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신 날의 낙가산 보살사
불기 2561년 부처님 오신 날, 아내는 이른 새벽 낙가산보살사로 올라갔다. 나는 청소를 해놓고 텔레비전을 보면서 법요식에 갈까 말까 망설이는 중이었다. kbs 아침마당에서 마가스님께서 법문을 하고 계셨다. 법문이 재미있어서 메모까지 하면서 들었다. 하나씩 나를 반성했다. 아니 반성하게 했다. 오늘은 내가 ‘우리 절’이라 마음에 새겨놓은 보살사 뿐 아니라 사찰 세 군데를 순례하고 등을 달겠다고 마음먹었다. 법문이 끝나자마자 바로 카메라를 챙겨가지고 일어섰다. 마가스님의 법문은 이랬다. ‘그래도’라는 화두를 가지고 살자. 말하자면 어떤 부정적인 현실에 처할 때 ‘그래도 ~ 는 있지 않는가?’ 이렇게 말이다. 이순신 장군이 ‘그래도 신에게는 열두 척의 배가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다. 그렇다. 우리 보살사에는 그래도 원각스님께서 지키고 계시지 않은가? 신도들이 모두 존경하는 종산 큰스님께서 병환에 계시자 상좌인 원각 스님이 대신 지키고 있다.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되지만 ‘그래도~’라 생각하기로 했다.
차를 몰고 보살사로 가면서 우선 법요식이 끝나는 대로 순례할 사찰을 정했다. 그렇다. 세종시 연화사, 비암사, 고산사를 순례하는 것이다. 비암사는 백제 부흥군의 왕생극락을 기원하는 사찰일 뿐 아니라 계유명전씨아미타불삼존석상을 비롯한 불비상 3점이 발견되었다. 연화사에는 무인명불비상및대좌, 칠존불비상비석 등 불비상 진품 두 점을 모시고 있다. 고산사는 백제 역대 국왕과 부흥군의 왕생극락을 비는 백제극락보전이 있고 백제 부흥운동 연구에 온갖 정열을 다 바친 최병식 박사의 시주로 창건한 사찰이다. 이 절을 찾아 가는 것은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한 맺힌 부흥백제군에 대한 나의 작은 사랑의 표현이다.
보살사에는 아직 신도들이 많이 모이지는 않았다. 경찰관의 안내에 따라 종산스님께서 계신 큰법당 앞에 주차하고 극락보전으로 올라갔다. 차는 없어도 신도들은 많이 모였다. 마당을 가득 메운 연등이 아름답다. 법요식이 열릴 극락보전 앞에는 그늘막을 쳐놓았고 이벤트회사에서 방송시스템을 설치하고 있었다. 법당에 들어가 삼배를 올리면서 원각스님과 눈이 마주쳤다. 아내는 절에서 살다시피 하는데 나는 초파일에나 얼굴을 내밀자니 스님 뵙기 민망했다. 한심하다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라 믿는다. 스님께서 감동이 있으면 올라오라 했으니 말이다. 합장으로 인사했다. 상호가 인자하다. 욕심이란 찾아볼 수 없이 늘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얼굴이다. 민망함이 조금 가신다. 밖으로 나왔다. 연등 접수를 맡은 아내에게 가서 눈인사를 했다. 절은 많이 깨끗해졌다. 화장실도 깨끗하고 법당 주변에 잡초도 없다. 스님들이 부지런하신 흔적이다. 천년 고찰의 겉모습이 젊어졌다.
보살사는 청주시 용암동 낙가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청주 근방에서는 가장 오래된 절이다. 백제 위덕왕 14년(567년) 법주사를 창건한 의신 스님께서 창건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이름대로 천년고찰이 퇴락하여 사람이 잘 찾아오지 않았는데 종산스님이 주지로 오셔서 절에 생동감이 일기 시작했다. 영상회 괘불탱을 비롯한 문화재도 여러 점을 소장하고 있다. 무엇보다 보살사에 오면 돌아가신 어머니를 뵙는 것처럼 반갑고 마음 편하다. 주변의 산줄기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근심도 걱정도 다 사라진다. 욕심도 누구를 미워하던 마음도 다 사위어 바보처럼 순해지는 기분이다.
아미타부처님을 모신 극락보전은 조선 숙종 때의 건물이다. 밖에서 법당을 보면 아름답기 그지없다. 특히 낙가산 정상에서 용암동 쪽으로 흘러내린 산줄기와 바로 너머 김수녕양궁장 쪽 용정동으로 흘러내린 산줄기가 마치 연꽃 봉오리처럼 곱다. 산줄기가 그냥 뻗어 내린 것이 아니라 볼록볼록 꽃잎을 만들면서 흘러내렸다. 꽃잎 여러 겹이 극락보전을 감싸 안고 있다. 극락보전은 마치 연꽃잎 속의 노란 꽃술과 같다. 그렇게 아늑한 곳에 아미타부처님의 연좌가 있다. 보면 볼수록 아름답고 그 중에서도 부처님오신 날 즈음해서 녹음이 시작될 무렵 더 아름답다. 게다가 법당 앞에 아름드리 느티나무 수십 그루가 버티고 서서 법당을 지킨다. 느티나무들은 각기 동방지국천왕이 되고, 서방광목천왕이 되고, 남방증장천왕, 북방 비사문천왕이 되어 부처님을 호위하고 있다.
극락보전의 기둥은 모두 배흘림기둥이다. 이 기둥은 부석사 무량수전만큼 아름답다. 무량수전에 가야 덤벙주추를 볼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여기서도 덤벙주추와 배흘림기둥을 볼 수 있다. 법당 안에 석조이존여래병립상이 있다. 어찌 보면 투박하고 어찌 보면 귀여운 불상이다. 극락보전의 또 하나 아름다운 것은 바로 현판이다. 그 힘찬 글씨를 보면 전각의 규모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극락보전과 오층석탑이 잘 어울려 법당은 그런대로 천년고찰의 위용을 갖추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법당 외벽에 심우도尋牛圖가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 마음 깨끗한 분이 심우도를 시주한다면 보살사 극락보전을 찾는 신도들이 불법을 깨우치는 여정의 신비스러움에 더욱 감동할 것이다. 법당 안에 있는 괘불탱 또한 아름답다.
극락보전 바로 앞에 오층석탑이 소박하게 서 있다. 고미술을 하는 분들은 이 소박한 석탑에서 수없이 많은 예술성을 찾아낸다. 그냥 보기에 소박하고 깔끔하면서도 무언가 위엄을 지녔다고 생각하면 안 될까? 고미술에 뚝눈인 나의 눈에는 그냥 신비롭고 고고하게만 보인다.
10시에 법요식이 시작되었다. 나는 자리를 잡고 앉아서 의식에 참여했다. 스님께서 올해는 어떤 법문을 하시려나 했는데 갑자기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란 시를 염불하듯이 한 번 읊더니 죽음에 관한 법문을 했다. 석가모니부처님 탄생한 날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이러니하지만 결국 탄생은 죽음으로 가는 길의 출발이니 탄생을 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크게 기억에 남는 법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마음을 울렸다. 기억에 남는 것이 무슨 소용이랴. 앉아 있는 순간 잠시라도 욕심도 집착도 삭아 없어졌으면 되는 것이다.
보살사 점심공양의 특징은 법요식에 참여한 사람은 많지 않아도 공양에 참여하는 중생의 줄은 끝이 없다는 것이다. 부처님 오신 날 보살사 점심공양은 신도 아닌 분들이 더 맛나게 먹는다. ‘불이不二’다. 불계나 속계나 뭐가 다르랴. 하물며 신도나 비신도가 무슨 상관이랴. 부처님은 세상을 둘로 가르지 않는다. 줄을 섰다가 아무래도 시간이 끝이 없을 것 같아서 아내에게 부탁해서 사무실에 가서 '새치기' 공양을 했다. 밥의 양이 많은데다가 어느 노보살께서 떡을 자꾸 권해서 과식했다. 그건 탐貪이 아니라 생각했다.
날이 뜨거워진다. 스님께서는 아직도 아기부처님 관욕의식灌浴儀式에 참여하고 있다. 바로 차를 몰아 조치원 연화사로 향했다. 연화사는 복숭아꽃, 배꽃, 벚꽃이 만발하여 꽃동산 속에 파묻혀 있을 것이다.
▣ 위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낙가산로 168 (용암동)
▣ 문화재 : 극락보전 (충북유형문화재 56호)
청주보살사 석조이존병립여래상(충북유형문화재 24)
오층석탑(충북유형문화재 65)
청주보살사 영산회 괘불탱 (대한민국의 보물 제1258호)
▣ 형식 : 대한불교조계종 법주사 말사
▣ 시대 : 백제 위덕왕 14년(567년) 창건
▣ 답사일 : 2017년 5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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