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서운 바람을 생각하면 햇살은 참으로 찬란하다. 마치 참나무로 군불을 때며 아랫도리를 지지는 것처럼 등때기가 따스하다. 우리가 묵었던 명호대주점(明湖大酒店)은 지난(齊南)에서도 이름난 호텔이란다. 번화가인 듯한데 거리는 지저분하다. 중국인들에게는 크고 넓은 이 세상을 다 닦고 조이기에 힘이 부치는 모양이다.
우리는 태안시로 향했다. 공자가 올랐고 중국의 역대 황제들이 올라 공자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흠모했다는 태산에 오르기 위해서이다. 사실 나도 옛 문인들의 시구를 읽으며 태산의 장대함을 마음속으로 그려 보기도 했었다.
‘登東山而小魯國 登泰山而小天下’라는 이 말은 공자의 호연지기를 대신하는 말이다. 이 말에 반한 조선의 유학자들이 공자의 사상만큼이나 머나 먼 태산에 대한 얼마나 많은 동경과 그리움을 가지고 있었는가? 태산과 공자 철학의 유구함을 하나로 본 것은 오히려 우리 유학자였다는 생각이 든다. 오죽하면 이렇게 읊기까지 했을까.
태산이 높다하니 하늘 아래 메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메만 높다 하더라.
조선의 유학자들은 태산으로 동일시되던 공자의 지향점을 학문의 목적으로 삼았던 모양이다. 그것은 성인(聖人)의 삶의 정점인 지극한 선에 머무는 것(止於至善)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 시조는 그래도 태산에 오를 수 있는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정철은 금강산 비로봉에 오르기를 포기하면서 관동별곡에서 다음과 같이 공자의 정신적 경지의 요원함을 읊었다.
비로봉 상상두에 올라본 이 그 누구신고/ 동산 태산이 어느 것이 더 높던가/ 노국 좁은 줄도 우리는 모르거든/ 넓거나 넓은 천하 어찌하여 작단 말인가?/ 어와 저 지위를 어이하면 알거이고/ 오르지 못하거니 내려감이 괴이할까
이글도 역시 태산과 공자의 정신적 경지를 동일시하여 흠모하면서 학문의 궁극적 목적지의 도달을 두려워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셔틀 버스로 케이블카를 타는 입구에 이르는 동안, 우리나라 산에서 느낄 수 있는 수려함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맑은 물과 시원한 폭포도 보이지 않고, 낙락장송의 의젓함도 찾아볼 수 없고, 검푸른 숲 사이로 보이는 맑은 하늘도 없다.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 가까이에 오르는 동안의 태산은 우리 고장의 대야산 정도의 풍광도 볼 수 없었다. 산 아래에 흰구름이 감도는 모습을 중국인 안내자가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지만, 소백산이나 설악산에서 느낄 수 있는 산의 장엄함으로 인한 숙연함은 일지 않았다.
멀리 보이는 등산로가 돌계단인지 시멘트 계단인지 실낱처럼 가늘게 보였다. 계룡산의 돌계단처럼 숲 사잇길도 아니고, 맑은 계수가 바지가랑이에 통통 튀어 오를 것 같은 같은 만수계곡의 오솔길도 아니다. 보기만 해도 힘겨운 길일 것만 같았다. 마르고 건조한 그런 길이다. 하기야 학문의 정점에 이르는 길은 그렇게 맑고 건조하며 팍팍한 다리를 두드려야 이를 수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케이블카를 내려 한 30분쯤 걸으면 정상이란다. 산모롱이를 도니 정상 부근은 온통 온갖 건물로 뒤덮여 있다. 건물들은 먼데서 보아도 예사롭지 않게 보였다. 이곳은 중국 사상이나 중국 신앙의 전시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머리 수십 계단을 오르니 ‘碧霞祠’라는 현판이 보였다. 불교 사원은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碧霞’라는 이름이 아옹다옹하는 세상을 초월한 세계에 온 듯한 느낌을 주는 이름이다. 벽하사를 돌아 정상으로 오르는 돌계단에서 바라본 산 아래 세상에는 운무가 모락모락 피어올라 푸른 안개를 이루고 있었다. 저 그 벽하 아래에서 우러러보면 태산에서 비단폭처럼 내려 쏟아지는 햇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벽하사는 옥황상제의 딸이라는 태산여신을 모셔 놓은 곳이란다. 예상했던 대로 도가(道家)의 신당(神堂)이었다.
이 밖에 공자가 올랐던 것을 기념하는 ‘孔子登臨處’라는 커다란 석문(石門)이 있고 공자의 신을 모신 공묘(孔廟)도 있다. 불교의 흔적도 여기저기 보인다. 그러나 역시 정상에 있는 옥황정(玉皇頂)은 도교적인 색이 짙게 드러난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목에는 수많은 암각문들이 있었다. 힘차게 내려 쓴 글씨도 멋있지만, 글자마다 붉은색 혹은 금물을 칠하여 그 강렬한 의미가 가슴을 찌르는 듯했다. 그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이 선바위에 붉은 글씨로 힘차게 쓴 ‘五嶽獨尊’이었다. 중국의 오악 가운데 홀로 존귀하다는 의미이다. 나는 이 글의 의미를 확연히 알 수가 없었다. 오히려 이 정도의 산이 중국의 오악 가운데 홀로 존귀할 정도로 그런 산이라면 그 오악은 가보나 마나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정상 부근에 ‘孔子聖中之泰山 泰山嶽中之孔子’라는 글귀를 보고서야 실제로 공자의 추종자들이 공자와 태산을 동일시 한 흔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태산을 크고 웅장하며 장엄한 산일 것이라고 기대했던 자신이 부끄럽다. 크고 웅대하며 장엄한 산만이 명산이 아닌 것이다. 태산은 그저 밋밋한 산이다. 그저 밋밋한 산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저 밋밋하면서도 평범한 진리를 가르치는 스승이었던 공자와 동일시하였을 것이다. 자신을 찾아오는 수많은 제자를 가리켜 ‘有朋自遠方來하니 不亦樂乎아’하면서 벗으로 생각했던 그의 바탕이 그를 성인으로 만든 것이 아닌가 한다. 축복받는 태어남도 아니고 지극히 평범한 삶으로 도를 실천하여 칠순에 이르러서는 ‘그저 하고 싶은 일을 그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는 경지’에 이르러 성인으로 추앙받게 된 것이다. 후대의 수많은 유학자는 물론이고 진시황을 비롯한 천자들에 이어 현대인에 이르기까지의 참배를 줄줄이 받은 것이다. 결국 세상은 평범하고 수수함으로 수렴되는 것인가 보다.
공자가 내려다 본 세계가 작다는 것은 세상이 좁다는 것인지 높은데서 바라보니 세상의 하나하나가 작게 보인다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내가 내려다보는 세상이나 그를 추종했던 인사들의 정신세계는 한없이 넓고 크게만 보였다. 오르기 전에는 밋밋하고 수수한 산에 대한 실망이 정상에 올라 오히려 한없이 작고 치졸한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2005.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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