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청주와 청주 사람들

후곡리 미소아줌마

느림보 이방주 2011. 6. 30. 16:21

         후곡리 미소아줌마    

  후곡리 숯마을 전경 - 왼쪽 연안이씨 사당, 가운데 하얀 집이 최씨 집

 

마당에 차를 세웠다. 낡은 무쏘의 엔진 소리에 부인이 뛰어 나온다.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나는 내 차를 알아보고 미소를 짓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마당에 차를 세우는 누구에게나 다 미소를 보낼 것이다. 그런 아줌마를 나는 미소아줌마라고 이름 지었다. 미소부인이라고 했다가 그 분의 삶이 아줌마가 더 나을 것 같아 미소아줌마라고 하기로 했다. 그분의 미소에서는 참취를 꺾었을 때나 맡을 수 있는 향이 풍긴다. 시월에 피는 참취의 하얀 꽃처럼 청초하다.

 

미소아줌마는 무슨 일로 항상 얼굴에 미소를 담고 살까? 생활이 즐거운 것이다. 자연이 웃으니 따라 웃는 것이다. 아니 웃으며 사니 자연이 환하게 열리는 것이다. 모두가 좌절하고 시름에 잠긴 이 수몰지구에서 웃음을 담고 살 만큼 즐거운 일이 무엇일까? 남들은 도회지에 나가 아파트에 살면서 얼굴에 분바르고 백화점에서 쇼핑하고 사는데 두메를 벗어나지 못한 얼굴에 가득한 미소의 연유가 정말 궁금하다.

 

미소아줌마는 마당가에 앉아 산에서 갓 뜯어온 참취를 다듬기 시작한다. 마당가와 텃밭에 많던 두릅나무를 다 베었다. 수조에 쏘가리 두어 마리, 붕어 서너 마리가 놀고 있다. 너른 텃밭에는 건물을 지으려는지 시멘트콘크리트를 하여 기초 공사를 해 놓았다. 이야기 거리가 참 많다.

“두릅나무를 다 잘랐네요.”

나는 이야기를 두릅나무로부터 시작했다. 요즘 미소아줌마의 밥상에는 두릅장아찌가 오르기 시작했다. 새곰하고 달콤한 그 맛이 일품이었다.

“잘라 주어야 내년 봄에 돋는 나물이 연하고 맛있어요. 소담하기도 하고요.”

참취를 다듬으며 나를 돌아본다.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소쿠리에 취나물도 가득하다. 미소 가득한 얼굴은 나이를 잊었는지 주름도 없다.

 

지금은 유적비만 남은 용흥국민학교 얘기를 꺼냈다. 미소아줌마는 바로 용흥학교 앞에 살았다면서 남편인 이장 최씨와 결혼한 얘기를 꺼냈다.

“28년 전 결혼할 때는 거기 살았어요. 벌말요. 바로 용흥학교 옆이었어요. 남들은 다 보상 받아서 시내로 나가 슈퍼마켓을 차리고 아파트를 살 계획을 세우는데, 우리 신랑은 남의 논밭을 부쳐먹었으니 보상 한푼이 있을 리가 없지요. 무슨 대책을 세울 수가 없었어요.”

 

당시에 벌말에서 바라보면 말할 수 없는 산골이었던 이곳 숯고개 아래 숯마을에 보금자리를 꾸렸다. 수몰지역이면서 수몰되지 않은 땅에 이주민이 버리고 간 둔치를 일구어 밭을 만들고 논을 만들었다. 이주 첫해, 우리 민족이 모두 반만년 가난에서 벗어난 1980년대 그 풍요가 시작되던 시대에 미소아줌마 부부는 끼니를 걸렀다. 부지런한 남편은 버림받은 땅을 일궈 쌀 30가마를 수확했다. 그래서 끼니 걱정에서 해방되었다. 그의 생명 투쟁이 해결을 본 것이다. 그런데 흥부네 집 같은 은신처에는 쌀 30가마를 들여 놓을 곳이 없었다며 미소아줌마는 두릅순같이 포동포동한 볼우물을 보이며 웃었다. 그러나 눈가에는 눈물이 아직도 마르지 않았다.

 

그 때부터 남편은 내수면 어업 허가를 받아 물고기를 잡고, 아낙은 산나물을 채취하여 가용을 마련했다. 버린 땅을 일궈 서리태를 심고, 겨울에는 칡을 캐어 즙을 내어 팔았다. 그렇게 부모를 모시고 자식을 대학에 보냈다. 부부의 억척은 숯마을에 양옥을 짓고 승용차를 사고 농기계를 마련도 했다.

“산야에 돈이 널려 있는 걸요. 도시로 간 친구들이 눈물나게 부러웠는데 이제는 그 사람들이 우리를 부러워해요.”

미소아줌마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손은 재게 움직이더니 어느새 소쿠리 취나물을 다 다듬었다. 마당에 참취 향이 가득하다. 향기는 그의 손에서도 얼굴에서도 볼우물에서도 그의 아릿한 미소에서도 피어나는 듯하다. 그래서 향기는 향기일 뿐 아니라 나의 코끝을 아릿하게 한다.

 

미소아줌마는 남편이 건져오는 붕어를 그냥 팔지 않았다. 붕어찜 요리법을 연구했다. 비법이 있다고 하는데 내가 알 바가 아니다. 아무튼 그의 붕어찜 솜씨는 일품이다. 맛을 아는 이들의 입소문으로 알려져 물량이 달릴 정도였다.

“요새는 붕어도 잘 안 잡혀요. 고백하는데요. 붕어찜 찾는 사람은 많고 붕어는 잡히지 않아 외지 붕어를 들여와 봤어요. 그래서 조리를 해서 팔았는데 가슴이 떨려서 정말 못하겠어요. 아마 선생님 같으면 맛을 바로 알았을 거예요. 물론 손님들은 모르시지요. 그래도 다시는 못하겠어요.”

 

물을 더럽히지 않고 고기 잡는 법, 산을 훼손하지 않고 칡을 캐는 법을 연구하는 남편, 한 뼘이 넘는데도 너무 작다고 잡은 붕어를 도로 놓아 주는 남편이 존경스럽다고 한다. 군청에서 농촌에 지원하는 영농자금을 결과를 확신할 수 없다고 받지 않는 남편이 좀 갑갑하기도 하다면서 또 볼우물에 미소가 가득하다. 그래 맞아, 다른 사람 같으면 일단 받아 놓고 볼 텐데.

 

텃밭에 기초 공사는 왜 했는지 아까부터 궁금하다.

“콩이나 고추를 그냥 내느니 된장 고추장을 담가서 알음알음 팔았는데, 다들 맛이 좋다고 하네요. 이제는 나물 장아찌 공장을 해보려고요. 그래서 맛맛으로 담가서 장을 갖다 먹는 분들에게 조금씩 드려 보았는데 다들 해보라네요.”

붕어찜을 먹으러 왔을 때 특별히 내게만 준다는 깻잎장아찌와 무장아찌 외에도 참취장아찌, 두릅장아찌, 참죽나무순장아찌, 엄나무순장아찌의 맛이 일품이었던 생각이 났다. '그럼 인터넷으로 주문을 받으세요.' 이렇게 말해 놓고 나는 바로 후회했다. 그건 때 묻은 내 사고의 산물이었다. 미소아줌마는 펄쩍 뛴다.

“대량으로 주문이 들어오고 돈맛을 알면 거짓말을 하게 돼요. 취를 재배하면 그건 자연으로 입맛을 사는 것이 아니라 돈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지요.”

“먹거리를 팔면서 사람들의 입맛을 바로 잡아 줘야 되잖아요. 저는 도시 여자들이 도대체 장맛을 모르는 게 한심해요. 전통 음식의 참맛을 알려주고 싶어요. 그냥 아는 분들에게나 조금씩 드리는 거지요. 돈 벌려면 도회지에 나가 식당을 하는게 낫지요.”

 

재배한 산나물을 쓰지 않는 여인, 죽은 붕어도 외지붕어도 쓰지 않는 여인, 우리 민족의 방황하는 입맛을 참맛으로 잡아 주고 싶은 여인, 돈이 아니라 맛을 지키는 것이 더 소중한 여인, 나는 그녀가 미소를 잃지 않는 이유를 깨달았다. 그녀의 미소에는 산나물 같은 향기가 배어 있는 까닭을 알았다.

 

현대사는 이렇게 순종밖에 모르는 우리의 핏줄에게 무엇으로 보상해 주었는가? 나는 선생을 하면서 이들의 자식에게 무엇을 가르쳤나? 아니 가르칠 것이나 있었나?

 

이곳이 좋다. 최씨는 요즘도 자신이 나고 자란 벌말 옛 터에 그물을 놓는다. 그가 건지려는 것은 붕어가 아니라 아련한 추억이고 착하게 살던 삶의 여적일 것이다. 부부는 진실이 돈이 되고 착하게 흘린 땀이 고스란히 돈이 되는 세상을 이 땅에 세우고 싶은 소망까지는 생각지도 않을 것이다. 생명을 사랑하면서 자연에 얹혀 살아야 제대로 사는 것이라는 부부의 철학이 호수에 비친 노을처럼 아름답다.

나는 이곳이 정말 좋다. 욕심 없이 살아가는 나무나 풀들이 영혼을 헹구어 주는 이곳이 좋다. 벌말 수면 위에 드리운 노을빛을 뒤로 하고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도회로 차를 돌렸다.

                                                                                 (2011. 5. 8)

 

둔치에 일군 텃밭 -장아찌 공장 기초공사

 

최씨의 고기잡이 배

 

저멀리 물에 잠긴 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