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생활과 일상/에세이의 뜨락

<에세이의 뜨락> 돌아오라 시인이여(박순철)

느림보 이방주 2009. 4. 10. 12:00

돌아오라, 시인이여!

 

중부매일 jb@jbnews.com

 

잔잔한 이야기 코너인 '에세이 뜨락'은 지역 수필가들이 1주일에 한 번씩 방문, 삶의 여정에서 건져올린 생각을 수필, 꽁트 등의 형식으로 들려주는 작은 사랑방입니다.

어느 날 홀연히 자취를 감추어버린 한 시인을 찾아 인터넷을 떠도는 중이다. 시인이 자주 들리던 카페, 블로그 그 어디에도 다녀간 흔적이 없으니 찾을 길 묘연하다. 내가 아는 것이라곤 휴대전화번호뿐이다. 집 주소와 일반전화는 가리켜 주지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이리라.

무슨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처음 얼마간은 전화를 걸면 신호는 가는데 받지 않았다. 그래도 매일 전화를 걸었다. 언젠가는 받겠지 하는 마음으로……. 이제는 전화를 걸면 "지금 거신 번호는 고객님의 사정으로 연결할 수 없습니다."라는 말만 되풀이 들려오곤 한다.

시인을 알게 된 것은 어느 카페에서였다. 그곳에 올라오는 글이 좋아 자주 드나들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 카페지기와도 교분이 쌓여갔다. 당시 부산에서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던 시인은 따르는 후배가 많아 회원들이 나날이 늘어갔고, 내실 있게 운영되었다. 문학 지망생들을 위해 사이버 공간에서 글을 지도하면서 나에게는 수필 강의를 맡아달라고 했지만, 한마디로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글이 좋아 글을 쓰고, 남의 글을 즐겨 읽기는 하지만, 누구를 지도할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요양을 위해 강원도 시골에 있는 친구네 집으로 간다는 쪽지를 끝으로 그 시인과의 모든 연락방법은 끊어졌다. 지금 의문으로 남는 것은 시인이 정말 건강에 문제가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시인의 글 어디에서도 병마와 싸운다거나 고통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또, 아무리 투병 중이라지만, 서로 안부는 주고받으며 사는 게 인지상정이다. 아마 연락을 취하지 못할 만큼 마음속으로 깊게 응어리진 무엇이 자리했지 싶다.
시인의 글은 읽고 나면 잘 삭힌 식혜를 마신 듯 마음이 상쾌해지곤 했다. 장르는 다르지만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어려운 생활을 겪은 처지여서 공감하는 부분도 많았다.

사이버 공간에서 글을 주고받다가 만나고 나면 신선함이 사라진다는 말을 들은 일이 있지만, 굳이 만나야 할 필요는 없다. 전자우편으로 안부를 묻고 글을 교환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결정적인 흠이나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은 감출 수 있는 것이 사이버상의 맹점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글 속에는 은연중 인격이 묻어나게 마련이다. 시인의 글에서는 난해하거나 속된 문장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부터 집 주소를 몰랐던 것은 아니다. 자신이 쓴 시집(詩集)을 보내 준다기에 주소를 알려줬고, 책을 받은 다음 내 수필집을 보내주기도 했다. 장르가 다르기에 작품에 대해 토론은 하지 않았지만, 문학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자주 쪽지를 주고받았다. 시인은 부산에서 대전으로, 대전에서 서울로 이사하면서 주소와 전화번호를 생략했다. 휴대전화와 전자우편은 어느 곳을 가든 통용이 되니 알려고 하지 않은 게 실수였다.

어느 날 주고받은 쪽지에서 시인은 내게 노후준비를 어떻게 했느냐고 물어왔다. 아직 노후라고 하기엔 이르고 하는 일 없이 놀고 있으며, 얼마 안 되는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시인은 출가시킨 무남독녀와 같이 살고 있으며, 가지고 있던 돈을 사위 창업자금에 대주었는데 사업이 잘되지 않아 짜증 날 때가 잦다고 했다.

이 어려운 경제 위기 속에 자유로울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금지옥엽처럼 키운 딸을 데리고 사는 사위가 돈이 없어 쩔쩔매는데 나 몰라라 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참으로 강심장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일반인도 그러할진대 하물며 심성 고운 시인에게는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게다. 사위가 자금 때문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없어 노후는 생각도 않고 모든 것을 주었는데 그것이 적절하지 못했음을 후회 하는 것 같았다.

한 번은 몸이 안 좋아 2~3개월 쉬었으면 좋겠는데 카페를 맡아줄 사람이 없어 걱정이라고 했다. 내가 맡아주기를 은근히 바라는 눈치였다. 나는 인터넷도 서툴고 한자리에 오래 앉아있지 못하는 성미다. 한마디로 적임자가 못되었다. 또 젊은 운영자들이 있으니 그 시인이 몇 달 쉰다고 해도 별문제 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요양을 위해 강원도 시골에 있는 친구네 집으로 간다는 쪽지를 끝으로 그 시인과의 모든 연락방법은 끊어졌다. 지금 의문으로 남는 것은 시인이 정말 건강에 문제가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시인의 글 어디에서도 병마와 싸운다거나 고통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또, 아무리 투병 중이라지만, 서로 안부는 주고받으며 사는 게 인지상정이다. 아마 연락을 취하지 못할 만큼 마음속으로 깊게 응어리진 무엇이 자리했지 싶다.

나도 한때 세상 밖으로 얼굴 내밀기 싫어하던 시절이 있었다. 마음의 문을 꼭꼭 닫아걸고 두문불출하던 시기, 찾아올 사람도 없었지만, 설령 누가 찾아온다 해도 만나지 않을 마음으로 나 자신을 감추고 있던 시절이었다. 지금 자취를 감춘 시인의 마음도 그러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시인은 강원도 친구네 집에서 무엇을 하며 지낼까 궁금하다. 친구네 집이 아닌 호젓한 시골마을에서 그때 나처럼 외로운 나날을 보내며 마음의 병을 다스리고 있을까. 아니, 요양이 아니라 알토란같은 작품을 낳으려고 인고의 나날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세상에 다시 얼굴을 내밀 시인의 손에는 불후의 명작들이 들려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