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21세기 수필, 머묾과 벗어남의 미학美學
천명관의 장편 〈고래〉를 읽고 충격을 받았다. 이 작품은 인간의 꿈과 욕망 그리고 운명이나 현실과의 갈등을 다소 냉소적이고 해학적인 어조로 풀어낸 작품이다. 서사의 범위가 엄청나게 큰 데에도 놀랐지만, 규범과 상식을 벗어나는 낯설게 하기나 현실과 환상 사이의 드나듦의 서사구조는 읽는 사람을 빠져들게 했다. 처음에는 과연 현대에 창작된 소설인가 할 정도로 전기성傳奇性을 보여 황당하다가 어느 틈에 현실로 돌아온 서사에 빨려드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상식에서 벗어나는 듯 되돌아오고 되돌아오는 듯 벗어난다. 염상섭의 〈삼대〉나 채만식의 〈태평천하〉처럼 단군신화를 원형으로 하는 삼대구조에 머물면서도 완전한 혈통도 아닌 여성 중심의 삼대구조로 틀을 벗어난다. 현실과 환상, 인물과 동물, 야생과 문명, 죽은 자와 산 자, 여성과 남성의 드나듦이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꿈과 욕망을 실현하는 서사의 갈등이 결국 무無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머묾과 벗어남의 미학美學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고래〉는 2004년 초판이 나온 이래 거의 20년 만에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던 작품이다. 미래를 내다본 작가의 용기에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수필은 일상의 철학적 해석이다.’라는 나의 수필관이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우리 수필은 일상을 벗어나서 수필의 문학성을 제고하자고 하면서 일상을 벗어나지도 못하고, 삶의 철학을 바탕으로 해석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다. 수필은 머물러 있고 수필 평론은 주례사를 하듯 머묾에서 벗어날 줄 모른다. 어미 품으로 파고들지 못하고 서쪽하늘에 대고 삐악삐악 투정하는 서리병아리처럼 문단의 홀대를 불평만 한다. 수필문단이나 수필가가 머물러야 할 곳과 벗어나야 할 방향을 모색해야 할 때임을 자각해야 한다.
최근에는 AI가 예술 창작까지 대신하는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수필은 감성과 이성 중심의 문학이고 관조와 자아성찰의 문학이다. 아무리 인공지능이 첨단을 걷는다 해도 수필가의 감성이나 성찰을 대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수필은 철학의 빈곤 시대에 인간을 새롭게 탐구하고 영혼의 울림과 영적 깨달음으로 인간의 아픔을 치유하는 문학으로서 자리를 확고히 해야 한다. 지난 세기를 반성하며 21세기가 요구하는 수필창작의 방향은 여러 가지 제시할 수 있겠으나 머묾이라는 의미로 한국 전통 수필의 구조를 지키면서 새로운 시대에 맞추어 벗어남의 방편으로 수필에 에코페미니즘과 섹슈얼리티 수용의 필요성을 제기하고자 한다.
◇ 전통수필의 구조와 정서에 머물기
‘수필은 일상의 철학적 해석이다.’ 이 말은 한국 수필의 태동을 파악하기 위하여 고전수필을 읽으면서 얻어낸 수필관이다. 일상은 체험한 사실이거나 소환된 기억이며 해석은 삶의 철학을 바탕으로 찾아낸 의미이다. 해석은 체험과 사실이라는 존재자가 의미 있는 존재로 개념화되는 과정이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이규보나 이곡의 고려 수필, 박지원의 조선수필이 윤오영, 법정의 현대 수필에 전승되어 변환하고 성장하는 역사를 살펴보면 의미 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 수필가들은 체험한 사실을 철학적으로 해석하여 사람살이의 과정에서 부닥치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독자의 공감을 불러왔다. 이러한 전승과정을 살펴보면서 21세기 수필이 머물러야 하는 자리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이 될 것이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은 ‘오천축국으로 여행 갔던 기록’으로 8세기 인도와 중앙아시아에 관한 기록으로는 세계에서 유일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혜초라는 작가가 직접 체험한 사실에 구법자의 철학이 깃들어 있다. ‘사실 체험+해석(의미화)’의 이러한 사유의 구조는 오늘까지 우리 수필의 원형archetype이 되었다.
고려말의 이규보나 이곡 등에 의해 창작된 수필은 한문으로 기록되어 전한다. 고려시대 수필은 형상화 측면에서 완결된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규보의 〈이옥설理屋設〉, 〈슬견설虱犬設〉, 〈경설鏡設〉이나 이곡의 〈차마설借馬說〉 같은 설設은 사실과 체험에서 삶의 보편적 의미를 발견하여 독자를 설득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여기서 자신의 심리 변화를 놓치지 않고 성찰하여 이성적 판단을 통해 사람들을 비판하기도 하고 설득하기도 한다. 그 특징은 사실과 체험을 제시한 부분과 해석하는 부분으로 양분되어 있다는 점이다. 왕오천축국전의 구조가 자연스럽게 계승 발전된 것이다.
조선시대는 한문수필 이외에 한글수필이 등장하였다. 대부분의 사대부들은 한문을, 사대부의 부인이나 궁중 나인은 한글을 표기수단으로 삼았다. 한문수필 작가는 강희맹, 서거정, 성현, 김만중, 유형원, 이익, 박지원 등이 있고, 한글수필은 왕궁의 나인과 여성들로 의령 남씨, 유씨 부인. 혜경궁 홍씨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의 작품은 표기 수단은 달라도 구조는 같아 보인다. 곧 고려시대 수필의 ‘사실 체험 + 해석’이라는 구조를 원형으로 고수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다만 고려수필이 사실과 해석으로 단순하게 양분하는 구조인 반면, 조선수필은 체험한 사실과 일화마다 해석하고 의미를 찾는 다변적인 구조로 계승 발전하였다. 거기에다가 논리적인 분석과 정서적인 심의가 배어 있는 것도 발견할 수 있다. 연암 박지원의 〈일야구도하기〉를 비롯한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고려수필의 구조를 계승하면서도 다변화되어 문학적 미감이 한층 깊게 드러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유길준의 〈서유견문〉에서 비롯되어 1910년 이후 우리 수필은 서구의 에세이를 받아들여 빠르게 성장한다. 작품 구조는 조선 수필을 계승하였으나 작가의 내면적인 자아성찰의 문제들에 격동기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번민이 가미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1930년대에 수필문학 전문지인 《박문》, 최재서가 주관했던 《인문평론》, 이태준이 편집을 맡았던 《문장》 등에 수필 고정란이 생기면서 수필문학은 전문화되기 시작했다. 김기림, 김진섭 등이 서구의 수필 이론을 받아들여서 직관적이고 관조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든지 근원적으로 인생과 자연을 음미하는 조선시대 선비사상이 구성법과 함께 계승 발전되었다.
전문적인 수필가들이 등장하면서 《수필문학》, 《한국수필》 등의 수필 전문지가 간행되었다. 수필가로는 김소운, 피천득, 윤오영, 법정, 서정범, 김규련, 목성균을 들 수 있다. 수필문학이 새로운 시대에 들어서면서 제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특히 윤오영이나 법정의 수필은 고려에 이어 조선시대에 계승하여 발전시킨 한국 전통수필의 구조 뿐 아니라 의미화의 방법까지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인생에 대한 관조적 성찰, 조선의 전통적인 가치관, 선비 사상까지 계승되었다. 전통수필의 구조적 특징은 20세기를 마감하면서 등장한 김규련에 이어 목성균에 이어졌다. 목성균 수필가는 한국인의 토속적인 정서를 가미한 작품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수필문학이 수용하기 어려운 섹슈얼리티를 수용하여 고백의 진정성을 보여주어 작품성을 더하였다. 그는 삶의 주변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일상과 평범한 이웃에게서 삶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여 아름다운 언어로 진솔하게 고백함으로써 전통수필에 머묾과 섹슈얼리티를 수용하는 벗어나기에 공헌하였다. 깊이 있는 철학을 바탕으로 삶의 문제를 개념화해야 문학적 긴장감을 더할 수 있다는 여지를 후배 수필가들에게 과제로 남겼다.
전통수필은 체험과 사실을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구조이다. 전통수필은 교술적 진술에 철학적 해석과 수필적 상상을 통한 형상화가 이루어져 서사와 서정이 통합된 생활의 문학이다. 그러므로 전통수필은 에세이도 미셀러니도 아니고 한국 고유의 수필[supil]이다. 전통수필은 현대화 과정이나 서구의 에세이가 수입되는 과정에서 처음 생긴 것이라 보기도 하는데 매우 잘못된 자기 비하이다. 최근에 한국인의 정서와 삶의 철학을 수용하는 전통수필의 구조로 돌아서고 있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수필과 관련한 우리의 사고 체계가 이미 전통수필의 구조에 젖어 있어서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 생태 수필로 벗어나기
21세기 수필은 ‘사람과 치유’가 중심 화두로 떠올랐다. 이 말을 언뜻 들으면 인간이 세계의 중심인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류는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는 하나의 종種에 불과하다는 사고로 세계를 바라보아야 한다. 곧 세계의 주인은 사람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종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사고로 생태계에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과 치유라는 진정한 의미는 에코페미니즘을 사유의 바탕에 두어야 한다는 말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에코페니미즘ecofeminism은 생태주의ecologism와 페미니즘feminism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말이다.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이 남성에 비해 사회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은 생태계에서 인간을 중심으로 생각하면서 자연을 우습게 아는 사고와 같다고 규정한다. 그러면서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고 생태계에서 하나의 종임을 자각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생태계에서 다른 종을 지배하고 스스로를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사상은 인류사회에서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고자 하는 행태에 연결된다. 이와 같이 생태주의와 페미니즘은 하나로 연결되는 사고이기에 에코페미니즘이 새로운 시대에 지향해야 할 가치라고 생각한다.
에코페미니즘은 21세기 사회와 모든 삶의 문제를 폭넓게 수용할 수 있다. 자유주의, 사회주의, 페미니즘, 환경주의 등 어떤 사회적 정치적 문제든 종합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본다. 하층민이나 가난한 사람들 또는 약소국가는 아직도 짐승처럼 취급되고 있고, 여성은 남성 못지않게 중요한 일을 하면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학대 받는 아동들, 성적으로 상품화되는 여성들의 문제가 이 시대의 시급한 문제이다. 사람의 장기를 위해 사육되는 돼지, 달걀과 고기만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 닭도 지구 생태계의 불평등한 모습이다. 최근 전쟁의 위협이 거세어지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핵무기에 의한 위협, 산업과 기술에 의한 약소국에 대한 위협 등 지구생태계는 경합의 장소이고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에코페미니즘을 사유의 바탕에 두는 사람들은 이러한 현실을 인류가 지구를 강간하는 행위라 표현한다. 종과 종의 경합, 사람과 사람의 경쟁, 국가와 국가의 경쟁 등 끊임없는 경합과 싸움이 우리 세대에 도전해오고 있다.
에코페미니즘이 지향하는 세계는 환경론자들의 생각과는 많이 다르다. 환경론자들은 자연환경을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는 터전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보호함으로써 인간의 삶을 개선하고자 하는 데에 목적을 둔다.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어 삶의 세계를 열어가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비교적 피상적이라 할 수 있다. 치유의 문학인 수필이 새롭게 열어가야 할 화두 가운데 하나로 에코페미니즘을 들어도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것이 21세기 수필가들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섹슈얼리티sexuality는 생물의 성별과 성적 행위 따위를 통틀어 일컫는 말로, 인간의 경우 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태도, 감정, 욕망, 실천, 정체성, 사고, 가치관 등을 포괄하여 이르는 말이다. 성별, 성행위, 성적 욕망, 성적 환상, 성역할, 성정체성, 성적 지향, 성 표현, 재생산뿐 아니라 성과 관련된 이데올로기, 사회 제도와 규범이나 관습 등을 전부 포함한다. 따라서 섹슈얼리티는 성에 대한 성애적, 감정적, 생물학적,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윤리적, 법적, 종교적, 영적 측면을 총체적으로 다루는 것이다.
에코페미니즘이 수필 창작과정에서 세계 인식의 기준이라고 한다면, 형상의 한 방법으로 섹슈얼리티를 수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사실 성性sex은 생태계를 구성하는 자연의 가장 기본적인 힘이다. 아마도 사회가 구성되기 이전부터 존재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오히려 사회가 구성되면서 성性 또는 성애性愛에 대한 규범이 정해지고 그 제재를 받았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생득적인 성이 규제받고 섹슈얼리티의 표현이 사회에 의해 금기시되는 것은 매우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근대 사회 이후에 여성의 삶과 섹슈얼리티가 문학에 자유롭게 수용되었다. 우리 고전문학에는 현대문학 못지않게 매우 사실적으로 수용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허구문학에서나 가능했지 사실을 중요한 화소로 삼는 수필문학에서는 금기시된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수필은 장르의 특성상 서술자가 작가 자신이기에 완전한 고백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대에 수필문학이 전통수필의 구조와 가치관을 원형으로 머물기를 하면서 생태수필로 벗어나기를 하려면 자연스러운 섹슈얼리티의 수용은 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 인류를 생태계의 일부라고 생각한다면 에코페미니즘을 담아내는데 섹슈얼리티가 배제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본다. 진정성 있는 고백이 생명인 수필 창작과정에서 온전하게 미의식을 드러내는데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어려움은 수필문학의 독자성을 잃지 않으면서 품위 있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 연구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 많은 수필가들이 에코페미니즘을 바탕으로 섹슈얼리티를 수용하는 시도를 하여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수필미학》에서는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생태수필을 공모하고 매호마다 10여 편을 게재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그런데 게재되는 작품 중에서 간혹 생태수필의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전원생활의 즐거움이나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제재로 한 작품을 볼 수 있는데 작가들의 꾸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시나 소설문단에서는 한국문학의 전통을 유지하면서 시대적 사고를 받아들이는 벗어나기를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문학은 인간의 아픔을 치유하는데 많은 기여를 해왔다. 수필이 치유의 문학으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한다면 언젠가 모든 문학은 수필에 수렴될 것이라고 감히 선언한다. 수필이 문학의 한 장르로 당당하게 대접 받으려면 한국 전통수필의 구조적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정신적 화두를 수용해야 한다. 과거 체험의 기억에만 도취되어 있을 것이 아니라 미래 가치의 세계로 벗어나기를 해야 한다. 지금은 전통수필에 머묾과 생태수필로 벗어나기의 미학을 추구하는 수필가들의 노력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이다.
(수필미학 2023년 가을호 권두언)
'느림보 창작 수필 > META'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힌 돌, 굴러온 돌(무심7호) (1) | 2024.08.12 |
---|---|
道에 조화로운 技의 옷을 입혀야 (0) | 2024.05.09 |
자벌레는 얼음을 재고, 개구리는 바다를 말하고 (0) | 2023.09.24 |
수필 쓰는 사람은 -무심수필 6호 권두 수필- (0) | 2023.08.11 |
이방주 수필평론집 [해석과 상상] 서문 (0) | 2021.08.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