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들꽃 들풀에 길을 묻다

감꽃 삼형제

느림보 이방주 2016. 6. 15. 14:09

감꽃 삼형제

    

2016년 5월 26일

고향집에서 

  

때맞추어 잘 왔구나. 감꽃이 피었다. 고향집 주변에 몇 그루 남은 감나무에 꽃이 피었다. 감나무 아래 서서 올려다보면 윤기가 많은 감잎에 가려서 꽃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감꽃만큼 심오한 덕을 지닌 꽃도 없다.


감잎 사이로 한 가지에 나란히 피어 있는 감꽃 세 송이를 발견했다. 한 송이는 꽃잎이 끄트머리부터 옅은 갈색으로 변하기 시작했고, 한 송이는 꽃잎 네 장이 활짝 피어 특유의 살색이 이들이들하고, 또 한 송이는 이제 싱싱한 꽃받침 속에서 사각뿔 모양 봉오리가 열네 살 소녀 젖멍울처럼 뾰족하게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흡사 삼형제 같다.


예전엔 감나무가 참 많았었다. 마당가에도 있고 텃밭 둑에도 있고 울타리 안에도 아름드리 감나무가 있었다. 감꽃이 피면 보리가 누렇게 익는다. 보리누름이면 감꽃을 주워 목걸이를 만들어 하나씩 빼 먹어야했던 힘겨운 보릿고개도 보리마당질과 함께 마루를 넘어서게 되었다. 그렇게 감꽃에는 여린 희망의 빛이 보였다. 너른 마당에 보릿단을 펴고 여러 식구들이 하나 되어 도리깨질을 하면서도 힘든 줄 몰랐던 것도 다 감꽃이 주는 희망 덕분이었다. 감꽃과 함께 형제들은 마당 가득 웃음소리로 하나가 되곤 했다.


감꽃이 많이 피어야 가을에 감이 많이 열린다. 봄에 감나무에서 윙윙벌들이 요란하게 날갯짓을 하는 그해 가을엔 고향집 골짜기가 온통 붉은색으로 하나가 되었다. 가을의 풍요를 위해서 나는 꽃피기 전에 분무기를 짊어지고 감나무에 올라가야 하는 어려움도 참아냈다. 감나무 아래 구덩이를 파고 퇴비를 한 지게씩 부려야하는 힘겨움도 잘 참아냈다.


힘겨움이 크면 클수록 가을은 풍성하다. 그래도 감을 실컷 먹을 수는 없었다. 어머니는 떫은맛 우려낸 감으로 돈을 샀다. 할머니는 곶감을 만들어 제수로 갈무리를 했다. 그래서 나는 물러터진 감만으로도 만족해야 했다. 그렇게 절제를 가르치던 어른들은 이제 이 세상에 안 계신다. 감을 실컷 먹을 수 있는데 그 시절만큼 실컷 당기지는 않는다.


아버지는 감꽃을 보면서 형제간의 우애를, 늦가을 나무 꼭대기에 마지막 홍시를 까치밥으로 남기면서 자연과 공유를, 곶감을 갈무리하면서 조상과 제사의 의미를 가르치셨다. 대추가 임금이라면 밤은 삼정승이고 곶감에 씨가 여섯 있으니 육판서가 아니냐며 제사상에 올리는 자리를 일러주셨다. 나는 내가 존재해야 할 순서와 자리를 터득해갔다.


감꽃을 들여다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한다. 여덟 남매가 한집에서 왁자하게 살던 옛날,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말씀, 온 마을이 모두 한 집안이던 이웃과의 인과 연을 관계 지으며 살던 일, 나무도 새도 집에서 기르던 짐승도 더불어 살아가던 삶의 이야기가 감꽃 삼형제에서 연줄연줄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감꽃 삼형제는 한 가지에 피었으니 모두가 하나이다. 우리 조상들은 전통적으로 인간은 자연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 총체적 합일이라 믿었다. 율곡栗谷 선생도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이라 했으니 진정 맞는 말이다.


한 가지에 피어나는 감꽃 삼형제도 결국은 하나이듯이 우리 형제도 이 세상 모든 것도 결국은 하나이다. 조금 더 고요해진 마음으로 유택에 계신 부모님을 뵈러 간다.

(청탁원고 2016. 5.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