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4일
단양 구담봉 옥순봉에서
仙界인가 佛界인가 人間이 아니로다.
옛 사람들은 세상을 그냥 인간의 세계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옛 소설에 나타난 옛 사람들의 세계관을 보면, 사람들이 사는 속된 세상이 있고, 선계가 있고 불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선계는 또 깊은 산에 있는 선계, 월궁이나 별의 세계 같은 천상의 선계, 용궁 같은 수중의 선계를 생각한 것으로 드러난다. 이렇게 공간적으로 세계를 구분할 뿐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구분하여 전세와 현세와 내세의 존재를 믿고 있다. 그리고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세계와 세계의 교류를 꿈으로 그리고 있다. 이러한 꿈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더 명백하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은 질투도 할 줄 알고 복수도 할 줄 알고 세속적 욕망도 갖춘 아주 인간적인 신이라는 것이 우리 신화 다르다. 이렇게 현세만을 인정하지 않고 도 다른 세계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 되어 버렸다. 현실에서의 고통을 도다른 세계에 가면 떠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우리는 오늘 그 인간의 꿈을 실현했다. 우리 백만사(백두산에서 만난 사람들) 회원 일행이 구담봉을 거쳐 옥순봉이라는 선계를 일순한 것이다. 백만사는 지난 8월 5일 백두산 일주를 하면서 만난 좋은 사람들이다. 누구라는 것을 말하면 누구나 다 좋은 사람이라고 인정할 것이다. 감곡중의 이효정 선생님 내외분, 수곡중의 정우종 선생님 내외분, 혜원학교의 이완호 교감선생님 내외분이다. 거기에 우리내외가 기어서 덩달아 좋은 사람이 되었다. 그 중에 정선생님 내외는 일이 있어서 서울에 가시고, 아내가 몸이 불편한 관계로 다섯이 출발했다. 아쉽기는 했지만, 한 차에 다 타고 갈 수 있어서 이야기 꽃이 피웠다.
나는 운전을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길을 택했다. 연풍을 거쳐 송계계곡을 거쳐 수산을 지나 계란재까지 갔다. 나는 가는 동안 얇은 지식을 덧붙여 가며 이야기를 했다. 연풍의 김홍도 이야기, 신선암봉의 상암사, 중암사 이야기, 송계의 수몰 이야기, 단양의 퇴계와 기생 두향이 이야기 등 혼자 취하여 쉴 새 없이 이야기 했지만 다른 분들은 모두 창밖에 보이는 풍경에 취해 있었다. 나는 운전하느라고 그런 모습을 보지 못하고, 다른 분들이 정말로 내 얘기에 취해 있을 것이라고 취해 있었다. 지릅재의 찻집 '램프의 향기'를 지나면서 한 이야기에만 조금 대꾸를 해 주었다. 지난 일보다 가까운 이야기가 좋다.
지난 10월에 친구들과 함께 갔을 때는 옥순봉으로 가서 구담봉으로 돌아 내려왔는데 이번에는 그 반대의 길을 택했다. 그래서 그런지 모든 게 다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구담봉 정상 바로 아래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바위가 있다. 지난번에도 이 바위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사방을 바라보았는데 오늘은 날씨가 좋아 더욱 멀고 개끗하게 봉니다. 멀리 장회나루에는 관광버스가 빼곡하다. 제비봉은 희뿌연 여린 햇살 속으로 푸른 하늘 아래 그 자태를 드러낸다. 청풍호의 푸른 물, 물건너 말목산 바위들이 아름답다.
말목산 그 바위 아래 신선이 내려올 것 같은 강선대라는 큰 바위가 있고 바로 그위에 기생 두향의 묘가 있다. 30대 중반에 친구 餘石 우세종선생과 다른 사람들을 꼬드겨 거기가서 술을 마신 적이 있다. 나는 그냥 술만 마시지 말고 제를 지내 줄것을 제안했다. 그래서 주과포를 준비해서 술을 따르고 함께 간 정상일 선생님이 대금을 불어 제법 두향을 위로한 것이 되었다. 나는 축을 지어 읽었다. 지금도 그 날의 그 술 향기가 바람속에 섞여 오는 듯하다. 이 부근을 지날 때면 나는 항상 퇴계와 두향이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그 때 시작한 두향제가 지금은 단양 문화원에서 지원하는 문화 행사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한 때 풍류로 한량 노릇을 한 것을 가지고 무슨 문화의 지키미나 된 듯이 취해서 또 이야기 한다.
구담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장회나루와 제비봉
그 때 지어 읽은 축을 적어 보자. 잃어버릴 염려도 있고 남이 가져갈 염려도 있는데 여기에 적는 것이 의미 있을 것 같다. 이 시는 도예가 김용문씨가 두향을 주제로 도예전을 할 때 내 이름과 함께 전시회 팜를렛에 적어 내 글임을 확인해 주었다.
(아, 그런데 종일 찾아도 그 팜플렛이 없네요. 나중에 찾아 올리지요.)
1990년 도예가이며 행위예술가인 김용문씨의 두향을 주제로 한 전시회인 <성 두향제>에 대하여 동아일보에서는 다음과 같은 기사를 썼다.
杜香은 15세기 중엽 丹陽의 官妓로 알려져 있으며 李滉이 1558년 단양군수로 부임했을 때 만나 수발은 들었으나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았던 유명한 일화를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향의 묘는 충북 단양군 적성면 성곡리에 있는 강선대에 위치해 있으며 매년 5월 5일이면 단양의 향토사학자 및 시문학자들이 두향제를 지내고 있다.
이번 두향제이벤트를 마련한 김용문씨는 홍익대미대와 대학원을 나와 지난 82년부터 퍼포먼스와 이벤트성이 강한 토우전 수장제 방사방생전 옹관장전 만파식토전등을 열어 독특한 행위미술을 펼치고 있는 작가. 그는 현재 京畿도 廣州군 草月면 雙東리에 빗새가마를 운영하고 있으며 원광대 공주교대 등에 출강하고 있다. ( 동아일보 1990년 8월 17일)
열 여덟이던 기생 두향과 마흔 여덟이던 퇴계선생의 이야기를 기억하면서 그런 낭만적인 사랑이야기가 사실이라면, 그리고 퇴계가 전근 가버린 후 정말로 두향이가 강선대에서 가신 퇴계 선생을 원망하면서 세상을 버렸다는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사랑이야기는 예나 지금이나 지존이나 미천한 신분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한낱 기생의 신분으로 수령에게 진정한 사랑을 기대했다는 것은 두향의 꿈이 야무지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퇴계의 인간적인 면모도 엿볼만하다. 당시 퇴계는 아들과 부인을 잃고 단양군수로 부임했다고 한다. 관기였지만 아름다운 나이인 열여덟두향은 슬픔과 외로움을 아름다운 강선대에서 홀로 삭이는 퇴계의 수발을 들며 그의 높은 인품을 흠모했을 것이다. 성리학자였지만 열린 사고를 가졌던 퇴계는 그런 두향을 아끼고 사랑했지만 그의 어린 몸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퇴계의 형이 충청도관찰사가 되자 바로 이웃인 풍기군수로 옮겨 가게 되었다. 후임군수에게 부탁해서 기적에서 벗어난 두향은 저건너 강선대에서 몸을 버린다. 열여덟 어린 나이의 꽃 같은 사랑이 마음을 쓰리게 한다.
두향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30회 가까이 두향제가 계속되는 동안 처음 두향제를 처음 시작한 사람들은 까맣게 잊고 산다. 그냥 단양의 향토 사학자로만 생각하는 것이다.
유람선에서는 해설하는 사람이 계속 두향이 이야기를 읊어댄다. 사람들은 얼마나 재미있게 들을런지 모른다. 누구도 불륜으로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권력형 비리로 보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 만큼 옛 사랑은 사람들에게 용납되었는지도 모른다. 바위 위에 앉아 말목산 기슭을 바라보면서 공연히 퇴계가 부럽다.
구담봉 소나무
구담봉에서 말목산
전망 좋은 바위에서 두유와 매실차를 마시고 구담봉 정상에 올랐다. 정상을 330m이다. 정상 높은 바위에 올라서도 구담봉은 보이지 않는다. 물건너 금수산 자락에 단풍만 요란하다. 금수산 송신탑은 예전 그대로다. 금수산 정상 바윗돌이 보인다. 예전에 단양여고에서 퇴근길에 바라보면 아랫도리가 움찔거릴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했었는데 여기서 보면 그냥 산이다. 보이는 건 멀리 있는 것만 보인다. 아름다운 것은 멀리 있는 것이 아름답다. 가까운 것은 보이지 않거나 그냥 돌이다. 구담봉은 그냥 돌이고 소나무고 흙이다. 그러나 먼데서 바라보면 아름답다. 여기서는 구담봉을 볼 수가 없다.
나는 나를 볼 수 없다. 나는 나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다. 만약에 보인다면 그건 오만이다. 편견이다. 눈가리고 아옹이다. 위대한 사람도 가까이서 보면 위대함이 보이지 않는다. 공자도 가까이서 바라보면 아마도 노랗게 색바랜 코털에 묻은 딱지만 보고 실망할 것이다.
구담봉에 올라 감탄하는것은 제비봉이나 말목산이나 금수산이나 둥지봉 바위나 청풍호반의 푸르름이지 구담봉은 아니다. 미녀봉에 대한 환상으로 비오는 날 금수산에 올랐다가 실망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환상이 깨져 버렸다. 거기는 미녀의 젖가슴도 아니고 입술도 아니고 콧등도 아니었다. 잡초 무성한 바위 덩이였다. 사물을 멀리 놓고 바라보자. 밟고 섰어도 멀리 있다고 생각하면서 바라보자.
옥순봉과 청풍호반
우리는 구담봉을 돌아 내려서 옥순봉으로 향했다. 내려 오는 길은 마사토라 미끄럽다. 그런데도 여자분들이 아주 잘 걸어서 걱정이 없다. 오히려 내가 헉헉 거린다. 단풍은 절정이다. 경상도 말씨를 쓰는 사람들이 많다. 멀리서도 이제 이 산을 찾는다.
산줄기 하나를 내려 설 때마다 능선 끄트머리가지 가서 물을 바라본다. 건너편 산자락을 바라본다. 새가 앉은 것과 같은 바위가 있어 둥지봉이라고 불리는 바위산이다. 여기서 바라보면 솜씨 좋은 화가가 하늘 도화지에다가 붓에 흐릿한 먹물을 묻혀 휙휙 내려 그은 신품처럼 아름답다. 거뭇한 소나무도 보기 좋지만 금바늘 같은 솔잎을 이고 있는 소나무 단풍이 멀리서도 보이는 듯하다. 바위에는 오래된 물이기가 거뭇거뭇 물이들어 동양화처럼 고전적인 미를 보이고 있다. 물 가까이에 활엽수들은 아직도 물들이기를 끝내지 못한 것 같다. 그 정상에 울긋불긋 사람들이 서 있다. 둥지봉을 올라서서 가은산 줄기가 그림처럼 가뭇하다. 이 모든 산들이 모두 금수산의 자식들이다.
붓으로 그려 놓은 듯한 둥지봉
단풍은 여름이 결정한다. 여름의 날씨가 가을의 단풍을 결정하는 것도 자연의 섭리다. 단풍의 색깔도 그렇고 단풍의 양도 그렇고, 올해처럼 11월 초순까지 단풍이 남는 것도 다 여름의 결과이다. 도 그렇게 호화로운 단풍을 보이지 못하는 것도 여름을 어떻게 보냈는지를 보여 준다. 노년의 모습은 젊음의 시간에 결정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아니 주검의 모습도 결국은 삶이 결정하는 것이다.그렇다면 사는 것이 곧 죽음이다.
산줄기를 돌고 돌아 음산한 그늘을 지나 출렁이는 물가까지 이르렀다가 산 줄기 끄트머리 너럭바위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점심으로 준비한 김밥이 맛있었다. 이효정 선생님 사모님이 준비하신 김치가 참 맛있었다. 김밥 하나를 다 먹었다. 소주도 두잔 마셨다. 다른 분들은 나보다 몇 잔 더 마신 것 같다. 옆에서 식사하던 어떤 분들이 소주를 한 잔 얻어먹자고 했다. 함께간 두분이 모두 소주를 꽤나 좋아하면서도 선뜻 반 병을 내주었다. 나눠 먹는 것이지. 나눠먹는 것은 산에서의 소주 맛을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나눠 마시는 멋을 알고 소주 한잔을 맛나게 마시니 너럭 바위가 곧 신선의 바위였다. 여기가 곧 선계이고 불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것이 없고 네것이 없고 욕심도 없고 놓을 것도 가져갈 것도 없는 것이 여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점심 먹은 너럭 바위에서 옥순봉이 마주친다. 소나무가 멋있다. 옥순봉에 오르면 옥순봉을 볼 수 없기에 서서 계속 옥순봉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옥순봉은 배를 타고 아주 가까이에 가서 바라보면 좋다. 그것보다 더 멋있게 보이는 곳은 바로 옥순대교이다. 그래도 옥순봉에서 바라보면 옥순대교는 흉물이다.
나는 만약에 소나무가 없다면 이 산야가 어떻게 될까를 상상해 보았다. 황량해질 것이다. 우리나라 바위 산에 소나무가 없이 활엽수만 있다고 생각해보라. 육산에도 낙락장송이 고고한 모습으로 성을 두르지 않았다면 어떤 모습일까? 그런데 이 땅에 소나무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야산에는 어린 소나무가 없다. 구담봉이나 옥순봉의 마사 위에 있는 작은 소나무들은 모두 몇 십년씩 된 것이다. 정부에서는 어떤 방법으로 이 조국의 산야에 소나무를 지켜 나갈 것인가? 대책이 없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가슴이 갑갑해졌다.
점심을 먹으면서 바라본 옥순봉 소나무
너럭바위에서 점심을 마치고 서둘러 옥순봉으로 향했다. 옥순봉에서는 옥순대교에 있는 사람들이 손에 잡힐 듯 보인다. 아름다운 경치라고 마냥 서 있을 수는 없다. 나는 정방사 낙조를 제안했다. 정방사에 가본 분들이 없는 것 같았다. 서둘러 계란재로 내려왔다.
옥순대교 휴게소에서 커피를 한 잔 씩 마시고 사진을 찍은 다음 정방사로 향했다. 정방사 입구의 단풍이 절경이다. 아름다운 레이스로 장식한 휘장 아래로 차를 타고 들어가는 신선이 된 것 같았다. 신선의 세계로 들어가는 길목으로 생각된다. 녹음이 짙어 갈 때도 와보고 한여름에도 와 보았지만 이런 운치는 처음이다. 이 길의 끝이 곧 극락이 되는 건 아닌지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했다.
생각했던 대로 정방사 낙조는 장관이다. 넘어가는 해는 절집 지붕에 엎어질듯한 바위에 부딪쳐 마지막 햇살을 쏟아붓는다. 물건너 저멀리 월악산이 보인다. 절을 감싸고 있는 산 줄기마다 저녁 노을에 물든 단풍이 불탄다. 노을은 떨어지는 힘을 다하여 원통보전의 관세음 보살의 아미에 한 줄기 햇살을 보낸다. 자비의 미소가 하루의 피로를 어루만진다. 여기가 바로 불계가 아닌가?
바위 틈에 한 방울씩 솟아나는 부처님의 은혜로 목을 축이고 돌아오는 길을 서둘렀다. 오늘 우리는 또 다른 세계에 대한 꿈을 이루었다. 자동차 길에서 바라보면 이런 세계가 있을 것을 상상이나 하는가? 그러나 상상하는 사람만이 선계를 누릴 수 있다. 또다른 세계를 꿈꾸는 사람만이 그것을 건져 올려 체험할 수 있다.
내려오는 길, 낙엽에 발이 미끄럽다. 내리막길이다. 일상으로 향하는 내리막길이다.
정방사에서 떨어지는 해
*** 사진은 이효정 선생님의 블로그에서 얻어왔음을 밝힙니다.(http://blog.daum.net/leehyojong)
(2007.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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