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17일
오늘은 이효정 선생님 내외분과 연인산을 가기로 한 날이다. 그런데 토요일 비가 많이 내렸다. 비가 종일 내리고 밤에도 그치지 않았다. 가물어서 모두들 반가운 비라고 했지만, 일요일까지 그치지 않을까봐 조바심이 일었다. 그런데 새벽까지 내리던 비가 아침이 되니 비가 그쳤다. 날씨는 맑지 않지만 비가 더 올 것 같지는 않았다. 비온 뒤의 빛나는 녹음이 기대된다.
<연인산 개요>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승안리, 하면 상판리, 북면 백둔리의 경계에 있는 산.
높이는 1,068m로 1999년 3월 15일 가평군에서 연인산으로 이름짓고 매년 5월에 철쭉제를 지낸다. 906m봉은 우정봉으로, 우정봉 아래 전패고개는 우정고개로, 879m봉은 장수봉으로, 구나무산으로 부르던 859m봉은 노적봉으로 이름지었다. 5월이면 열리는 철쭉제에서는 800m봉이 넘는 장수봉, 매봉, 칼봉, 노적봉 등을 따라 2m 이상의 철쭉 터널이 이어져 자생 철쭉을 볼 수 있다.
-naver 테마백과사전-
연인산 등산로와 주변
산행 안내도
원래는 6시에 만나서 출발하기로 했지만 이효정 선생님으로부터 다시 8시에 가는 것이 좋겠다고 연락이 왔다. 그래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여유있게 준비 하고 집에서 7시 40분에 출발하여 8시에 만나 바로 출발했다. 이효정 선생님이 운전을 맡았다. 중부고속도로 오창 나들목으로 들어가 서울 쪽으로 달렸다. 고속도로가 한산해서 좋았다. 내가 이천 휴게소에서 하이패스 단말기를 사느라고 시간을 허비하는 바람에 가평에 들어서서 국도를 달릴 대는 차가 몰려들어 상당한 시간을 지체와 정체를 거듭하였다. 그래서 우리가 산행을 시작하기로 한 연인골의 국수당 쉼터에 도착한 것은 11시도 넘어서이다.
등산객들이 모여들어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시간이 더 늦어졌다. 그래서 국수당 쉼터에서 배낭을 메고 11시 20분에야 우정고개를 향하여 출발할 수 있었다. 하늘은 잔뜩 흐려 있으나 어쩐지 비는 내리지 않을 것 같았다. 아직도 출발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쉼터 근처에서 산나물을 파는 아주머니들도 있고, 막걸리, 빈대덕 같은 음식물을 파는 분들도 있으나 누가 사먹는 사람은 없었다.
들머리는 계곡 옆으로 난 길이라 부드러운 흙으로 이루어진 오솔길이 잔 자갈이 깔린 돌길로 변하기도 하면서 완만한 경사여서 오르는데 큰 무리는 없었다. 처음에 다리가 팍팍한 듯하고 숨이 가빠서 걱정을 했는데 한참을 걸어가자 가슴이 풀리고 팍팍한 다리도 부드러워졌다. 한 번 잃어버린 건강을 회복하는데 이렇게 조심스럽고 두려운 일인지 몰랐다. 그래서 산을 오르면서 마음속으로 또 후회하였다. 그래도 어느 정도 회복되어 가니까 걱정은 없다.
연인산 들머리
사람들은 계속해서 올라오는데 나도 계곡을 한참 올라 몸에 땀이 배기 시작했다. 자켓을 벗어 배낭에 넣으려고 계곡에서 쉬었다. 백만사가 모두 함게 온 거도 아닌데 쉬면 먹어야 하는 백만사의 버릇이 나왔다. 나는 좋다. 이선생님 사모님께서 직접 만드신 쑥떡을 내놓아서 몇 개 먹었다. 부드럽고 향기롭다. 특히 쑥향과 콩고물 향이 어울려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이제 출발하면 우정고개에나 가서 쉬는 것이다. 올라가는 길은 조금씩 더 가팔라 지고, 돌길도 더 험해진다. 어제까지 내린 비로 길이 젖어 검은 흙이 신발에 늘어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바지에도 흙이 묻는다. 바지에 흙을 묻히지 않으려고 조심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5월에는 하얀 꽃이 많이 핀다. 쥐똥나무꽃, 고추나무꽃, 층층나무꽃, 아카시, 불두화 등 모두 하얗게 피어 있다. 향기가 있는 꽃도 있고 없는 꽃도 있다. 향기가 있는 꽃보다 향기 없는 꽃이 더 이쁘다. 연인산은 철쭉이 아름답다고 한다. 올해는 철쭉 산행을 많이 했다. 그렇게 꽃을 많이 보았지만 그리고 꽃이 정말 아름답다는 것을 많이 보았지만 하나 깨달은 것이 있다. 꽃이 아무리 아름답다고 하지만 사람만큼 아름답지 못하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기 아내를 "꽃보다 예쁜 당신"이라고 불러주어서 그 아내가 감동했다고 한다. 참으로 어리석은 부부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려면 여자가 꽃만 못하겠는가? 뻔한 말을 해서 멋있어 보이려고 한 남편이나, 당연한 말에 감동한 아내가 참으로 웃기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보현산, 황매산, 연인산이 모두 철쭉으로 유명하다. 등산로 옆으로 군데군데 피어 있는 꽃을 바라보면서 숨을 알맞게 고르며 계속 올라 갔다. 이제 쉬었으면 좋겠는다는 생각이 들 무렵 앞이 확 트였다. 안부다. 그곳이 그냥 안부인 줄만 알았더니 여기가 바로 우정고개이다.
아름답지만 여자만은 못한 5월의 꽃
우정고개에는 임도가 나 있다. 백둔 자연 학교 부근에서부터 장수봉 능선을 거쳐, 연인 능선을 넘어 이곳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지도에 나타나 있다. 임도 근방에는 사람들이 많이 쉬고 있었다. 산악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있어서 이효정 선생님이 연선생이 여기에 오면 좋아하겠다는 얘기를 해서 웃었다. 이날도 아마 어디서 자전거를 타든지 마라톤을 하고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왼쪽으로 돌아 올라가면 우정능선이다. 우리는 이정표 부근에서 사진을 몇장 찍은 다음 우정능선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우정능선은 지금까지 올라온 길보다 훨씬 부드럽고 경사도 없어 걷기에 좋았다. 연인들이 산책하기에는 그만이겠다. 그래서 연인산이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능선길은 잡초나 잡목을 베어 잘 정리해 놓았고 양쪽으로 잣나무 숲이 있어서 운치가 있어 보였다.
여기부터는 하산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하산하는 사람들은 빠른 걸음으로 내려가면서 이제 올라가는 우리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본다. 능선의 왼쪽은 주로 활엽수가 우거졌고 오른쪽은 잣나무가 빼곡히 들어섰다. 가평 지방은 잣으로 유명한 것을 이제야 알겠다.
올라갈수록 안개가 더욱 짙어간다 그러더니 조금씩 빗방울 같은 것이 떨어진다. 우정 능선에서 첫번째 헬기장에 올라갔을 때는 비가 오는 것처럼 바지가 젖었다. 나는 그냥 는개이려니 했다. 그래도 바람이 불고 한기를 느껴서 배낭에서 다시 자켓을 꺼내 입었다. 자켓을 입고 앞깃을 여미고 걷기 시작했다. 안개 속에 서있는 잣나무가 아름다웠다. 보일 듯 말듯 피어 있는 철쭉도 그런대로 멋이 있다.
우정봉에 올라서니 많은 사람들이 밥을 먹으며 떠들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장비를 점검하고 물을 마시며 다시 힘을 가다듬었다. 빗방울이 세게 떨어진다. 내 자켓을 완전 방수이지만 아내 바람막이는 완전 방수가 못되어서 걱정이다. 게다가 모자도 없어 머리에 비를 그대로 맞고 걷는다. 금방이라도 감기에 걸릴 것 같다. 그래도 꽃이 좋은지 감탄사를 연발한다. 자세히 보니 조끼에 방수되는 모자가 달려 있었다.
우정고개 이정표
우정능선의 잣나무숲과 운무
철쭉 앞에서
정상이 가까워지자 바람이 세게 불고 비가 더 세차게 내린다. 길이 미끄럽고 질척거려서 걷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어디 쉴 곳도 없고 쉴 수도 없다. 철쭉은 빗속에서도 아름답다. 하산하는 사람들과 길이 엇갈려 불편하다. 사람들은 지금 올라가서 어떻게 내려오느냐고 걱정을 한다. 정상으로 가는 능선은 완만하다. 걷는데는 힘이 들지 않지만 길이 질척거려서 골라 디뎌야 하기 때문에 힘들다. 세상은 온통 안개와 구름이다. 산 아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구름에 둥실 산이 떠 있는 기분이다. 한 번도 쉴새없이 마치 백두대간을 걷듯이 정상에 올라섰다. 정상에는 사람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사람들이 입은 비닐 우비가 바람에 날여 스산하기 짝이 없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포기해야 했다. 정상표지석 앞에서 사진을 찍는데도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사람들은 정상에서 서둘러 사진을 찍고 다들 내려가 버렸다. 버스 한 대로 정상을 목표로 올라온 사람들인가 보다.
연인산의 여인들
표지석 앞에서
방위석
정상에는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고 비가 내리쳐서 더 서 있을 수 없었다. 우리는 연인능선을 타고 출발지로 되돌아 오기로 했다. 주변이 보이지 않는데도 철쭉은 용하게 발견하고 감탄이다. 내려오는 길은 가파르지만 돌이 없고 부드러워서 걷기에 좋았다. 게다가 막 지기 시작하는 철쭉이 마지막 아름다움을 보이고 있어서 더 좋았다. 그러나 비가 그치지 않아서 쉴 수가 없다. 길은 더할 수 없이 미끄럽다. 미끄러지면 다치는 것보다 옷을 다 버리게 되어 낭패를 볼 것 같았다. 나는 이제 조금만 더 내려가면 비는 당연히 그칠 것이라고 장담했다. 과연 어느 만큼 내려오니 누가 명령이라도 한 것처럼 비가 그쳤다.
나무 밑에서 땅에는 온통 낙화가 있고
이곳이 연인 능선이 된 것은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져 내려 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옛날 길수라는 청년이 연인산 속에서 화전을 일구기도 하고 겨울에는 숯을 구워 팔기도 하면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청년이 어디서 왔는지, 누구인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길수가 사랑하는 처녀가 있었다. 김참판 댁 종으로 있는 소정이었다. 소정은 원래 종은 아니었지만 흉년을 넘기기 위해 쌀을 꾸어다 먹은 게 화근이 되어 김참판댁에서 종처럼 일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길수는 일 년에 서너 번 씩 김참판 댁으로 숯을 가지고 오면서 소정을 만나게 되었고 서로 외로운 처지임을 알게 되면서 조금씩 사랑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한 번은 길수가 숯을 져 오다가 눈길에 넘어져 김참판 댁에서 병 치료를 하게 되었다.
고민하던 길수는 우연히 연인산 꼭대기 바로아래에 조를 심을 수 있는 커다란 땅이 있음을 알게 된다. 기쁨에 들뜬 길수는 그곳에서 밤낮으로 밭을 일궈 조를 심을 아홉마지기를 만든다. 아홉마지기는 조 백가마도 넘게 나오는 아주 넓은 밭이다. 길수가 심은 조는 무럭무럭 자라 이삭이 여물어가기 시작하고 길수와 소정의 꿈도 함께 익어가면서 둘은 함께 살 수 있다는 희망에 부푼다. 하지만 처음부터 소정을 줄 마음이 없던 김참판은 길수를 역적의 자식이란 모함을 한다.
지금도 봄이면 연인상 정상에는 얼레지꽃과 철쭉꽃이 눈부시게 피어오르고 있다. 연인산에서 사랑을 기원하면 그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은 두 길수와 소정의 영혼이 아홉마지기에 영원히 남아 이곳을 찾는 연인들의 사랑이 이루어지도록 힘을 주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가평군 홈페이지에서 -
철쭉은 누구의 애타는 영혼인지
애처로운 사연이 담긴 연인능선을 돌아내려오다가 깨끗한 길가를 찾아 점심을 먹었다. 시간이 오래되고 배가 고픈 참이라 점심 맛은 참 좋았다. 그냥 집에서 대충 먹던 것을 싸 가지고 왔어도 진수성찬과 다름없다. 점심을 먹고 내려오는 길은 평탄하고 좋았다. 내려올수록 철쭉은 더 아름답다. 아내는 올해 철쭉 산행을 처음하기 때문에 더없이 좋아했다.
산을 거의 내려오니 임도가 나왔다. 임도는 바로 우정고개로 가는 길이다. 평탄한 길을 걸어 우정고개에 도착하니 마음이 놓였다. 아침에 걸어 올라간 계곡은 그 새 내린 비로 더 질척거리고, 하산하는 등산객은 늘어나서 내려오기 불편해도 우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국수당으로 내려왔다. 계곡에서 신발과 바지에 묻은 흙을 대충 씻고 출발하였다.
주차장은 이미 많은 차들이 자리를 비웠다. 4시 20분에 출발하였다. 산행시간은 약 5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땀에 젖은 등산 셔츠도 이미 다 말랐다. 길이 많이 정체된다. 8시가 넘어 청주에 도착하여 제일수산에서 회를 안주로 소주를 세병 마셨다. 상쾌한 산행이었다. 운전에 애쓴 이효정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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