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생활과 일상/에세이의 뜨락

<에세이 뜨락> 택시 기사와 연탄 난로(김정자)

느림보 이방주 2009. 3. 22. 19:33

택시기사와 연탄난로

 

 

 

잔잔한 이야기 코너인 '에세이 뜨락'은 지역 수필가들이 1주일에 한 번씩 방문, 삶의 여정에서 건져올린 생각을 수필, 꽁트 등의 형식으로 들려주는 작은 사랑방입니다.

지난 초겨울 어느 날이었다. 귀가 길에서 만난 중년의 택시기사는 짧게 깎은 머리모습이 젊은 청년 같았다. 행선지를 말하고 나니 술술 몇 마디를 내뱉는 말투가 심상치가 않았다.

"에이~ 김정일은 중풍이 걸린 모양인데 죽기 전에 남쪽에다 미사일이나 한방 쏘고 죽지~ 망할 놈의 세상 나만 빼고 다 죽었으면 좋겠다~ "

섬뜩한 마음으로 무슨 말을 그리 무섭게 하느냐고 하는 나를 뒷거울로 바라보면서 무섭긴 무엇이 무서우냐며 어차피 한번 왔다가는 세상 빨리 가는 것뿐이라며 버럭 화를 낸다. 혹시나 질이 나쁜 사람은 아닐까 싶어 빨리 내리고 싶은 마음에 의기소침 되어 차창만 주시했다. 그러나 공포 분위기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말을 걸지 않으면 안 되었다.

각박해진 세상에 살기가 힘들겠지만 잘 참고 인내하면 좋은날도 있겠고 나라경제가 이렇게 나쁜 상황이니 너나없이 잘 견디어 내야하지 않겠는가 라며 혼잣말로 조심스럽게 지껄였다.

"아이구~ 저는 거지 입니다. 거지신세가 되고 보니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젬병 직장 짤리고 어쩔 수 없이 택시기사나해 먹고 살려니 마누라까지 벌지 않으면 두 자식 공부 시킬 수가 없어요." 부인에게 전화를 건다. 전화를 받지 않는 아내에게 남편전화도 받지 못 하는 직장생활 뭐라고 하느냐며 또 불평을 늘어놓는다. 그는 또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아가 연탄불 갈 때 되었는데 한번 보거라 아직 갈 때 안 되었으면 엄마 오거든 갈도록 내버려 두거라" 그의 사는 모습이 나오기 시작했다. 일층 집 스라브 단독주택인데 여름에는 너무도 덥고 겨울에는 너무 추워서 여름에는 에어컨생활을 해야만 살수가 있단다. 겨울 되면서 연탄난로를 거실에 놓았더니 온 집안이 후끈후끈하여 참으로 살맛이 나는 겨울을 보낼 것 같다며 이제는 자랑을 늘어놓는다.

   
▲ 밤새 물 한양동이를 얹어놓고 한밤을 지내면 뜨끈뜨끈한 물로 아내는 아침밥을 짓는단다. 기름보일러는 샤워할 때 나 틀고 사용을 하지않으니 기름값에 대한 애로는 없다고 하였다. 방바닥은 전기장판에 의지하고 온 집안이 연탄난로 덕분에 훈훈한 공기로 하여 행복한 겨울을 보낼 수 있어 근자에 연탄의 고마움을 새삼 느끼며 산다고 하였다.
듣고 보니 남에게 빌어먹는 거지가 아닌 중류층에 속하리 만큼 생활수준이 높은 기사라는 생각을 했다. 여름에 에어컨 빵빵 틀고 겨울에 연탄난로로 훈훈하게 살면 되었지 또 무엇을 바라겠는가.

청주에는 연탄공장이 없는 것 같더란 내 말에 조치원에서 배달하는데 한번에 1000장을 배달해놓고 겨우 내내 마음껏 땐다고 한다. 하루에 6장이면 2,580원에 따뜻한 겨울을 보 낼 수 있으니 얼마나 경제적인가. 택시기사의 자랑을 묵묵히 들어보기로 했다.

밤새 물 한양동이를 얹어놓고 한밤을 지내면 뜨끈뜨끈한 물로 아내는 아침밥을 짓는단다. 기름보일러는 샤워할 때 나 틀고 사용을 하지않으니 기름값에 대한 애로는 없다고 하였다. 방바닥은 전기장판에 의지하고 온 집안이 연탄난로 덕분에 훈훈한 공기로 하여 행복한 겨울을 보낼 수 있어 근자에 연탄의 고마움을 새삼 느끼며 산다고 하였다.

입이 심심 할 때면 고구마를 깨끗하게 씻어서 은박지에 도르르 말아 양쪽을 꼭 여미고 연탄난로 뚜껑을 열고 넣어 10분만 기다리면 군고구마의 일품요리로 온 집안 식구는 행복해 세상 부러울 게 없단다.

계란을 살짝 바늘구멍을 두 군데 내어서 은박지에 싸서 고구마처럼 넣어 두면, 잠시 후 잘 익은 계란구이가 되고, 아이들 양말 런닝등 속옷들을 한 대야 난로에 올려놓으면 빨래도 백옥같이 잘도 삶아진다며 신나는 가정생활을 털어놓는다.

아들만 둘 있는 그 운전기사는 가끔 쉬는 날이면 시원한 오뎅 국물을 손수 만들어 두 아들을 행복하게 해줄 때도 있다고 하였다. 자기 아내가 만드는 요리보다 본인이 해주는 요리를 아이들이 더 잘 먹는다며, 처음에 느꼈던 공포의 분위기가 어느새 어진 한 가정의 가장으로 돌아와 있었다.

어떤 날은 친구들 몇 사람 불러 육거리 시장에서 뱀장어 몇 마리 손질 해서 자기 집으로 가져와 양념해, 연탄난로에 은박지를 깔고 구워 소주한잔씩 할 때면, 몇 십만원 어치를 불과 몇 만원에 만족스럽게 먹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런 날은 그 누구도 부러운 사람 없는 따듯한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연탄난로가 참으로 사랑스럽기까지 하다며, 자랑을 듣는 동안 어느새 내 집 앞에 도착했다.

택시를 자주 이용하면서 숫하게 들어오던 세상살이에 희비가 엇갈리는 이야기도 많았었다. 그날 그 기사와 나와의 만남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기에 그렇게 감당하기 어려운 언어폭행으로 손님인 나를 불안에 떨게 하였을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20년 전 연탄보일러로 난방을 해결했을 때의 추억이 되살아났다. 나도 그때가 더욱 행복했었다. 힘은 들었지만 그때는 땔감의 경제적인 부담이 그다지 크지 않았었다. 아무리 마음껏 태워도 생활비에 위축을 받지는 않았었다.

그 기사의집 거실에 설치된 연탄난로 이야기로 하여 행복한 네 식구의 사람 냄새나는 풍경을 그려보면 더 이상의 부러울 게 없을 것 같은 생각을 하게 되건만 역시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가 보다.

아파트에 들어서니 썰렁한 냉기가 흘렀다. 고유가 시대로 하여 난방비가 이만저만 아니니 외출 할 때는 난방을 가동 할 수가 없다. 내가 만났던 택시기사가 자랑했던 훈훈한 연탄난로가 못내 그리워지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