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과 서재/문학과 수필평론

가치와 체면의 딜레마 -윤종혁의 <돈과 體面>을 읽고-

느림보 이방주 2017. 5. 5. 23:33

돈과 體面

 

尹鍾爀

 

바쁜 나날을 지내다보니 연극, 영화 더구나 오페라 구경이란 까마득한 옛이야기처럼 지난 3,4동안 기억에 없을 정도로 잊어버리고 살아온 것 같다.

그러던 것이 모처럼 오페라를 보러 가게 된 것이다. 3月 中旬이 지난 어느 水曜日 저녁에 있었던 王立亞細亞學會 理事會에 참석하였는데 회의가 끝나자 書記B씨가 앞앞이 理事들에게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초대권 2가 들은 손바닥만한 깜찍한 봉투를 나누어 주는 것이었다. 그뿐 아니라 그 봉투 속엔 다음과 같은 김자경의 글이 들어 있었다.

금번 본단 창단 15주년 기념공연에 Carman역으로 노래할 김청자씨가 갑자기 급성 맹장염 수술과 고혈압으로 부득이 내한할 수 없게 되어 현재 독일에서 Carman역으로 이름이 높은 Danielle Grima(불란서)인으로 대신하게 되었음을 공고합니다. 갑자기 된 사정으로 널리 양해하여 주시기 바라며 한국에서 최초로 이루어지는 원어(불어)로 공연을 준비하고 특히 연출자도 불란서인 Attias씨를 초청하여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고로 불란서인인 Grima양의 내한은 참으로 불행 중 다행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보다 진보적이고 보다 좋은 공연을 보여드리려고 노력을 하는데 이렇듯 부딪치는 모든 어려운 환경과 사건들을 뚫고 나아갈 저의 힘이 너무나 미약하옵니다. 그러나 높이 격려해 주시고 용기를 주시는 여러분들의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백절불굴의 노력으로 정진할 것을 재삼 다짐합니다. 이번 공연을 많이 감상하여 주시고 지도 편달 있으시옵기 바랍니다.

인사말치고는 매우 성실하고 간곡한 부탁의 내용이었다. 초대권이 2인 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가까운 사람의 동반을 뜻하는 것으로서 아내와 함께 가기로 마음먹었다. 초대 日時328630공연인 것으로 마침 日曜日이라서 안성맞춤이라 歸家해서 아내에게 모처럼 얻은 기회니 함께 가기로 일러두었다. 그러던 것이 인간의 일은 모두 계획이나 뜻대로만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日曜日 아침에, 아내는 산모 출산이 있는데 아무래도 저녁나절에 분만될 듯싶다는 것으로 집을 비울 수 없다는 것이었다. 産婦人科醫인 아내는 예측불허의 生活의 연속으로서 이날도 산모와 씨름을 하여야 하는 판이라 시간 낼 여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함께 갈 수는 없는 노릇, 표를 한 장 묵힐 수는 없는 노릇, 누구 함께 갈 사람을 은연중 물색하는 참에 職場 동료인 P敎授가 오후에 잠시 놀러왔길래 함께 가기를 청하였더니 바쁜 일이 있어 오전엔 교회에 가지 못하였고 저녁 7敎會에서 자기 부인과 만나기로 하였으니 함께 갈 수 없다고 사양하는 것이 아닌가. 이렇고 보니, 혼자 가는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원어로, 거기에다 불란서 출신 소프라노 가수가 가곡을 한다. 이럴 때 가지 않으면 간곡한 인사말을 한 김자경씨에게도 미안한 것은 당연한 일, 아무튼 혼자라도 갈 작정으로 P敎授와 집을 나서서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쪽으로 차를 달렸다. 택시 속에서 말을 주고받던 중 P敎授의 말이 學長體面에 돈을 받을 수 없을 터이니 入口에서 적당한 분에게 그냥 표를 한 장 건네주는 것이 좋을 것이란 助言을 하는 것이었다. P敎授와 헤어지고 오페라 공연장 入口 가까이에서 표를 한 장 꺼내어 두리번거리는데 저쪽에서 옅은 갈색 바바리코트를 걸친 검은 테 眼鏡을 쓴 中年紳士가 내 쪽을 향하여 반가운 듯이 미소를 얼굴에 띠며 바싹 다가서더니 표 있습니까?’하며, 내 초대권을 슬쩍 보더니 저쪽에 부인과 함께 왔는데 표가 한 장 모자라서 이러구 있습니다. 살 수도 없고, 그냥 주시지요.’하는 것이 아닌가. 웬만하면 돈 몇 천원쯤 달라고도 싶었으나 體面이 문제인지라, 더구나 P敎授의 방금 택시 속에서의 助言도 있고 해서 아무 말 없이, 紳士에게 주었다. 고맙다는 말 한 마디 던지고는 붐비는 사람들 틈으로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나는 혼자 왔지만 그 분은 부인과 함께 와서 내 아내 대신 그 분 내외가 구경 잘하고 가면 됐지 싶어 마음이 얼마동안 흐뭇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入場을 하고, 내가 가진 표는 14152번 좌석이라 자리를 찾아 앉고 있는데 152번 좌석에 나타나서 앉으려는 사람은 진작 바바리코트를 입은 紳士가 아니라 그보다는 열 살쯤 어려 보이는 靑年이 아닌가. 그래서 대뜸 나는 그 표는 내가 그냥 준 초대권인데 사람이 바뀌었다고 하니까 그 靑年말이 이 표는 문밖에서 5천원에 산 표인데, 혹시 바바리코트의 사나이에게 준 것은 아닌지요 하고 묻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하니까 아이구 참 세상에 이런 경우가 어디 있담. 공것 표를, 그것도 제가 받은 표도 아닌데 남의 표를 받아서 선심 쓰는 양 헐값에 파는 척하면서 돈을 받아먹다니, 그치 빠르긴 무척 빠르군. 도둑놈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여.’ 하면서 자리에 앉는 것이었다.

만약에 오페라표를 내 자신이 돈을 지불하고 예매권을 샀더라면 체면불구하고 돈을 받고 표를 건네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도 않은 공것이었으니 그냥 내어 줄 도리밖에 없을 터이고 P敎授 말마따나 學長이란 체통과 체면이 있는데 나로서는 P敎授의 말이 없었다 하더라도 결과는 뻔한 노릇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인간은 돈 없이도 살 수 없겠지만 體面을 지키지 않고 살 수는 없는 것으로 직업과 처지에 따라 살아가는 방식이 다른 것이라 여겨져서 자리에 앉아 막이 오를 때까지 잠시 눈을 감았었다.

 

 

   

가치와 체면의 딜레마

-윤종혁尹鍾爀<돈과 體面>을 읽고-

 

이방주

 

인도를 여행하면서 성가셨던 일이 있다. 관광버스에서 내리기만 하면 갓난아기를 안고 아기가 매우 배고프다는 표정으로 손을 내미는 젊은 아낙네들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그들이 내게 복 지을 기회를 제공한다 생각했다. 그래서 1달러짜리 지폐 한 장을 기쁜 마음으로 건넸다. 그 다음에는 인도인이 생각하는 잘사는 나라 한국인의 체면때문에 지폐를 내밀었다. 준비한 1불짜리 지폐 30여장이 하루 만에 다 없어지고, 유독 한국인만 따라다니며 손을 내미는 그들을 보면서 성가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그들은 1불에 체면을 버리고 나는 1불로 체면을 지킨 것이다.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사랑은 아니었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돈을 체면 유지의 도구로 생각했던 자신이 부끄럽다.

양심과 달리 체면은 남을 의식하여 수치감을 느끼는 것이다. 양심은 죄의식을 바탕으로 하지만, 체면은 수치심으로부터 출발한다. 양심은 자신이 한 행위에 대하여 스스로 반성하고 죄의식을 갖는다. 이에 비하여 체면은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남에게 보였을 경우에 수치감을 느끼는 것이다. 양심은 남이 보지 않아도 죄의식을 갖는 반면 체면은 같은 행위인데도 남이 보지 않으면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

체면은 공동체 안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형성되는 상대적 개념으로 의 시선을 의식한다. ‘남부끄럽다’, ‘남 보기에 창피하다’, ‘남의 이목이 있는데’, ‘남보란 듯이을 전제로 한다. 우리 사회의 체면 중시 풍조를 보여주는 말이다.

돈은 물물교환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생겨났다가 가치를 재거나 재화를 축적하는 도구가 되더니 이제는 체면 유지의 방편도 되었다. 1불이 절실한 아기 안은 여인들은 체면을 생각하지 않고 손을 내민다. 물론 처음에는 복을 짓는다는 순수한 의미로 돈을 건네지만 성가시다는 생각으로도 체면을 유지하려 큰돈이 아닌 1불을 건넨다. 만약에 1불을 건네받은 여인이 1불로 아기의 우유를 사지 않고 보이지 않는 조직에게 상납하는 것을 발견했다면 우리는 더욱 크게 실망할 것이다.

시인이자 수필가인 윤종혁 교수의 수필 <돈과 體面>은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에서 돈이 체면앞에서 보이는 이와 같은 두 가지 행동을 잘 드러내었다.

 

웬만하면 돈 몇 천원쯤 달라고도 싶었으나 體面이 문제인지라, 더구나 P敎授의 방금 택시 속에서의 助言도 있고 해서 아무 말 없이, 紳士에게 주었다. 고맙다는 말 한 마디 던지고는 붐비는 사람들 틈으로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나는 혼자 왔지만 그 분은 부인과 함께 와서 내 아내 대신 그 분 내외가 구경 잘하고 가면 됐지 싶어 마음이 얼마동안 흐뭇하기도 하였다.

 

수필이 자기를 고백하는 문학 양식이라 하더라도 모든 것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은 때로 망설여지게 마련이다. 그것도 남을 의식하는 일종의 체면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이 부분에서 다만 몇 천원쯤 달라고 싶었으나라면서 돈과 체면 사이의 딜레마를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러나 학장 체면때문에 그냥 넘겨주었다. 그리고는 그냥 흐뭇해진다. 작가가 학장신분이 아니라든지, P교수의 조언을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다만 몇 천원이라도 요구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요구했어야 마땅하다. 그것이 초대권을 선물한 분에 대한 예의이다. 아니면 그렇게 얻어낸 초대권을 남에게 팔아 돈을 챙긴 신사 아닌 신사에게 체면을 가르치는 길이다. 그랬다면 이런 후회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공것이었으니 그냥 내어 줄 도리밖에 없을 터이고 P敎授 말마따나 學長이란 체통과 체면이 있는데 나로서는 P敎授의 말이 없었다 하더라도 결과는 뻔한 노릇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인간은 돈 없이도 살 수 없겠지만 體面을 지키지 않고 살 수는 없는 것으로 직업과 처지에 따라 살아가는 방식이 다른 것이라 여겨져서 자리에 앉아 막이 오를 때까지 잠시 눈을 감았었다.

 

이 작품은 돈으로 치면 얼마 되지 않는 오페라 초대권으로 빚어지는 돈과 체면 사이의 딜레마를 아주 쉬운 어휘로 적나라하게 드러내었다. 작가는 끝까지 말하지 않았지만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 문화는 아름답지만 극복해야할 문제점이 있음을 시사示唆하고 있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하여 가져야 할 덕목은 용기와 의지력이 아닐까 한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하여 이목耳目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는 사고를 확고하게 가지는 것이다. 양심에 따른 죄의식이 없다면 자기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돈과 체면의 딜레마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일러주고 있다. 작가가 후회하고 있는 것은 만약 그렇게 행동했다면 그런 체면을 무시하는 얄팍한 신사는 이 세상에 없었을 것이다. 이 작품은 드러내지 않으면서 수필의 교훈적 기능을 아주 점잖게 지니고 있어서 은은한 감동을 준다.

윤종혁 교수(1931~2003)는 영문학자이다. 윤종혁 교수는 수필보다 시를 쓴 시인이다. 친구였던 배효식 교수는 그의 시는 인간의 고뇌는 어디를 가나 존재하기 마련이라는 주제를 형상화했다고 설명한다.

 

한가히 산봉을 넘으면 머나먼 물가엔

흰 돛단배 물결에 뜨고


기약 없는 주막엔 막걸리 잔이

파리를 부르고 이제 봄이 간 지

엊그제인데 그렇다 하더라.

- 윤종혁의 시 <산봉을 넘어서>에서-

 

윤종혁 교수는 낙천적인 성품이었다고 한다. 낙천적 성격이었지만 이 시에서와 같이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고통을 토로하였다. 산봉을 넘어서 흰 돛단배 물결에 떠 있는 풍경은 낭만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거기엔 폭풍과 파도와 맞서서 생계를 꾸려야 하는 해녀들의 고통이 있고, ‘파리를 부르는주막이라는 고통도 존재하게 마련이다. <돈과 體面>을 읽으면서 존재의 양면성으로 기인되는 고통을 발견하게 된다.

유복한 가정에서 부족함 없이 학문에 전념할 수 있고, 문학에 심취할 수 있었던 그는 낙천적인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낙천적인 삶의 이면에 숨어 있는 보이지 않는 고통은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인가 보다. 정신적 고통이었는지 육체적 고통이었는지 그는 불행하게 스스로 생을 마감하였다. 돈과 體面 사이의 딜레마보다 더 큰 정신적 고통이 그의 종말을 불행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쌀 한 가마

 

이방주

 

청주 서원구 죽림초등학교 앞에 가면 죽림동 월천마을 유래비가 있다. 주택공사에서 아파트를 짓기 전에 방앗간이 있던 바로 그 자리이다. 이 유래비문을 쓰면서 나는 그 앞을 걸어 학교를 다니던 8년을 생각했다. 지금도 고향 다니는 길에 유래비 앞에 서면 옛날 생각이 난다. 방앗간 마당은 아주 넓고 늘 정리가 잘 되어 있었다. 마당 한편에는 소달구지가 있고 커다란 황소가 달구지 옆에서 눈을 지그시 감고 되새김질을 하고 있었다. 꼬리로 툭툭파리를 날리며……. 방앗간 앞 냇물은 마당 가까운 보에서 한번 머물렀다 흘러 물소리가 시원했다. 거기에 방천길가에 커다란 양버즘나무가 있었다. 누군가 앉을개를 놓아서 시오리 하굣길에 잠시 앉아 쉬어가기도 했다.

고등학교 1학년 열일곱 살, 그 시절에도 보릿고개에는 쌀이 귀했다. 방앗간 마당을 돌아 막 양버즘나무 아래 앉아 쉬려 할 때였다. 방앗간 문 앞 지게에 쌀인지 한 가마를 얹어 놓고 한씨 청년과 담배를 피우던 일가 청년 하나가 나를 불렀다. 나이는 나보다 열 살쯤 많지만 손항孫行이라 나를 대부大夫라고 부르는 나이 때를 벗지 못한 꾀돌이이다. 그러나 머리가 좋아 온갖 지혜가 가득해서 있는 집안에 태어났더라면 한 자리 톡톡히 해먹었을 사람이다.

대부! 이리 좀 와 봐유. 잠깐만 와 봐유.”

왜유?”

잠깐이면 된다는 말에 방앗간 마당으로 걸어갔다. 또 무슨 장난으로 날 골탕 먹이려나. 그런 우려를 하면서도 그의 장난 밑바탕에는 늘 우리가 일가라는 정서를 담고 있어서 안심은 되었다. 둘 다 나의 중형仲兄 친구들이다.

대부! 지게질 잘 한다매유? 동네 소문이 났는디 쌀을 한 가마씩 지고 서당까지 올라간다면서유.”

서당이란 서당이 있던 우리집을 말한다. 세월이 지났지만 동네 사람들은 우리집을 다 서당이라고 불렀다. 그는 종가집인 우리 집까지 우마차가 들어가지 못한다는 걸 놀리고 있는 것이다. 방아를 찧어 달구지에 실어다 작은댁 마당에 부려놓으면, 큰형님을 도와 쌀을 한 가마씩 나누어 짊어지고 한 마장 쯤 되는 고갯길을 올라가야 한다. 그걸 놀리고 있는 것이다. 아니면 형님을 돕는 어린 나를 기특하게 여기는 뜻인지도 모른다.

대부! 이거 쌀 한 가마인데 지고 일어서기만 하면 대부한테 다 줄게 져 봐유.”

정말 주능규? 딴 소리하기 없기유. 일어나기만 하면 되는 거지유?”

아이 증말유. 주구 말구유. 나이 더 먹은 사람이 왜 대부한테 그짓말을 하것슈?”

몇 말 더 지고 일어나면 더 줘유?”

아니 더 진다구? 더 줄게유. 걱정말구 지고 일어날 만큼 져 봐유.”

둘러보니 서너 말쯤 담긴 가마가 또 있었다. 두 사람의 도움을 받아 번쩍 들어서 지게 위에 포개 얹었다. 그 위에 가방을 얹고 지게꼬리를 맸다. 가방을 매는 나를 보더니 두 청년의 눈빛이 의아한 빛으로 변했다.

일어서기만 하면 내 거니께 지고 가면 되는 거쥬? 지게는 저녁에 갖다 줄께유.”

다시 한 번 다짐을 받았다. 하굣길이라 텅 빈 배에서 힘이 날 리 없었다. 그러나 한번 겨루어 보리라. 오른쪽 무릎을 꿇고 지게 작대기에 힘을 실어 45도 각도로 몸을 구부린 다음 어금니를 앙다물고 콧구멍으로 바람을 내 품었다. 지게는 한번 기우뚱하더니 앞으로 꼬꾸라질 듯이 몇 걸음 걸어갔다. 그러나 서너 걸음에 곧 균형을 잡았다. 그들의 놀란 눈동자가 눈에 보이는 듯했다. 쌀 한 가마하고도 서너 말을 벌었다. 이제 내 것이다. 집으로 가면 되는 것이다. 가다 지게를 내려놓으면 다시 일어설 수 없다. 일어서기도 했는데 이제는 발자국만 옮겨 놓으면 쌀은 내 것이다. 이 보릿고개를 쌀밥으로 넘을 수 있다.

대부, 대부! 아니 그냥 가면 어뜩햐?”

나이 많은 족손族孫의 애타는 부름을 뒤로 하고 한 50m쯤 걸었다. 하늘이 노랗다. 코에서 단내가 폭폭 난다. 장딴지가 터질 것 같다. 그래도 저 나이 많은 손자를 혼내 주리라.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속 걸었다. 아니 너무나 무거워서 몸을 돌릴 수도 없었다. 두 청년이 쫓아왔다.

아니, 정말로 짊어지고 가버리면 어떡해유.”

그래 맞아. 그만 일로 쌀 한 가마를 정말로 짊어지고 가면 어떡하나. 나는 이럴 때 어린 대부 노릇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정말 할아버지다운 기특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 자리에 지게를 내려놓았다.

지고 갈규? 아니면 내꺼니께 우리 집까지 져다 줄규?”

어깃장을 한 번 놓고는 지게 위에서 가방을 내렸다. 나는 모자를 삐딱하게 쓰고 가방끈을 손가락에 걸어 어깨 너머로 늘어뜨리고 휘파람을 불며 돌아섰다. 사실은 그 쌀은 내 쌀이다. 계속 싸워서 내 것으로 할 수도 있었지만 체면 때문에 참았다. 지금도 그 때 그 쌀이 내 것이라는 것은 어길 수 없는 사실이다.

족손族孫이나 나나 당시 쌀 한가마는 생명만큼 소중한 재물이었을 것이다. 나는 환갑이 넘어 그 족손을 지금도 만난다. 이제 칠순을 훌쩍 넘었다. 농사를 지으면서도 지혜롭게 일해서 지금은 좋은 차를 굴리고 다닌다. 아마도 쌀 다섯 가마쯤은 주머니에 넣고 다닐지도 모른다. 나도 쌀 다섯 가마 값이 넘는 스마트폰을 노리개로 가지고 다닌다. 그러나 그 때 쌀 한 가마만큼 귀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족손은 지금도 그 일을 생각이나 하는지 모른다. 아마 까맣게 잊어버렸을 것이다. 농담처럼 말을 꺼내 볼까 했지만 체면 때문에 참았다. 얘기했다가 그가 자신의 체면 때문에 쌀 한 가마를 지갑에서 꺼내주면 큰일이다. 그는 기어이 주려하고 나는 받지 않으려 하면서 서로의 체면 때문에 다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인제 우리는 둘 다 쌀 한 가마가 체면을 가릴 만큼 아쉬운 형편은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이를 만날 때마다 그때 받지 못한 쌀 한 가마가 아직도 마음 한 구석에 걸려 있다.

 

 

 

약력

한국수필수필 등단

수상 : 충북수필문학상, 내륙문학상

저서 : 수필집 풀등에 뜬 그림자외 다수

 

 

     

    

<한국수필 6월호 청탁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