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답사/忠淸의 山城

세종시 부강면 복두산성, 유모산성, 독안산성 답사

느림보 이방주 2016. 5. 1. 16:59

세종시 부강면 복두산성, 유모산성, 독안산성 답사


▣ 답사일 : 2016년 5월 1일

▣ 복두 산성 : 세종시 부강면 문곡리 823번지

▣ 성의 둘레 760m라고 하나 확실히 고증되지 않고 최근에는 1000m가 넘는다는 보고도 있음

▣ 석축 토축 테메식 산성


복두 산성은 아주 오래전부터 마음에 담고 있었는데 입구를 찾을 수 없어 망설이고 있었다. 그런데 비룡리를 갈 기회가 있어 마을 주민들과 이야기를 하는 중에 비룡리의 바로 앞산이 꼭 복두 모양으로 생겨서 혹시 복두산이 아니냐니까 그렇다고 한다. 산성에 오르는 입구를 물으니 부강쪽에서 테니스장을 가는 중에 들머리가 있을 것이라고 우리 일가 어른이 일러 주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문곡리의 부용사를 통해서 오르는 것이 좋다고 나와 있어서 네비게이션에 부용사를 입력하고 들어갔다. 그런데 도로가 좁고 교행 차량이 많아 어려웠다. 더구나 막바지에는 거의 길이 막히다시피한다. 결국에는 실크리버 골프장 가는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주변 농민에게 물어 보니 능선 절개지에서 복두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을 어렵게 올라온 것이다. 성재산 복두산 유모산 독안산이 이어지는 능선이 골프장 가는 길을 공사하는 과정에서 훼손된 것을 알 수 있었다.



골프장 가는 길의 안부에 차를 세우고 왼쪽 수레길로 들어섰다. 산성까지는 조금 가파르기는 하지만 경운기나 중장비가 드나들었는지 길이 좋다. 그늘이고 올라가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한 20여분 올라가니 성의 안내비가 보였다. 안내비라기보다 안내판을 돌에 새겨 놓은 것이다. 이것은 인근 노고산성에 있는 안내문과 비슷하고 부강면으로 이름이 바뀌기 전의 부용면장이 문안을 작성하고 역사학자가 감수한 것으로 되어 있다.


설명에는 이 성이 내성과 외성으로 된 겹성이며 내성은 130m, 외성은 635m로 되어 있어 총 760m인데 주변에 이어진 능선부까지 하면 족히 1km가 된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산성 주변에 이미 잡초가 우거지고 중장비가 마구 지나다녀서 많이 훼손된 형태이다. 오르는 길 바로 아래에 무너진 성석들 사이로 성벽의 형태가 조금 남아 있어 내려가 보았다. 줄자를 꺼내 제대로 된 성벽을 재 보았다. 성석의 너비는 30~40cm, 두께는 약 20cm 정도 되었다. 석축 방법은 장방형의 돌을 깎아서 채곡채곡 올려 놓는 방식으로 금이성의 석축 방법과 비슷하고 화강암으로 된 돌의 질도 비슷했다. 무너진 부분을 살펴보니 잔돌이 많이 끼워져 있어서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쐐기 돌을 박은 것으로 보였다. 성쌓기 방법은 장방형으로 일정하게 쌓은 부분도 있지만 주변의 자연석을 아무렇게나 쌓아 올린 부분도 있다. 이것은 아마도 성을 쌓은 시기가 다르거나 일부 보수한 흔적이 아닌가 한다. 삼년산성의 경우처럼 옛날 산성을 보수한 최근의 성벽을 매우 기술적으로 쌓아서 뚜렷하게 구분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성의 높이는 무너진 것을 생각하면 적어도 5~7m정도는 족히 되어 보인다. 북쪽 사면이 비교적 경사가 급한데 그 위에 성벽이 놓아 아마도 북쪽에서 들어오는 적을 방어하는데 한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성벽이 흙에 묻혀 있어 확인하기는 쉽지 않으나 매우 견고하게 쌓은 것만은 틀림없어 보였다.


다시 성벽 위로 난 수렛길로 올라왔다. 성벽 바로 위에 내성의 석축 성벽의 흔적이 보인다. 이 부분이 수렛길에 의해 많이 훼손되었다. 내성의 성벽은 아랫부분은 돌로 쌓은 위에 토축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축성의 방법을 연구하기 좋은 자료가 될 것 같은데 수렛길에 중장비가 다니면서 많이 훼손된 것인가 생각되어 안타깝다. 그것도 아주 최근의 일로 보인다. 토축한 부분의 아랫부분에 마치 기초공사 하듯 쌓은 성벽의 모습도 외성의 축성 방법과 비슷하고 돌도 같은 것이다. 수렛길이 끝날 무렵에 성내로 들어가는 부분에 분묘 한기 있다. 여기서 북서쪽 성벽을 보니 토축한 것이 분명하다.


북쪽 성벽의 모습 - 옛 모습이 그대로인 부분이 보인다.

절벽위에 축성법을 알아볼 수 있는 북쪽 성벽의 모습-정교하게 장방형 돌을 가지고 쌓았다.

무너진 성벽

무너진 부분으로 보아 성벽의 높이를 짐작할 수 있다- 막 쌓은 것처럼 보인다.

성벽의 흔적이 남아 있다.

2010년에 만들어 놓은 이규상 당시 부용면장의 안내 표지석


외성과 내성 사이에 난 수렛길- 내성의 축성 방법을 짐작할 수 있다.

석축된 부분 상부의 토축된 내성의 모습

수렛길을 지나면 왼쪽이 성의 내부이다.


성의 내부로 들어가는 어귀에 있는 분묘는 허름하기는 하지만 꽤 넓게 자리를 잡았고 북향을 하고 있다. 비룡리 쪽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런데 비석만 있고 상돌은 없어 살펴보니 상돌이 옆으로 비켜나 있고 비석도 훼손된 흔적이 뚜렷하다. 전면에 '경주□씨효자열녀지묘'라 되어 있어서 성씨를 누군가 지워버렸다.뒷이면에 보니 경주이씨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씨족간의 다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변이 굴삭기 같은 중장비에 의해서 파헤쳐졌다. 성의 정상으로 가려면 약 10m정도 올라가야 했는데 올라가는 부분도 중장비로 파헤져졌다. 정상에 오르니 여기가 성의 지휘소 같은 건물이 있었던 곳으로 짐작되는데 너른 공지 위에 누군가 분묘를 만들어 다 차지해 버렸다. 그리고 분묘의 자손인지 주변에 나무를 심어 조경을 했다. 본인은 조경으로 생각하고 했겠지만 결과적으로 문화재를 훼손한 것이다. 또 성안에 우물터가 있을 법한데 찾을 수가 없었다. 분묘를 만드는 과정에서 훼손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주변을 살펴보니 별다른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남쪽 성벽은 토축이 분명하다, 아마도 기초 부분은 돌로 쌓고 내부와 위는 흙으로 쌓은 것이 분명하다.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흙으로 성벽 모양을 쌓은 것이 아니라 토축 보루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토축 보루 위에 후세 사람들이 분묘를 만든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나무가 우거져서 보이지 않지만 이 보루에서 부강면 모습이 다 눈에 들어 올 것 같다.


내려오는 중에 중장비로 파헤친 부분을 살펴보니 기와조각 몇 개가 눈에 띤다. 아마도 백제시대나 통일 신라 이후에 건물이 있었을 것이다. 토기편도 발견된다고 표지석에 되어 있으나 찾을 수가 없다. 이성은 주로 백제 시대에 축성되어 후에도 계속 사용하였을 것이다. 이 산 줄기에 있는 산성들과 여기서 보이는 남쪽 산 줄기에 있는 노고산성 애기봉산성 화봉산성 등의 산성과 마주 보고 있다. 또 이곳에서 북으로 은적산이 2~3 km  팔봉산이 바로 얼마되지 않는다. 아직 답사하지는 않았지만 주변의 원수봉산성 합강리 산성들과 연결될 것 같다. 결국 운주산성에서 시작되는 연기지역의 산성들과 공주의 공산성이 연결되는 중간 위치가 아닌가 한다. 또 이곳에서 노고산성 줄기와 함께 금강에서 부강을 통하여 청주나 문의 보은으로 향하는 모든 이동체들에 대하여 관찰 관리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경주이씨 효자 열녀 지요

성의 내부에 있는 너른 공간과 분묘

파헤져진 분묘 앞


기와조각

정상에서 본 무너진 성벽

정상부 분묘 앞에 파헤져진 모습


성재산 쪽은 군부대가 있어서인지 민간에서 쳐 놓은 것인지 철조망이 쳐 있다. 갈 수가 없다. 내려오는 길에 보니 비룡리 쪽에 골프장이 보인다. 골프장이 한 골짜기를 다 차지하고 무슨 성채처럼 들어 앉아 있다. 저기 살던 농민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저 산에 묻혔던 분묘의 자손들은 조상의 산소를 다 어디로 모셨을까 궁금했다. 주변에서 문화재는 또 얼마나 잃어버렸을까?

골프장의 모습


독안산성은 이 산줄기 중에서 가장 동쪽에 있다. 독안산성은 부강면 문곡리 대국터마을에 있어서 연개소문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일부 지도에는 유모산이라 적혀 있고 일부 지도에는 영모정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다시 산을 내려와서 차를 타고 한 30m쯤 부강쪽으로 내려오다가 왼쪽  공터에 주차를 하고 능선으로 올라 갔다.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독립가옥을 지나 아무도 다니지 않는 능선을 숨가쁘게 타고 올라 갔다. 집 주변에 두릅, 참취 등이 널려 있다. 참죽나무순도 따지 않고 그대로다. 그냥 지나치기 아깝지만 그냥 지나갔다. 나물에 신경을 쓰다보면 성을 보지 못한다.


산에는 아무도 없는데 녹음이 짙고 볕이 따갑다. 산새가 싱그러운 소리를 내며 노래를 부르지만 혼자 아무도 오지 않는 산길을 걷는 마음은 마냥 호젓하지 만은 않았다. 일부 능선에는 멧돼지들이 떼를 지어 지나 갓는지 따비를 일군 것처럼 마구 파헤쳐졌다. 도토리를 주워 먹든지 아니면 둥글레 같은 맛있는 풀뿌리들을 캐 먹느라 그리 했겠지만 나는 등골이 써늘해 진다. 그런 주에 갑자기 고라니 한 마리가 나를 보고 놀라 뛰어 달아난다. 저는 나를 보고 놀라고 나는 저를 보고 놀랐다. 송화가루가 마구 날린다. 배낭 곁주머니에 넣었던 물병을 잃어버려서 목이 탄다. 처음 길이라 2km 밖에 안되는 1시간 거리가 그렇게 길고 지루할 수가 없다.


능선을 넘고 넘어 걷고 또 걸어 유모산이라고 누군가 표찰을 붙여놓은 곳에 도착했다. 정상은 평평한데 평평한 부분을 빙 둘러 돌을 쌓은 성을 발견했다. 언듯 보기에 성이 아니라 경계표시처럼 보였다. 그러나 성 내부가 평평하고 지대가 높아 보루로 쓰기에 충분하다. 둘레는 약 5,600m 쯤 되어  보였다. 테메식 산성이다. 한 바퀴 돌아 보았다. 석축은 자연석을 그대로 쌓은 곳도 있고 다듬은 흔적이 보이는 것도 있다. 내부에 우물터 같은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최근에 어떤 필요로 다시 쌓은 것 같지는 않다. 옛 돌이 그대로 있다. 그런데 성이라 하기에는 너무 낮다. 토석 혼축산성이라면 대부분 돌을 아랫부분에 쌓고 위에 흙을 쌓거나 외부는 돌로 쌓고 안은 흙으로 쌓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곳은 아랫부분을 흙으로 쌓고 상부를 석축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산성 전문가가 아닌 것이 답답하다. 산성에 대한 안내 표지판이 아니라도 이곳이 독안산성이라는 표지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힘들게 찾아 왔는데 확인할 수 없어 안타깝다.


아랫부분은 가파른 흙벽이고 상부는 석축이다.

가파른 절벽- 토축일까 자연적인 절벽일까


화강암은 다듬은 흔적도 있고 자연석 그대로인 것도 있다.

비교적 견고하게 쌓은 모습

입 부분은 마치 토축 보루처럼 보인다

성벽이 담장처럼 낮은 부분

토성의 모습이다


아무래도 믿을 수 없어 지도를 보면서 유모산에서 조금 동쪽으로 가면서 조심스럽게 성의 모습을 한 곳을 찾았으나 찾을 수 없었다. 내가 길을 잘못들은 것은 아닐까 다른 능선을 가보아도 성은 없다. 한 시간 이상 주변의 작은 능선들을 다 돌아다녔다. 배도 고프고 멧돼지들이 파헤친 자국이 많아 두렵기도 했다. 심지어 이러다가 산돼지 뱃속에 나를 장사지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도 들었다. 지도에 표기된 것을 보면 그렇게 멀리 있는 것은 아닌데 찾을 수가 없어 아까 본 것이 분명 독안산성이 맞을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내려 왔다.

만약에 이곳이  독안산성이라면 미리 답사한 사람들이 쓴 답사기에 토석혼축의 포곡식 산성이라고 한 점은 재고 되어야 할 것 같다. 토석혼축의 테메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산성은 복두산성에서 이어지는 산줄기에 있는 산성 가운데 가장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노고산성하고 마주 보고 있다. 그래서 서해에서 들어온 물자나 군사가 금강의 합강 부근에서 내려 이곳을 지나 회인을 거쳐 보은으로 갈 때 반드시 지나야 하는 통로를 지키는 보루 역할을 하는 요새로 쓰였을 것이다.

(2016. 5.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