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사랑의 방(가족)

담쟁이처럼 아람처럼

느림보 이방주 2000. 9. 2. 19:41

  아침에 커튼을 열고 매봉산의 소나무가 휘어질 정도로 쌓인 흰 눈을 우리 딸보다 먼저 발견한 것만도 나에겐 작은 기쁨이다. 제 오빠나 엄마 몰래 이 소식을 전해 줄 딸이 있다는 것도 또한 기쁨이고 행복이다. 퇴근길 소주가 약간 취해 현관 앞에서 이웃과 큰소리로 나누는 인사말에도 죽도를 들고 나오는 믿음직하고 건장한 아들이 있다는 것은 또한 기쁨이고 분에 넘치는 행복이다. 아내가 끓이는 된장 찌개 냄새를 맡으며 냉장고를 열어 공연히 냉수를 한 모금 머금어 보는 것도 작은 행복이다. 신문을 들고 화장실에 갔을 때 사설 한 편도 읽기 전에 일이 무사히 끝나주면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건 또한 나에게는 작은 기쁨이다. 나의 '물소'에 키를 꽂아 한 방에 발동이 걸리는 것도 기쁨이고 행복이다. 이렇게 날마다 고속도로를 적당한 속도로 달려 출근할 수 있는 하루가 있다는 것도 또한 작은 기쁨이다.

 

  고향이 아닌 곳에서 이렇게 착한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은 하나의 행운이다. 아이들은 화려하지도 않으며 꾸미느라고 꾸몄다는 것이 대부분 촌스러워서 더 귀엽다. 그럴 때마다 잔소리처럼 야단치는 나를 의식해서 먼 곳에서도 옷깃만 보여도 숨어 버린다. 그런 그들의 모습이 더없이 순박하다. 이런 순박한 아이들을 날마다 대한다는 것도 삶의 작은 기쁨이다. 교사 뒤편을 돌아가면 하늘을 찌르는 잣나무를 타고 올라간 호박 덩굴이 노랗고 소담한 꽃을 피우고 햇볕을 향해 절규하듯 제 몸을 뽐내는 것을 보면 나의 아이들을 보는 것 같아서 그런대로 재미있는 일이다. 잣나무 밑 소담한 호박잎을 뒤적여 새신랑 마고자 단추 빛 같이 파르스름한 새살을 드러낸 애호박을 발견하는 일도 드물게 만나는 영재처럼 기쁨으로 나를 들뜨게 만든다.

  머나 가까우나 제자가 찾아오는 것도 작은 기쁨을 주는 일이다. 토요일 오후 작년에 가르친 아이가 찾아오는 경우 나를 목적해서 온 것도 아닌데 반갑다. 바빠도 그 녀석들과 자판기 커피를 빼 마시며 대학 얘기, 군대 얘기를 하는 동안 쉽게 한 시간이 간다. '이제 얘들이 갈 때가 되었는데……'하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을 때 "이제 저희들 가보겠습니다."하고 일어서면 속맘을 들킨 것 같아 미안하지만, 그래도 그들의 마음 씀씀이가 고맙다. 옛날 제자인 진선이가 승진이, 정미를 대동하고 노란 국화를 한 아름 안고 오는 날이나, 키도 크고 예쁘면서도 마음씨까지 고와 아들 늦은 것이 한이 되게 하는 미라가 찾아오는 날은 작은 기쁨을 넘어 선다. 진선이가 오는 날은 꼭 뭉게구름 같이 지은 '뭉게구름' 이란 교외의 찻집으로 데리고 가서 차를 사주고 오징어 덮밥을 사주면 그 작은 코에 보송보송한 땀을 찍어내며 먹는 고녀석들을 보는 기쁨이 있어서 좋다.

 

  나의 상상이 계절을 넘나들게 하는 퇴근길도 나에게는 작은 기쁨중의 하나다. 구곡리를 돌아가는 구불구불한 길을 천천히 달리며 만발한 진달래나 산벚꽃을 바라보는 것은 누구에게도 없는 기쁨일 것이다. 오창 들을 지나 차가 정체되어 오근장 육교 맨 꼭대기에서 정차된 가을날, 옥산까지 펼쳐진 들판의 논배미가 황금색으로 일렁이는 것을 마음놓고 바라 볼 수 있어서 좋다. 비행장 쪽에서 통근 기차가 기다란 몸뚱이를 여유 있게 구부리고 빙 돌아오면 더욱 어울리는 그림이다. 얼어붙은 잣고개를 무사히 넘어 사석리 모퉁이를 힘차게 달려가며 오른쪽으로 희끗희끗 잔설에 덮인 검은 산을 바라보는 일도 내게는 작은 기쁨이다. 창을 열고 달리면 진하고 흐뭇한 밤꽃 향기가 차창을 넘던 지난봄을 생각만 하여도 코끝이 찌릿찌릿하게 기쁨이 잦아든다.

  고향집을 찾아가는 것은 나에게 작은 기쁨이다. 택지 개발을 하느라고 파헤친 고향 가는 길은 옛날 길을 잃어버리는 것 같아 아쉽지만 10분 만 달리면 옛날 그대로의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까치밥으로 남긴 홍시 몇 알이 저녁놀에 말갛게 쳐진 감나무, 더욱 검어진 늦가을 밤나무, 기온이 내려갈수록 더욱 파래지는 탱자나무를 변함없이 만날 수 있어 또한 작은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차를 세우고 오솔길을 돌아가는 산모롱이에 있는 밤나무 밑에서 발갛게 빠진 반짝반짝 윤이 나는 아람을 한두 알 주우면 횡재를 한 듯 행복해진다. 보는 사람이 있거나 말거나 주머니에 손을 넣고 만지작거리며 어린 날을 생각할 수 있어서 좋다. 산 고개를 막 올라서면 마주치는 곳에 어머니 산소가 보인다. 살아 계신 어머니를 뵈올 때처럼 반갑다. 산소에 올라서면 내가 차를 타고 달려온 길에 다른 차들이 반짝반짝 빛을 반사하며 언뜻언뜻 보인다. 내가 올 때도 더욱 반짝였을 것을, 그리고 어머니가 그것을 보시며 기뻐하셨을 것을 생각하는 것도 정말로 작은 기쁨이다. 산소에 푸근하게 자란 잔디는 검은콩 드문드문 박아 지은 햅쌀밥에 담북장 끓여주시던 어머니의 사랑의 언저리이다. 산소 축대에는 돌 빛을 가릴 정도로 담쟁이가 짜이고, 산소 둘레에는 진달래가 울을 쳤다. 이 모든 것이 작고 안온한 기쁨에 잦아들게 한다.

 

  우리는 이렇게 작은 기쁨으로 살아간다.

 

살아가는데 무슨 더 큰 욕심을 가지랴.

못나도 높게 올라가 화사하게 빛나는 호박꽃 같은 작은 꿈이 있는 것을…….

살아가는데 무슨 횡재를 바라랴.

날마다 몰래 줍는 아람처럼 작은 기쁨이 있는 것을…….

살아가는데 무슨 호강을 바라랴.

이렇게 담쟁이처럼 짜여 가는 작은 행복이 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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