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답사/등산과 여행

여름 휴가 -홍도 흑산도 여행-

느림보 이방주 2010. 8. 12. 08:20

 홍도 흑산도 여행

 

▣ 좋은 날 : 2010년 8월 4일부터 8월 6일까지 (2박 3일)

▣ 좋은 길 : 청주-호남고속도로-서해고속도로-목포-홍도-흑산도-목포-산남고

▣ 좋은 사람들 : 이효정 선생님 부부, 정우종 선생님 부부, 권성희 여사, 우리 내외 (7명)

 

 흑산도 진도 주변 지도

 

1. 홍도

 

홍도 관광 지도

 

계림 여행을 다녀온 후 하루를 쉬니 어느 정도 여독이 풀렸다. 우리는 다시 홍도 흑산도 여행을 가기로 했다. 홍도는 한번도 가보지 못해서 기대감에 넘쳐 있었다. 아주 오래 전부터 막연하게 그리던 홍도에 대한 그림을 그리며 아침 6시 산남고 주차장에서 만났다. 이번 여행에 이완호 교감이 학교 일정 때문에 참석할 수 없어 사모님만 나오셨다. 우리는 백만사 고유의 발대식을 마치고 차에 올랐다. 이번에는 김진숙님이 새로 산 소나타를 가지고 가기로 해서 나는 운전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정선생과 나는 이효정 선생 차를 타고 여성들은 모두 소나타를 탔다. 원거리 운전을 여자분에게 맡기는 것이 좀 미안스러웠지만 다들 그것을 원하기에 뒷자리에서 아주 편안하게 가기로 했다.

 

도심 속의 숲 아름다운 산남고-식당으로 향하는 비탈길 너머로 미르숲이 보인다.

 

 영원한 백만사를 위하여

차는 척산을 지나 청원나들목으로 들어갔다. 죽암 휴게소에서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했다. 차는 힘도 들이지 않고 호남고속도로를 달렸다. 백양사 휴게소에 들러 잠시 쉬었다. 어느 분인가 고구마를 가져 오셔서 자리를 폈다. 고구마는 아직도 따듯했다. 가져 오신 분의 마음이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눈에 띄는 것이 베롱나무꽃이다. 나는 이꽃을 볼 때마다 고향집 생각이 난다. 고향집 건너마당이라고 불리는 곳에 화단이 있다. 지금도 있다. 잡초에 우거져 있지만 그 때는 큰형님이 아주 정성들여 가꾸셨다. 그 자리는 머슴들의 거처하면서 가끔 나그네가 하룻밤 묵어가는 행랑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거기에 커다란 베롱나무가 있었다. 당시로서는 매우 귀한 꽃나무였다. 여름이 되면 붉게 피는 이 신비스런 나무를 나는 아이들에게 자랑했다. 이 꽃이 있는 집은 대개 살기가 괜찮은 집이라고 생각되는 부귀를 상징하는 나무이다. 남쪽 지방을 여행하면서 베롱나무꽃을 보면 부모님 할머님 산소 곁에 두 그루만 사다 심어야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그 때뿐 몇 년 째 그냥 지나갔다. 올 11월에는 꼭 실천에 옮겨 보자. 귀한 베롱나무꽃은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지천으로 피어 있다.

 

 백양사 휴게소에서

 휴게소에 예쁘게 핀 베롱나무 꽃

 

1. 유달산 조각공원

목포에 도착해 보니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래서 이효정 대장의 제의로 유달산 조각공원에 올라갔다. 날씨는 습하고 덥다. 안개가 뿌옇게 목포 시내를 덮었다. 대통령이 나온 고장이라도 골목은 좁고 언덕길은 그대로다.  목포는 정말 오랜만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제주도로 캠핑을 떠날 때 처음 와 보았고 그 뒤로 올 기회가 없었다.

 

시내보다 조각 공원은 아주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시민들의 휴식처나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아주 적합하겠다. 조각 작품도 의미는 잘 모르지만 수준이 있어 보였다. 대개 인간의 삶을 주제로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다. 우리는 늘 사고하고 고민하지 않는가? 그런 고민과 사색을 형상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표현이 어려우니 당연히 알아보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문학은 참 쉽고도 오묘한 것이다. 문학 작품을 읽고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는 드무니 말이다. 그렇다고 완전한 이해 또한 어려우니 오묘하지 않은가?

 유달산

 유달산 등산 안내도

 조각공원 입구

 말끔하게 정리된 공원

 조각 작품과 정원수의 어울림

 작품

 산 아래

 어떤 사색일까

 안개 속의 목포시내

 

 2. 홍도 가는 길

 

목포 홍도 여객 터미널에 와 보니 주차장이 꽉 차 있다. 돌아다니면서 주차할 곳을 찾아봐도 없다. 할 수 없이 유료주차장에 세울 수밖에 없다. 이대장은 여객선 승선권을 찾으러 가고 내가 대신 운전을 하면서 유료주차장을 찾았다. 목포 사람들은 낯선 사람들에게도 친절하다. 유료주차장 예쁜 아가씨는 점심 먹을 곳까지 안내해 주었다. 차를  두대 3일간 맡기는데 5만원이라고 한다. 안전하게만 맡아 준다면 그도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인근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전라도 사람들의 음식 솜씨와 음식 인심은 여기도 마찬가지이다. 짭짤한 젓갈이 맛있었다. 모자라는 반찬을 계속 더 갖다 주는 인심이 푸근하다. 밥을 먹고 서둘러 터미널로 갔다. 배표에는 좌석이 지정되어 있어 서두르지 초조하지 않았다.

 

배는 요동도 없이 푸른 바다로 미끄러진다. 그러나 다른 배가 지나가면 배는 그네를 뛰는 것처럼 출렁거린다. 모두 환성을 올린다. 바다는 한없이 깨끗하다. 고기잡이들이 무얼하는지 조용히 바다에 떠 있다. 아름다운 섬이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안고 말없이 바다에 섬처럼 떠 있다. 우리는 모처럼 바라보는 바다 경치에 취해 연신 밖을 내다 보았다. 물살이 치면 바로 얼굴로 달려드는 듯하다.

 

<홍도>

 면적 6.47㎢, 인구 478명(2001)이다. 해안선길이 36.8㎞이다. 목포항에서 서남쪽 115㎞ 지점에 있다. 이 섬에는 270여 종의 상록수와 170여 종의 동물이 서식하고 있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하기 위해 1965년에 홍도천연보호구역(천연기념물 170)으로 지정되었으며, 1981년에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옛날 중국과 교역할 때 중간 기항지로서 이 섬에 정박하여 북서풍을 피하고 동남풍을 기다렸다 하여 대풍도(待風島)라고 불렀고,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등에서는 홍의도(紅衣島)로, 《숙종실록(肅宗實錄)》에는 홍어도(紅魚島)로 표기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바다에 뜬 매화꽃처럼 아름다운 섬이라 하여 매가도(梅嘉島)라고 부르다가 광복 이후 홍도라는 명칭이 정착하였다고 전한다. 


최고봉은 깃대봉(368m)이며, 남서쪽으로 양산봉(231m)이 솟아 있고, 섬 전체가 비교적 기복이 큰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해안선은 드나듦이 심한 편으로 남쪽과 북쪽이 깊게 만입되어 있다. 해안은 대부분 암석해안으로 해식애가 잘 발달되어 있으며, 해식동, 시 아치(sea arch), 시 스택(sea stack) 등의 해안지형이 발달하여 뛰어난 경관을 이루고 있다. 1월 평균기온 2℃ 내외, 8월 평균기온 25℃ 내외, 연강수량 1,134.7㎜이다.


주민들은 주로 어업에 종사하나, 남해안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섬으로서 관광객이 끊이지 않아 이들을 대상으로 한 수입이 주소득원이 되고 있다. 농산물로 고구마·보리·콩·마늘 등이 생산된다. 근해에서는 우럭·붕장어·농어 등이 잡히며, 전복·김 등이 채취된다. 취락은 남쪽 죽항마을과 북쪽 석촌마을에 밀집해 있다.


주요관광 코스로는 남문바위·시루떡바위·물개굴·석화굴·기둥바위·탑바위·원숭이바위·주전자바위·독립문바위·홍어굴·병풍바위 등이 있다. 섬내에 원시림처럼 잘 보존되어 있는 당산림은 예로부터 주민의 신앙생활 중심지로 되어 있어 해마다 음력 섣달 그믐이면 풍어제를 지내기도 한다.


 목포 여객 터미널

 우리 타고 간 남해스타

 

홍도에 도착한 것은 해가 한 30도쯤 기울어졌을 때이다. 부두에는 많은 사람들이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배 한 척 만큼 홍도에 들어 가면 그 만큼 홍도에서 나오는 것이다. 부두 양쪽에는 생선을 파는 아낙네들과 거기 앉아 싱싱한 회를 먹는 한가한 남정네들로 북적인다. 홍도에서 나오는 사람들은 바다를 향해 줄을 서 있고 홍도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육지를 향해 서 있다. 

 

민박집 주인을 따라 가파른 고개를 넘어 민박집으로 갔다. 우리가 묵을 방은 생각보다 훨씬 깨끗하고 전망도 좋았다. 방 크기도 적당하고 호텔처럼 텔레비젼과 냉장고 욕실이 갖추어져 있다. 게다가 에어컨도 아주  새것이라 원하는 만큼 시원하게 바람이 나온다. 선풍기까지 있었다. 짐을 풀고 바로 산책길에 나섰다.

 

 배에서 보이는 홍도 부두

 부둣가의 수많은 사람들

 

3. 산책길

 

산책길은 한 2Km쯤 되게 산 기슭에 나무로 만들어 놓은 길이다. 말로는 발전소 가는 길이라고 하는데 발전소 가는 목적보다는 관광객을 위해서 만든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라가는 길에 작은 학교가 하나 있다. 흑산도초등학교 홍도 분교장이라고 한다. 선생님들이 근무중인지 교무실인듯한 방에는 문이 열려 있고 사람들이 움직이는 모습이 보인다. 깃대봉 올라가는 갈림길까지 주변에는 온통 산원추리꽃이 노랗게 피었다. 바라보이는 홍도리 마을은 마치 서구의 어느 바닷가 마을처럼 보였다. 부두가 양쪽으로 다 있어서 의아하다. 여기서 보이는 부두는 지금은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그야말로 산책하는 것처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가다가 쉬기도 하고 사진도 찍으며 저녁 한 때를 보냈다. 가끔씩 빗방울이 듣기도 했지만 산책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다.

 

 산책길에서 보이는 바다

 홍도 분교장

 코스모스와 여인들

 원추리꽃

 산책길에서 보이는 제2부두

   

 산책길에서

 

 

 이대장 부부

 홍도 발전소

 

발전소까지 내려갔다가 바로 되돌아 왔다. 되돌아오는 길은 가깝게 느껴졌다. 민박집에 돌아와 몸을 씻고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 저녁식사에는 회가 두 접시나 올라왔다. 이 정도의 회를 먹으려면 10만원은 족히 주어야 할 것 같았다. 그 뿐 아니라 홍합이 또 쟁반으로 두 쟁반이 들어왔다. 아주 싱싱하고 살진 자연산이다.  우리는 싱싱한 회와 홍합을 안주로 소주를 마셨다. 밥을 먹을 때쯤에는 매운탕이 들어 왔다. 민박집 치고는 매우 고급이다. 저녁 식사를 맛있게 했다.

 

저녁을 먹고 배가 너무 불러서 부둣가를 산책하기로 했다. 부둣가를 산책하다가 어느 선술집에 들러 해삼을 안주로 소주를 또 마셨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았지만 해삼은 멏 점 먹어 보았다. 선술집이 늘어선 이 곳은 주로 조개를 구워 팔거나 생선 구이를 팔았다. 다들 피곤한지 시들해져서 숙소로 돌아왔다. 덥지만 잠이 잘 왔다.

 

 4. 깃대봉

 

 아침 식사를 마치고 바로 깃대봉 등산을 하기로 했다. 깃대봉은 홍도의 주봉으로 365m라고 한다. 신안군이 섬을 1004개를 만들어 천사의 군이라고 하듯이 깃대봉도 365m를 일부러 만든 것이 아닌가 의심이 갔지만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다. 안개가 끼어 조망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다녀 오는데 2 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그리고 11시 30분에 점심 식사를 하고 유람선을 탈 계획이라 서둘렀다. 홍도분교장 앞을 지나 나무 계단을 밟고 계속 올랐다. 처음에는 노란 원추리 꽃이 핀 초원이다가 아열대 식물들이 사방을 뒤덮은 밀림지대가 나온다. 밀림지대에 이르기 전까지는 조망이 그런대로 좋았다.위로 올라갈수록 바다와 섬이 어우러진 풍광이 바라볼수록 좋다. 그리고 홍도 1구 마을이 산기슭에 의지한 모습도 보기 좋았다. 멀리 마주 보이는 양산봉에도 한 번 오르고 싶었다.

 

밀림지대에 들어서니 나무 계단도 없어지고 질퍽한 흙길이다. 더구나 빽빽하게 우거진 나무와 산 안개로 어둑어둑했다. 나는 계속 나뭇가지에 머리를 부딪혀서 흥건하게 머리가 젖었다. 수건을 꺼내 머리를 닦아도 금방 다 젖는다. 사람들도 많이 줄어 들어 가끔 내려오는 이들만 한둘씩 만났다. 우리 일행도 걸음이 느려서 뒤떨어져 혼자서 계속 능선길을 걸었다. 정상 부근에 가니 안개가 자욱해서 세상이 더 어두워진 기분이다.

 

정상에 오르니 산 아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안개만 자욱하다. 깃대봉 유래가 적힌 팻말과 정상석만 있다. 사람들도 어느새 다 내려갔는지 우리 일행만 남았다. 깃대봉을 높이가 365m라 여기 오른 사람들은 365일동안 건강해진다고 한다.

 

 깃대봉 오르는 길에- 저 아래 홍도 유람선 선착장

 홍도의 여인들

 이대장 부부

 바람도 없는데 머리가 날리네

 정선생님 부부

 나무계단과 원추리꽃

 안개 그리고 밀림

 양산봉과 홍도 1구 마을

 바다를 배경으로

 

 깃대봉에서

 깃대봉 알림판

 깃대봉 안개 속의 여인들

 깃대봉에서

 

5. 홍도 유람선

 

 내려올 때는 훨씬 빨리 내려왔다. 11시 30분에 점심을 먹는 다고 했으니 아직 시간이 남아 있고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 간단하게 몸을 씻었다. 시원하다. 그러나 그 옷을 그냥 입으니 도로 그랬다. 그래도 그냥 있는 것보다는 낫겠지. 점심 식사를 하고 모든 짐을 챙겨 가지고 유람선 선착장으로 나갔다. 민박집 주인이 짐을 선착장 어느 가게에 맡겨 주었다. 우리가 서두른 덕분으로 민박집 주인의 배를 탈 수 있었다. 그래서 승선도 빨리 할 수 있었고, 자리도 좋은 곳으로 차지할 수 있었다. 일행은 모두 선실 안에서 밖을 내다 보는데 나는 이효정 선생과 함께 갑판에 올랐다. 배가 바다로 나갈수록 아름답다. 더구나 안내하는 청년이 구수한 완전 토종 전라도 사투리로 설명해서 더 감칠맛이 났다.

 

섬에 피어 있는 원추리꽃으로부터 이름 모를 나무들 그리고 소나무가 장관이다. 그리고 크고 작은 돌섬의 기기묘묘한 모습들이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본섬의 석벽의 바위 모습이나 동굴도 그렇고 점점이 떨어진 돌섬들은 조물주가 손에 바윗물을 묻혀 휙휙 뿌린 것이 굳어진 것처럼 아무렇게나 흩어져 미의 질서를 이루고 있다.

 

그렇게 아름다움에 취해 있을 때 작은 배를 타고 회를 파는 장사들이 왔다. 회는 한 접시에 3만원씩이었다. 그런데 그냥 그 자리에서 잡은 싱싱한 생물이니 비싸다고 할 수도 없다. 우리는 주인 남자가 3만원에 두 접시를 주었다. 그래서 일곱 명이 실컷 먹을 수 있었다. 우리가 탄 배 말고도 유람선은 여러 척이 홍도의 바다를 돌고 있다. 이렇게 여름 한 철이 홍도의 주민들에겐 흥청거리는 한 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람선과 어우러진 홍도의 절경

 

 바위벽

 멀리서 본 독립문 바위

 

 가까이서 본 독립문 바위

 바위섬

 맥주파티

 바위섬

 바위와 나무가 어우러진 절경

 돌섬

 돌섬과 양식장

 돌섬들

 돌섬

 섬과 여인

 홍도의 명물

 여기저기 끊임없이 나타나는 돌섬

 절경

 깎이고 다듬어진 돌섬

 석굴

 섬과 소나무 그리고 푸른 물

  

 초원 저 위엔 평원이 있을까

 즉석에서 회를 더서 파는 작은 배

 바다회와 함께

 술마시는 동안에도 계속 나타나고 없어지고

 유리알 같은 고요

 

선착장에 내려서 잠시 시간이 있었다. 아주 작은 해수욕장에 가서 바닷물에 발이라도 담가야 한다고 바다로 내려가고 나는 선착장 풍물을 살펴 보며 기웃거렸다.  이곳에는 차가 한대도 없다고 한다. 차가 있어도 소용이 없다. 길이 없으니까 차가 다닐 수도 없다. 그 대신 3륜 오토바이가 짐과 사람을 실어 나르고 있다. 홍도의 명물이다. 시간이 되어 짐을 찾아 흑산도로 향했다.

 

 몽돌 해수욕장

 홍도의 명물 3륜차

 

 

 

 

 

 

 

 

 

 

 

 2. 흑산도

 

 

 


 

<흑산도>

면적 19.7㎢, 인구 3,133명(2001)이다. 해안선길이 41.8㎞이다. 목포에서 남서쪽으로 97.2km 떨어져 있으며, 홍도·다물도·대둔도·영산도 등과 함께 흑산군도를 이룬다. 산과 바다가 푸르다 못해 검게 보인다 하여 흑산도라 했다고 한다.


사람이 처음으로 정착한 것은 통일신라시대인 828년(흥덕왕 3)으로, 장보고가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고 난 뒤 서해상에 출몰하는 왜구들을 막기 위한 전초기지로 이 섬에 반월성을 쌓으면서부터라고 한다. 본래는 월산군에 속하였으나 조선시대인 1678년(숙종 4)에 흑산진이 설치되면서 나주목에 속하였고, 1914년에는 무안군에, 1969년에는 신안군에 편입되어 현재에 이른다.


최고점은 문암산(400m)이며, 깃대봉(378m)·선유봉(300m)·상라봉(227m) 등이 솟아  있어 섬 전체가 산지를 이루고 있다. 해안선이 복잡하며, 북동쪽에는 비교적 넓은 만이 있다. 1월 평균기온 0.8℃ 내외, 8월 평균기온 26℃ 내외, 연강수량 844㎜ 정도이다. 농산물로는 고구마·보리·콩·마늘·참깨 등이 생산되며, 연안 일대에서는 참조기와 병어가 잡히고, 김·미역 등이 양식된다.


문화재로는 흑산도 진리의 초령목(천연기념물 369)이 있으며, 유적지로는 반월성과 최익현 유적지, 정약전 유적지 등이 있다. 그밖의 볼거리로는 석주대문이 있는데, 바다 위에 돌로 만들어진 대문으로, 모양새가 코끼리와 같다 하여 코끼리 바위라고도 불리며, 구멍바위라고도 한다. 해수욕장으로는 배낭기미해수욕장과 세께해수욕장이 있으며,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일부로 지정되어 있어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잔잔한 바다를 건너 흑산도에 도착했다. 부두에 안내원이 나와 있었다. 버스를 타고 여관에 짐을 풀었다. 그리고 곧바로 버스를 타고 홍도 일주에 나섰다. 운전기사가 안내원을 겸하고 있다. 입담은 알아줄 만했다. 홍도에 대한 알고 싶은 것들을 다 얘기하면서도 아주 코믹하게 물흐르듯이 말해서 지루하지 않았다. 아울러 홍도의 자랑, 홍도 사람들의 삶의 어려움 같은 것도 알 수 있었다.

 

처음에 도착한 곳은 진리라는 곳인데 예로부터 진지가 있던 곳이라고 한다. 바다의 모습이나 해안선의 생김새나 산세의 모습이 과연 그러할 만하였다. 해수욕장을 거쳐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 공원에 사람들을 풀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바다의 양쪽을 바라보았다. 문암산에서 깃대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태백산맥 만큼이나 험준해 보였다.

 

차는 구불구불 돌고 돌아 사리라는 마을에 이르렀다. 이곳에서 잠시 쉬었는데 여기서 돌미역과 다시마 같은 것을 사람들이 샀다. 우리 일행 중에서 산 분은 없는 것 같다. 이 마을은 다산 정약용 선생의 형인 약전 선생이 귀양와서 살았던 마을이라고 한다. 그 분도 다산 선생과 마찬 가지로 마을을 위해서 많은 흔적을 남겼다고 한다.

 

<정약전이 흑산도에 간 까닭>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정약용의 둘째 형이었던 정약전은 1801년(순조 1년) 신유교난으로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도(黑山島)로 유배생활을 떠나게 된다. 서학(西學)에 뜻을 두어 천주교에 입교한 후 벼슬을 버리고 천주교 전도에만 힘쓰다 흑산도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16년 간, 섬의 청소년들을 가르치고, 저술 활동을 계속하다 운명을 달리 하게 된다.

이 때 지은 저술 <자산어보>가 바로, 이 흑산도에서의 유배생활 도중 흑산도 근해의 수산생물을 실지로 조사하고 채집, 분류해 기록한 것이다. 수산생물을 각 종류별로 명칭·분포·형태·습성과 그 이용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굉장히 자세히 기록하고 있는다. 이 책은 우리나라 최초의 수산학 관계 서적으로서 실제조사에 의한 저술이라는 점에서 그의 실학적 성격의 학문관을 엿볼 수 있다.


<자산어보>

한국 최고(最古)의 어류학서(魚類學書)로서 1814년(순조 15)에 정약전(丁若銓:1760∼1816)에 의해 쓰여 졌다.

필사본이며 총 3권으로 이루어진 책으로 정약전이 귀양을 가 있던 흑산도 연해의 수족(水族)을 취급하고 있다. 흑산도 근해의 수산생물을 실지로 조사하고 채집한 기록으로 수산동식물 155종에 대한 각 종류의 명칭·분포·형태·습성 및 이용 등에 관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책의 이름이 ‘자산어보’가 된 데 대해서는 정약전 자신이 직접 책의 서두에서 이르고 있습니다. ‘자(玆)’는 ‘흑’이라는 뜻도 지니고 있으므로 ‘자산’은 곧, 자신이 귀양을 갔던 ‘흑산도’의 ‘흑산’과 같은 말을 이르고 있다는 뜻이다. 정약전은 ‘흑산’이라는 이름이 음침하고 어두워서 좋아하지 않았게 생각하였다. 그래서 가족에게 편지를 보낼 때는 ‘흑산’을 ‘자산’이라는 말로 바꿔 사용할 정도, 이에 ‘자산’이라는 말을 책의 제목에 사용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산어보의 내용>

권1에는 인류(鱗類, 비늘이 있는 종류) 73종, 권2에는 무린류(無鱗類, 비늘이 없는 종류) 43종,

권3에는 잡류(雜類)로서 해충(海蟲) 4종, 해금수(海禽獸) 1종, 해초(海草) 35종 등 비교적 세밀히 분류·기재되어 있는데, 이 중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첫째, 청어(靑魚)와 고등어의 회유(回游)와 분포에 관한 기록으로, 현재 동해와 서해에 회유하는 청어와 고등어의 실태를 그 당시와 비교하는 데 유일한 자료이다.

둘째로 각종 수산동식물의 방언(方言)을 조사하여 기록한 것, 셋째는 의약상의 성능을 기록하여 이 분야의 연구에 많은 참고가 되고 있다. 그러나 각종 수산동식물의 도해(圖解)와 그 형태에 있어서는 그 설명이 상세하지 않은 점이 있다. 또한 물고기의 이름을 한글로 적지 않고 한자로 기입하였으며, 물고기의 크기를 주척(周尺)을 사용한 점이 부족한 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또, 그의 분류법 역시, 오늘날의 과학적 분류법의 관점에서 본다면 유치하고 비과학적일 수 밖에 없지만 당시는 과학이 발달한 선진국에 있어서도 근대과학적 동식물분류법이 확립되어 있지 않았던 시대였기 때문에 게다가 생물학자도 아니었던 정약전이 근연종을 한 항목으로 묶어 설명을 시도하였던 것을 볼 때 그의 학문적 태도는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흑산도에서 묵은 여관

 흑산도 항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 앞

 노래비 공원에서

 정약전이 귀양와서 살던 사리

 샛개 해수욕장의 50대 소녀들

 안개 속의 흑산도 항

 

어둑한 시간에 샛개 해수욕장에 들렀다. 사람들은 홍도나 흑산도에 와서 해수욕을 즐기는 것 같지는 않다. 빙 둘러 보며 관광을 끝내고는 가버리는가 보다. 해수욕장은 바닷물에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 근처에 최익현 유적지가 있다고 하는데 버스가 세워주지 않았다. 끝까지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은 그야말로 최고집의 진수를 보여준 한말의 선비 중의 선비이다. 어둑할 때 돌아와 민박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최익현 선생이나 정약전 선생의 생각은 까맣게 잊었다. 매운탕이 맛있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여관에 들러 몸을 씻은 후 여관 근처의 홍어집에서 홍탁을 안주로 소주를 마셨다. 홍탁은 맘에 들게 삭지 않았다. 육지 사람들은 홍탁의 맛에 익숙지 않기 때문에 완전히 발효된 것은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홍어의 산란기이기 때문에 금어기라고 한다. 그러나 매콤하고 콧구멍이 뻥 뚫리는 것이 제맛이 아닐까? 한 접시에  4만원씩이나 했다. 그래도 나는 홍탁을 좋아하기 때문에 배가 부른데도 자꾸 먹었다. 막걸리와 함께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술을 마시지 못하는 것이 순간순간 괴롭히고 걸림돌이 된다. 바닷바람이 시원하다. 바닷가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람이 시원하면 이야기도 시원한 화제들이다.

 

여관은 아주 깨끗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대로 하루 묵을 만했다. 아침 시간이 여유가 있었다. 나는 침대에서 뒹굴었다. 다른 분들은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고 한다. 식사를 하고 빗방울이 듣는 항구를 떠났다.

 민박집 저녁 식사 (커피 맛은 역시 자판기 커피)

 우리를 목포까지 데려다 줄 배

 함평나비 휴게소에서 나비소녀들

  다음을 기약하면서

 

함평에서 점심을 먹고 올라 오는 길에 비가 엄청나게 쏟아진다. 빗길 운전이 걱정된다. 이런 길에 운전을 해본 사람은 얼마나 힘들고 긴장되는지 안다. 뒷차가 자꾸 걱정이다. 청주에 가까워지니 비는 그친다. 학교 근처 토종장수옻닭삼계탕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즐겁고 유익한 여행이었다. 이번 여행에도 준비하느라고 이효정 선생님이 고생을 많으셨다. 운전한 두 분에게도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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