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원초적 행복(맛)

진채(陣菜)로 먹는 다래순

느림보 이방주 2004. 3. 26. 16:49
  정월 대보름날(상원:上元)에는 나물을 많이 먹는데, 이 때 먹는 나물을 진채(陣菜)라 한다. 진채로는 호박고지, 무고지, 외고지, 가지나물 같은 고지 종류 외에도, 여러 가지 나물들을 한데 섞어 말린 묵나물이 있다. 묵나물은 ‘오래 묵혀두고 먹는다.’는 의미인데, 산나물을 뜯을 때, 취나물, 곰취, 개미취, 고사리, 얼레지, 다래순 등의 나물을 따로 분류하지 않고 한꺼번에 섞어 말린 것을 그렇게 부른다. 대보름날 묵나물을 먹으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해서 지혜로운 우리 민족이 즐겨 먹는 시식(時食)이 되었다고도 한다.

 

아내는 대보름이 다가오면 며칠 전부터 여러 가지 준비를 한다. 오곡, 귀밝이술, 부럼 외에도 여러 가지 묵나물을 준비한다. 묵나물 가운데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다래순 묵나물이다. 복쌈으로 먹는 김이나 아주까리잎도 중요하지만 다래순 묵나물을 따라오지 못한다. 그 맛이 김만큼 고소하지 못하고, 취만큼 향이 짙은 것도 아니고, 아주가리잎만큼 독특한 뒷맛이 있는 것도 아니며, 버섯만큼 깊고 고상한 맛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다른 나물도 다 좋아하지만 다래순만큼 좋아하는 나물은 없다. 다래순은 먹는 즐거움보다 마련하는 과정이 더 즐겁기 때문이다.

 

다래순을 꺾기 위해서는 우선 때를 잘 맞추어야 한다. 며칠만 일러도 너무 어려 안쓰러워서 꺾을 수가 없다. 덩굴에는 물이 올라 윤기가 자르르 흐르지만, 새순은 참새 주둥이만큼밖에 틔지 않아서 손에 잡히는 것도 없다. 너무 어린 새순을 자르는 내 손이 잔인하게 생각되어, 남의 외밭에 들어간 것처럼 자꾸 주위를 돌아보게 한다. 적당하게 자랐을 때를 생각하면 도무지 아까워서 견딜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한 주를 늦추면, 이번에는 아랫도리가 이미 쇠어, 골이 잔뜩 난 어린아이 고추처럼 뻣뻣해진다. 억지로 꺾어 벌써 노랗게 박힌 골속을 보면, 이빨이 약한 나는 어금니부터 저릿저릿해 온다. 그러니 일요일밖에 시간이 없는 나로서는 얼마나 때맞추기가 힘들겠는가?

 

대개 산의 높이나 깊이에 따라 다르지만, 내가  가는 곳은 휴일인 5월 5일쯤이면 아주 적당하다. 어린이날 어린 새순을 자르는 아픔이 있기는 하지만, 마음만 좀 독하게 먹으면 이날이 아주 좋다. 겨울이 짧고 봄이 일찍 오거나, 올해같이 2월에 윤달이 들어서 봄이 긴 해는, 한번쯤 실수하는 재미도 있어야 나물 맛이 더 나고, 얘깃거리가 생기는 재미도 있을 것이라고 넉넉하게 마음먹으면 된다.

 

다래 덩굴은 깊은 산 숲 속에서 자생한다. 우선 흙이 깨끗해야 하고, 하늘이 맑아야 하며, 가까이 가벼운 소리를 내며 맑은 물이 흘러야 한다. 다래 덩굴은 이렇게 사람을 피해서 자생한다. 그래서 당연히 다래순을 꺾기 위해서는 하루쯤 신선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니 사실 재미로만 생각할 일도 아닌 것이다.

 

다래순 꺾는 날은 우선 너무 여럿이 산에 오르면 안 된다. 여럿이 산에 오르면 자연히 욕심이 앞서기 때문이다. 사람이 많으면 지천으로 덮인 다래순을 보고도 고스톱이라도 칠 때처럼 10원 짜리 동전가지고도 말다툼을 하는 인간의 저급한 승부욕이 발동하기 때문이다. 다래 덩굴처럼 미끈하게 거침없이 뻗어 가는 시원한 가슴을 가진 사람들이어야 한다. 아침햇살에 반짝이는 다래 덩굴의 잎사귀처럼 윤기 나는 사고를 할 줄 아는 이어야한다. 잎 가장자리 톱니처럼 오톨도톨하고 잎 끄트머리처럼 뾰족한 이성의 소유자여야 한다. 그러면서도 그 잎사귀 뒷면에 잎맥을 따라 났다가 슬며시 없어지는 갈색 솜털처럼, 그 어린 잎자루에 얌전하게 누워있는 잔털처럼 겸양과 절제의 소유자여야 한다. 2, 30분만 넉넉한 마음으로 꺾어도 1년 양식은 충분한데도 다른 사람의 가방을 흘낏흘낏 돌아보며 저급한 욕망의 인간으로 돌아가면, 구르는 돌에 발을 다치거나, 다래덩굴이나 가시 덩굴에 얽히거나 하여, 산의 노여움을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함께 갈 사람이 정해지면 절제하는 마음으로 가방을 챙긴다. 이 때 배낭을 서너 개씩 챙기며 넘치는 욕심을 부리는 것은 금물이다. 내외가 하나씩 들고 올 수 있을 만큼이면 상원 진채식(陣菜食) 준비로는 충분하다. 산에 가서 지천으로 널려 있는 다래 덩굴을 보면 마음이 달라질 수도 있으니 아예 가방을 두 개만 준비할 일이다. 적어야 맛이 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산에 도착하면 아주 조용하게 숲 속의 한 그루의 나무가 되어야 죄책감이 덜하다. 다래 덩굴이 깊고 맑은 산에 살아서 신선이라고 하지만, 한 그루의 나무가 되어 바라보면 그렇기만 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래 덩굴은 아무리 키 큰 나무라도 사정없이 휘감고 올라가 제 곁가지를 늘어뜨리며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옮겨 다니면서 결국에는 숲을 망가뜨리기도 한다. 그러니 한 그루의 커다란 나무가 되어 다래 덩굴을 바라보면, 그들이 숲의 방해자로 보이기도 해서 마음 놓고 새순을 솎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래순을 꺾기는 다른 산나물 채취에 비해서 아주 쉽다. 취를 뜯는 것이 드넓은 바다에서 자리돔을 낚는 것이라면, 그것은 송어 양식장에서 그물을 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가늘고 긴 덩굴을 휘어잡고 사춘기 아이들 콧수염처럼 누운 잔털이 소복하게 난 어린 새순을 한 주먹씩 따서 가방에 넣기만 하면 된다. 더구나 새순은 한 뼘씩도 더 되고, 덩굴에 5-7cm 간격으로 소복하게 나있어서 숲 속에 마른 갈잎을 깔고 앉아서 보이는 대로 훑으면 된다. 가끔씩 하늘을 쳐다보면서, 가끔씩 맑은 산골물 소리를 들어가면서 말이다.

 

꺾어온 다래 순은 밤을 재우지 말고 끓는 물에 데쳐서 발에 올려놓아 따가운 봄 햇살에 말려야 한다. 말리는데도 다른 산나물에 비해서 더 정성을 들여야 한다. 줄기가 연하지만 굵기 때문에 단번에 바삭바삭하게 말려야 겨울 동안 흰곰팡이가 슬지 않는다. 혹 깔끔한 체하는 사람들이 물에 씻어서 데치는데 이것은 금물이다. 깊은 산속 맑은 공기 속에서 갓 피어 오른 새순이 무슨 씻을 때가 있겠는가?

 

다른 나물과 달리 다래순은 묵나물로만 먹을 수 있다. 마음 급한 사람들이 끓는 물에 데쳐서 잎사귀가 파란 다래순을 그대로 무쳐 먹으려 한다. 아무리 갖은 양념을 한다 해도 미끈덕 거리고 아리아리해서 실망하기 십상이다. 바람이 잘 통하고 건조한 곳에서 뜨거운 여름을 나고 겨울의 찬 바람을 견디고 정월 대보름이 되어야 제 맛이 난다.

 

바짝 마른 다래순을 다시 살짝 삶아 물에 불리면, 말리는 동안 묻었던 먼지는 저절로 떨어진다. 몇 번 헹구어 물기를 쪽 짜낸 다음 양념을 넣고 팬을 달구어 기름에 볶아내면 그 향기부터가 다르다. 취처럼 강렬하지도 않고, 고사리처럼 이빨에 감기지도 않는다. 아무런 잡맛이 없이 깨끗하여 심산에 은거한 선비에게서나 나는 서향(書香)이 풍기는 듯하다. 대보름날 귓밥이 간질간질하도록 봄바람이 불 때, 오곡밥에 이 나물을 듬뿍 올려놓고, 담북장을 욕심껏 넣어, 집고추장에 엷게 비벼 먹으면 오래 씹을수록 온갖 그윽한 상념이 밀려온다.

 

더구나 다래순 묵나물은 간경화, 소갈증, 고혈압 같은 현대 문화병에도 효험이 있다고 하니 자연의 선견지명이 새삼 놀랄만하다. 이것은 심산에서 시원(始原)의 자연을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다래순 묵나물, 그것은 육신의 쾌락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신세계를 청아하게 하는 마음의 섭생(攝生)을 위한 진채(陣菜)중의 진채(珍菜)이다.

(2004. 3. 26.)

'느림보 창작 수필 > 원초적 행복(맛)'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황식으로 먹던 도토리묵  (0) 2004.06.22
원시의 香 -쑥국-  (1) 2004.04.19
눈내리는 날의 김치찌개  (0) 2004.03.20
마늘 이야기  (0) 2003.05.02
호박 같은 아내  (0) 2002.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