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답사/우리문화 답사기

법성포 굴비 정식

느림보 이방주 2007. 9. 30. 22:24

9월 23일

 

  불갑사에서 나오는 길에는 벌써 사람들이 드믓하다. 명절을 준비하느라 모두 돌아간 모양이다. 행사도 시들하다. 꽃무릇이 피는 때를 기다려 축제를 해야하므로 대부분 추석 즈음해서 행사를 하게 되므로 그럴 것이다. 게다가 비까지 내리니 시들할 수밖에 없다. 덕분에 차도 밀리지 않아 좋았다.

 

  법성포를 찾아가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다. 나는 친구에게 가는 길을 맡겨두고 편안하게 뒤에 앉아 길가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비를 내리는 하늘 아래서도 벼는 누렇게 색갈을 바꾸고 있다. 하루 종일 햇살을 쬐어도 아쉬운 결실일 텐데 이런 날씨에도 고개 숙인 볏논이 기특하다. 우리네 살아가는 일상도 해바라기를 할 필요없이 바라는 바가 절로 이루어져 저렇게 고개를 숙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맡겨둔 길은 얼른 보아도 헤메는 것 같다. 이 친구가 네비게이션이 일러주는 대로 운전하지 않고 기억을 더듬어 가는 모양이다. 시간이 이미 많이 지나니 배가 고프다. 그러나 참을 수밖에 없다. 한동안 도는 듯하더니 법성표 이정표가 드디어 나왔다. 이미 인터넷에서 맛난 집을 검색해온 모양이다. 일번지 식당을 찾아 갔다. 일번지 식당은 포구 바로 앞에 있었다. 포구 주차장에는 차가 즐비하다. 빗방울 듣는 거리에는 비린내가 퍼지고 사람들은 비를 맞으면서 굴비집과 식당을 기웃거린다. 명절이라 그런지 사람들로 분주하다. 우리는 바로 일번지 식당을 찾았다.

 

  굴비정식 15,000원짜리를 주문했다. 넷이면 60,000원이다. 속으로 '이 사람 출혈이 크겠는 걸'하면서 약간 미안했다. 정선에서 메밀 음식으로 속만 훑어내려 주었는데 차림표의 그림만 봐도 부자의 밥상이다. 설명에는 서른 두가지 반찬이 나온다고 되어 있다. 생선이나 젓갈을 좋아하는 나는 배에서 조급증이 날 정도로 기다렸다. 그리고 도우미 아주머니들에게 아이처럼 보챘다.

 굴비 정식 4인 분(먹고 나서 생각해 보니 60,000원이면 비싼 편이다) 

 

  이윽고 세 번에 걸쳐 날라온 밥상은 그림과 똑 같다. 상을 다 차린 후에 수저를 드는게 예의지만 참을 수 없다. 나는 게장에서  나는 비릿하면서도 짭잘고름한 냄새에 속까지 쓰렸다. 회에 젓가락이 먼저 갔다. 회는 그냥 회였다. 도미 구이, 가자미 구이, 갈치 구이, 고등어 같은 것들도 알맞게 구워졌다. 튀김은 많지 않아 좋았다. 새우, 갈치 새끼 볶음 이외에 명태전 같은 생선전이 몇 가지 있었다. 나는 젓갈을 좋아하는데 젓갈은 쭈꾸미젓, 조개젓 등 두세 가지 올라왔다. 굴비는 한마리식 따로 놓았다.  그런데 진짜 입맛을 돋구는 것은 제일 나중에 밥과 한께 나온 조기 매운 탕이다. 조기를 서너 마리 넣고 고사리 파 같은 것들을 넣어 끓였는데, 그렇게 큰 정성을 들인 것 같지는 않았으나 신선한 조기를 넣어서인지 맛은 시원하고 좋았다. 조기매운탕만은 재료만 주고 입맛대로 끓여 먹으라고 하면 더 맛나게 끓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굴비를 보면 생각나는 친구가 있다. 함께 근무하던 친구 구선생님이다. 서천이 고향인 그친구는 고향에 갔다오면 굴비 한 두름씩 갖다 주었다. 구선생은 잘 마른 굴비맛 같은 마음씨를 지녔다.  교직관도 뚜렷해서 배울게 많았다. 참으로 배울게 많았다. 그런데 나는 그 친구에 해준게 없다. 그냥 말동무 해준 것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가 내게 가까이 온 것 만큼 그렇게 가까이 가주지 못했다.  건강이 나빠 늘 고생했던 친구는 지금 이 세상에 없다. 이 친구에 대한 얘기는 그 냥 짧게 하고 말기에 너무 미안하다.  굴비를 먹으면서 입은 즐거웠지만 세상에 없는 구선생 생각으로 내내 우울하다.

 

법성포 일번지 식당

  법성포 일번지 식당은 좀 비싼 듯해도 음식이 모두 입에 맞았다. 도우미 아주머니들도 모두 친절했다. 슬쩍슬쩍 던지는 농담이 이웃에 온 듯했다. 인심도 좋다.

 

법성포 굴비 거리

  빗방울 떨어지는 포구에 나오니 굴비 파는 집이 굴비두름처럼 즐비하다. 우리는 부른 배를 두드리며 귀로에 올랐다. 명절밑이라도 차는 밀리지 않고 쭉쭉 빠진다. 이렇게 또 즐거운 하루가 간다. 안락한 시트에 푹 빠져 굴비에 얽힌 어린 시절이나 구선생님에 대한 그리움이 굴비두름에서 굴비가 빠지듯 떠오른다. 친구는 가끔씩 빗방울 듣는 서해안 고속도로, 호남고속도로를 잘도 드나들며 청주로 달린다. 나는 상념은 우울한 기억과 행복한 포만감을 넘나들며 옅은 잠길을 더듬었다.

                                                                                                                    (2007. 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