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만남은 어떤 것이었을까? 어떤 만남으로 오늘의 나를 이루었을까? 부모와의 만남, 학문과의 만남, 역사와의 만남, 직업과의 만남과 같은 의미있는 만남으로 나의 삶은 다져지고 장식된다. 교사가 된 것과 같이 나의 의지로 선택한 것도 있지만, 부모님이나 역사를 만난 것과 같이 의지와 상관없이 운명적인 만남도 있다. 어쨌든 그 만남의 결과로 삶의 여정에서 때로는 복사꽃 흐드러진 봄의 정원을 거닐었고, 때로는 진눈깨비 얼어붙은 엄동의 자갈길에서 수없이 뒤뚱거려야 했다.
지난 오월에는 수련과 불두화의 만남을 보았다. 학교 정원에 수조를 만들어 수련을 몇 뿌리 심었는데, 진흙을 뚫고 몇 줄기가 올라와 잎을 피운 것이다. 청아하고 넓은 잎사귀가 물위로 올라와 하늘을 받들 듯이 바라졌다. 하늘이 그리워 눈부신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다. 차진 진흙을 뚫고 나오느라 상했을 법도 한데 넓게 바라진 잎의 표면이 청개구리도 넘어질 만큼 매끄럽다.
가지가 많고 잎이 넓어 수조에 그늘을 지워주던 불두화 나무가 꽃을 피웠다. 부처님의 꼬불꼬불한 머리 같아서 불두화라 부른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소담한 꽃송이가 바라보는 사람의 가슴을 부풀게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밤에 비바람이 몰아쳤다. 깨끗하고 푸른 하늘만 있는 줄 알았던 불두화가 하늘이 내린 된바람을 맞은 것이다. 밤새 비바람에 흔들렸을 무직한 꽃송이가 가루가 되어 하얗게 쏟아져 내렸다. 아침이 되자 비에 씻긴 하늘은 한 점 티도 없이 개었다. 바람에 부서진 하얀 꽃잎들이 물위를 떠다니다가 수련의 널따란 잎사귀와 만났다. 불두화의 부서진 꽃잎이 반짝반짝 윤기 흐르는 수련의 바라진 잎사귀 가장자리에 하얗게 띠를 둘렀다. 하늘이 그리운 수련과 궁금한 물속을 들여다보던 불두화가 만난 것이다. 기막힌 조화이다. 마치 부처님의 수많은 머리카락이 번뇌를 감싸안은 것 같았다. 번뇌를 떠나고자 하는 소망과 제생을 구원하고자 하는 자비의 만남이다. 나는 그것을 들여다보며 결국 번뇌와 자비는 하나로 만난다는 것을 알았다. 서로의 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한 곳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느 햇살 밝은 날 아침에 수련이 한 송이 꽃을 피웠다. 엷은 분홍색 꽃이 흠집하나 없다. 진흙 속에서도 뿌리가 가진 소망만은 맑고 깨끗한가 보다.
저 깊은 수심
번뇌의 진흙 속에서
기도 한 줄기
꽃을 피웠네.
소망을 이루었네.
칠월의 오후에 조령산 신선암봉의 들머리인 신풍리 절골에 갔다.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고 그 아래 농사꾼들의 쉼터가 있는 소박한 이 마을에는 '절골'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은 집들이 많이 들어섰다. 드나드는 사람도 없이 산 밑에 커다랗게 버티고 서 있어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는 기도원, 무슨 종교 단체의 수련원, 돈 많은 이들이 요란하게 지어 놓은 별장 같은 건물이 오히려 마을에 흙탕물을 일으키고 있다. 수렁을 벗어나게 한다는 그들의 구호가 오히려 마을을 진수렁으로 만들어놓았다.
사람들이 모여 수군대는 무슨 기수련원을 지나면 바로 물소리가 요란하다. 절경이다. 암벽사이 숲속을 소리 지르는 계수가 어우러지는 절경이다. 우거진 숲, 쏟아지는 물줄기, 줄줄이 이어지는 폭포가 시원하다. 하얀 바위―검은 실타래를 염색하여 걸쳐 놓은 것처럼 물때가 곰삭아 검은 얼룩이 진―에는 미끄러지듯 소리도 없이 물줄기가 흘러내린다. 계곡은 수렁을 빠져나와 꿈의 언덕에 오른듯 개운하다. 피안에 이른 것처럼 햇살뿐 아니라 계수도 바람도 녹음도 모두가 눈부시다.
멀리 거대한 암벽을 바라보면 산은 온통 금방 땀을 씻은 건장한 사내의 근육질처럼 꿈틀거린다. 우거진 녹음을 바라보면 산은 금방 고개를 뒤로 젖히고 비누거품을 씻고 나오는 물 묻은 여인처럼 신선하다. 바위 위에 서서 고꾸라지듯 쏟아져 내려오며 튀기는 물줄기를 바라보면서 탄성을 지르다가 누구에게든 물소리를 들려주려고 전화를 열었으나 통하지 않는다. 끊어진 세상이다. 세상과는 녹음과 물소리가 이미 벽을 둘렀다.
절벽을 오르고 암벽을 돌아 중암이라는 작은 절에 들렀다. 암벽으로 둘러싸인 움푹한 골짜기를 헤집고 간신히 절집이 두어 채 들어앉았다. 장송이 몇 그루 자연스럽게 단청을 이루며 암자를 에워 싸고 있다. 조용하다. 풍경소리도 조심스럽다. 절집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갈라진 계수가 소리도 없이 미끄럼을 탄다. 마치 부처님이 소리 없는 미소로 자비를 산 아래 바깥 세상으로 흘러 보내듯 그렇게 조용하다. 머위나 상추 같은 채소가 고즈넉한 풍경소리에 정갈하다.
스님은 혼자 이른 저녁공양을 들고 있었다. 합장 목례를 하며 나도 불자임을 드러내었다. 여섯시밖에 안되었지만 산그늘에 이미 어둑하다. 어둑한 스님의 방에는 불도 없다.
용화전에 들렀다. 향을 피우고 얼마 안되는 불전을 넣고 돌아 나오는 다리가 떨린다. 다 넣지 못하고 도로 욕망의 주머니에 집어 넣은 속세의 찌꺼기가 맘에 걸린다. 돌아서는 순간 "다 비워라. 모든 것을 다 비워라. 어리석은 중생" 하는 꾸짖음이 들리는 듯했기 때문이다. 조용히 그러나 정성을 다하여 삼배를 올렸다. 땀이 한 방울 부처님 앞에 떨어진다. 가슴에 연꽃이 핀다. 쓸데없는 마음의 수렁에서 헤매던 마흔 여덟에 부처님 앞에 백팔배를 올리며 참회한 적이 있다. 그 때 와이셔츠에 땀이 배었다. 오늘 부처님과의 만남에서는 삼배만으로도 땀방울이 떨어진다.
문을 닫고 돌아서는데 멀리 부처님이 신선암봉 푸른 산봉우리의 모습으로 하늘 위에서 빙긋이 웃고 서 계신다. 한 줄기 바람을 보낸다. 온몸의 땀을 순간에 씻어간다. 내려오는 길에 다시 스님에게 들렀다. 스님은 머리가 하얗다. 불두화 같다. 그러나 얼굴에는 벌개미취꽃 같은 윤기가 흐른다. 안과 밖이 다 산에 익은 모습이다. 아무것도 드릴게 없다. 가지고 간 초정 약수 한 병을 드렸다. 바위에 앉아 서산을 바라보며 마시려고 가져간 두유도 스님에게 드렸다. 차라도 한잔 들라는 스님의 말씀은 뒷날로 미루었다. 젊지도 늙지도 않은 그 스님에게서 부처님의 모습을 보았다. 그의 머리카락이 불두화 꽃잎의 모습으로 내안의 연꽃을 감싸안을 것만 같았다.
내려오는 길이 가볍다. 물소리도 잠잠하다. 지는해가 우거진 활엽수 사이로 햇살을 쏟아 붓는다. 나뭇잎들이 초록색 셀로판지처럼 투명하다. 또 다시 온 몸이 땀에 젖었다. 찌든 세속의 찌꺼기들이 배어나와 찌적찌적 쌓이다가는 맑은 바람에 날아가곤 했다. 바람은 마음의 때를 날려 보내고 물은 내 손의 죄를 씻어 간다. 가볍다. 육신이 참 가볍기도 하다.
저 깊은 가슴
번뇌의 수렁에서
얽힌 욕망의 실타래
한 줄기 바람에 날렸네.
허공으로 날렸네.
칠월의 산행에서 지나간 오월의 꽃을 만났다. 오늘 만남은 내안의 정원에 연꽃을 피웠다. 누군가 내안의 연꽃에도 자비의 띠를 둘러 줄 것만 같다. 한 순간일지라도 욕망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다. 칠월의 만남으로 나래를 달고 날아갈 것만 같다.
(2007. 7. 6.)
'느림보 창작 수필 > 껍질벗기(깨달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벗님네야 벗님네야 -비로산장에서- (0) | 2011.08.26 |
---|---|
蘭에 물을 주다 보니 (0) | 2011.04.27 |
아침 햇살 같은 고독 (0) | 2006.12.25 |
안개 속의 소나무는 (0) | 2006.11.23 |
내안의 소나무 (0) | 2006.04.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