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교육대학교 수필창작교실
무심수필문학회
직지直指의 고장 청주
무심無心, 이 간명한 두 음절의 명사는 청주 시내를 가로지르는 천川의 이름이다. 아울러 청주를 상징하는 기표이다. 무심수필문학회의 동인지 이름도 ‘무심無心’이다. 철학적 이미지가 물씬 풍기는 ‘무심’이란 명사를 안고 청주로 향했다. 청주는 수필계의 전설이 된 목성균 선생의 고향이기도 하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그날 미세먼지가 하늘을 뒤덮었지만, 개울가 벚나무는 벌써 꽃망울을 부풀리고 있었다.
예상보다 청주라는 도시의 규모가 컸다. 시내를 통과하는데 ‘고인쇄박물관’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 청주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직지直指’가 발굴된 고장이 아니던가. 그 외 상당산성이라든가 백제유물전시관같은 역사유적이 많은 도시다. 이방주 선생이 수업을 하시다가 우리의 전화를 받고 한달음에 마중 나오셨다. 강의실 앞 실개천 다리 위에서 첫 인사를 나누었다. 예상은 늘 빗나가기 마련이다. 실제로 뵈니 농구선수처럼 키가 크신 분이었다. 사진에서 본 인상과는 달리 청바지를 입은 댄디한 스타일의 순후淳厚한 인상이었다.
선생은 수필미학 방문단을 예쁜 건물로 안내했다. 건물 3층으로 올라가니 회원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은 이방주 선생의 방학 특강 날이었다. 청주교대 평생교육원 수필수업이 없는 방학동안 선생은 제자들도 만날 겸 수필쓰기에 도움이 되는 강의를 한다. 고대신화, 박지원의 수필세계, 단군신화 등 다양한 주제로 특강을 진행한다. 강의실이 비좁을 정도로 회원들이 앉아 특강을 듣고 있었다. 본래 충청도나 경상도 사람들 기질이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 강의실 분위기는 차분하지만 환대의 마음이 넘쳤다.
수필창작교실 치고는 평균 연령이 젊어보였다. 회원들의 따뜻한 환대 속에 인사를 나누고, 방문 목적을 밝혔다. 진심은 서로 통한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지만 수필문학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다보니 긴장이 풀리고 마음의 벽도 허물어졌다. 대체로 강의실 분위기는 가르치는 선생을 닮는다. 진중하면서 따스한 온기가 흘렀다. 이방주 선생은 《논어》 위정爲政 편에 나오는 사무사思無邪를 삶의 지침서로 삼는다. “생각에 사특함이 없다는 것은 감정을 절제하여 정도에 지나치지 말라는 가르침”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선생의 ‘사특함이 없는 가르침’이 무심수필 회원들에게도 무심히 스며들었으리라. 강의실 건너편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식사를 하면서 대화는 이어졌다.
2. 느림보 선생의 수필철학
이방주 선생은 《한국수필》로 수필 등단(1998)을 하고, 《창조문학》으로 평론등단(2014)도 한 수필계의 중견작가다. 교직에서 퇴직한 후 2014년부터 서원대 평생교육원에서 수필창작 강의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청주교대 평생교육원으로 강의실을 옮겨 지금까지 수필창작 강의를 이어오고 있다. 매년 학기말에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공개특강을 한다. 회원이 아니라도 선생의 강의를 들을 수 있고, 그 자리에서 수필쓰기도 한다. 시민들과 함께 수필을 공유하고 문학을 향유할 기회를 제공한다. 누구에게나 문을 열어주지만, 들어오면 제대로 공부해야 한다.
수필계도 인간이 모인 집단인지라 작품보다 명예욕을 앞세우는 이도 있다. 수필문학이 확장하면서 수필문학의 본령보다 자리에 연연하거나 패거리문화를 형성하며 세를 과시하려는 선생도 있다. 한편, 들판의 숨은 들꽃처럼 지역에서 순수하게 수필의 정신을 구현하는 선생도 있기 마련이다. 그 들꽃 같은 사람이 이방주 선생이 아닐까. 후학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양보하고 배경이 되어주는 사람, 느리고 나직하게 수필의 정신을 실천하는 사람인 듯 보였다. 이방주 선생은 자신의 이름 앞에 ‘느림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초스피드로 달려도 모자라는 시대에 느림보라니! 느림보 선생의 수필철학이 자못 궁금했다.
선생의 수필관은 이렇다 “수필隨筆이라 하여 붓이 가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먼저 수필修筆이라 하여 붓을 닦아야 그 붓을 따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수필가들이 스스로 붓을 닦아 인간을 사랑하는 도를 닦아 겸손하게 다른 문인의 글을 읽고 칭찬하고 깊은 사색으로 삶의 의미를 찾아 격조 높은 작품을 창작할 때 어떤 풍상에도 견딜 수 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미래 모든 문학은 수필에 수렴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모름지기 수필가는 작품을 잘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도 갈고닦아 자기수행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일 터이다. “수필 창작은 수도의 길”이라는 남다른 철학을 가지고, 실제 삶에서도 실천하는 사람 같았다. 선생은 오랜 세월 수필가로 평론가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수필 그 자체에 의미를 두는 듯 보였다. “저는 수필을 알면 알수록 깊어지고 성숙해지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회원 여러분께 내가 알고 있는 수필문학에 대한 모든 것을 톡톡 다 털어드리고 싶습니다.“ 이런 스승을 만나 수필 공부를 하는 무심수필 회원들은 선생 복이 많은 이들이다.
선생의 관심사는 사찰이나 산성 같은 역사유적과 풀꽃과 나무, 여행 등 다양한 방면으로 확장한다. 선생의 수필은 문학이라는 비좁은 영역에 안주하지 않는다. 《가림성사랑나무》(수필과비평사, 2017.)는 백제사와 관련한 지역의 산성과 산사를 답사한 후 수필로 풀어낸 책이다. 이 책은 수필집이 한 개인의 역사뿐만 아니라 지역의 역사서가 될 수 있다는 본보기를 보여준다. 청주라는 지역에 남아있는 백제역사를 현재의 시각으로 풀어내고 해석한 선생의 책은 또 다른 역사서이다. 수필이 개인과 일상을 뛰어넘어 지역의 역사로 확장하는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3. 무심無心의 정신을 실현하는 수필문학회
무심수필문학회는 2018년 17명의 회원이 만나 결성한 수필동인단체이다. 현재는 23명의 회원들이 활동 중이다. 그래서인지 풋풋한 신생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 저력은 회원들의 면면을 보면 알 수 있다. 각종 공모전과 문학상 수상 이력이 만만치 않다. 상이 모든 것을 대변하지만 않지만, 실력을 가늠하는 객관적 평가기준이기도 하니까. 이는 무심수필회원들의 기본기가 탄탄하다는 증거다. 한 한기에 한 명 정도 등단을 할 정도로 내부의 등단기준이 엄격하다.
무심수필의 주요 활동은 격월로 수필합평회를 하고, 문학기행, 동인지 발간 등이다. 동인 활동의 한 축이 수필공부라면, 다른 한 축은 인간적 교감이다.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삭막한 시절에 문학을 통해 감성을 확장하고 마음을 나누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가. 모름지기 문학 활동에는 밥과 술이 빠질 수 없다. 동인 연혁을 살펴보니 ‘강흥구 회원 댁에서 햅쌀밥’, ‘용담동 야채꽃 한정식’이 눈에 띠었다. 어쩌면 오늘날 문학은 잃어버린 인간성을 되찾아가는 여정인지도 모른다. 농사지은 쌀로 햅쌀밥을 지어 동인들을 초대하고 밥을 나누는 장면을 상상하니 내 마음에도 고소하고 따뜻한 밥 내음이 번졌다.
무심수필 동인들은 수필작법만 배우지 않는다. 문학, 역사, 신화 등은 물론 시나 소설 같은 타 장르에 대한 공부도 한다. 이는 이방주 선생이 주장하는 “수필은 모든 문학을 수렴한다.”라는 철학과 맞닿아 있다. 세계를, 인생을, 멀리 깊게 바라보고 글을 쓰라는 가르침이다. 인문학 공부가 바탕이 되어야 수필을 잘 쓸 수 있다는 무심수필의 이념이 엿보인다. 조국과 부모는 선택할 수 없지만, 좋은 스승은 찾아 나서면 된다. 수필창작 방법이야 어디서든 배울 수 있다. 철학이 있는 수필 강좌, 인간애가 흐르는 수필문학회는 흔치 않다. 경제적 가치만 우대받는 세상에서 수필만은 ‘무욕無慾, 무탐無貪’의 가치를 지켰으면 한다. 무심수필이 지향하는 인문적 가치가 회원들의 삶에 뿌리를 내리고 활짝 꽃을 피우리라 믿는다.
무심수필 신금철 회장은 종가집의 맏며느리처럼 손님을 맞고 접대했다. 문학회가 잘 굴러가려면 선생과 뜻을 같이하는 회원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 중심에 신금철 회장이 서 있다. 신 회장은 수필집을 두 권이나 출간했고, 충북수필문학상을 수상한 중견작가이다. 뿐만 아니라 지역 언론매체 〈충청타임즈〉에 수필을 기고하며 문학의 향기를 도민들에게 전파하고 있다. 이처럼 무심수필은 청주라는 지역에서 지역문화를 창조하고 가꾸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아직은 어린 나무지만, 고향마을 느티나무처럼 시민들에게 넉넉한 그늘을 드리우는 거목으로 성장하리라 믿는다. 마침 가는 날이 월요일이라 ‘고인쇄박물관’과 ‘백제유물관’을 보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대구로 오는 길에 속리산 ‘법주사’를 둘러보는 걸로 아쉬움을 달랬다.(이운경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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