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답사/忠淸의 山城

충남 연기 운주산성 답사

느림보 이방주 2009. 5. 10. 23:34

2009. 5. 10

 

어제는 황매산을 다녀왔는데 모처럼 산행이라 많이 피곤했다. 그러나 아침에 앞산에 올라가 간단하게 체조를 하고 내려오니 부드럽게 풀렸다. 오전에 집안에서 기웃거리려니까 창을 통해서 보이는 매봉산 녹음이 반짝반짝 빛이 나는 듯했다. 더구나 아카시꽃이 피어서 야릇한 향기까지 집안으로 스멀스멀 들어온다. 갑자기 운주산 생각이 나서 아내의 의견을 물어보니 '좋다' 이다.

 

상당예식장에서 문우의 자혼이 있어서 들렀다가 오후에 아내와 함께 운주산으로 향했다. 집에서 나와 죽림사거리를 거쳐 태성리 삼거리에서 조치원 쪽으로 가다가 청주 조치원간 국도에 들어섰다. 조치원 입구에서 우회전하여 1번 국도에 들어서면 바로 홍익대 조치원 캠퍼스이다. 계속 북으로 달리면 전동, 병천으로 가는 분기점이 나오고 차령이라는 고개를 넘어서면 바로 오른쪽으로 운주산 들머리가 보인다. 여길 지날 때면 너무 속도를 내다가 운주산성 들머리를 놓친 적도 있어서 조심스럽다.

 

운주산 들머리는 시멘트 포장 도로인데 갑자기 경사가 급하기 때문에 운전 경력이 있어도 수동 기어인 내 차 같은 경우는 시동이 꺼지는 수도 있다. 경사길을 오르면 바로 비포장 도로가 나오는데 길이 좁고 울퉁불퉁해서 운전하기가 쉽지 않다. 올라가다가 나오는 차라도 만나면 형편을 보아가며 서서 기다려주어야 한다. 우리가 들머리에 들어 섰을 때는 오후 2시가 되어서 이미 등산을 마친 사람들이 나오느라 매번 갓길로 피해서 그들을 기다려 주어야 했다.

 

<운주산성 개요>

소재지 : 충청남도 연기군 전동면 청송리 산 90

지정번호  : 충청남도 기념물 제79호

지정연도  1989년 12월 29일

시대  백제시대 축조된 산성

크기  길이 3,210m

해발고도 460m의 운주산 정상부에 축조되어 있는 포곡식(包谷式) 산성이다. 길이 3,210m에 이르는 외성과 안쪽에 내성이 있는 규모가 큰 산성이며 고산산성이라고도 한다.

 

 주차장에 있는 산성 안내도

 

주차장에 자리가 없을 것 같았는데, 마침 한 군데가 비어서 그 자리에 차를 대고 나왔다. 햇살이 따끈따끈하다. 그러나  바로 그늘로 들어가기 때문에 걱정은 없다. 등산로 들머리 바로 앞에는 고산사라는 사찰이 있다. 오래된 절은 아닌 것 같다. 초파일 지난 지가 오래 되었는데 아직도 연등이 걸려 있다. 전보다 사찰 입구를 잘 정비해서 꽃이 예쁘게 피었다. 마치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보기 좋았다.

 

산성으로 올라가는 길은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고산사를 바라보며 계곡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고, 차량을 이용해서 올라가는 임도가 있다. 임도는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고 가로수로 벚나무를 심어 그런대로 운치가 있으나 거리도 멀고 산행의 맛을 느낄 수 없어 무미하다. 계곡 길은 숲속으로 난 오솔길이며 오르막이 시작되면 돌계단으로 되어 있다. 소나무숲길에 들어서니 소나무 향이 몸에 배는 듯하다. 활엽수는 햇살에 비치어 잎사귀들이 반짝거린다. 옅은 바람이 불 때마다. 잎은 햇살에 비치어 한들한들 황홀한 춤을 연출한다.

 

올라가는 길이 그렇게 심하게 가파른 편은 아니다. 그래도 돌계단이라 다리가 팍팍해진다. 그러나 거리가 얼마되지 않기 때문에 걱정할 일은 아니다. 한 30분 쯤 걸으면 이마에 땀이 흐르고 셔츠의 양쪽 겨드랑이가 젖을 때 쯤이면 산성이 나타난다. 성 아래 앞 나무 그늘에서 한 숨을 돌리느라면 자연의 향기가 온몸을 휘감는다. 

                                                                고산사 입구

                                                       산성으로 올라 가는 지름길

산성 입구에 다달으면 산성의 전면이 보인다. 성의 전면은 성안으로 통하는 통로가 있다. 이 자리에는 문루가 있었을 것 같다. 서쪽 산에서 통로 쪽으로 개축한 성벽이 하얗게 벋어 내려 앉았고, 남쪽에서 비스듬히 내려온 성벽도 마찬가지이다. 개축한 성벽은 기존의 성벽과 축성 방법이 전혀 달라 보인다. 어떤 면에서는 돌의 종류도 다른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우리는 남쪽 성벽 위를 따라서 난 등산로를 밟으며 올라갔다. 오르는 길에는 통나무로 계단을 만들어 놓아서 걷기에 편안했다. 빨리 오르려고 하면 숨이 차게 마련이다. 가파르기는 하지만 거리가 짧다. 이럴 대 쉬지 말고 끝가지 올라가야 한다. 올라갈수록 이 부분의 성벽은 옛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 등산로를 거의 올라 가면 팔각정이 나온다. 팔각정 앞에는 기존의 성이 비교적 잘 보존된 것으로 보인다. 팔각정에서는 산 아래가 훤하게 보인다. 전망이 아주 좋다. 팔각정에 앉아서 물을 마셨다.

 

팔각정을 지나 조금 걸으면 가파른 경사로가 또 한 번 나온다. 길지는 않지만 성의 흐름을 짐작할 수 있다. 백제 시대의 산성 치고는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특히 최근에 다녀온 부모산성이나 구룡산성에 비하면 더 그렇다. 게다가 가끔씩 철책을 해 놓아서 사람들의 접근을 막은 것도 군에서 보존하고자 하는 노력을 보인 것 같아 감사하다. 성벽은 대개 잡목이나 풀더미 속에 있지만 그 형태를 어느정도 집작할 수 있다.

                              남측 성벽 (보수된 성벽이 본래의 축성 방법과 다르다)

                                                  팔각정으로 오르는 나무 계단 길 

                                                             전망 좋은 팔각정 

 

                                                       잡목이 우거진 성벽

                                                 잡초 더미에서 드러난 성돌 

                 이 돌더미를 보면 전면에 개축한 부분과 축성 방법이나 석질이 많이 다르다

 

평평한 숲길은 걷기에 좋다. 가끔 비죽이 드러난 돌부리만 조심하면 평탄하고 한적하다. 숲이 우거져서 어두컴컴할 정도이다. 게다가 이름 모를 꽃이 피어 있다. 향긋한 숲의 냄새가 기분을 들뜨게 한다. 대화를 나누며 걷기에 좋다. 이렇게 몇 십분을 걸으면 앞으로 고꾸라질듯 비탈길이 나온다. 여기가 동문지이다.

 

동문지는 비교적 문루가 있던 터가 잘 남아 있다. 그리고 여기도 성벽을 개축해서 본래의 모습을 재현하였다. 이곳 문이 있던 부분은 한 번 직각으로 꺾어서 쌓은 모습이 그대로 재현되었다. 본래부터 그렇게 있던 것을 개축할 때 복원한 것인지 추측해서 그렇게 한 것인지 알 수 없다. 한 100평 쯤 되어 보이는 문루지는 철책을 만들어 보존에 힘썼다. 그러나 안에는 일부 잡목이 우거졌다. 또 안내판에는 문루에 대한 소개는 없고 다른 곳에 있는 것과 똑 같은 운주산성에 대한 기록만 있다. 아마도 동문에 대한 고증할 만한 자료가 없는 모양이다. 동문지는 성내 마을과 바로 통하는 구릉에 있다. 이로 미루어 보아 동문이 상당히 커다란 문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동문지의 축성 모습

                                              동문지 앞에 있는 운주산성 안내판

                                                                    동문지

                                              동문지에서 북으로 이어지는 성벽

동문지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는 성벽을 바라보면 개축한 부분과 종전의 모습이 눈에 보인다. 황톳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또 다시 숲이 나오고 숲을 지나면 운주산 정상이다. 정상에는 연기군민의 안녕을 비는 제단과 전망대가 있다. 이 제단은 원래 기우제를 지낸 제단이었다고 하는데 원형으로 만들었다. 또한 백제의 얼을 기리는 백제의 얼 상징탑이 있다. 상징탑에 의하면 이 산성이 서울의 위례성과 공주의  공산성과 연계된다고 한다. 백제의 얼 상징탑 앞에 서면 이 지역에 중심을 두었던 백제에 대한 지역 사람들의 향수가 어떤 것인지를 짐작할 만하다. 

 

제단에 올라 서면 사방이 훤하게 트인다. 북으로 천안시, 동으로 청주시, 조치원이 훤하게 보인다. 여기에서 망경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알 수 있다. 성벽은 제단 바로 아래로 지나간다.  

                                                             정상부근의 팔각정

                                                               백제의 얼 상징탑

                                                                     제단

 

우리는 정상에서 성의 서쪽 사면을 내려서서 계속 걸었다. 숲길이다. 평탄하고 고요하다. 성은 북에서 서쪽으로 구부러져 다시 남쪽으로 휘어져 전면에 합해진다. 이 운주산성은 포곡식 산성이지만, 다른 포곡식 산성이 대개 하나의 골짜기를 싸 안고 축성되었는데 이 산성은 두 개의 골짜기를 싸 안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그리고 자연의 지형을 최대한 이용하면서 축성되었다. 그것은 능선의 바깥부분의 경사 부분을 이용해서 성벽을 쌓아 성이 밖에서 보면 높고 안에서는 평지처럼 보인다. 북벽과 동벽은 운주산 정상에서 서쪽과 남쪽으로 뻗어내린 능선을 따라 이어졌으며 남벽은 산 봉우리를 에워싸면서 축조되었고, 서벽은 서쪽으로 뻗어내린 능선을 가로지르면서 축성되었다. 따라서 북쪽은 해발고도가 높고 서남쪽이 낮은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내 마을 혹은 시설물이 있었을만한 골짜기는 물론 서쪽으로 또 하나의 골짜기를 안고 돈다.  

 

문지는 정문일 듯한 남문과 동문, 북문,  서문이 있었다고 하나 그 형상을 알려지지 않는다. 성안에는 마을이 있었는지 성을 관리하는 관청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여기에는 우물터 건물터 등이 남아 있고 백제 토기와 기와조각이 발견된다고 한다. 특히 고려시대, 조선시대의 자기와 기와편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그 때까지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백제의 얼 상징탑

 정상에 있는 이정표

 정상의 등산로 안내판

 멀리 보이는 청주

 조치원 부근

 연기군 지도

 백제의 얼 상징탑 건립기

 성곽 오솔길로 내려가는 길

 무너진 북측 성벽의 모습

 성곽 위로 난 오솔길

 성을 보호하려고 마련한 철책

 

성곽 오솔길을 따라서 남쪽으로 계속 가는 길은 고요한 숲길이다. 등산이라기보다는 전형적인 산책로이다.  내리막길을 조금 걸으면 이정표가 나온다. 주차장과 광장으로 가는 갈림길이다. 여기가 북문터라고 한다. 여기서 주차장 쪽으로 가면 남문터를 거쳐 성곽의 전면으로 가게 되고 광장 쪽으로 내려서면 성안이 나온다. 더 걸을 수 있지만 요즘 정비되고 있는 성안을 돌아 보기 위해서 중간에 광장 쪽으로 돌렸다. 여기서 중간으로 내려오는 길은 잡초가 우거져 걷기에 별로 좋지 않았다. 그새 덩굴이 엉키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성곽도로에서 성내 순환로까지는 거리가 얼마되지 않기 때문에 바로 내려올 수 있었다. 그런데 성안은 공원처럼 정원과 연못을 조성하여 언뜻 보아도 본래의 모습으로 복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정비라고 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여기에서 토기 조각과 기와 조각이 발견되었다면 건물이 있었을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지표 검사를 통해서 건물지를 복원해야 하지 않을까?

 

백제 때 쌓은 이 성은 백제가 멸망하고 난 뒤에 백제 부흥운동군이 최후의 항전을 했던 곳이라고 한다. 백제의 상징탑에 그러한 사연이 적혀 있다. 세상에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이곳은 백제사의 귀중한 유적지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자료에 따르면 660년 백제사 멸망(滅亡)하고 풍왕과 복신, 도침장군을 선두로 일어났던 백제부흥운동군(百濟復興運動軍)의 최후(最後)의 구국(救國) 항쟁지(抗爭地)로 알려져 있다.

 

성내에는 약 543m이 내성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내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전의현 고적조에 보면 이 성곽은 백제시대 축조하여 조선초에 폐성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서 발견되는 유물이나 성곽의 축성 방법이 백제시대 기법이라고 한다.

 

내려오는 길에 바라보니 전의 모습과 많이 달라진 성안 마을지가 아쉬웠다. 차라리 갈대에 우거진 과거의 모습이 더 나았던 것이 아닐까? 공사는 계속되고 있다. 길가에 설계도를 늘어 놓고 공사하고 있는 인부들이야 옛날의 모습을 알 수 없을 것이다. 길가에 샘터였던 곳을 발견했다. 전에는 여기서 물이 졿졸 흘렀는데 지금은 물조차 끊어졌다. 아마도 성안에 연못을 파서 그런 모양이다.

 

문화재 복원은 학자들의 고증을 거쳐서 이루여져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잘못하면 복원도 아니고 정비도 아닌 훼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성곽 앞에서 올라온 계곡 오솔길을 다시 내려오면서 아쉬운 마음을 달랠길 없다.

 샘터

정비되기 전의 성안 마을의 모습

 정비되고 있는 성안 마을 터

 내성으로 보이는 둔덕

 성의 전면 문지

(2009.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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