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2일
아우라지에서 차를 돌려 물안개 피어오르는 강둑길을 달려 다시 읍내로 차를 몰았다. 강은 물이 불었어도 여울이 흰 물결을 일으키며 흐른다. 도로 확포장 공사를 하는지 낙석 방지 공사를 하는지 자동찻길을 강건너 동네 앞으로 옮겼다. 강은 마을 앞을 흐르고 절벽에 부딪치며 주절거리며 흘러간다. 뗏목쟁이들의 노래 소리가 들리는듯하다.
고갯마루에 올라 서니 빗방울은 드물어지고 동쪽 하늘이 부옇게 밝아 오는 듯하다. 정선읍 정선역 앞의 동관식당에 또 갔다. 여기서 황기 족발을 먹었다. 부드럽고 쫄깃쫄깃한 옛맛 그대로다. 사람들이 많다. 예전 투박한 정을 느끼지는 못했다.
황기 족발 - 부드럽고 쫄깃하다.
황기 족발로 늦은 점심을 먹고 바로 이효석 문학관으로 향했다. 본래 문학관 여행은 재미 없다. 그의 문학 세계를 그리며 문학관에 들러 보면 대개가 지방자치단체에서 별 고증도 없이 그의 문학 세계를 겉핥기식으로 그러놓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김영랑 생가를 가 보면 모란을 잔득 심어 놓고 마치 김영랑이 모란 속에서 일생을 보낸 것처럼 꾸며 놓았다. 서정주 문학관에는 국화를 심고, 김유정 생가에는 생강나무를 심는다면 참으로 코미디가 아닌가 싶다. 이런 작위적인 문학관은 작가를 왜곡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이효석 문학관은 메밀꽃 천지일 것이다. 메밀은 원래 투박한 땅에 심거나 흉년이 들었을 때 심어서 허기를 메우는 작물이었다. 이효석이 메밀꽃 필무렵에 설정한 배경은 지금에 비해 농사에 대한 기술이 부족할 때이다. 그래서 아마도 정선, 대화, 봉평, 평창 등 고지대에서 메밀을 많이 심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지 않은가? 처음에는 현실에 관심을 두었지만 후에는 자연에 동화되는 인간의 순수성을 그린 이효석의 문학 세계가 이런 조금은 오도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이효석 생가(개량 기와로 이은 지붕)
생가 앞에는 메밀꽃이 한창이다
생가 헛간에 걸린 지게
우리가 찾아간 이효석 문학관 주변은 메밀밭 천지였다. 생가도 원래 초가였던 것을 관리가 어렵다 하여 개량 기와를 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문학관에 가면 생가를 새로 꾸몄다고 안내판에 적혀 있었다.
나는 비내리는 마당에 서서 이효석이 바라보았을 앞 들을 바라보았다.
철 지난 메밀꽃 필 무렵에메밀꽃 핀 봉평에 와서 보니 가산 이효석은 간 곳이 없고 사람들만 웅기중기 서있다. 생가 아닌 생가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다 가산을 그리는 것일까. 허생원이 그리운 것일까. 아니 이효석을 허생원으로 착각하고 있을지도 몰라. 생가 담벼락에는 지게가 걸렸고 손님없는 찻집에는 잘생긴 독이 예스러운 분위기를 제법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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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가 바로 옆에 있는 찻집
조금 더 내려가 이효석 문학관으로 향했다. 주차장에는 허생원의 것인지 나귀의 것인지 목공예 작품이 두 점 하늘을 향하여 힘줄방망이가 되어 힘차게 서 있었다.
나는 가산처럼 언덕에 서서 마을을 내려다 보았다. 나귀들이 짐을 싣고 달랑거리며 걸었을 봉평의 길에는 자동차가 힘차게 달리고 있다. 찻집에서 여러가지 특산물을 팔고 있었다.
문학관 주차장에 서있는 목공예품
문학관 마당에서 내려다 보는 마을 정경
이효석은 아름다운 단어와 서정적 분위기의 문체를 통하여 소설 문학의 새로운 아름다움을 보여 주었다. 이러한 문체적 특징은 그가 주로 제재로 삼은 남녀간의 성 문제를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삶의 세계로 보여주는데 성공하였다. 이러한 표현 방법은 김동리의 ‘달’이라는 소설에서도 한 번 읽은 적이 있는데 거기서도 무당의 아들인 ‘달이’라는 미소년이 달 밝은 날 밤에 개방된 강가에서의 성행위를 꿈속처럼 신비스럽게 표현하여 놀라기도 하였다. 그런데 김동리는 성행위의 묘사를 통해서 표현하였고 이효석은 서사 구조를 통하여 표현했다는 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이효석은 처음 문단에 나왔을 때는 도시 빈민층을 중심으로 사회의 모습을 고발하는 작품을 썼다. 대개 「도시와 유령」같은 작품들이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1920년대 중반에 결성된 카프에는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으면서도 그런 경향의 작품을 발표한 유진오와 함게 동반작가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런데 30년대에 들어서면서 「豚」을 발표하면서 경향성에서 벗어나 인간의 본능의 자연성을 그려 자연주의 경향을 보였다. 그것이 「메밀꽃 필 무렵」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나는 이것을 이효석의 성장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인간은 순수한 자연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한다. 현실의 세계의 그렇고 그런 일에서 훌쩍 벗어나 자연과 동화되어 그것을 인정하고 신선암봉 절골에서 내려오는 물처럼 그렇게 순수하고 깨끗하게 사는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달관이 인생의 참맛을 아는 것이 아닌가 한다.
철지난 메밀은 점점 하얀 빛이 퇴색되는데 서른여섯 젊은 나이에 요절한 이효석의 한을 아는지 모르는지 비는 누구의 눈물이 되어 하염없이 내린다.
(2007.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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