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다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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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이야기 코너인 '에세이 뜨락'은 지역 수필가들이 1주일에 한 번씩 방문, 삶의 여정에서 건져올린 생각을 수필, 꽁트 등의 형식으로 들려주는 작은 사랑방입니다. 그대여, 나는 지금 당신의 행동을 따라 하고 있어요. 당신이 한 발짝 내려놓을 때마다 나도 그 리듬에 맞춰 오른발을 돌 위에 살짝 걸칩니다. 발밑에서 강물이 흐르듯 그대 등 뒤로 무언의 기류가 흐르는 것 같아요. 삶에 지친 당신의 애처로운 등 뒤에서 당신의 걸음을 헤아려 봅니다. 한걸음 다가설수록 찰찰 거리는 물소리는 들리지 않고 알 수 없는 기분에 빠져듭니다. 앞서 가는 그대여, 당신은 아시나요? 그대가 밟고 지나간 자리에 내 발을 포개는 것을. 그대가 심혈을 기울여 생의 낙인처럼 찍어 놓은 걸음 자리. 묵묵히 당신의 뒷모습을 보며 따르는 일은, 질주에 길들어진 나에겐 참을성이 필요한 일이랍니다. 틈을 무시하고 성급히 다가간다면 불 보듯 뻔한 상황이 벌어지지요. 무작정 껴안는 사태가 아니면 물살에 발을 맡기는 꼴이 될 것입니다. 그대는 늘 어렵게 멀게만 느껴지던 사람이지요. 그렇게 느끼는 것도 그런 관계를 만든 것도 접니다. 다시 당신의 뒷모습을 보며 발자국을 맞춥니다. 강물 위의 돌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다리가 되었듯, 사람도 어느 정도 거리로 은근히 가슴을 설레게 하는 모양입니다. 그대와 나의 마음거리가 좁혀진 머나먼 남도 땅인 탐진강 돌다리에 섭니다.
다리에 얽힌 기분 좋은 착각에 든 것이 어디 한두 번인가요. 이몽룡과 성춘향이 만났던 광한루원의 오작교, 그곳에서도 발걸음이 떨어지지를 않았답니다. 재촉하는 지인만 아니었다면 돌다리에서 한나절을 지냈을 겁니다. 예전에는 어디를 나서든 온전히 제 발로 땅을 밟고 걸어가야 했지요. 그래서 강물이나 허공에 놓은 다리는 더없이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였을 겁니다. 누군가 내를 건너지 못하여 애타는 심정을 헤아려 주위에 늘비하게 널린 돌들을 주워 와서 한 층 한 층 쌓은 것이 돌다리일 성싶습니다. 그대도 알겠지만, 내 고장에 옛 모습을 간직한 신화의 다리가 존재합니다. 농다리를 지척에 두고 차일피일 미루다, 그것도 남도에서 절절히 그리워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탐진강 네모난 인공의 돌다리를 건너며, 자연석으로 쌓은 농다리를 떠올렸습니다. 이내 내 가슴은 불화살을 맞은 듯 뜨거워졌지요. 주말을 기다려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진천의 농다리. 돌다리는 수려한 산수와 잘 어우러져 보는 이마다 감탄을 자아냈지요. 눈길 닿는 곳마다 천 년 세월의 흔적이 역력합니다. 돌다리는 요란하거나 복잡하지 않고, 지극히 소박하나 정교합니다. 무엇보다 오랜 세월 사람들의 발걸음을 떠받치고 온갖 풍상을 견뎌온 다리라 여기니, 더없이 대단하고 애잔한 눈빛으로 보입니다. 마치 작은 낙석을 주워와 쌓은 돌탑 위에 서까래 같은 돌로 이어놓은 다리. 약간의 휘어짐이 돌의 빛깔이 여느 다리와 달랐습니다. 정자에 올라 다리를 품은 세금천을 바라보니 정녕 '거대한 지네가 몸을 슬쩍 퉁기며 물을 건너는 형상'이라는 말이 실감 납니다. 너무 굳고 꼿꼿하면 부러진다고 했던가요? 온갖 풍파에도 온전한 모습으로 유지하고 있었던 비결은 그 휘어짐에 있었던 거지요. 물의 흐름과 물살에 대한 저항을 계산한 선인의 지혜였답니다. 다리는 소통의 장입니다. 다리는 만남과 헤어짐의 장이며, 그리움을 키우는 경계지점이기도 합니다. 다리로 마을과 마을을 잇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 정을 낳고 인연을 맺지요. 다리는 내가 돌아가도 길이 남을 우리 삶의 산증인입니다. 저물녘, 냇가에 서면 승천하지 못한 커다란 지네가 물비늘을 푸르르 털며 '물놀이 참 잘했다'며 스르르 산속으로 사라질 것 같아요. 저 사라진 길로 영영 돌아간 소녀도 소년을 부르며 돌아올 것 같습니다. 식물이나 사람이나 죽음을 기반으로 탄생하며, 그 순환은 영겁을 통하여 회귀 된다고 합니다. 수백 수천 일이 지났으니, 못다 이룬 사랑의 꽃을 피울 차례가 멀지 않은 듯싶습니다. 만약 그날이 오면, 나는 주저 없이 그대를 따라나서렵니다. 메마른 가슴에 단비처럼 순정한 기억을 퍼 올려준 돌다리, 저 길은 나에게 영원한 노스탤지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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