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답사/忠淸의 山城

세종시 전월산에서 합강을 본다

느림보 이방주 2016. 7. 24. 22:48

  

세종시 전월산에서 합강을 본다

  


2016년 7월 19일


원수봉에서 동으로 미끄러지듯 비탈길을 내려가면 전월산으로 향하는 이정표를 만난다. 이정표를 깔끔하게도 만들어 놓았다. 세종특별자치시 공무원들의 현대적 감각이 돋보인다. 금강변의 양화리에서 오르는 옛길도 있지만 진의리, 방축리 대신 도담동이라는 새로 지은 이름 아래 현대식 아파트촌 부근의 덕성서원에서 바로 질러 오르면 원수봉을 지나 이렇게 상큼한 산책길 만난다.


원수봉과 전월산 사이에 커다란 도로가 났으나 생태 육교를 만들어 얼핏 끊어진 산줄기인 줄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다. 생태 육교를 지나니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쉼터가 있다. 쉼터에서 땀을 식히고 다시 숲길에 들어서면 가파른 비탈길이다. 해발 260m밖에 안되지만 오름이 만만치 않다. 암벽 훈련장이 있을 정도로 큰 바위가 앞을 막아서기도 하고, 요리조리 아슬아슬하게 돌계단도 밟고 오솔길을 타고 기어오르는 재미도 있다. 원수봉에서 만나 안내를 맡아준 세종시 둘레길감시자율봉사대 이성순 여사는 수많은 갈림길을 잘도 찾아간다.


마지막 밧줄을 잡고 오르는 순간 시야가 탁 터지는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저 아래 강변도로는 가끔 지나다니면서 익혀왔기에 더 새롭다. 합강이라는 이름으로 금강과 미호천의 합수머리라고 머리로만 그렸지 한눈에 내려다보기는 처음이다. 대청호에서 쏟아져 내린 금강물이 오가리와 신탄진을 지나 이곳 합강리에 이른다. 음성 부용산에서 발원하고, 진천의 백곡천, 증평의 보강천이 합수하여 미호천이 되고, 무심천이 까치내에서 어우러져 이곳에서 만나는 것이다. 대청호에서 동력을 이용하여 무심천으로 이별시킨 물도 다시 합강에서 제 어미인 금강을 만난다.


군산에서 소금이나 어물을 실은 배가 백마강을 거슬러 곰나루를 지나 이곳에서 짐을 풀면, 서울도 가고 보은도 간다. 전라도 신안의 소금이 합강을 지나 부강나루에서 내려 등짐으로 문의 염티를 넘어 경상도까지 유통되었다고 한다. 물자뿐만 아니라 권력 확장의 야망도 화살과 칼을 싣고 금강을 고속도로처럼 타고 올라왔을 것이다.


이렇게 물자나 권력이 지나는 요새인 합강을 지키는 산이 전월산이다. 전월산은 그래서 의 지위를 얻었다. 낮지만 모산인 원수봉(254m)은 그냥 인데 자산인 성재산이나 전월산은 ''이다. 실제로는 원수봉산성이 있는 성재산이 어머니 산이라 할 수 있다. 뾰족한 원수봉은 그냥 보루 역할만 했을 터이고, 둘레가 1,200m나 되는 토석혼축테뫼식산성이 있던 성재산이 더 중요하기에 이다. 합강을 다 내려다 볼 수 있는 전진기지 역할을 했을 전월산도 그 중요성에 때라 을 넘어 의 지위를 얻었을 것이다. 과연 물에 비친 달도 이 산을 한 바퀴 돌아갈 만하지 않은가. 그래서 전월산이라 한다.


전월산에서 원수봉산성과 관련 있는 흔적을 찾아보았다. 정상을 알리는 푯말 바로 앞에 상여바위가 있다. 여말 선초 임난수 장군이 고려를 그리워했다는 전설이 전하는 '상려바위'였다. 전월산에서 양화리 쪽으로 내려가면 임난수 장군의 숭모각이 있다. 숭모각에서 전월산으로 바로 오를 수도 잇다는 말이다. 임난수 장군의 지조를 기리는 부안 임씨들의 정이 담긴 추모의 집이다. 가버린 역사를 그리워하는 것은 나와 비슷하지만, 어찌 보면 그는 사라진 역사가 아니라 가버린 권력을 그리워한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지조'라고 말한다. 권력 계승의 정통성 유무에도 문제는 있겠지만 가버린 권력이 그리워 새로운 권력에 반기만 든다면 역사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최근에는 민주적 선거에 의하여 위임된 정통성 있는 권력에도 끝끝내 반기를 드는 삐뚤어진 지조도 있다.  


<상여想麗바위 전설>

남면 양화리 전월산에 상려암또는 상여바위라는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옛날에 고려가 망하고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자 임난수라는 장군이 전월산으로 들어가 은둔생활을 하였다. 그는 성품이 어질고 학식과 덕망이 높아 조정에서 큰 벼슬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려가 망하자 그는 고려에 대한 충심으로 이곳까지 내려와 은둔생활을 한 것이다. 그는 이곳에서 움막을 짓고 산초와 풀뿌리로 연명하며 나라를 잃은 슬픔에 시름시름 살았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면 전월산을 한 바퀴 돌며 망한 고려를 생각하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전월산을 돌다가 커다란 바위를 발견했다. 그 바위는 위가 평탄했지만 밑에는 천길 벼랑이라 앞이 확 트였다. 그는 그 바위에 앉아 하염없이 북쪽을 바라보며 망한 고려를 생각했다.

이윽고 세월이 흘러 그는 노환으로 그곳에서 죽고 말았다. 그 후 사람들은 그가 고려를 생각하는 마음이 갸륵하다하여 그 바위를 상려암또는 상여바위라고 불렀다 한다.

    - 금남면지 -



연기 세종리에 있는 임난수 장군 숭모각은 양화리 쪽 들머리에서 만날 수 있다.


바로 앞에 용샘이라는 샘이 있었다. 용샘에는 매우 인간적인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전설이란 이야기에 담기는 역사성이 중요한데 용샘 전설에는 역사적 의미보다 승천하고자 하는 용이 금기를 지키지 못해 이무기로 전락했다는 비극적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증거물인 용샘이 건재하고 있다.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면 바로 비가 내렸다고 하니 사람들은 신령스러운 샘으로 여긴 것 같다.


<전월산 용샘과 버드나무>

옛날 금강 맑은 물에서 자란 이무기가 승천昇天하기 위하여 이곳 전월산 정상 용천까지 굴을 파고 올라와 백년을 기도하면 옥황상제의 부름을 받고 승천하게 된다는 고려 초엽 얘기가 전해온다. 용천에 올라온 이무기는 승천하기 전까지는 몸가짐을 깨끗이 하여 티끌이 하나 없는 맑음이 있어야 하고, 용천 물 밖으로 나와서는 안 되며, 승천할 때 아이를 밴 여자가 보면 안된다는 옥황상제의 주문이 있었다. 승천 날에 임박한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피고 전월산이 온통 어둠에 휩싸였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천둥소리가 들러더니 "이무기는 승천하라!"는 옥황상제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하늘에서 물줄기가 내려와 그 물줄기를 타고 한참 승천하는데 갑자기 물줄기가 멈추고 다시 땅으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이무기는 이상해서 하늘을 쳐다보니 하늘에서 노한 소리가 들려왔다. "천하에 바보 같는 녀석아! 임신부를 주의하랬잖아. 건너 마을 반곡의 임신부가 너를 쳐다보고 있지 않느냐!" 이무기는 소리를 듣는 순간 충격을 받고 이곳 용천으로 떨어져 버드나무가 되어 버렸다. 버드나무가 되어버린 이무기는 반곡을 바라보며 원망이라도 하듯이 무럭무럭 자라고 무성하게 자란 나무가 반곡을 쳐다보면 반곡 여인네들이 바람이 나고 양화리陽化里를 쳐다보면 양화리가 부자가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었다. 그래서 반곡 청년들은 밤이 되면 전월산에 올라와서 몰래 버드나무를 베어버리고 또한 양화리 사람들은 나무를 베지 못하도록 감시를 하여왔다. 또한, 이 용샘은 고려충신 임난수林蘭秀 장군이 은둔하면서 상여암想麗岩을 오르내릴 때마다 이 샘물을 마셨다고 하며, 지금도 명주실에 돌을 달아 용샘에 넣으면 금강으로 나온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 금남 면지 -


산 정상에 버드나무가 있는 것도 특이하고, 실제로 반곡마을 쪽 큰 가지가 잘려나간 모습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함께 간 친구 불온 선생이 옆에 놓인 자루가 기다란 구기로 샘물을 퍼 올려 보았다. 샘이 깊고 물이 맑다. 정상에 생겨난 샘물 치고는 사람 손이 간 흔적이 확연하다. 돌을 쌓아 물을 보전했고 물의 양도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실용적인 면을 생각해 보면 원수봉산성에서 이곳에 파견 나온 군사들의 식용수로 쓰였을 것이라고 불온 선생은 말한다. 그렇다. 이 물을 마시기도 하고 밥도 지었을 것이다. 군사들이 주둔한 흔적이라고 볼 수 있다. 원수봉에서 우연히 만나 동행하며 끝까지 안내를 맡아준 세종시 둘레길감시자율봉사대 이성순 여사도 용샘과 버드나무 전설을 흥미 있게 전해 준다.


합강을 지키는 용들이 주변 반곡마을 사람들을 비롯해서 누구에게도 들키지 말아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주변 경계를 했을 때 그 군사들이 용오름을 하듯 출세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전월산 용샘은 합강을 지키는 용의 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전월산에서 내려다 보이는 합강


멀리 원수봉과 성재산



세종시 정부종합청사와 호수공원




전월산에서


다시 정상으로 올라와 정부종합청사 쪽을 바라보았다. 예전에는 야망이 권력을 배에 싣고 금강을 따라 올라왔다고 한다면, 이제는 정치의 권력인지 경제의 권력인지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고 이렇게 옮겨온다. 전월산의 용샘에서 승천을 꿈꾸다 이무기로 전락했던 용은 오늘 저기 양화리 건너 새로 마련된 호수를 지나 용의 모습을 닮은 정부청사가 되어 승천을 꿈꾸며 꿈틀대고 있다. 용의 모습을 본떠서 설계했다는 종합청사는 성공하여 대한민국을 세계의 용으로 만들 꿈을 담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왕에 금남면 부안임씨 비롯한 원주민의 세거지에 그들을 내보내고 서울을 이곳으로 옮기기 시작했으니 저기 모여 나랏일을 보는 벼슬아치들이 반곡마을을 흘낏거리거나 노류장화의 유혹에 넘어가서 이무기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것이 고향을 내준 이들을 위로하는 길이기도 하고 겨레의 소망일 것이다.

장마 끝 무더위에 흘린 땀을 바람에 씻고 하산하는 길이 홀가분하다.

(2016. 7.10. 격월간 『사랑합니다』 청탁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