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답사/등산과 여행

음성 보현산의 꽃잔치

느림보 이방주 2009. 4. 26. 22:19

2009년 4월 26일

 

우리 백만사의 산행지로 음성 보현산을 택했다. 작년 이맘 때 사실은 한 일주일 전쯤, 우리(이효정선생님, 연철흠선생님과 나)는 한남금북정맥 중 제 2,3구간 중에서 음성읍 삼실이 고개에서 금왕 농공단지를 지나 협전 주유소까지 9시간 30분을 걸은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때 보현산에서부터 소속리산에 이르는 능선에 녹음이 한창이었는데, 이상 기온으로 인하여 진달래, 산벚꽃, 철쭉이 한꺼번에 피어 있어 우리는 자연의 꽃동산을 거닐면서 '극락이 과연 이럴까' 하는 생각으로 하루를 황홀하게 지낸 적이 있다.

 

그 때의 기억을 살려 사랑하는 백만사의 여인들을 보현산 꽃잔치에 초대하기로 했다. 앞 자리에 앉은 이효정 선생님은 날짜를 손으로 꼽아가며 철쭉이 절정을 이룰 날을 가늠하여 산행 일정을 잡았다. 무슨 일이든지 열정을 보이는 그의 모습은 꽃보다 아름다웠다. 그렇게 해서 오늘을 잡은 것이다. 백만사 10명 가운데 시장기 쟁탈 생활체육테니스대회에 참석해야 하는 아내와 초등학교 동창회장을 맡고 있는 이완호 교감선생님만 참석하지 못하였다. 나는 네 시간에 도전하는 마음으로 동참하기로 했고, 아내도 쾌히 보내 주었다. 아이들만은 조금 걱정하는 눈치였다. 

 

모처럼 집에 내려온 딸아이를 아침 일찍 시외버스 정류장에 데려다 주고, 정우종 선생님 내외분을 태우고 9 시에 신흥고에서 회원들이 만났다. 우선 내가 선물하는 양말을 한켤레씩 나누어 드렸다. 그리고 친구 연선생이 전해 준 손수건을 한 장씩 돌렸다. 모두 좋아한다. 좋다. 나도 좋다. 내 차와 이효정 선생님 차에 나누어 타고 출발하였다.

 

나는 산행에  길치에 가깝기 때문에 이효정 선생님이 앞에 섰다. 사실은 지도를 보고 나도 관심을 가지면 다 찾을 수 있겠지만 이선생님을 믿기 때문에 태평하게 있었다. 처음에 돌고개로 잘못 들었다가 다다시 음성읍 소여리를 거쳐 보현산 약수터 표지판이 있는 임도에 들어섰다. 임도 삼거리에 서 있는 소나무를 보니 작년 생각이 났다. 회원들을 내려놓고 다시 백야리로 가서 차를 한 대 주차해 놓고 산행 들머리로 돌아 왔다. 약 50분 가량 소요되었다.  나는 음성 지리를 잘 모른다. 보은이나 괴산, 진천에 비하여 심지어는 단양 만큼도 알지 못한다. 그냥 거쳐 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음성에서 백야리로 가는 길에 저수지가 비슷비슷한 것이 세 개나 있다. 이선생님 얘기로는 무극저수지, 금석저수지 용계저수지가 모두 아래로 물길이 통하여 수면의 높이가 같다고 한다. 이웃 고장의 이야기인데도 처음 들어 신기했다.

 

산은 한층 상쾌하고 아름답다. 녹음이 짙어 시야가 편안하다. 우리는 처음 가파른 능선을 걸었다. 쌀쌀한 날씨인데도 금방 땀이 났다. 하나씩 재킷을 벗고 땀을 훔치면서 보현산 제 1정상을 밟았다. 우거진 솔 숲에서 솔바람이 향기롭다. 엊그제 사이에 비를 맞은 소나무가 한층 싱그럽고 활엽수들은 윤기를 더한다.

 아직은 꽃은 볼 수 없고

 

제 1정상을 지나 산불 감시초소에 오를 때까지 철쭉은 싹도 없다. 다만 솔잎이 떨어져 깔린 길이 부드럽기만 했다. 산불 감시 초소에 올라 서니 시계가 확 트인다. 멀리 음성읍에서부터 주변의 산야가 모두 눈 안에 들어 온다. 봄은 세상을 새롭게 변화시켜 놓았다. 녹음도 아름답고 멀리 언뜻언뜻 보이 하얀 꽃무더기도 볼만하다. 그것은 철쭉도 있고, 조팝나무도 있을 것이다. 도시의 흉물인 고층 건물도 멀리서 보면 아름답다. 산자락 사이로 희끗희끗보이는 아파트가 때로 흉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때로 아름답게 보일 수도 있다.

 

산불 감시 초소 근처에 잘 생긴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솔잎이 소복하다. 아주 잘 자랐다. 주변의 시계 청소를 하느라고 잡목을 다 베어내고 소나무 한 그루만 남겼다. 우리학교 정원에 옮겨 심으면 아이들의 기품을 기르는데 얼마나 좋을까하는 속물스러운 생각을 했다.

 

산불감시초소에서 가파른 길을 내려서자 드디어 철쭉이 보이기 시작했다. 온 산을 분홍으로 물들였다. 철쭉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병꽃나무도 그 청초한 꽃을 피웠다. 철쭉은 다 같이 분홍색이지만 그냥 분홍만도 아니다. 어느 것은 더 짙은 분홍이고 어느 것은 더 엷은 분홍이다. 어느 것은 흰색으로 생각될 정도로 엷은 것도 있다. 같은 나무에서 이렇게 서로 다른 색을 내는 것은 그들도 사람처럼 개성이 있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길어올린 물감이 달라서일까?

 

여인네들은 고사리며 취를 뜯느라 소녀처럼 즐거워한다. 그도 그럴것이 철쭉 아래로 온통 고사리 밥이다. 그리고 그 사이로 먹고사리가 튼실하게 올라와 있었다. 이미 누가 거쳐 갔지만 남은 것이 꽤 있었다. 세상은 누구 한 사람에게만 맡겨지는 것은 아니다. 누구 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산은 겨울 동안 수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감추었다가 봄이되면 한꺼번에 내뱉는다. 자세히 보면 철쭉꽃나무 아래 작은 꽃들이 얼마든지 있다. 작은 생물들이 나름대로의 빛깔로 세상을 얼굴을 내민다. 각시붓꽃이 있는가 하면 양지꽃도 있고, 보라색 오랑캐꽃이 소복하게 나 있는가 하면, 삽추도 어느새 하얗게 손을 내밀었다. 

 드디어 철쭉이 시작되고

 각시붓꽃

 병꽃

 꽃보다 여자

 

철쭉은 나무에 따라서만 색깔이 다른 것도 아니다. 가까이서 들여다 보면 한 가지에 달린 꽃 송이들이 색깔이 제 각각이다. 한 송이를 가만이 들여다 보면 꽃잎마다 색깔이 다르다. 다 한가지에 피어난 듯하면서도 각각의 개성을 지니고 세상에 나와 있다. 화심에 점점이 무늬로 박힌 소복한 점들도 모두가 제각각이다. 수술을 둘러싸고 있는 암술의 모습도 그 꼬부라진 모습이 다 같은 듯하면서 다 다르다. 꽃가루가 한 가지인 듯하면서도 다른 것이 신기하다.

 

감우리 430고지에서 바라보는 한남금북정맥의 능선이 아기자기하다. 이 산 줄기는 높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중년의 용의 꿈틀거림은 된다고 할 수 있다.  이 용틀임은 맹동의 꽃동네를 지나 금왕에서 한 번 숙였다가 진천과 안성 사이의 칠장사에서 금북정맥과 한남정맥에 이어진다.

 

5월의 녹음은 멀리서 바라보면 각양각색이다. 같은 녹색이라도 들마다 개성있는 색깔로 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6월이 오면 그간의 햇살을 받고 녹음을 경쟁하면서 모두 짙은 녹색으로 변한다. 연하고 귀여운 5월의 녹음이 좋은 것은 어떤 면에서 독살맞아 보이는 6월의 녹음과 대조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나름대로 개성있는 내면을 채우면서 저들의 열매를 준비할 것이다.

 

요즘에 어린이들을 보면 모두가 개성있는 배달겨레의 얼굴이다. 그러나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면 누구나 상꺼풀 눈으로 바뀌고 입술이 도톰해지고 양키들의 코처럼 뾰족하게 솟은 얼굴을 갖게 된다. 가끔이라도 서울에 가서 지하철을 타보면 모두가 한 얼굴이다 당황한다. 마치 런던에 가서 지하철을 탔을 때, 런던 처자들의 얼굴을 구분할 수 없는 것처럼 되어 버렸다.  개성을 잃은 외모는 본인의 가치관일까? 사회가 요구하는 미적 가치관일까? 그러나 그들도 어찌되었건 자신의 내적 지향점은 다 다를 것이다. 나름대로의 열매를 준비하면서 내적 성숙을 위해 자신의 계산기를 두드릴 것이다.

 꽃보다 남자

 느림보

 

 

 꽃을 보면 모두 아이가 된다

 꽃과 사나이

 항상 동심으로 사는 한 쌍

 꽃보다 붉은 여인

 

 꽃 속을 걸어가는 백만사 회원들

 철쭉은 지천으로 피고

 

녹음은 멀리서 보아야 아름답다. 백야리 마지막 마루에 올라서서 우리 걸어온 산 줄기를 바라보았다. 녹음이 멀리서 바라보아야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것만 보이기 때문이다. 녹음 아래에 가시덤불, 삭정이, 썩은 나무 등걸은 보이지 않는다. 죽어 넘어진 고사리밥도 보이지 않는다. 멀리서 바라보면 갖 피어난 녹음만 보인다. 보이는 것만 바라보면서 더 아름다운 것은 상상을 통해서 본다.

 

사람들은 멀리 있는 사람에게서 감동을 얻는다. 가까이 바로 옆에 서 있는 이에게서는 내면의 아름다움보다 겉에 끼어 있는 때나 먼지가 먼저 보이기 때문이다. 가까이에서 보면 대상에게 상상할 수 있는 여유를 갖지 못한다.  그러나 그에게 상상할 수 있는 여유를 갖는 큰 눈을 갖는다면 보이는 것 너머이 숨어 있는 아름다움을 더 세밀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앎이고 앎의 확장일 것이다.

 

멀리 우리 걸어온 산줄기를 바라보면서 거기 남긴 우리의 발자국과 우리가 흘린 우리의 웃음과 이야기들을 되돌아 본다. 나무 하나 풀 한 포기마다 남긴 나의 생각들까지도 남김없이 돌아 본다. 그러나 어떻게 다 돌아 볼 수가 있을까? 이미 지나간 역사인 것을---

우리 걸어온 길 

우리는 어느덧 숨막힐 듯 하얗게 온 산을 뒤덮은 꽃의 향연을 뒤로 하고 마지막 내리막길에 들어섰다. 아쉬움이 남는 여인들은 자꾸 걸음이 느려지고, 지는 해가 걱정인 사내들은 서둘러 산길을 내려온다.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직도 게임여?" "4강에 들었어요."  대답이 기특하다.

 

율량동 한 횟집에서 회를 안주로 소주를 마셨다. 늘 그렇듯이 그건 소주도 아니고 회도 아니었다. 우리는 어느새 풋풋함과 따뜻함을 안주로 살가운 정을 마시고 있는 것이다.

 

나는 오늘 네 시간에 도전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 도전한 것이다. 이제 대간길도 두려울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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