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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토석 혼축 겹성 화봉산성華峰山城

느림보 이방주 2017. 6. 17. 23:57

토석 혼축 겹성 화봉산성華峰山城

 

 

등산객들도 화봉산성은 잘 가지 않나 보다. 애기바위부터 길은 뚜렷하게 있지만 풀과 덩굴식물이 우거져 걷기 불편했다. 준비 없이 왔어도 차 안에 늘 가지고 다니는 등산화를 신고, 한 짝이라도 등산지팡이를 가져오기를 참 잘했다. 화봉산성 가는 길은 그냥 능선이 아니다. 애기바위에서 급한 경사를 한 15분 이상 기다시피해서 내려가야 했다. 나뭇가지와 무성한 잡초가 길을 점령하고, 아카시나무 가지와 산딸기 덩굴이 팔에 스쳐 따갑다. 한참을 그렇게 내려가니 수렛길이 나왔다. 등곡2리에서 등곡1리나 노호리로 가는 옛길 같아 보였다. 그쯤에 갑자기 수렛길 절개지 바로 위에 '화봉산성'이란 푯말이 나뭇가지 속에 숨어 있다.

산봉우리는 아직 멀었는데 갑자기 푯말이 나오고 성터는 보이지도 않고 길도 희미해서 다 포기하고 등곡 2리로 그냥 내려갈까 생각했다. 그러나 여기까지 온 것이 아깝기도 해서 스마트폰을 열어 선답자의 산행기를 보니 푯말에서 8분이란다. 땀으로 목욕을 했는데 갈증을 견딜 수 없다. 생각해 보니 점심은 초코파이 하나랑 쿠키 한 조각으로 때웠다. 그래도 화봉산성을 다시 찾아오는 것보다는 지금 올라가는 것이 경제적이다. 억지로 힘을 냈다.

가풀막진 흙길을 7~8분 올라갔다. 뚜렷하지는 않지만 성의 흔적이 보였다. 성벽의 흔적을 파헤쳐 보기 전에는 토성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 석축 산성이다. 화봉산성은 등곡1리와 노호리의 경계인 북동쪽 화봉 정상부를 중심으로 서쪽과 서남 두 능선, 계곡을 약간 삼태기 모양으로 감싸 안은 형태로 쌓았다. 그래서 포곡식 산성으로 이름을 붙이려 하니 정상부인 화봉을 빙 둘러 쌓은 테메식 산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정상부는 평평하고 나무도 없다. 가운데는 화구호처럼 움푹하다. 낮은 웅덩이 같은 곳에 잡초가 우거졌다. 지팡이로 더듬으며 걸었다. 마치 신천지를 개척하는 기분이다. 성벽은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너졌고 남쪽 일부 성벽에서 석축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성 전체는 대부분이 토성이다. 성을 다시 한 번 돌아보니 분명 일부는 겹성으로 보였다. 등곡2리 쪽 동쪽으로는 계단식 다랑이 논처럼 만들어진 겹성이다. 그 만큼 이 성은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지만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정상에는 삼각점만 있고 안내판도 정상석도 없다. 주변에 잡목이 꽉 들어차서 산 아래가 잘 보이지도 않는다.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에서 가만히 서서 마을 방향을 살펴보았다. 30년 전 이곳 학교에 근무할 때 기억을 더듬으며 주변 산야를 살펴보았다. 서쪽으로 부강에서 매포로 가는 도로가 있고 그 주변에 현도 쪽에서부터 노호리, 등곡1, 등곡2리가 있다. 노호리와 등곡1리가 내가 근무하던 학교의 학구였다. 노고산성은 남쪽으로 있고 부강은 동쪽이다. 그렇게 보니 노호리 마을을 감싸 안은 포곡식 산성이 분명하다. 정상부는 마치 보루를 만들듯이 테메식으로 둘러싼 산성이다.

이곳에 성이 왜 필요했을까? 남쪽은 노고산성으로 꽉 막혀 있다. 노고산성이 본대라고 하면 본대에서 첨병이나 정찰대가 나와 있는 부속성이라고 볼 수 있다. 성의 쓰임새를 추리하기 위해서는 현재 이곳에서 전투가 벌어졌다고 생각하고 각기 두 편의 군사 진지를 상상하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그런 가운데 여러 가지 전투 형태나 경우에 따른 성곽과 보루의 쓰임새를 상상해 낼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여기는 부강 나루에서 회인으로 향하는 적을 감시하다가 초전에 박살내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상상할 수도 있다. 나지막한 이곳이 성을 쌓고 금강으로 들어오는 배를 감시한다든지 서해에서 금강을 통하여 부강 나루에서 육지로 올라오는 수군의 상륙을 여기서 초토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막지 못하면 문의로 염티를 넘어 회인으로 보은으로 가는 데는 순식간의 일일 것이다.

부강에서 남쪽으로 노고산성, 애기봉산성, 화봉산성, 성재산성으로 이어지는 산성줄기와 북쪽으로 복두산성 독안산성 유모산성으로 이어지는 산성줄기는 가운데에 부강에서 청주로 향하는 도로를 두고 마주보고 있다. 두 산성줄기를 마주보며 전투를 벌였을 수도 있고, 협공으로 산 아래 도로를 공격하였을 수도 있다. 마주한 두 산성의 줄기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전투의 양상을 상상하게 한다.

돌아오는 길은 등곡리로 내려가는 수렛길을 택할까 하다가 애기바위성을 다시 돌아보고 싶어 되짚어 왔다. 내려갈 때는 힘들었던 비탈길이 오히려 올라가는 길이 더 쉽다. 네 시간 땀 흘린 걸음이 그보다 더 한 소득을 올린 것 같다. 약수터에 내려와 약수 한 모금을 마시니 초정 약수 맛과는 전혀 달라 마시지 못하겠다. 가게에 들러 500원짜리 물 한 병을 사서 마시니 온몸이 다 씻어지는 기분이다.

 

 

위치 :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등곡1(해발 252m 화봉 정상)

형식 : 토석혼축 겹성 포곡식 산성, 내외협축 산성

규모 : 둘레 950m, 높이는 측정 불가능

답사 : 2014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