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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구룡산성은 탑이 되었네

느림보 이방주 2017. 6. 21. 12:44

구룡산성은 탑이 되었네

 

   

 

오후에 문의 구룡산성을 답사하기로 했다. 문의 구룡산은 옛날에는 구봉산으로도 불렸지만 지금은 모두 구룡산으로 부르고, 산성도 구룡산성이라 한다. 이 산은 운동 삼아 수없이 올라가 보았지만 산성에 대해서 크게 관심은 없었다. 구룡산성에 올라가는 방법은 현암정에 주차하고 현암사를 거쳐 대청댐을 조망하면서 오르거나, 오가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장승공원 입구를 지나 산성에 올라가서 삿갓봉을 거쳐 진장골 장승공원으로 내려올 수 있다.

문의 구룡산 등산의 주제는 대청댐 조망이었는데, 최근에 조성된 구룡산 장승공원 관람에도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구룡산의 한적한 오솔길을 걷고 나서 장승을 보며 삶의 애환을 되새겨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구룡산을 오르내리면서도 현암사 뒷산의 돌무더기를 별다른 생각 없이 지나쳤다. 산성에 관심을 가지면서 이 돌무더기가 구룡산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청주 부근의 다른 산성들에 비해 연구 결과 보고된 것이 별로 없었다. 안내판이라도 세워 시민들에게 산성임을 알리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오늘은 친구 이효정 선생이 동행했다. 산도 잘 알고 문화 역사도 소중하게 생각하여 마음을 편하다. 우리는 오가리 구룡산 장승공원 주차장에 주차했다. 주차장은 한산하다. 햇살만 봄볕답지 않게 짠들짠들하다. 우리는 장승 공원 입구를 지나 동쪽으로 등산로를 따라 올라갔다. 나무 계단을 15분쯤 오르면 바로 대청호수의 푸른 물이 마주 보인다. 우거진 숲속 가파른 날망에 오르면 현암사로 가는 길과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이 갈라진다. 정상으로 가는 길을 따라 조금만 더 오르면 구룡산성의 남벽이다. 사람들은 산성으로 바로 올라가는 가파른 길을 피해 목도 축일 겸 현암사로 접어들게 마련이다. 우리는 가파른 길을 택해 산성으로 직접 올라갔다. 산은 높지 않으나 쉽지도 않다.

조그만 오르면 바로 돌탑이 보인다. 제일 먼저 발을 디디는 곳은 약간 펑퍼짐한 쉼터 같은 곳에 쌓아놓은 돌탑이다. 주변에는 온통 크고 작은 성돌이 널브러졌다. 누군가 성돌을 주워 모아 탑을 쌓았다. 탑은 세월이 지날수록 하나씩 늘어난다.

산 아래에서 구룡산을 올려다보면 70~80도는 되어 보일 정도로 깎아비알이다. 그래서 오죽하면 현암사를 바위에 걸려있다 하여 다람절이라 했을까? 그런 가파른 벼랑에 테메식으로 성을 쌓았다. 서벽은 등마루를 따라서 100~120m 정도 동벽은 등마루에서 30~50m 금강이 바라보이는 동쪽 기슭으로 내려와 또 100m 정도 쌓았다. 그래서 기록에 의하면 산성의 둘레가 366m라고 한다. 전체 모양은 등마루에서 기슭으로 늘어져 내려온 삼각형 모양의 타원형이다. 그렇게 큰 성은 아니지만 금강을 지키는 요새가 되었을 것이다. 성돌은 화강암을 다듬어 쓰기도 하고 자연석 그대로 살려서 쓰기도 했다. 돌의 크기는 다른 성에 비해 크지 않아 가로 세로 대개 20~30cm 정도이다.

성벽은 대부분 무너져 돌무더기가 되었다. 축성 방법을 알 수 있는 곳을 찾아보았으나 찾기 어렵다. 조금 남아 있는 부분을 통해서 기저 부분은 돌을 다듬어 바른층쌓기를 하고 위로 올라갈수록 자연석으로 허튼층쌓기를 한 것으로 판단해도 될지 모르겠다. 성벽은 그리 높지 않았을 것 같다. 산이 급경사니까 산 자체가 성이 되었으니 그렇게 높게 쌓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누군지 모르지만 무너진 돌무더기에서 맘에 드는 돌을 빼어다가 탑을 쌓았다. 탑은 점점 늘어나고 높아져서 이제는 성이 탑으로 변해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화재는 있는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무너진 돌무더기라도 그대로 두어야 한다. 그래야 발굴 조사 후에 축성의 방법을 고증해 낼 수 있고, 출토되는 유물을 통하여 성의 역사와 지역 쟁패의 역사를 고구해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저기 돌을 빼내어 탑을 쌓는 것 자체가 원형을 파괴하는 문화재 훼손이고 범죄행위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북쪽으로 삿갓봉이나 작두산 쪽으로 가면 성의 끝부분이 나오는데 이곳이 북문지라고 한다. 이곳에 저수시설이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지금은 희미한 웅덩이만 남았다. 여기서 계곡으로 내려가면 비교적 완만하게 금강에 이를 수도 있으니 저수시설을 둘만하다. 남동쪽에서 현암사로 내려가는 길목에는 경사면을 다듬어 평탄하게 고른 부분이 있다. 이곳의 낙엽이나 잡초를 헤치면 토기편이 나온다. 토기는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고 토기의 제작 시기가 곧 축성의 시기와 관련이 있으므로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성의 크기로 보아 소대 정도의 소수 병력이 주둔했을 것이다. 계족산성의 자성子城인 고봉산성, 질현성, 마산동산성 등에 이어지는 산성의 고리 중 하나일 수도 있다. 누군가 보루일 가능성을 말하기도 하지만 보루라기에는 너무 크다. 이 성이 계족산성에 사령부를 둔 백제의 최전방이었다면, 삼년산성에 사령부를 두고 아미산성 호점산성으로 공격해오는 신라의 산성들과 대치하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현암사 안내판에 보면 임진왜란 때 이여송이 구룡산의 정기를 끊으려 했다는데 삼국시대의 성으로 임진왜란 때까지도 요새였던 것 같다.

남쪽 성벽 바로 아래로 대청댐 수문이 있다. 대청댐이 완공되기 이전에는 청주에서 문의를 거쳐 신탄진, 대전으로 가는 버스가 다니던 도로가 있었다. 오가리에 나루터도 있어 청주 근방의 학교에서 소풍지로 많이 이용했었다. 옥천에서 내려오는 금강은 현암사로 달려들 듯이 내려오다가 오가리에서 직각으로 꺾여 서쪽으로 내려가 신탄진을 지나 부강 합강에서 미호천과 합쳐 합강이 되고 공주 부여로 흘러가 백마강이 된다.

오가리에서 이 성에 오르는 길은 짧지만 매우 가팔라서 쉽지 않다. 그 대신 전망은 그만이다. 한 발만 떼면 대청호에 풍덩 빠질 듯이 아찔하면서도 시원하다. 구룡산성을 지나 삿갓봉에 오르면 멀리 백골산성 너머 환산성이 보이고, 계족산성, 성치산성, 노고산성, 견두산성, 질현성, 고봉산성의 산줄기가 다 내려다보인다. 남으로 옥천과 대전의 경계인 식장산까지 바라볼 수 있다. 북으로 삿갓봉에서 작두산을 지나면 바로 양성산성으로 연결된다.

구룡산성의 돌탑은 과연 누가 쌓았을까? 어떤 이는 이곳이 민간신앙의 장소가 되고 있다고 하여 돌탑을 인정하는 분위기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볼 수 있는 근거는 없다. 그렇다고 예술 작품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조잡하다. 내가 보기는 그냥 산성을 허무는 행위이다. 문화유산은 관청의 노력에 의해서만 보존되는 것은 아니다. 관에서도 관심을 두어야 하지만 지역주민 모두가 문화재 보존에 대한 교양을 갖추어야 한다. 아무튼 훼손되는 구룡산성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 없다.

산성을 뒤로 하고 삿갓재로 향한다. 한 때 부당한 권력이 이곳에 청남대를 지키는 초소를 만들고 군인들을 주둔시키는 바람에 등산이 금지되기도 했었다. 삿갓재 등산이 허락된 것도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오가리에서 올라오려면 철책으로 길을 막았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다. 진장골로 내려가는 길에는 온갖 장승이 줄을 이었다. 성행위를 상징하는 해학적인 장승들이 옛일을 비웃듯이 자유스럽다.

돌탑에 저녁놀이 서글프다. 하루빨리 구룡산성이 역사적 고증을 거쳐 안내 표지판이라도 세워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위치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덕유리(德留里) 46-1에 있는 석축산성

규모 : 둘레 366m

형식 : 테메식 석축산성

답사 : 2009429(친구 이효정 선생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