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생활과 일상/할아버지가 쓰는 규연이의 성장 일기

채소와 과일 공부 시작했어요.- 248일

느림보 이방주 2013. 12. 15. 23:01

2013. 12. 15.

 

채소와 과일 공부 시작했어요. - 248일째

 

<규연이의 일기>

 

오늘 엄마 아빠랑 외출했어요. 재미있는 일이 많았는데 요런 장난감을 한아름 사온 것이었어요.

처음에는 울긋불긋하고 고운 이것들이 다 뭔가 궁금하고 하도 많아서 어리둥절했지요.

그런데 엄마가 하나하나 가르쳐 줬어요.

요건 사과, 요건 가지, 고추, 배추, 포도, 호박, 양배추, 당근, 옥수수,   파브리카 …….

무슨 물건이든 엄마가 말하기 전에 조심 먼저하는 저는 한참 고것들을 바라만 보고 있었어요.

처음에 배추를 손으로 건드려 봤어요. 그런데 그놈이 가만히 있어요. 그래서 한 번 손가락으로 밀어 보았지요. 그래도 가만히 있네요. 아, 알았어요. 이놈들이 내게 해로운 짓을 할 놈은 아니었어요. 엄마가 '배추'라고 말했을 때 생각이 났어요. 외갓집에 갔을 때도 외할머니가 일하시는 곳에서 엄마가 '배추'라고 말해 주었거든요. 그건 어른들이 먹는 김치를 만드는 채소였어요.

아무거나 마구 만져 보았어요. 입에 가져가 보기도 하고요. 꼭 아이스크림 같이 생긴 것이 있어서 한 번 물어보았어요. 딱딱해요.

수박이 눈에 뜨였어요. 여름에 어른들이 맛있게 먹던 수박. 그 빨갛고 예쁜 수박을 보자 나는 입에 침이 생겼어요. 한번도 먹어보지 못했지만 나는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었던 수박, 하긴 그 때는 옛날 내가 아주 어릴 때니까요. 

그놈을 가지고 얼굴에도 대보고, 한 손으로 집어 보기도 했어요.

자 드실래요?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언제나 올까요? 그러면 내말을 어른들이 믿어줄까요?

아이참 나는 언제 커서 내가 생각하는 것을 말로 할 수 있을까요?

 

밤에 엄마가 가지고 말하는 납작한 장난감으로 고모가 글을 보냈어요. 스마트폰이라고 하네요. 아빠 엄마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들으니 고모는 미국에 갔다네요. 미국이 어디야? 거기가 외갓집보다 더 먼가? 외갓집에 가려면 엄마가 차 뒷 자리에 묶오 놓아서 꼼짝도 못하고 바깥만 바라보아야 하는데 그렇게 더 먼 곳을 고모는 어떻게 갔을까? 그런데 나를 이뻐해 주는 고모가 내 옷을 샀다네요. 첫날부터 내 옷을 제일 먼저 샀대요. 세상은 참 희한해요. 미국에서 사진이 금방 여기까지 오다니. 엄마는 고모에게 온 사진을 내게 보여 주었어요. 4벌이나 되네요. 고모 고마워!

 

아무리 내가 귀여워도 그렇지. 고모는 왜 국산품 애용을 모를까? 아 거긴 옷이 싸다고요? 그러면 또 몰라도. 고모는 언제 오는거야. 그 옷을 입고 문화센터에 가서 다른 애들 기를 죽여야 하는데. 그런데 말을 할 수가 있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