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의 가을 1
- 장은 입장이 최고래요-
9월 22일
정말 날은 기가 막히게 잡았다. 쉬는 토요일에다가 한가위 대목장날이기 때문이다. 나는 대목 장날 흥청거리는 장판을 상상하여 이날을 손꼽았다. 그런데 이른 새벽 청주에서 떠날 때는 날씨가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제천을 지나자 가는 구멍으로 뿌리는 물줄기 같은 빗방울이 흩뿌렸다. 그러다가 강원도 땅에 들어서자 비는 억수로 퍼붓기 시작한다. 영월을 지나 비행기재 터널을 지날 때는 앞이 보이지 않는다. 괸 물에 차가 기우뚱거려 가슴에 찬 바람이 일어난 것도 몇 번이다. 오늘의 여행은 헛수고라는 생각으로 다시 올날을 꼽아 보았다.
그러나 열시가 좀 넘어 도착한 정선은 변함없는 장날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빗줄기는 사정없이 거세어도 시장은 사람들로 흥청거리고, 비옷 입은 장꾼들은 노래인지 소리인지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나는 키가 크기 때문에 비닐 천막 속을 우산을 쓰고 다니기가 다른 사람보다 민망하다. 더구나 본의 아니게 우산에 걸린 비닐 천막에서 물이 와르르 쏟아지면 몸둘 바를 몰랐다. 사람들은 모두 '와- '하고 웃으면서 재미있다는 듯 비를 피고는 그만이다.
메밀전병
우리는 먹거리 장터에 갔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먹는 것보다는 2004년에 쓴 '정선의 여름' 일곱 편에 붙일 사진을 찍는 일이었다. 나는 500만 화소짜리 구형 소니 디지털 카메라에 더욱 공을 들였다. 먼저 메밀 전병을 만들어 파는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는 먼저 뜨겁게 달군 번철에 기름을 두르고 묽은 반죽을 한 국자 떠서 휘 두른 다음 숟가락으로 얇게 폈다. 그리고 갖은 양념과 함께 볶아 놓은 김치로 소를 넣은 다음, 도르르 말아 뒤집어 한 번 더 익히면 노릇노릇한 전병이 되었다. 메밀 전병은 2000원에 세 개를 주었다. 3년 전에 비하여 많이 비싼 것이다. 그래도 많이 팔아 주고 싶었지만 많이 살 수가 없었다. 더 많은 것들을 먹어봐야 하기 때문이다. 따끈하면서도 고소하고 매콤한 맛이 깔금했다. 정선의 투박한 할머니 손맛이 배어 나왔다.
다시 비를 맞으며 시장 골목을 두리번거렸다. 지난번에 만났던 인심 좋은 옥수수술빵 아주머니를 찾기 위해서였다. 입심 좋고 손이 커서 막걸리 향이 배어 있는 옥수수술빵과 감자떡을 몇 개씩 더 얹어주던 기억을 더듬어 찾아간 곳에는 아주머니는 보이지 않고 빵 찌던 가마솥만 두개가 덩그러니 걸려 있다. 비가 와서 장사를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이 돌아서는데 시장 한 구석에서 메밀 전병, 메밀전, 수수부꾸미, 녹두전을 만들어 소주와 함께 파는 할머니와 그 며느리인지 젊은 아주머니를 만났다. 전방이 비교적 크고, 의자와 취사도구를 잘 갖추었다. 긴 의자에 앉아서 녹두전을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고 있는 시골 아낙네도 전과는 다른 풍경이었다.
메밀전과 녹두전 수수부꾸미를 만드는 중년의 부인
수수부꾸미
녹두전
우리는 녹두전과 수수부꾸미를 주문했다. 녹두전은 메밀보다 고급이다. 녹두전 한장, 수수부꾸미 세 개를 주문했다. 녹두전이 1000원, 수수부꾸미가 2000원이었다. 너무 적게 주문해서 조금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수수부꾸미는 정선찰수수를 갈아서 팥으로 소를 넣고 기름에 지져낸 것이다.
녹두전에는 파나 절이 배추 이외에도 고기가 조금 들어 있어 옛 정선 맛은 아닌 것 같았다. 도톰한 녹두지지미는 고기를 갈아 넣어 기름진 맛이 예전에는 뱃살이나 붙은 이들의 안주로 쓰였을 것 같다. 수수부꾸미는 들어있는 소는 팥이라 그냥 맛은 괜찮아도 쌀보다 5배도 더 비싸진 수수값 때문인지 옛날 제비치기로 불리던 붉은 색을 잃었다. 붉은 빛에 윤기가 짜르르 흐르고 입에 척척 늘어붙던 수수부꾸미가 아니다. 아마도 쌀이나 다른 재료를 섞은 것 같다. 그래서 수수만의 찰기도 고소함도 잃은 것 같았다.
그래도 구수한 수수부꾸미와 백지처럼 얇은 메밀전을 안주로 이미 말소리가 흩어진 소주 마시는 아낙네들은 아침부터 왜 소주를 마시느냐는 친구의 물음에 "장은 역시 입장이 최고래요."하고 웃으며 소주잔을 건넨다. "맞아! 장날은 그렇게 거친 먹거리에 꺼끌꺼끌해진 입을 위해야지" 나는 잔을 받고 싶었지만 운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양했다. 메밀전만은 파, 절이배추가 그냥 그대로였다. 그런데 간장이 토종 간장이 아니다. 아, 정선은 옛 정선이 아니다. 정선 오일장이 관광 상품이 되더니, 서울 사람 입맛 맞추다가, 정선 사람 돈맛 맞추다가, 옛 정선의 맛을 잃었다. 제비치기가 아니라 그냥 서울말로 수수부꾸미다. 그래도 장은 역시 입장이 최고래요. 그 말만 정선 말이다.
아내와 친구 내외가 모두 올챙이국수를 먹어 보지 못했다고 해서 올챙이국수를 파는 식당에 들어 갔다. 나는 의풍에 근무할 때 동네 사람들에게 참 많이도 얻어 먹었다. 옥수수를 갈아서 묽게 반죽하여 체에 받치며 끓는 물에 떨어뜨려 찬물에 헹구어 내면 꼭 올챙이 모양이 된다. 세상에 노란 올챙이도 있는지 모르지만 대접에 담아 놓으면 올챙이가 꼬물꼬물 헤엄칠 것만 같다. 잘 떠지지 않는 이 녀석들을 숟가락으로 간신히 떠서 입에 넣으면 뱃속 여기저기를 제 세상인양 헤엄쳐 다닐 것만 같다. 의풍에서는 이것을 '올챙이묵' 또는 '올창묵'이라고 한다. 넷이 들어가 올챙이 묵 한그릇, 콧등치기국수 한그릇, 메밀전 한 접시를 주문하니 주문 받는 여인이 물끄러미 바라본다.
한꺼번에 만들어 물에 담가 놓은 올챙이 국수(단양에서는 올챙이 묵이라고 한다)
콧등치기국수
콧등치기 국수는 메밀로 만들었기 때문에 차가운 국물에 말면 뻣뻣해져서 후루룩 빨아들일 때 콧등을 치기 때문에 콧등치기라고 하고, 뜨거운 국물에 말면 부드러워져서 느름국이라고 한단다. 콧등치기 국수에 대한 얘기는 '메밀의 신화'라는 글에서 자세히 섰기 때문에 생략한다. 메밀전은 한없이 얇았다. 얇을수록 맛이나는 거니까 탓할 것은 없다. 지난번에는 콧등치기를 뜨겁게 먹었기 때문에 차가운 국물에 말아온 것이 새로운 맛이다. 담백하지만 뻣뻣해서 날씨 탓인지 구수함을 모르겠다.
아우라지 뗏목이 서울로 죽음 가까운 길을 떠날 때 아낙들은 이렇게 콧등치기 국수를 말아 남편을 대접했다. 메밀 가루를 반죽하여 서둘어 밀어 칼로 숭덩숭덩 썰어 김치 고명을 얹은 국수는 잘 넘어가지 않는다. 뻣뻣해진 국수가락이 후루룩 콧등을 친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했을 것이다. 더욱 쓰린 아내들의 가슴을 친다.
여기서 수수쌀과 기장을 샀다.(수수쌀 1600g -8000원, 기장 800g-7000원)
비오는 날의 구성진 정선 아리랑
솜씨�은 짚 공예
오랜만에 떡도 쳐 보고
시장 안에 한 광장에서는 공연이 열리고 있다. 정선에서 생산디는 여러가지 잡곡과 더덕, 능이 버섯, 황기를 늘어 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사는 사람은 별로 없어도 모두 흥겹고 신이 난다. 한 옆에서는 노인들이 짚신, 삼태기, 다래끼를 만들고, 창을 하는 여인들이 정선아리랑을 불렀다. 나는 인절미를 만드는 떡메가 제일 궁금했다. 어렸을 때 치던 떡메를 생각하며 한 번 함게 쳐 봤다. 옛날의 솜씨가 나올 수 있을까 믿어지지 않았지만 그런대로 칠만 했다. 다른 사람들이 치는 것보다는 실수가 적었다. 그러나 인절미는 그리 맛이 나지 않았다. 만드는 과정이나 흥겨움은 옛 그대로인데 맛은 옛맛이 아니다. 이제는 행위 예술로서의 가치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떡치는 맛은 옛날 같은데 인절미에 쓰인 쌀은 우리 찹쌀이 아닌것 같았다. 콩고물도 고소한 맛이 없었다. 숨가쁘게 한 판을 다 쳤는데 2000원을 내야 한 접시를 주었다. 인심은 옛 인심이 아니라도 흥은 예전 그대로였다.
인절미 한 접시를 사 가지고 우리는 서둘러 아우라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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