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3일 (월)
새벽 4시에 일어났다. 화장실에 가서 얼굴을 보니 붉은 반점이 몇 개 솟았다. 팔을 걷어보니 거기에는 없어졌다. 바지를 내리고 뒤로 돌아보니 흔적만 갈색으로 변해서 남아 있다. 변은 여전히 누렇게 풀어져 흙탕물처럼 떠내려 간다. 대변을 볼 때마다 마음이 산란하다. 온몸이 초토화되는 기분이다. 그래도 대변은 병원에 들어오기 전보다 더 시원하게 나온다. 그러나 망가진 나의 분신을 보면 속에서 모든 것들이 얼마나 망가지고 있는지 알아볼 만하다.
세수를 할까 하다가 병실에 돌아오니 주사를 놓는단다. 주사를 맞고 링거를 갈아 끼우려고 하기에 샤워를 하고 싶다고 했더니 떼어 주었다. 자유의 몸이 되었다. 샤워실에 불이 켜져 있다. 누가 4시부터 샤워를 하나. 20분 후에 가 보았더니 그대로다. 이번에는 그 자리에 서서 기다렸다. 20분을 간호사실 앞을 서성거리며 샤워실의 내 차례를 기다렸다. 얼마만한 기회인데--- . 그랬더니 웬 환자복 입은 남자가 와서 두드리며 소리를 질렀다. 자기 아내인 듯 싶다. 나올 때 보니 환자의 가족이다. 빨래를 한 아름 안고 나온다. 그 분도 어쩔 수 없어 거기서 빨래까지 했을 것이다. 오죽하면 그러겠는가?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 입었다. 링거도 항생제도 줄을 다 떼어 버리고 나니 자유란 이런 것인가 싶었다. 기분이 좋았다. 들어 올 때 입었던 등산 재킷을 찾아 걸치고, 마스크를 찾아 걸고 차에 가보려고 나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병원 현관을 열고 나가는데 다리가 휘청거린다. 어지럽다. 차를 찾지 못하겠다. 한참을 돌아 주차장에 가보니 차는 올 때 그대로 있다.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 쓴 채로 삐다닥하게 주차되어 있다. 병원에 들어 올 때의 통증과 급했던 마음을 짐작할 만하다. 시동을 걸어 보았다. 힘차게 시동이 걸린다. 후진을 해서 다시 차를 반듯하게 해 놓으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냥 달아나고 싶었다. 그냥 집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그러나 주차선을 차창밖으로 내다 보아가며 반듯하게 차를 대었다. 도망가지 못했다. 차안에 있던 동전을 몇 개 집어가지고 병실로 돌아 왔다. 병실에 오니 간호사가 기다리고 있다. 간수가 수갑을 다시 채우듯이 줄줄이 주삿줄을 매달았다. 나는 어느새 구속의 몸이 되었다.
6시 50분에 지하 방사선과에 내려갔다. 줄이 만만찮다. 다친 사람, 보조기를 한 사람, 수술한 사람, 산소호흡기를 낀 사람 등 그래도 그 중에서 나는 가장 자유스런 사람이다. 사진을 촬영했다. 아침을 간신히 먹었다. 입에서 쓴물이 넘어 온다. 나는 그것도 항생제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또 잤다. 아침에 그 정도의 활동이 부담을 주었는가? 피곤하다.
사진 결과에 따라 퇴원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나 했는데 아니었다. 우울하다.
오후에 운동장에는 아이들이 놀고 있다. 초등학교 축구 선수들의 연습이 제법 짜임새 있다. 제자 아롱이와 다롱이가 문병왔다. 내게 큰 아빠라고 부르는 애들이다. 그 엄마도 오셨다. 다롱이(주현이)는 대학을 졸업하고 학사 장교로 선발되어 3월에 3사관학교에 입교한다. 입교하기 전에 만나러 오고 싶다기에 병원으로 오라고 했더니 놀라 달려 온 것이다. 언니인 아롱이(혜진) 는 간호사이다. 자기 병원으로 오지 않았다고 투덜댄다. 성격이 시원시원한 그 엄마도 오셔서 한참을 웃는 얘기를 하고 돌아갔다.
아내와 같이 있으면 미안해서 짜증나고, 혼자 있으면 혼자라 외로워서 짜증난다. 아마도 아내와 내가 처지가 바뀌었으면 그래도 내가 짜증냈을까? 아내가 내게 그렇게 짜증을 냈을까? 나는 아내에게 어떻게 했을까? 돌아보니 머리 아프다. 그런 상황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그건 더 비극이다. 차라리 내가 아픈 것이 낫지.
행정실에 병가를 이달 말까지 연장했다. 백만사 이 선생님이 안부 전화를 했다. 늘 잊지 않고 있다. 고맙다.
저녁에 아내와 아들을 보내고 일찍 누웠다. 잠이 안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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