내기를 비탄한 마음으로 바라다보고 있던 어머니는 몇 번이나 말렸으나 듣지 않아 체념하고 말았다. 내기를 시작한지 5일 되던 날, 아직 서울 간 아들은 돌아올 기미가 없는데 딸들이 시작한 성쌓기는 거의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고 있었다. 이대로 나간다면 필연코 아들이 져서 약속대로 죽음을 면할 수 없으리라 생각한 어머니는 커다란 가마솥에 팥죽을 한 솥 끓여 딸들에게 먹고 하라고 권했다. 이에 아홉 딸들이 팥죽을 먹기 시작했다. 팥죽이 어찌나 맛이 있었는지 수저를 놓을 생각이 없었다. 그 사이에 아들은 발가락에 피를 흘리며 당도했다.
내기에 패한 아홉 딸들은 그들이 쌓아올린 성벽에 올라가 몸을 던져 죽고 말았다. 아홉 누이의 시체를 앞에 놓고 부질없는 불화로 목숨을 잃게 한 동생은 홀어머니에 불효를 한 것을 크게 뉘우치고 그곳을 떠나 개골산으로 돌아가 누이들의 명복을 빌며 다시는 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멀리 떠난 아들의 소식을 기다리며 홀어머니는 먼저 죽은 영감의 무덤 앞에 아홉 딸의 무덤을 만들어 놓고 쓸쓸한 여생을 보내다가 끝내 아들을 만나보지 못한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에 마을 사람들이 그 영감 곁에 홀어머니의 무덤을 만들어 준 것이 오늘의 열한 무덤의 유래라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이 전설은 우리나라 산재해 있는 ‘오누이 성쌓기 내기 전설’이다. 비극적 결말을 가진 이 이야기는 성이 완성된 후에 근동 사람들에 의해 구전되면서 가감되어 모든 이들의 마음을 울렸을 것이다. 임존성의 묘순이 바위, 부강 노고산성의 노고할미 이야기가 모두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이런 유형의 전설이다.
이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은 구라성에서 구려성 구녀성으로 명칭이 변천되는 과정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고구려산성이라는 뜻에서 구려산성이었다가 고구려와 신라의 산성이란 뜻으로 구라산성이 되고 구려산성이 구녀산성이 되었다고 한다. 구녀산성이란 명칭이 생기니까 아울러 '구녀九女'란 말을 토대로 이 전설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전설이 구전되면서 주변에 알려지니 자연스럽게 구녀산성이라 불리어 지금까지 이어온 것이 아닐까 한다.
남벽으로 갔다. 나무와 풀을 헤치고 남벽 바로 아래까지 갔으나 도저히 가까이 갈 수 없다. 다시 성벽 위로 올라가서 벽을 타고 내려갔다. 돌이 무너질 수도 있고, 잘못 밟아 미끄러지면 풀섶에 내동댕이쳐진다. 돌 틈에서 뱀이 나오는 수도 있다. 조심조심 내려갔다. 성벽 바로 아래에 내려가서 올려다보면서 내 키로 가늠해 보니 남은 성벽의 높이가 5m는 족히 될 것 같았다. 자연석을 다듬지는 않았으나 매우 정교하게 쌓아서 견고해 보였다. 그래서 아직도 원형이 보존되었을 것이다. 무너진 단면을 살펴보니 외벽과 내벽을 쌓은 다음 가운데는 자갈과 흙을 넣고 다진 것 같았다. 외벽은 비교적 큰 돌을 반듯한 면이 밖으로 향하게 쌓았다. 성석에는 돌이끼가 끼었으나 앞으로도 천년은 더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무 등걸을 잡고 다시 성벽 위로 올라갔다.
청주 상당산성을 중심으로 한 이 지역은 삼국 세력 확장의 각축장이다. 세력 우열에 따라 주인이 바뀌었다. 처음엔 이곳이 백제 땅이었다. 백제는 다루왕 36년(AD63) 이곳을 차지해 버린다. 그 후 장수왕의 남하 정책으로 고구려의 손으로 넘어간다. 백제는 고구려의 세력을 피해 한성백제 시대를 접고 웅진으로 천도한다. 신라도 단양의 죽령 이북 땅을 고구려에게 잃었다. 그러다가 신라 진평왕대에 이르러 진천에서 태어나 이곳의 지형을 잘 아는 김유신 장군이 낭비성에서 고구려 군사 5000을 베고 차지하는 바람에 신라 땅이 된다. 후백제 시대에도 견훤과 궁예가 구녀성을 빼앗고 빼앗기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만큼 견고하게 쌓게 되었을 것이다. 구라산성, 구녀산성으로 이름이 바뀐 것도 그런 역사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내려오는 길은 땀에 범벅이 되어 기진맥진했다. 단순한 등산과 다르게 산성답사는 진을 빼앗기는 기분이다. 낮은 산에 있는 무너진 성을 돌아보고 내려오는데도 탈진 상태가 되곤 했다. 딱한 영혼들에게 술 한 잔 베풀지 못한 옹색한 나의 주변머리도 탈진을 알긴 아는구나. 맑은 술 한잔으로 짓는 복이 있음을 왜 이제야 깨달았을까. 뼈저린 회한을 남기며 청주지역의 산성 답사를 마무리한다.
▣ 소재지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구라산(구녀산 해발 497m)
▣ 시대 : 삼국시대(6세기 경)
▣ 규모 : 둘레 860m, 높이 5m이상
▣ 시설 : 문지, 수구문, 우물, 건물지, 사찰지(구려사)
▣ 형식 : 내외 협축 테메식 산성
▣ 답사일 : 2017년 7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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