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힌 돌, 굴러온 돌
이방주
미국 대통령 선거가 요동치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민주당의 후보를 사퇴하고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후보로 확정되려는 추세이다. 반면 공화당은 이미 도널드 트럼프 전대통령을 후보로 확정하였다. 재미있는 일은 81세인 바이든 대 78세인 트럼프 구도에서 바이든 현 대통령이 열세였는데, 흑인이며 여성인 해리스 부통령이 후보로 유력해지자 미국인들의 지지 구도가 급격하게 변하여 59세인 해리스 부통령으로 쏠리고 있다는 것이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니 더 신선해 보이는 모양새이다. 문제는 공화당의 박힌 돌이다. 물때가 더께로 끼어 세상 돌아가는 걸 제대로 보지도 못하는 박힌 돌이 뿌리를 내리고 요지부동이다.
세상은 무서운 속도로 변하고 있다. 변화의 요구가 날마다 새롭다. 남의 나라 선거를 걱정할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정계를 걱정하기에는 석 자가 넘게 흘러내리는 내 코가 급하다. 박힌 돌이 아닐까 나부터 돌아보게 된다. 나는 문단의 박힌 돌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꽁무니가 근지럽다. 나이, 등단 연도를 앞세워 어른 노릇을 하려하지는 않았는가. 행여 후배 문인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을 가로채지는 않았는가. 돌아보고 또 돌아본다. 후배 문인들에게 문학의 길을 조금이라도 안내한 적이 있는지, 변화에 대비하여 함께 구를 마음의 준비는 되었는지. 나는 내 안의 박힌 돌을 빼어버릴 각오를 해야 한다.
21세기 들어 우리 문단은 엄청난 속도로 변하고 있다. 소설 문단은 2016년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노벨문학상과 맞먹은 부커상을 받은 이후, 2018년 한강의 또 다른 작품 「흰」, 2022년 정보라의 소설집 「저주토끼」, 2023년 천명관의 장편 「고래」, 2024년 황석영의 장편 「철도원 삼대」가 최종 후보에 올랐었다. 수상작은 물론이고 최종 후보에만 올라도 세계 문단의 화젯거리가 되고 여러 나라에서 번역 출판된다. 우리나라의 수필 문단의 변화도 예외가 아니다. 2000년을 전후해서 수필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서 때 아닌 문단의 걱정거리 내지는 조롱거리가 되었다. 수필가는 많아도 수필은 없다거나, 고개를 15도만 돌려도 수필가가 보인다면서 수필 인구를 따라가지 못하는 수필의 문학성을 조롱했다. 그러나 2010년을 넘어서면서 우리 수필은 눈부시게 발전하여 시나 소설의 문학성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조기축구 인구가 많아지자 한국 축구가 세계적 수준에 오른 것과 비슷한 원리이다. 이른바 수필 인구의 저변확대가 수필 문단의 기초를 튼튼히 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수필은 이미 시나 소설로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삶의 세계를 담아내는 장르로 발전하였다. 이제는 수필가는 많으나 그 문학성이 의심스럽다느니 문단에서 천대 받는다느니 하는 말은 박힌 돌들이나 하는 말이다.
세계가 변하듯, 정치계가 변하듯, 한국의 소설 문단이 K-문학의 지름길을 내듯, 한국 수필이 세계 에세이 문단을 주름잡게 될 기초를 다지고 있는 중이다. 세계 문단은 서사와 서정을 아우르는 에세이가 주도하기 시작했다. 2022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아니 에르노(Annie Ernaux)의 소설 「세월」은 자기고백적인 서사구조를 지니고 있다. 자전적 소설이라고 하지만, 수필가의 눈으로 보면 장편 수필이다. 작가도 허구 없이 완전한 체험이라고 했다. 「세월」이 소설이든 수필이든 상관없이 소설은 이미 수필의 서사와 서정을 아우르는 서술방법을 흉내 내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이것은 수필이 훌륭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소설의 생산자나 수용자의 사고체계가 이미 그렇게 변해버렸다는 의미이다. 2000년에 처음 만든 블로그에 머리글로 썼던 ‘모든 문학은 언젠가 수필에 수렴될 것이다.’라고 했던 허언은 참어(讖語)가 되어간다.
에세이가 세계문학의 대세가 되는 마당에 전통수필은 어떻게 변해야 할까. 먼저 우리 수필의 개념을 확립하는 것이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정독했을 때 머리를 맞은 것 같았던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왕오천축국전에서 출발한 우리 수필은 고려 시대의 이규보나 이곡의 수필로부터 조선 시대 한문수필이나 국문수필로 이어지는 이야기 구조, 즉 체험한 사실에 문학적 상상과 해석을 가하는 전통 수필을 한국 수필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다행히 이러한 주장은 더 활발해지고 있다. 한국 전통수필은 망설일 필요도 없이 수필(supil)이어야 한다. 전통수필은 조선시대 박지원을 넘어 이태준, 김용준, 윤오영, 법정, 목성균으로 이어져 오늘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이 전통수필의 범위를 확실히 하면 전통수필을 쓰든, 에세이를 쓰든 취향대로 가려 쓰면 될 일이다. 우리 수필 문단이 좁아지고 수필의 범위를 축소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음으로 수필 창작의 기반을 튼튼히 해야겠다. 우선 창작 이론의 확립이다. 수필가는 많으나 지금까지 우리 전통수필 창작에 도움을 줄만한 창작 이론서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창작 이론에 대한 연구는 물론 수필가들의 창작법 수련도 필요하다. 2022년에 펴낸 『느림보의 수필 창작 강의』는 수필창작의 새로운 방법을 찾아 쓰기는 했지만, 미흡한 점이 발견되어 보완할 점이 많다. 내 수필을 살지게 하려면 시, 소설, 인문서는 물론이고 자연과학 도서까지 폭넓은 독서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셋째 사유의 변화이다. 인간과 자연의 존재 방식을 이해하고 자연과 소통하는 사유를 수필에 받아들여야 한다. 자연은 인간 존재의 원형임을 인정하고 자연에 인간 존재의 근원을 찾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넷째 생태주의 사고를 수필에 수용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인간이 자연의 주인이 아니라 자연 생태계에 하나의 개체일 뿐이라는 원리 안에서 세계를 인식하는 것이 좋은 작품을 쓰는 지름길이다. 이러한 수평적 사고는 자연스럽게 인간사회에서의 여성과 남성, 약자와 강자, 어른과 어린이 사이의 차별을 넘어 수평적인 사고로 귀결되게 마련이다. 이른바 에코페미니즘이다.
마지막으로 열린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박힌 돌에 머무르지 말고 굴러온 돌과 함께 구르면서 물때를 벗기고 이끼를 떨어낼 생각을 해야겠다. 자칫 박힌 돌을 고수하며 목에 힘을 주다가는 수필 문단의 오적(五賊)으로 낙인찍힐 것이다.
수필은 미래의 문학이다. 수필이 아니면 도저히 풀어낼 수 없는 인간 존재의 문제, 사회의 문제, 지구 자연의 문제를 담아내는데 노력해야겠다. 박힌 돌이 될까 굴러온 돌이 될까를 고민할 것 없이 뿌리를 뽑고 일어나 굴러온 돌보다 먼저 구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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