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껍질 속에서 다 자란 병아리는 부리로 껍질을 쪼아 세상 밖으로 나오려고 한다. 그러나 여린 부리로 아무리 쪼아도 딱딱한 껍질은 열릴 줄 모른다. 이때 어미닭이 병아리가 쪼아대는 소리를 듣고 밖에서 껍질을 쪼아 새끼의 피나는 노력을 도와준다. 어미닭은 아주 조심스럽게 너무 세지도 약하지도 않게 껍질을 쪼아 병아리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다.
줄탁동기라는 말은 중국의 민가에서 쓰던 말이었는데 송나라 때 불가에서 깨우침으로 이끄는 것을 표현한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안에서 병아리가 입으로 빨듯이 여린 힘으로 쪼면, 밖에서 어미닭이 동시에 쪼아 단단한 껍질을 깨뜨린다는 말이다. 여기서 밖으로 나오려는 병아리는 불가의 수행자를 말하고 어미닭은 깨우침으로 인도하는 스승에 비유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미닭과 병아리가 동시에 쪼기는 하지만 세상 밖으로 이끌어 내는 것은 어미닭이 아니다. 미혹의 껍질을 깨고 세상에 나오는 것은 병아리 자신이다. 그래도 어미닭이 병아리의 깨우침을 위하여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은 하늘의 이치이다.
봄이 되면 앞으로 5년간 우리 삶의 질을 결정할 새 정부를 맞게 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새 정부의 탄생을 위하여 지난 정부의 공과를 따지기도 하고 미래의 세계의 변화를 점치기도 하면서 새 정부가 시행할 정책의 틀을 마련하고 있다. 지난 월요일 이명박 대통령당선인이 기자회견을 통하여 그것을 국민들에게 발표하였다. 정부조직의 축소 개편이나, 경제의 활성화, 부동산정책의 변화, 남북관계, 정치 문제 등 다양하고도 의욕적인 시안은 국민들을 기대에 부풀게 하였다. 대통령당선인은 알아듣기 쉬운 구체적인 용어로 비꼬거나 뒤틀림 없이 설명하여 국민들이 편안하게 들을 수 있었고 신뢰감도 주었다.
그런데 아쉬움이 있다면 국가의 백년대계인 교육문제에 대하여 어떤 사안은 지나치게 구체적으로, 어떤 사안은 언급도 하지 않아 섭섭함을 주었다. 문제가 많아 보이는 수능 등급제의 보완, 수능 교과목 수의 축소, 자립형 사립고 설립 등 상당히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상층계급의 교육 수요자 입맛만을 생각한 정책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대학 입시 정책의 변화가 고등학교 교육의 방향을 결정해 준다는 생각도 입시위주의 교육이 가장 훌륭한 교육이라는 왜곡된 교육관의 출발이다. 대학교육은 신입생 선발로 끝나는 것도 아니고, 고등학교에서는 입시만을 위한 교육을 해서는 안 되고, 또 일선고등학교에서 그렇게 하지도 않는다는 교육의 본질을 잊어버린 것이다. 공교육을 정상화하겠다면서 수능교과목수를 4개로 줄인다는 것도 사교육비라는 구더기를 피해가는 졸속적이고 앞뒤가 맞지 않는 정책이다. 자립형사립고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내신제도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고, 그렇게 되면 교육 정책에서 소외된 시골학교 학생들이 억울한 피해를 보게 된다.
질 높은 대학교육을 위한 정책, 세계의 대학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경쟁력 제고, 21세기의 질 높은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보편적인 능력을 갖춘 인간을 길러내는 보통교육, 가장 도덕적인 인간으로 깨어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 주는 유아교육이나 초등교육에 대해서는 언급조차도 없었다.
교육은 어미닭과 노랑병아리가 줄탁동시하듯 수요자와 공급자의 신호가 동시에 필요한 곳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새 정부는 이 나라의 젊은이들이 어떤 깨달음을 원하고 어떤 능력개발이 필요한가를 심각하게 고려하여 정책을 마련하는 성의를 보여주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병아리가 쪼는 곳을 찾아 쪼아 주어야 그들이 미궁의 늪을 벗어나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이다.
(2008. 1. 15.)
2008. 1. 18. 충청투데이 오피니언 게재
(http://www.c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58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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