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5일(수)
4시에 기상, 자유로운 몸으로 샤워, 나도 오랫 동안 맘껏 했다. 손등과 발등, 팔, 허벅지에 반점이 몇 개씩 돋아나서 발갛게 부풀었다 가라앉곤 한다.
담당 의사에게 퇴원 얘기를 했다. 아주 난처한 얼굴이다. 27일에 보자고 달래듯 말한다. 내가 퇴원하고자 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다. 항생제가 정말 무섭다. 그냥 나을 수 있으면 그냥 버틸 수도 있지 않을까? 항생제가 몸에 남아 또 무슨 짓을 할 것인가? 제발 주사만은 놓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냥 이겨낼 수는 없을까? 염증이 어느 정도 가시면 면역력만으로도 버텨내야 하지 않을까? 시간이 좀 오래 걸리더라도 내가 이겨내는 것이 좋은 방법이 아닐까? 고비를 넘겼으니 말이다. 몸에 마구 뜨거운 물을 끼얹어버리는 것처럼 불안하다. 산불을 일으키듯이 온 몸의 생명력이 다 타고 없어지는 기분이다. 주사, 링거, 주사, 약---- 무섭다. 그것들 때문에 내 생명이 잦아드는 기분이다. 팔이고 손등이고 발등이고 살갗이 모두 회색의 재가 되는 기분이다. 윤기없고 탄력없는 불탄 소나무가 되어 버릴가 두렵다. 퇴원하고 싶다.
된장이 먹고 싶다. 집에서 음식을 해올 수 있어도 된장찌개만큼은 뜨거운 채로, 뚝배기에 담긴 채로 가져올 수 없다. 가져 와서도 안된다. 그래서 더 먹고 싶다. 김치를 잘게 썰어 넣은 돼지고기김치찌개가 먹고 싶다. 얼큰한 국물을 이마에 땀을 흘리며 퍼먹고 싶다. 무를 저며 넣고 졸인 꽁치 찌개가 더 먹고 싶다. 못 먹게 하니 더 먹고 싶다. 집에 가고 싶다. 구룡산이나 매봉산에 뛰어 올라가고 싶다.
오전에 동서 내외분과 , 그 밖에 학부모 몇 분이 문병을 왔다. 담임도 없는데 학부모들이 온 것은 참으로 별난 일이다. 내게 논술지도를 받는 아이들의 어머니들이다. 유별나게 다른 날보다 병문안 오시는 분이 많았다. 전화도 여러 분이 하셨다.
답답하고 처량하다. 속상하다. 최후를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 미련하고 바보 같은 생각이다. 아내는 10시가 다 되어 집으로 갔다. 나는 그것도 걱정이다. 좋지 않은 생각들이 마구 쏟아져 내린다. 집에 전화를 해 보았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 더 불안하다. 무슨 일이 있는가? 또 전화를 걸었다. 무사히 도착했단다. 그럴 테지. 그러나 밤에 여자 혼자 택시 타는 일이 안심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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