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13일
괴산 막장봉의 晩秋
▣ 절말-자연관찰원-쌍곡폭포-칠보산 막장봉 삼거리-시묘살이계곡(은선폭포-고인돌 바위) -장성봉 막장봉 안부삼거리(5.2km)-안부삼거리 -코끼리 바위-분화구바위-도닦는 바위지대-투구바위-전망 바위 -이빨바위-제수리재(3.8km) : 9km (5시간 20분, 점심시간 30분포함)
오랜만에 둘이 하는 산행이다. 준비는 간단하다. 밥을 한 그릇만 싸고, 사과를 두 개 넣고, 귤을 몇개 넣었다. 아내는 커피와 떡 몇 조각을 준비했다. 집에서 9시 17분에 떠났다. 늦어도 부담은 없다. 무쏘를 내가 운전하여 산남동 학교 앞으로 해서 효촌을 지나 고은 삼거리를 통과하였다. 고은 삼거리는 공사가 끝나지 않았다. 미원에서 청천을 지나 관평리에서 제수리재에 올라섰다. 사람들이 제수리재에서 산행 준비를 하고 있다. 여기서 바로 막장봉 장성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경치가 정말 좋다. 여기서 막장봉을 갔다가 되돌아 오는 산행도 좋다. 또 아직 가보지 않았지만 남군자산으로 군자산으로 이어지는 산행도 좋을 것이다.
작년에 시묘살이계곡을 거쳐 장성봉을 다녀온 일이 있고 아주 오래 전에 버리미기재에서 제수리재로 종주한 일도 있어 산에 대하여 궁금함은 없다.
우리는 절말 주차장까지 내려갔다. 막장봉에서 제수리재로 와서는 천천히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가도 되고 좋은 사람을 만나면 차를 얻어 탈 수도 있다. 제수리재에서 절말까지 길이 길기는 하지만 공기가 좋고 단풍이 아직 끝나지 않아 걸어도 좋을 것 같았다.

막장봉 주변 등산로
절말 주차장의 가을은 한산하다
절말 주차장은 작년부터 주차비를 받는다. 주차비가 아깝다. 그래서 사람들이 쌍곡 계곡 길가에 드문드문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내가 주로 세우는 곳에 가 보니 아직 한 대도 없다. 한 쪽 옆에 차를 세우는 동안 두 대가 더 들어왔다. 10시 50분에 산행을 시작했다. 주차장을 거쳐 계곡으로 들어서니 아직도 남은 단풍의 열기가 훅 얼굴에 끼얹는다. 칠보산 일곱 굽이 보석 같은 능선을 하얗게 아침 햇살을 되비치고 있다. 물은 아주 맑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수면에 색색의 단풍을 띄웠다. 한쪽으로 몰린 나뭇잎 새로 바닥이 유리에 넣은 풍경화처럼 아름답다. 물에 떠 있는 황금빛 솔잎이 이렇게까지 아름다울 수 있을까? 떨어진 솔잎과 물에 잠긴 소나무의 푸름이 어울린다.
징검다리를 건너면 있는 거기는 아늑한 오솔길이다. 오솔길 옆에 산림에 대한 각종 상식을 그림과 함께 게시해 놓았다. 어른도 읽어보면 공부가 된다. 알아야 소중함을 느낀다는 견지에서 보면 아주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오솔길은 겨울에 오면 솔숲이 좋고 여름에 오면 활엽수가 좋다.
오솔길을 호젓함 기분으로 걷는 것도 잠시 바로 돌계단을 내려서면 쌍곡의 명물 쌍곡 폭포가 나온다. 맑은 물은 그치지 않고 내려오고 돌틈으로 흘러 내리는 물이 깨끗하다. 폭포 아래 푸른 호수가 있다. 물고기들이 노닌다. 거기에 들어가는 사람이 있는지 누가 줄을 쳐 놓았다. 그 줄을 피해서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 누군가 심술이 대단하다. 거기 또 다시 징검다리를 건너 올라가면 공원 관리소가 있다. 소나무 한 그루가 서서 살구나무골 절경을 가로 막는다.
소나무를 지나면 바로 나무 다리가 나온다. 여기서부터 한적한 오솔길을 걷는다. 단풍이 끝나니 산을 찾는 이들이 드물다. 요란스러운 단풍도 좋겠지만 이런 풍경도 또 그런대로 맛이 있는 것이다. 화려한 옷을 벗어 버려야 아름다움의 진실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산이나 인간이나 본연의 보습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징검다리를 건너며
계수에 푸른 솔이 잠겼다.
자연관찰원 오솔길에서
쌍곡폭포 淸潭에 흘러내리는 물이 그치지 않는다
작년 9월말 장성봉을 가기 위해 이 계곡을 혼자서 찾아간 일이 있다. 그 때는 초행이다. 아직 단풍이 들지 않았을 때, 짙은 녹음 속을 걷던 그 때의 기억이 새롭다. 오늘은 아내와 함께 간다. 그래서 더 든든하다. 산은 온통 활엽수들의 옷벗기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오솔길은 낙엽에 덮여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가끔 길을 잃기도 한다. 우리는 살아가다 가끔 길을 잃어 헤매지 않는가? 나는 지금 이 나이에 가는 길이 허당으로 가는건 아닌지 확신할 수 없다.
아내는 계속 신기하다. 등산화에 밟히는 낙엽 소리도 신기하고, 빨갛게 물들어 그대로 말라 붙어 있는 단풍잎도 신기하다. 이건 다래나무 이건 머루나무 하면서 외어도 번번이 다래와 머루를 혼동한다. 그런 모습이 아이들 같다. 왜 그걸 혼동할까? 나는 그냥 "이거 다래나무지요?" 하면 "응"하고 대답한다. 그게 다래면 어떻고 머루면 어떤가? 그냥 산이면 족하지 않은가?
몇 번이나 도랑을 건넜다. 건널 때마다 물의 양은 점점 줄어든다. 올라가는 것 같지도 않은데 시간이 지날수롤 낙엽도 줄어든다. 어느덧 지나가는 바람이 싸늘하기까지 한다. 산죽이 파랗다. 그 사이로 細路가 있다. 그것도 또한 운치가 아닌가? 그렇게 서로의 낙엽 밟는 소리를 들으며 걷다보니 한 시간 이상을 쉬지 않고 걸었다. 산죽을 지나 한 떼의 소나무 군락을 만났다. 하늘로 쭉쭉 벋은 소나무가 아름답다.
낙엽에 덮이 오솔길
말라붙은 단풍도 아름답다
발길이 전혀 없이 낙엽에 덮여 있는 오솔길
낙엽 한잎 되어 있네
이렇게 남은 단풍
산죽 사이로 오솔길
산죽 옆에 있으면 그도 또 생명력이 넘치고
소나무 숲에 햇살이 내린다.
배가 고프다. 여기 앉아 옥수수를 먹었다. 어떻게 담아 왔는지 아직도 따뜻하다. 한 20분 쯤 쉬었다. 그동안 흐른 땀이 다 말랐다. 사람은 아무도 없다. 햇살이 언덕을 넘어 오기 시작한다. 옷벗은 활엽수들 사이로 일휘가 내려 쬔다. 아내가 춥다고 했다. 다시 걸었다.
한동안 완만하던 길이 조금씩 오르막이 시작된다. 바위가 미끄럽다. 길이 없어졌다가 사라진다. 가팔라진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넘어져 있다. 이렇게 크려면 한 백년쯤은 살았을 텐데 이렇게 힘없이 넘어질 수 있을까? 이끼옷을 파랗게 입었다. 고목이 부러진 모습이 을씨년스럽다. 어느 정글지대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나무들마다 다래와 머루가 감고 올라갔다. 고목도 이래서 명을 다하는지도 모른다. 역사 속의 거목들도 이런 덩굴에 휘말려 쓰러진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제발 몇 해 남지 않은 내 교직은 그렇게 넘어지지 말았으면 좋겠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자. 기대는 바로 화를 부른다. 지나친 기대가 화를 부른다. 그냥 나는 아직도 젊은 작은 단풍나무라고 생각하자. 그리고 화내지 말자.
아내는 힘도 들이지 않고 가파르고 미끄러운 길을 잘도 올라간다. 나는 숨이 가쁘다. 하늘을 끊어놓은 삼거리 안부가 환하다. 저기 넘어 빛이 있다. 올라가는 길에 고목이 쓰러진 그 사이로 아내가 간다. 안부에 도착했다. 2시간 20분 걸렸다.
안부에서 쉴 사이도 없이 바로 막장봉으로 오른다. 사람들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여기서 처음 남의 목소리를 듣는다. 반갑다. 숨까쁘게 비탈길을 돌고 도니 바로 막장봉이다. 등산객이 한 두세 모둠이 모여서 식사를 하고 있다. 복장을 봐서는 아주 젊은 내외가 라면을 끓이다가 우리를 맞는다. 시묘살이 계곡으로 올라오느냐기에 그렇다고 했더니 그럼 어디로 내려갈 참이냐고 했다. 우리는 제수리재로 내려가겠노라고 했더니 차를 어디에 두었느냐고 꼬치꼬치 묻는다. 차는 절말에 두었다니까 그런 자기가 태워다 주겠단다. 반갑다 이런 친절이 있을까?
고인돌 바위
隱仙폭포
쓰러져 썩어가는 나무
저기 훤한데가 안부-아내는 이미 저만치 가고 있다
안부에서
점심을 먹었다. 커피를 마시고 제수리재를 향하여 걸었다. 순탄한 길을 아닐 것이다. 한 번 걸었던 기억을 되살려도 그렇고 내려다 보는 용혈들이 꾸불꾸불 사연도 많다. 멀리 제수리재가 남군자산과 막장봉 줄기를 가르고 있었다. 언젠가 제수리재에서 시작해서 칠보산으로 한 바퀴 돌아 내려오고야 말겠다. 그러면 살구나무골과 시묘살이 계곡을 한번 싸 안을 수 있을 것이다. 부지런히 걸으면 8시간 내지 9시간이면 될 것이다.
비탈길을 내려 바위를 타고 오르고 코끼리 바위, 분화구 바위, 도 닦는 바위지대를 다 지나 솔숲을 헤치며 걷는 맛이 그런대로 할만하다. 때로 스릴있게 줄을 타고 바위를 오르기도 하고 바위 뜸에 끼어 간신히 빠져 나오기도 했다. 바위를 지나면 길을 잃어 되돌아 가야 할 때도 있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태워다 준다던 그 분들이 우리를 따랐다. 속으로 저렇게 젊으면 얼마나 좋을까 했다. 다시 한 번 태워다준다는 약속을 확인한다. 고맙다.
그렇게 걷는 동안 힘이 빠졌다. 그래서 얼마나 남은 건가 하고 궁금해할 때쯤 차 소리가 들렸다. 제수리재이다. 맞아, 이렇게 갑자기 나타났어. 우리는 바로 고개로 내려왔다. 4시 10분이다. 5시간 20분을 걸은 것이다. 바지에 먼지를 터는 동안 그 분들도 바로 내려 왔다. 제천에서 왔다고 한다. 정말 우리를 태워다 줄 자세였다. 당연하단다. 산에서 만나지 않았으면 요즘 세상에 남을 태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창 안에서 나이 얘기가 나왔다. 등산객을 서로 태워주는 이야기에서 발전한 것 같다. 그런데 나는 나이가 많아서 산에 다니는데 힘이 든다고 했다. 남자 분의 팔뚝 근육이 한 사십대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내 나이를 얘기하자 두 분이 막 웃었다. 영문을 몰랐는데 남자분은 나보다 다섯살이나 위였다. 민망하다. 일주일에 두 번을 산에 가신다고 한다. 부럽다. 그런 건강과 활력이 부럽다. 그 의욕이 부럽다.
아주 쉽게 3,4분 만에 내 차 주차해 놓은 절말에 도착했다. 걸었다면 얼마나 걸렸을까? 마침 차안에 내 수필집 <손맛>이 한 권 있어서 드렸더니 아주 반가워 한다. 정말 읽어 보겠지. 잠시 동안의 만남이 헤어짐을 아쉽게 했다. 사람끼리 만나면 이렇게 아쉽다. 두 분이 해를 등지고 제천으로 떠나고 나는 차를 타고 다시 제수리재를 넘어 해를 마주 하며 관평을 지나 청주로 돌아왔다.
길고 긴 시묘살이 계곡
희양산
정상에서 셀카
군자산을 뒤로 하고
코끼리 바위에서
바윗길
바위 능선
줄을 타고
도닦는 바위
분화구 바위
그렇게 앉아 있어도 돼?
괜찮네
하늘 소나무 바위 그리고---
가야할 능선
제수리재 이정표
제수리재 주차장-우리를 태워다 준 4934
아내가 칼국수가 먹고 싶다고 해서 인사동에 갔다. 나도 땀을 많이 흘려 국물이 좋다. 다리가 뻐근하다. 온몸의 찌꺼기가 다 빠진 것 같다. 모처럼 아내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나누면 해결되는 것들이 많다. 그동안 우리 내외가 얼마나 바쁘게 살아왔나 돌아보게 된다. 이야기 나눌 시간도 없이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 아무리 바빠도 쉬는 날엔 함께 산에 가야겠다. 낙엽이 있는 온갖 장식을 다 벗은 산에서 우리는 마음의 꺼풀을 다 벗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마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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