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답사/해외 여행

중국 장가계 삼림공원 2 (제 2일 : 장가계 무릉원)

느림보 이방주 2010. 1. 24. 21:45

 제 2일 : 장가계 무릉원 관광 

 

 여정 : 寶峰湖 유람선 관광,  天子山 케이블카 등정,  양가계 관람,  원가계 풍경구 답사 ,  백장협 차창 관광,  금편 계곡 관광,  개천호텔 투숙

 

 

 

장가계 관광 지도

 

 

寶峰湖 유람선 관광

 

장가계에서 첫밤은 아주 소리도 없이 잤다. 침대는 깨끗했지만 눅눅한 감이 있었다. 장가계가 원래 좀 습한 지역이라 그렇다고 한다. 히터도 잠자리에 들때 잠깐 나오다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잠을 못 이룰 정도로 춥지는 않았다.  아침 6시에 일어났다. 6시 30분에 모닝콜이 있다. 아침에 대충 씻고 가방을 정리하여 한쪽에 두고 산행을 할 준비를 하였다.

 

아침 식사는 호텔에서 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1층으로 내려갔다. 일행 중에 먼저 내려와서 식사를 하는 분도 있었다. 호텔식은 완전히 중국식도 아니고, 양식도 아닌 뷔페였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녹두죽과 보리빵, 찰밥을 중심으로 상을 차렸다. 아침 식사를 많이 하면 산행에 부담을 주기 때문에 간단히 하기로 했다. 흰죽까지 한 탕기 먹은 것은 비밀로 하겠다. 우리 음식 만큼 입에 맞지는 않았지만 먹을 만했다. 특히 녹두죽은 아주 맛있었다. 

 

식사 후에 8시에 출발하기로 되어 있어서 여유가 있었다. 출발 시간보다 더 일찍 가방을 객실에 두고 간단한 짐만 가지고 간 배낭에 담아 메고 로비로 나갔다. 마당에 나가니 버스도 이미 준비되어 있고, 가이드도 기다리고 있다. 우리와는 다른 일행들도 몇 팀 출발 준비를 하고 있다. 멀리 동쪽 하늘에서 해가 솟았다. 아주 붉다. 1월 1일 구룡산에서 본 태양이 생각난다. 해가 붉으니 모두 환성을 올렸다. 장가계는 1년중 200일 정도는 흐리거나 비가 내린다고 한다.  이렇게 해가 붉게 떠오르는 날은 아주 드물다고 하니 우리는 행운아들이라고 길잡이는 말한다.

 

개천호텔 마당에서 출발을 기다리는 일행

 

첫 관람지로 寶峰湖를 간다고 한다. 보봉호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호텔에서 나와서 동쪽으로 터진 골짜기로 한참을 달렸다. 가는 중에 건물을 짓다가 만 곳이 여러 군데 보인다. 아주 큰 건물인데 페허처럼 방치한 곳도 있다. 몇 개의 작은 건물들도 건축 중 중단한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올림픽 때 짓다가 중단한 것인가 보다. 주차장에 내려 보봉호 풍경구라고 쓰인 입구 앞에서 기다렸다. 중국의 관광지는 대문이 상상 외로 크다. 우리 나라 구담봉이다. 삼선 계곡 같은 데는 자연 그대로 두고 아주 작은 관리 사무소만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입장료가 대충 얼마인지 알 수 없다. 길잡이가 계산하고 길잡이가 표만 건네 주니까 관심도 없다. 안내 관광의 난점이다. 표를 받고 입구에 들어서자 사진에서 본 장대 같은 산봉우리들이 우람하게 선을 보인다. 우리는 연신 감탄하며 사진을 찍기에 바쁘다. 그런데 사실 나중에 알고 보면 여기는 별게 아니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보이는 것마다 신비스럽다.

보봉호 입구

보봉호 풍경구 매포소

 

한 20 분쯤 시멘트 포장 도로를 걸어 한 고개를 넘어 호수 유람선 나루터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다. 유람선은 마치 푸른 기와를 얹은 것처럼 고풍스럽다. 보봉호는 반자연 반인공의 호수라고 길잡이는 설명한다. 본래 수심이 깊지 않은 호수였는데 말레이시아 상인들이 발견하고 댐을 쌓아 수심을 약 70m 정도로 만들었다고 한다. 호수는 그렇게 넓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물이 맑고 깨끗하다. 호수에서 솟아오른 듯한 암산이 장대 같다. 삐죽삐죽 솟아 오른 바위에 나무가 소복하다. 사진에서 본 경관과는 비교할 수도 없다. 게다가 그 아름다운 그림이 비췻빛 물에 잠겨 비치니 그 경관을  형언할 수 없다. 百聞이 不如一見이란 말이 바로 이럴 때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얘기로 들어서는 모른다. 와서 봐야 안다. 안내는 계속 호수에 대한 설명을 한다. 이곳에 양어장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커다란 고기들이 살고 있다고도 한다. 물은 수문이 있어서 낮에 열었다가 밤에는 닫는다고 한다. 그래서 입구에 내리쏟는 폭포를 이룬다고 한다.

반인공 반자연 폭포

 

호수로 올라가는 계곡길

보봉호로 들어가는 계곡의 절경에서

계단을 올라 내려가면 보로 보봉호

 

한 모롱이를 돌자 전통 의상을 입은 아리따운 소녀가 나와서 노래를 부른다. 土家族이라고 하는데 아주 작고 귀엽게 생겼으며 고음으로 부르는 중국노래가 호수에 비쳐 더욱 아름답다. 조금 있다가 다른 배에서 이번에는 청년이 나와서 또 그렇게 노래를 불렀다. 역시 카랑카랑하고 높은 美聲이다. 호수와 산의 아름다운 경치와 노래가 어우러져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이들은 보봉호를 관리하는 회사에서 봉급을 준다고 한다. 그런데 그 보수도 만만찮고 가끔 받는 팁으로 부유하게 생활한다고 한다. 혹 팁을 주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우리 배에서 지폐를 던져 주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유람선 에서 바라보이는 산

 보봉호 필체가 산수 만큼 아름답다 

 유람선 나루터에서

 노래부르는 토가족 아가씨

 호수에서 바라보이는 산봉우리들 

 호수폭은 좁지만 산은 아름답다

 노래 부르는 토가족 미소년

 

호수 가운데 있는 섬을 돌아 山月亭으로 가는 나루에 도착했다. 여기서 보이는 산수도 만만찮다. 그러나 그 규모는 작다. 자꾸 구담봉 옥순봉이 생각난다. 바위벽의 모양은 다르지만, 그리고 산봉우리들의 모양도 다르지만 구담봉 옥순봉 부근의 청풍호도 절경이다. 보봉호가 세계적인 절경이라면 구담봉 옥순봉 근방의 청풍호도 이에 못지 않다. 유람선을 타고 충주 쪽에서 올라가면 옥순대교 아래를 지나 옥순봉, 구담봉, 새봉, 둥지봉의 바위벽, 우뚝 솟은 바위산인 제비봉, 그리고 말목산 아래 강선대를 지나면 신선이나 다름없다. 다만 관광객이 중국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는 것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거기도 잘만 하면 일본인이나 중국인들이 모여들지 않을까? 장가계에 북적이는 한국인의 반만큼이라도 외국인이 청풍호에 북적이면 좋겠다. 

 

배에서 내려 山月亭으로 가기 위해서는 관광 상품을 파는 가게가 있는 길목을 지나야 한다. 경치가 하도 좋아서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전통 의상을 한 아가씨들이 쫓아와서 팔짱을 낀다. 함께 사진을 찍는데 천원이란다. 이들의 전통 복장이 아름다웠지만 나는 매몰차게 거절했다. 우리나라에서라면 그냥 찍었을 것이다. 천원은 아주 적은 돈이지만 이들은 그것으로 생활을 해결한다. 그렇게 큰 돈이다. 한국인들이 뿌리는 수많은 천원으로 중국인들은 생활을 해결한다. 외화는 내가 번 돈이 아니라는 생각도 해 본다. 우리가 어려울 때는 수많은 소녀들이 가발공장에서 외화벌이를 했다.

 

바로 모롱이를 돌아 비탈길을 조금 내려오니 산월정이다. 정자에서는 들어올 때 보이던 폭포가 바로 아래이다. 산을 뚫고 호수의 물이 폭포로 흘러내리는 것이다. 물을 아끼기 위해서 밤에는 수문을 막고 낮에만 열어 놓는다고 한다. 물론 장마철에는 항상 열어 놓겠지. 산 아래에서 보면 가물가물하게 보일 이 높은 곳에 정자를 세우고 여기서 층계를 돌고 돌아 아래로 내려서는 것이다. 어지럽다.

 산월정

 산 아래서 올려다 본 산월정과 돌아내려온 층계

 보봉호를 나오는 길에 폭포 아래서 모두 모여

 모이면 언제나 웃음꽃이 핀다

 

天子山 케이블카 등정

 

  보봉호 관광은 온통 감동의 연속이었다. 그런데도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그것은 그냥 시작에 불과하단다. 천자산이나 양가계 원가계를 가면 입을 다물 수가 없다고 한다. 오늘 거리를 다 간다. 그냥 보봉호에서 나와 다시 시내로 왔다. 점심 시간까지 아직 멀었다. 점심을 먹고 천자산으로 가기로 했는데 점심 먹을 시간이 좀 남았다. 그래서 가이드 말이 양식 진주 가게를 들러 보자고 했다. 나중에 생각한 건데 그럴 리는 없지만 우리의 일정에는 없고 가이드의 일정에는 있었던 것이 아닐까? 양식 진주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중국사람인지 우리 교포인지  우리 말을 참 잘한다. 그냥 우리 민족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주는 참 아름답고 값도 쌌다. 그러나 일행 중에 몇 천원 짜리 정도 이외에 고가의 제품을 사는 사람은 없다. 한참을 구경만 하다가 옆방에 가니 실크 제품들이 있다. 내복과 셔츠, 넥타이 같은 것들이 있는데 국내 제품에 비하면 한참 떨어진다. 실크라고 하지만 꼭 실크를 입어야 할 이유도 없다.

 

밖으로 나와 길가에서 서성거렸다. 무릉원으로 들어가는 목탑이 멀리서 봐도 웅장하다. 멋있다. 산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 양식은 우리 나라와 비슷하다. 중국은 특히 입구를 화려하게 꾸민다. 일행이 모두 나왔는데 이번에는 녹차 가게를 간다고 한다. 茶博士家라는 집에 들어 갔다. 나는 녹차에 대하여 조금 관심이 있어 그건 좋다고 생각했다. 한국인 관광객이 얼마나 많이 오는지 마치 룸싸롱처럼 차를 마시는 방을 만들어 놓았다. 룸에 들어 가서 예쁜 아가씨들이 끓여주는 녹차를 종류 별로 마시며 차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녹차가 좋다는 것은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안다. 국가에서 경영하기 때문에 믿어도 된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이라는 국가 브랜드가 그렇게 신뢰감을 주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나는 KBS에서 방영한 차마고도에서 본 보이차 8년산 세개와 전칠화차 한 갑을 샀다. 중국돈으로 900원이라고 한다. 비싸다. 그러나 차맛이 좋고 보리차나 옥수수차보다는 나을 것 같다. 그냥 샀다. 후회 없다. 집에 와서 마셔 보니 맛도 좋다.  

 

 진주 가게에서 본 장식품

 무릉원 정문목탑

茶博士家의 전시용 보이차 몇년산일까 

 

태화원 한식당이라는 곳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한식이다. 깨끗하다. 삽겹살 볶음이 그런 대로 먹을 만하다. 두부찌개가 바글바글 끓고  김칫국이 시원하다. 밥을 많이 먹었다. 배추를 된장에 찍어 먹었는데 된장 맛도 우리 된장 맛 그대로다. 한쪽에서 여수에서 오신 분들이 소주를 준비해서 소주를 마셨지만 나는 피했다. 시원한 김칫국 덕으로 맛있는 점심 식사를 했다.

 

 점심 먹은 한식당

 

점심 식사를 마치고 버스를 타고 바로 가까이에 있는 무릉원으로 갔다. 우리가 타고 간 버스는 주차장에 두고 표를 끊고 들어가는 모양이다. 출입구는 사무실로 쓰는 건물인지 그냥 장식인지 엄청나게 큰 목탑으로 되어 있다. 들어가는 입구의 가게에는 각종 기념품들이 즐비하다. 신용카드 같은 카드를 한  장 씩 주었다. 입구에서 지문을 채취한다. 카드와 지문이 일치해야 입장할 수 있다고 한다. 내일까지 계속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잘 보관해야 한다고 가이드는 설명해 주었다.

 

무릉원 주차장에 있는 제천 한방엑스포 선전탑

 무릉원 입구

 지문으로 검색해서 입장하는 무릉원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꼬불꼬불 산길을 돌아 천자산 케이블카 출발지로 갔다. 삭도는 천자산 정상을 향하고 있다. 우리 차례가 되어 케이블카에 올랐다. 6명씩 타게 되어 있어서 우리는 이효정선생님 부부, 이용원 선생님 부부와 함께 가게 되었다. 하늘에 걸어놓은 쇠줄에 매달린 작은 주머니 같은 차는 굉음을 내며 높은 하늘로 잘도 올라간다. 우리는 바로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보봉호에서 보이는 경관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많은 봉우리들이 줄을 지어 서 있다. 거인 나라의 장병들이 열병식을 하는 것 같다.  우리는 마치 거인 나라의 장수가 되어 줄지어 선 거대한 부대를 사열하면서 의전을 받는 것이라는 착각을 하였다. 수십미터 혹은 100m도 넘을 것 같은 석벽이 우뚝우뚝 서 있다. 혹은 굵기도 하고 혹은 가늘기도 하다. 혹은 곧기도 하고 혹은 굽어 있기도 하다. 혹은 민숭민숭 거친 맨얼굴이기도 하고, 턱에 수염이 숭숭난 임꺽정 같기도 하다. 산은 정말 각양 각색이다. 뿔이 난 것처럼 삐쭉한 놈, 가지친 놈, 구멍 뚫린 놈, 남의 등을 밟고 올라선 놈,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아주 가까이에 등산로도 보였다.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면 어리로 갈까? 하늘로 쭉쭉 치솟은 장군석의 발등을 밟고 돌고 돌아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앞산은 민둥산이다 거기에서 등산로가 있었다. 그 등산로를 발로 밟으며 올라가 삭도 아래를 바라보면 얼마나 멋 있을까? 하루 종일 바라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을 것만 같다.

 

 케이블카 안에서 바라본 천자산

 역광으로 두 분

 소녀 같은 할머니

 산은 다 좋아

 케이블카에서 죽순이 솟아오르는 듯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거의 다 올랐다.

 

정상에서 내렸다. 차에서 막 내리니 바람이 분다. 노파들이 몰려 왔다. 군밤을 사라는 것이다. '천원, 천원'하고 두번 외면 이천원이라는 것이다. 이천원 어치도 처음에 들어 보인 것과 돈을 받은 다음 내주는 봉지는 다르다. 그래서 안내는 밤을 받은 다음 돈을 주라고 한다. 그래도 국내 관광지에서 파는 것보다는 사다. 악착 같이 달려 붙는다. 몇 분이 밤을 샀다. 나는 끝까지 사지 않았다. 그런데 사지 않았으면 먹지도 말았어야 하는데 어느새 밤을 까먹고 있었다. 먹거리 앞에서는 나도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다.

 

천자산 정상에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마지막 한 컷(저기 저 절벽 아래는 정상에서 내려오는 찻길도 있다.)

 천자산에서

 내려다 보면서  

 

 천자산 정상에서 바람맞는 여인들

 정상석에 앉아

 셔틀버스에 오르기 전에

 

셔틀 버스를 타고 한 2분쯤 내려가서 하룡공원으로 갔다. 공원 입구에는 한국인 관광객을 부르는 기념품 가게가 있었다. 우리가 일회용 봉지 커피에 중독되어 있다는 것을 중국에서도 그것도 두메인 장가계에서 거기서도 더 산골인 천자산 정상에서도 아는 모양이다. 가게에 한국 커피 '맥심'이란 간판이 있다. 그래 맞아 커피 하면 맥심이고 봉지 커피가 제맛이지. 유럽에 갔을 때도 봉지 커피를 챙겨가지 않은 것을 얼마나 아쉬워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이번에는 맥심은 아니지만 챙길 만큼 챙겨 왔지. 더구나 네슬레 커피에 딸과 사위가 다니는 정우종 선생님 같은 엄청난 배경이 있으니 걱정할 게 무에 있을까. 가게에는 등산 용품, 모자, 등산복, 질떨어지는 장식품 들이 걸려 있지만 거들떠 보는 한국인은 없다. 그런데 한 목공예집에는 엄청난 공예품이 진열되어 있었다. 거저 준다고 해도 가져올 수 없을 것이다.

 

하룡공원은 중국 10대 원수 중의 한 명인 하룡 장군 기념 공원이라고 한다. 하룡 장군은 도끼와 낫을 들고 일제에 저항한 호남성 출신의 항일 장군이라고 한다. 모택동과 함께 공산주의 운동에 참여하였으나 후에 모택동과 실권을 다투기도 했다고 한다. 실제로 6.25  대는 중공군을 거느리고 압록강가지 진격해 온 사람이라고 하니 예전 같으면 하룡 장군 성지에 온 것만으로도 처벌 대상이 될 것이다. 그래서 그랬는지 시간이 없어서인지 하룡의 동상을 보지 못하고 바로 양가계로 옮겼다.

 

 하룡공원

 기념품 가계

 거대한 독수리 공예

 잠시 걸어서

 

버스에서 내려 시멘트 포장 길을 잠시 걸었다. 걸으면서 계속 밤을 까먹었다. 밤 파는 할머니들을 계속 떠올리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이름모를 아열대 나무들이 우거진 숲길을 걷는 것도 잠시 한 모롱이를 돌아서자 산은 갑자기 푹 꺼지고 거대한 석순 같은 천길 층암 절벽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안개인듯 능개인 듯  자욱한 내가 끼인 엄청난 골짜기는 마치 거대한 대나무 밭이라도 된 듯이 죽순 같은 암봉들이 줄을 지었다. 청명한 하늘 아래 이 정경을 보면 더욱 좋겠지만 장가계의 날씨가 워낙 이렇다 하고 오늘은 그래도 좋은 날씨라 하니 더 바랄게 뭐가 있으랴. 하기는 희미한 안개 속에 솟아 있는 봉우리들을 바라보노라면 그냥 허공에 떠 있는 듯한 착각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연하일휘란 말을 쓰는 모양이다.

 

골짜기마다 감탄하고 탄성을 지르면서 모롱이를 돌고 돌아 선녀산화라는 봉우리에 올랐다. 조금 넓은 봉우리 위에  철책을 치고 사람들이 설 수 있게 해 놓았다. 멀리 한 봉우리는 가슴에 꽃바구니을 안고 사바세계에 꽃을 뿌리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선녀는 저 산아래 사바 세계에 부처님을 대신하여 은혜를 꽃으로 뿌리는 것일까? 아니면 사바세계의 모든 중생을 대신하여 부처님께 꽃을 바치는 것일까? 아무래도 좋다. 은혜는 내림이 있어 올림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봉우리에 그냥 서서 하루를 보낸들 하루가 어찌 그냥 지나겠나. 우리는 탄성을 거듭하며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렸다. 

 

 솟아오르는 뾰족산들

 배티고개 선녀들 - 꽃이라도 뿌리려나

 선녀 산화(가운에 가슴에 꽃바구니를 안고 있는 암봉)

 선녀 산화를 뒤로 하고(꽃바구니만 보이네)

 이효정 선생님 부부

 정우종 선생님 부부

 이용원 권명오 부부

 

 녀 헌화의 감동을 뒤로 한 채 우리는 숲길을 다시 걸어 다음 계곡으로 옮겼다. 등산이라면 자신 없어하는 회원도 산은 그냥 산으로 두자는 회원도 다리가 아프다거나 숨이 가쁘다는 법이 없다. 풍경은 고통도 잊게 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제는 좀더 험준한 계곡으로 간다고 한다. 숲길을 걸어 한 날망에 올라서니 바로 꼬꾸라질 듯한 절벽 아래  망루에 올라선 장군이 바라보듯 석대가 우리를 노려본다. 그것만 탄성을 지를 것이 아니라 저 건너 암벽에 제비집 같이 붙어 있는 산채들이 있었다. 어느 분인가 '저기 저 집에서도 사람이 사는지, 어떻게 다니느냐.'고 걱정을 했다. '우리도 저리로 갈 텐데 어쩌지요.' 하고 대답하니 걱정거리가 하나 생겼다. 거길 어떻게 가느냐는 것이다. 다른 사람도 다 가는 길인데 우리가 왜 가지 못하겠나.

 

우리는 비탈길 비죽삐죽 솟은 바윗돌을 밟고 나뭇가지를 잡으며 석벽에 기대어 간신이 산채에 이르렀다. 멀리서 바라볼 때보다는 조금 더 넓었다. 석벽에 돌을 다듬어 축대를 쌓고 그 위에 돌을 깎아 벽을 쌓아 집을 지었다. 나즈막한 지붕이 아담하다. 무엇에 쓰는 집일까? 어느 도인이 도를 닦는 곳일까? 아니면 장가계에 많았다던 산적들의 산채일까? 널판지 문을 열고 수염 허연 도인이 키보다 더 큰 지팡이를 짚고 나타날 것만 같다. 그러나 위성 수신 안테나까지 있는 것으로 보아 신선시대에 머물러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마당에는 물레처럼 생긴 그네까지 만들어 놓았다. 이곳에서 저 아래 죽순처럼 솟아오른 석순을 바라보면서 그네에 앉아 있으면 정말로 도끼자루가 썩는 것을 알 수 없을 것만 같다. 마당에 잠시 쉬며 앉아 있었다 주변의 산수를 정신 없이 사진기에 담았다. 그러나 사진으로 보면 천만가지 각양각색의 봉우리들도 모두 그게 그것 같을 것이다. 차라리 눈에 담고 마음에 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누군가 천자산 정상에서 사온 밤은 내놓았다. 고소하다. 우리 나라 산밤처럼 고소하다. 그 때 주인인지 아주머니 한 분이 아리랑을 불렀다. 뜻있는 분이 천원짜리 한 장을 건네었다. 우리 노래를 불러 주는 뜻이 갸륵하다.

 

 다시 숲길을 걸어

 

 망루에 서서 우리를 노려보는 석대

 올려놓은 듯한 바위

 산채인가?

 그네

 산채에서 바라 본 절경 

산채에서 바라 본 절경

 

 문을 통하여 이동 烏龍寨? 검은 용이 살고 있는 산채인가? 산적 별명이 오룡인가?

 절벽 아래 길 그 아래 또 절벽

 놀라는 모습들

 아슬아슬해

 산

 양가계의 마지막 군밤

 

산채를 떠나 아슬아슬한 절벽 위에 난 난간 같은 길을 철책에 겨우 의지하고 아찔아찔한 마음으로 겨우 걸어 돌아 가서 한참을 올라가니 이번에는 거대한 바위가 조물주의 정을 맞았는지 반으로 쫙 갈라져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 틈 사이를 지나갈 자신이 없었다. 다들 앞서서 배낭을 멘채 빠져 나가는데 나는 망설이다가 배낭을 벗어 들고 옆으로 빠져 나갔다. 자연은 자연을 닮은 사람은 누구나 다 허락한다. 새삼 가슴 넓은 자연에 감사한다.

 

바위 틈을 겨우 빠져 땀을 식히노라니 바로 오르막길이다. 길지는 않지만 거듭되는 돌계단에 숨이 가쁘다. 안부에 목조 건물이 하나 길을 가로 막는다. 집이 길을 가로 막고 있어서 누구도 마당을 거치지 않으면 갈 수가 없다. 안내자의 말에 의하면 이곳은 옛날 산적 두목의 근거지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산채 치고 비교적 큰 편이다. 건물은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었다. 산적 두목의 근거지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렇게 말을 만들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산채를 지나자 산에서 필요한 여러가지 물건을 파는 가게가 있고 쉬어갈 수 있는 산장 같은 집이 나타났다. 사람들이 거기서 쉬고 있었다 중국인 가이드가 열심히 무슨 말로 지껄이고 있다. 알아 들을 수 없다. 사람들이 앉아  술인지 음료수인지 마시고 있다.

 

 통과

 통과

 겨우 통과 누구지?

 가볍게 통과

 무슨 일일까

 마지막 통과

 

 다음 통과

 다음 통과

 통과! 기분좋으시지요

 산채로 올라가는 회원들

 휴게소인가? 저렇게 작은 의자에 앉아서

 

휴게소에서 머뭇거리며 다음 올라갈 天波府를 바라보았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아득할 것만 같은 석순 위에 일산을 치고 줄다리와 철사다리를 거쳐 올라가야 갈 수 있다. 그래도 사람들이 몰려 서 있다. 다리가 떨려도 가야 한다. 출렁다리가 아무리 출렁대도 건너야 한다. 철 난간을 잡고 출렁다리를 건너려고 아래로 내려가려는데 원숭이 한 마리가 바라본다. 눈이 참 맑다. 누구 기르는 것이려니 생각했다. 안내가 야생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고 일러 주었다. 때로 카메라를 빼앗아 가기도 한다니 제깟게 현대 문명을 알기나 하나? 그래도 조심했다. 일행 중에서 한 분이 무섭다고 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 분이 누군가는 비밀이다. 왜냐하면 결국 출렁다리를 건너 천파부에 올랐으니까.

 

출렁다리 아래는 정말 어디가 끝인지 알 수가 없다. 태평양의 심연이 이렇게 깊을까?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는 생각하지 말자. 출렁다리 건너 철사다리는 지붕까지 있다. 떨어짐을 방지하려는 뜻이겠지만 작은 배낭이라도 멘 나에게는 올라가기 괴롭다. 올라섰다. 신선이 이럴까? 극락이 이럴까? 모두가 입을 열고도 말문이 막힌다.

 

 건너기 전에 바라본 천파부

 야생 원숭이, 엉덩이가 유난히 붉다.

 출렁다리를 건너서 하늘로 오르는 사다리

 정우종 선생님 부부

 이용원선생님 부부

 선녀님들

어디서 올라온 나무꾼인가

 무서워하지 말고(떨고 있지?)

안중묵 선생님 내외분

 웃고 있지만 쌈탉도 겁나셨을 걸요

 

 양가계에서 나오는 길의 선물 가게들

 

천파부에서 올라왔던 길을 되짚어 원가계 풍경구로 이동하기로 했다. 되돌아 오는 길은 힘겹지 않다. 산중에도 기념품 가게가 즐비하다. 가게에는 울긋불긋한 기념품들이 즐비하지만 잘 팔리는 것 같지는 않다. 가게 주인들인 듯한 사람들이 마당에 탁자를 내놓고 트럼프를 하고 있었다. 누군가 귤을 사와서 먹으면서 셔틀버스를 기다렸다. 차를 기다리는 곳은 우리나라 야산의 모습 그대로다. 그러나 멀리 바라보면 절경 중의 절경이다. 지루하지도 않은데 셔틀 버스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