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답사/忠淸의 山城

세종시 원수봉산성(진의리산성) 답사

느림보 이방주 2016. 6. 5. 12:20

세종시 원수봉산성(일명 진의리 산성) 답사


▣ 위치 : (옛주소)  연기군 남면 갈운리, 방축리, 진의리 (새주소) 세종시 연기면 세종리 755

▣ 답사일 : 2016. 6. 3.

▣ 규모 : 둘레 1200m   높이 2.5m   폭  3.5m  토석혼축 테메식산성

▣ 시대 : 고려시대의 전쟁사가 전해지고, 백제시대의 토기 조각과 기와조각이 발견되었다고 함

▣ 문화재지정 : 없음


일명 진의리 산성인 원수봉산성은 늘 마음에 품고 다녔다. 그래서 세종시를 지날 때 마다 어디쯤이 원수봉일까 두리번거리다가 차가 기우뚱거린 적도 많다. 원수봉은 산 모양이 특이하기 때문에 선답자들의 블로그에서 산 모양을 보고 저것이 원수봉이구나 하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세종시의 도로, 마을, 시냇물, 산의 들머리가 옛 지도와 잘 맞지 않고 네비도 우왕좌왕한다. 그리고 세종특별자치시로 승격된 이후에 이 산성을 찾은 이들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처음에는 전월산 아래에 있는 고려말 임난수 장군의 추모각 부근으로 접근하려 했으나 길이 없고 잡초만 무성하여 두리번거리다가 도로 나왔다. 그래서 다시 도담동 덕성서원을 네비에 입력하고 덕성서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주변을 둘려 보았다. 사람들이 둘레길 산책을 하기 위해 많이 드나드는 모습이다. 그늘에 앉아 있는 어떤 여인에게 원수봉산성이 어디냐고 물어 보았다. 원수봉 가는 길은 알려 주는데 산성은 알지 못한다고 했다. 안내 지도를 보니 원수봉과 전월산을 표시되어 있는데 성이 있는 성재산은 표시조차 없다. 물론 이정표 어디에도 원수봉산성을 알려주는 곳은 없다. 어떤 할머니에게 말을 거니 '모른다'이다. 하긴 원주민은 다 이사가고 새로 온 개척자들의 세상이 되었으니 성재산을 알 리가 없다. 심지어 어떤 노인은 성재산이란 형제산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원수봉으로 올라가는 길은 아주 좋고 가끔씩 산책하는 사람들이 있다. 성재라는 곳에서 원수봉과 성재산 가는 길이 나뉜다는 설명을 들었으나 '성재'라는 이정표는 찾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 원수봉 쪽으로 올라갔다. 성재라고 생각되는 안부에서부터 길은 가파르다. 원수봉을 먼데서 보면 마치 수숫대를 세워 놓은 것처럼 뾰쪽하게 보이는데 실감할 만하다. 사람들은 원수봉을 오르지 않고 바로 전월산으로 가는지 발자취가 많지 않다.


어느 정도 오르자 등산로 변에 비석이 하나 보였다. '元帥山由來碑원수산유래비'라고 되어 있었다. 한글과 한자 병서로 되어 있어 읽기에 어렵지 않았다. 아마도 세종시가 들어오기 전에 대대로 이 지역을 지키고 살던 유지들이 뜻을 모아 세운 비인 듯했다.


<원수산유래비문 요약>

원수산은 연기군 남면의 중심부에 있으며 부모산 형제산이라고도 한다. 원수산이란 이름에도 두 가지 설이 있다. 고려 충렬왕 때 원나라 반군 합단哈丹의 군사가 연기현에 머물며 작폐가 심할 때 원군 대장 설도간과 고려 군사의 연합군에 의하여 패망하여 죽은 후 이산을 원수산元帥山이라 했다고도 하고 일설에는 형제간의 싸움으로 산이 되었다 하여 원수산怨讐山이라고도 한다. 또 형제봉이라고도 한다. 남쪽으로 성재산 토성이 보이고 금강과 전월산이 보이며, 서쪽으로 국사봉, 북쪽으로 당산성, 그 사이 곡창지대가 펼쳐저 500정보가 넘는다고 되어 있다. 


이곳에 성재산이란 이름이 나오고 토성의 이야기가 한번 나온다. 정말 이곳에 성이 있기는 있는 거구나 하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원수봉 정상에 올랐다.  성이 있을 수 없을 만큼 좁았다.  예상대로 정상에는 아무것도 없다. 정상석도 없이 무슨 측량할 때 쓰는 표지대만 있었다. 그러나 세종시가 한 눈에 내려다 보였다. 바로 앞의 도담동 아파트 단지도 보이고 멀리 첫마을도 보이고, 금강과 호수공원이 보인다. 공주로 향하는 장군면 일대의 건설 현장도 까마득히 보였다. 남쪽으로 옥토가 펼쳐져 있었다. 심지어 청주쪽으로 선도산도 보였다. 이 부근에서 이 원수봉 하나만 점령하면 주변을 꿰뚫어 볼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여기서 멀지 않은 전월산에 분대 급만 파견되어 나가 있어도 금강에 드나드는 모든 인력이나 물품을 다 손아귀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고대의 강은 현대의 고속도로라고 한다면 이곳이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로 가는 교통의 요지였을 것을 생각하면 그 중요성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남서쪽으로 평평한 산봉우리 하나가 발견되었다. 작은 마을 하나는 들어 앉을 수 있을 정도의 넓이이다. 지금은 나무와 풀에 덮여 있다. "아, 저기가 산성지인 성재산이구나" 직감할 수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내려다 보았다. 가만히 눈을 감으니 기와지붕이 보인다. 골목이 보이고 초가도 보이고 부지런히 골목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군사들의 훈련하는 모습도 보인다. 깃발이 나부끼고 성채들이 다 보인다. 이 모든 것이 높은 토담 속에 들어 있어 안정적이다. 저기가 바로 1500년 전 쯤엔 백제의 군사들이 주둔한 중요산 요새가 되었을 것이다. 가끔식 보루 같이 높다란 원수봉에 교대하러 올라 군사의 무리가 오고 갔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주변을 철통같이 경계하였을 것이다. 전월산 쪽에서 성재를 통하여 통신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금강나루에서 내려 이곳을 통하여 연기지역으로 가는 지름길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하니 성재는 옛 교통의 요지였을 것이다.


임난수 장군의 추모각

전월산

덕성서원

둘레길 안내 지도

이정표 어디에도 원수봉산성의 이야기는 없다.

마을 사람들이 세운 우너수산 유래비- 이곳에 원수산성에 대한 이야기가 한 줄정도 나온다.

도담동 부근의 아파트단지- 옛날에는 옥토였을 것이다.

첫마을과 금강 주변의 옥토

전월산



원수산에서 내려다 본 성재산 모습


서둘러 내려와 성재산으로 향했다. 이정표에는 '숲속의 쉼터'라고 되어 있었다. 그런 말인가? 백제나 고려의 군사가 쉬고 있다는 말인가? 길은 좋다. 가깝다. 가서 보니 원수산에서 내려다 보는 것처럼 성터가 확연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성의 윤곽은 뚜렷이 남아 있다. 토석혼축산성이라고 하나 토축한 흔적만 보이고 어디에도 성돌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쉼터를 만들기 위해서 여기저기 평평하게 고르느라고 나무를 베고 흙을 메꾸어 여기에 있다고 하는 우물터도 건물지도 분간할 수 없었다. 심지어 성의 내벽은 보이지도 않았다. 외벽만은 뚜렷하게 남아 있다. 그것도 잡목과 잡초가 우거져 웬만한 사람은 성이 있던 자리라고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우암산 토성처럼 군데군데 성터이므로 훼손하지 말자는 표지도 없다. 그야말로 완전한 훼손이다. 이렇게 보면 건지산성은 토성이라도 얼마나 뚜렷하게 원형이 유지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있다.


가시덤불을 헤치고 성벽 위를 한 바퀴 돌았다. 거미줄에 걸리고 가시에 찔렸다. 묘지를 파헤치고 상석을 파괴한 흔적과 촛대석을 반으로 깨서 아무렇게나 흩어 놓았다. 옛길을 없애고 새길을 만들었다. 가운데는 정자를 짓고 의자를 만들어 놓고 운동기구를 설치했다.  수구, 연지, 늪지도 없어졌다. 문지가 어디인지 구분할 수 없다. 한 바퀴 돌아보니 테메식 산성의 모습은 누에고치 모양이랄까 조롱박 모양이랄까 가운데는 잘록하고 양쪽이 둥그렇게 돌아가는 타원형이었다. 그러나 성 모양은 틀림없다.


아주머니 한 분이 '쉼터'에서 쉬고 있기에 이곳이 성인 줄 아느냐고 물어 보았다. 모른다고 했다. 성은 무슨 성이냐는 듯이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원수봉과 이곳이 형제 같은 모양이라 형제산이라고 했다. 형제 다툼 전설을 어디서 언뜻 들은 모양이다. 안내판이라도 만들어 놓았으면 좋겠다. 몇 해 전에 답사한 이들의 답사기에 보면 성곽의 모양이 뚜렷했고 연지와 우물지가 있어 실제 물이 났다고 한다. 그런데 성의 외벽은 남아 있으나 내벽은 없다. 분명 훼손된 것이다. 중요한 문화 유산이 훼손된 것이다.


내려오는 길에 성의 아랫부분에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돌무더기를 발견했다. 흙 속에 묻혀 있으나 성돌이 틀림없다. 다듬은 흔적도 보인다. 나뭇잎 무더기를 헤치자 돌이 무더기로 나왔다. 바로 흙 아래는 돌을 쌓은 성의 기초 부분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대개 토석 혼축형 산성은 기초 부분을 돌로 쌓고 위를 흙으로 올리거나 외벽을 돌로 쌓고 내벽은 흙으로 채우는 방법으로 쌓기도 한다. 아마도 기초 부분을 돌로 쌓는 방법을 택한 것 같다. 아쉬움을 남기고 돌아섰다.


성의 외벽

외벽 모습

외벽 모습

외벽 모습

건물지로 보이는 평평한 곳

건물지로 보이는 평평한 곳


쉼터로 조성된 내부 모습

내부의 흙을 밖으로 밀어 훼손한 모습

내려오다가 발견한 성석 무더기

흙에 묻힌 돌무더기


다듬은 흔덕이 있는 돌

다듬은 흔적이 있는 돌


원수봉 산성은 운주산성, 연기 당산성에서 나성을 거쳐 공산성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연결 요새다. 또한 운주산성에서 사비성으로 이르는 산성의 줄기와 부강면 일대의 황우재산성, 복두산성 독안산성 은적산성 부모산성 방향으로,  화봉산성, 애기바위성, 노고산성으로 이어져 보은의 호점산성에 연결되는 요새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중요한 산성이 땅 속에 묻혀버린 것이다. 훼손되었다 하더라도 흔적을  보존하고자 하는 의지라도 있었으면 섭섭하지 않겠다.

역사는 현대에도 계속 땅에 묻히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한 없이 안타까웠다.

(2016. 6.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