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원초적 행복(맛)

밥 맛

느림보 이방주 2001. 9. 21. 06:47
'밥맛이야.'란 말이 있다. 어떤 일이 정말로 '밥맛'일 때, 부정적인 눈으로 흘겨보며 쓰는 말이다. 요즘같이 맘에 들지 않는 일을 '밥맛'인 것으로 보는 것만큼이나 약간 삐뚤어져 왜곡된 의미로 쓰이는 말인 '엽기적'인 일을 좋아하는 젊은이들에게 나는 얼마나 '밥맛'인 사람일까 생각하니 정말 '밥맛'이다. 고루하고 통념적인 껍질을 훌훌 벗어 던지고 나올 줄 모르는 나를 '밥맛'으로 보는 젊은이들에게 뭐라고 말해 줄까? "이 사람들아 밥맛만큼만 맛을 내보게." 이 말 한 마디면 통할까? 생각하니 정말 '밥맛'이다.

죄받을 말이지만 요즘 밥맛이 없다. 볕이 짠들짠들한 토요일 오후 누렇게 익어 가는 탐스러운 들판을 자동차로 한번 휘돌아온 날 저녁에는 그 소담스러운 벼이삭의 영상을 떨쳐 버릴 수 없어 더욱 밥이 '밥맛'이다. 빨리 햅쌀밥을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햇동부를 섞어 햅쌀로 밥을 지어, 노오란 배추 속살을 버무린 겉절이를 밥숟가락에 올려놓아 입안이 미어지게 먹어 보았으면 좋겠다.

어찌어찌 해서 맛나기로 이름난 진천 덕문이쌀을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우선 쌀알이 동글동글하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데다가 맑고 투명하다. 바가지에 떠서 씻으려고 물을 붓고 손으로 두어 번만 휘저어도 어릴 때 먹던 별사탕처럼 그냥 입안으로 가져가도 녹아 없어질 것 같아 보인다. 더욱이 밥이 다 되었을 때 솥뚜껑을 열고 보면, 가을 밤 은하수를 한 됫박 퍼다 가득 담아 놓은 듯 깨끗하고 아름답다. 거기에 햇동부나, 강낭콩, 검정콩을 섞으면 금방 어머니 얼굴이 떠오른다. 검정콩이 한 꺼풀 껍질을 벗어 파르스름한 콩알이 비어져 나오거나 솥 가장자리에서 누룽지가 되어 붙으면 그 맛은 그냥 예술이다. 거기에는 진천 덕문이들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의 쌀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후 덕문이 쌀이 아니면 정말로 문자 그대로 '밥맛'이었다. 겨울에는 세 가마씩 한꺼번에 사다가 창고에 보관해 두고 먹을 수 있지만, 여름에는 그렇지 못하니 그냥 그 '밥맛'을 참고 견디어야 한다.

그러나 덕문이쌀 밥이 아무리 맛있다 해도 옛날의 어머니가 지어 주시던 기장쌀밥, 차조밥만 하랴. 나는 기장쌀밥을 아주 좋아했다. 어머니께서는 나를 위해 거친 따비 밭에 일부러 기장을 심으셨다. 한참 씨를 세울 때는 바랭이풀과 기장 싹을 구분하면서 돌밭을 매야 한다. 한 번 장마가 지나고 나면 잡초인지 기장인지 구별할 수 없을 만큼 무성한 밭을 뙤약볕 아래서 또 그렇게 김을 매야만 한다.
기장 밥을 짓기 위해서는 돌절구에 기장을 넣고 찧어 기장쌀을 만들어야 한다. 기장밥을 항상 해 먹는 것도 아니고, 금방 찧어서 밥을 지어야 맛이 나기 때문이다. 기장쌀을 만드는 절구질은 쉬운 일이 아니다. 키보다 낮은 절구에 공이를 맞추어 절구질을 하기 위해서는 허리를 엉거주춤 구부려야 한다. 얼마나 허리가 아픈가 해 본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좁쌀보다 알이 약간 굵은 기장쌀에 팥이나, 덩굴강낭콩을 섞어서 약간 간을 하여 밥을 지으면 그 맛은 찰떡처럼 차지고 콩강정처럼 고소하다. 기장쌀에 박힌 붉은 팥알이나 껍질 얇은 덩굴강낭콩은 자옥으로 깎은 가락지처럼 곱다. 여기에 참외장아찌나 무장아찌를 곁들여 오이 냉국과 먹으면 세상을 다 주어도 바꿀 수 없는 맛이다. 차조밥도 기장밥만은 못해도 꿩 대신 닭 노릇은 충분히 해냈다.기장밥이나 차조밥에 찹쌀을 한 1,2할 섞으면 금상첨화였다.

어머니께서는 객지에서 몇 달만에 집에 온 막내에게 기장밥을 지어 주시고는 정말로 참 밥맛으로 먹는 나를 바라보시며 좋아하셨다. 밥맛에만 취해 있는 못난 자식을 보며 한 사발 기장 밥을 짓기 위한 고통도 다 잊으셨다. 일생을 근심으로만 사신 어머니의 얼굴이 그 때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이셨다.

예전에는 이렇게 밥맛이 꿀맛이었다. 학교에서 주린 배를 안고 집에 돌아오면 제일 먼저 가마솥을 열어 본다. 고추장 하나만 있어도, 시커먼 오이장아찌 하나만 있어도 밥맛은 꿀맛이었다. 그건 시장 탓도 있겠지만 어머니의 사랑의 맛이었나 보다.

가끔 기장밥이 그리우면 아내를 졸라 농산물만 파는 커다란 시장에 가서 기장이나 차조, 덩굴강낭콩, 팥을 사다 밥을 지어 먹어본다. 그러나 옆에 바라보시며 행복해 하는 어머니가 안 계셔서인지, 이른 봄 산야에서 꺾어 먹던 찔레 맛이 예전의 그 맛이 아닌 것처럼 옛날의 그 맛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밥맛을 잃었다. 그래서 모두 '밥맛이야.'하며 투정을 부리나 보다. 참 밥맛을 잃은 어느 정치가는 쌀을 포기하는 정책을 세우겠다고까지 엽기적인 말을 했다. 세월이 변하니 밥이 변한 것인가. 밥은 그대로인데 사람의 혀가 변덕을 부린 것인가? 아니면, 어머니의 손길도 기장밥에 곁들여지는 덩굴강낭콩처럼 참 밥맛을 내는데 빠져서는 안 되는 감초 같은 것이었나?

우리에게 다가오는 일상이 커피향이나 핏자 맛처럼 엽기적이어서 쓰겠나. 아침 동산에 오르는 태양처럼, 저녁 서산마루에 어리는 노을처럼 무덤덤하면서도 오히려 황홀한 밥맛만 같으면 되리라 생각한다. 가을 밤하늘에 빼곡히 박힌 은하수처럼 청결한 덕문이 쌀밥에 노오란 배추 고갱이를 잘익은 된장 찍어 먹는 것 같은 덤덤하면서도 황홀한 맛이면 되리라 생각한다.

이제 우리 젊은이들이 '밥맛이야.'하면서 예전의 밥맛을 참혹하게 모독하는 이유를 알겠구나. 그들에게 어떻게 하면 밥맛의 참 맛을 가르쳐 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들이 일상에서 덤덤하면서도 황홀한 일을 만날 때 '밥맛이야'하고 말할 수 있게 할까? 어떻게 하면 밥맛을 모독하고, 어머니의 사랑을 간과하고, 농민의 아픔을 무시하는 죄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참으로 은근하고 덤덤한 맛이 참 맛인 밥맛을 깨우쳐 밥맛나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2001. 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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