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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꿈을 꾸는 비밀 정원-현정원의 《새꿈》을 읽고-

느림보 이방주 2024. 4. 18. 13:13

새 꿈을 꾸는 비밀 정원

-현정원의 《새꿈》을 읽고-

이방주

사람은 하늘에 날아오르지 못한다. 그런데 하늘을 나는 생물이 없다면 하늘에 날아오르는 꿈은 꾸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늘에 날아오르는 새가 있고 그 새를 쉽게 볼 수 있기에 우리는 새꿈을 꾸는지도 모른다. 새꿈은 새처럼 날아다니는 꿈일 수도 있고, 새처럼 땅에서 먹이를 구하고 하늘에 인간의 소망을 전해주는 꿈일 수도 있다.

현정원은 새꿈을 꾼다. 그의 삶의 공간은 새꿈을 꾸는 비밀 정원이다. 새꿈을 꾸는 진정한 비밀 정원을 찾아 제주로 날아갔는지도 모른다. 현정원이 꾸는 새꿈은 무엇일까. 그것은 그녀만의 삶이다. 남들이 따라할 수 없는 그녀만의 삶이겠지만, 누구도 거부하거나 찌푸리는 일은 없다. 그냥 그녀의 꿈의 실현이고 누구나 지향하는 보편적인 가치로 여길 것이다.

공명(共鳴)이란 함께 울리는 것이다. 함께 울리려면 소리 모양이 같아야 한다. 수필은 독창적 인식을 드러내지만 보편적인 가치를 지향할 때 독자에게 공명을 준다. 현정원의 수필은 새의 꿈을 지향한다. 누구나 새꿈을 꾸기에 독자에게 공명을 일으킨다. 그는 《새꿈》 책머리에 수필이 사는 비밀 정원에서 자신의 수필관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그는 ‘구름테이블 위에 손을 올리고’ 창밖을 바라보면 구름을 타고 벗들이 다가온다고 한다. 이것이 그의 수필관이고 그가 지향하는 삶의 가치이다. 개성적 실존을 추구하지만 보편화의 원리로 개념화하는 수필적 삶을 지향하고 있다. ‘개인과 개인의 다름이 인정되고 천둥소리와 번개가 사랑받는’ ‘다름[異]과 함께[和]’라는 정원의 비밀을 넌지시 암시한 것이다.

그가 비밀 정원에서 꾸는 꿈을 한 마디로 말하면 ‘생명’이다. 그의 삶의 세계는 수많은 생명들의 보금자리이고, 그는 세계의 주인이 아니라 세계와 동등한 개체일 뿐이다. 그의 비밀 정원은 모든 생명이 공존하는 생태계를 말한다. 그의 수필은 비밀정원에서 탄생과 변환과 성장을 하는 순환이라는 생태계의 질서로 이루어진다.

생태주의를 전제로 하는 수필에는 반드시 페미니즘이 함께 한다. 이처럼 그의 수필은 에코페미니즘을 바탕으로 한다. 에코페미니즘은 섹슈얼리티한 표현을 수용하지 않으면 싱겁고 맛이 없다. 그러므로 인식의 바탕에는 에코페미니즘을, 형상의 기법으로는 섹슈얼리티를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풍부한 상상력이 수필적 상상의 진수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따라서 그의 작품을 ‘생명’이라는 화두로 ‘배태, 탄생 - 성장, 변환 - 죽음’의 과정으로 알아보고자 한다.

1. 생명의 시작

생명의 시작은 배태(胚胎)이다. 사전은 ‘사람이 아이를 뱃속에 가짐. 또는 짐승이 새끼를 뱃속에 가짐.’이라고 배태의 기본 의미를 설명한다. 언어는 이름으로부터 파생을 시작한다. ’배태하다‘는 ’배태‘로부터 파생한다. 이처럼 단어의 파생도 있지만 의미의 확장도 있다. ’배태‘라는 단어는 매우 철학적으로 의미가 확장된다. 사람이나 짐승이 뱃속에 새끼를 가진다는 의미로부터 ’어떤 현상이나 사물이 발생하거나 일어날 원인을 속으로 가짐‘이라는 의미로 확장된다. 사람들은 이미 창조된 언어를 사용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재창출한다. 의미의 확장은 대개 가시적이고 구체적인 의미에서 불가시적이고 추상적인 의미로 확장되면서 삶의 철학적 원리를 담아낸다. 현정원의 문장에는 상상을 통한 의미의 확장이 많이 발견된다. 짧은 한 문장이 우주의 원리를 함축한 듯하다.

신비스러운 것은 배태가 사람이나 짐승이 새끼를 가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배아(胚芽)’로 넘어가면 ‘씨의 속에 있으며, 자라서 싹이 될 부분’을 의미하기도 한다. 작가는 동물의 새끼와 식물의 싹을 함께 일컫는 말이 배(胚)라는 것을 발견한다. 옛 사람들은 사람이든 짐승이든 또는 식물까지 생명의 시작을 하나의 모습으로 보았다. 그래서 동물도 수정이고 식물도 수정이다. 작가는 이러한 생명의 시작은 비밀정원에서 시작한다고 했다. 작품 <망고씨>에서 곡옥처럼 생긴 망고씨를 들여다보면서 ‘자궁 속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태아’의 모습을 상상한다. 인간 발생의 초기 모습이다. 결국 모든 생명의 탄생은 물리적인 모습까지 하나이다. 씨앗에서 씨앗이 나왔듯이 인간도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처음 생성되었다는 우주적 원리를 발견한다. 그뿐 아니라 씨앗이 씨앗을 생성하듯 자신도 새로운 생명을 생성하여 ‘개체 발생은 계통 발생을 반복한다.’는 사유의 확장에 이르게 된다.

아버지의 비밀 정원은 아버지의 병실이다. <아버지의 비밀 정원>에서는 탄생의 순간을 상상으로 묘사한다. 작가는 상상을 통해 아버지와 꿈의 세계를 공유한다. 상상은 마침내 자신이 배태되는 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버지와 엄마가 나누던 사랑의 순간’이 곧 자신의 최초의 순간이라 인식하게 된다. 배태의 경이로움이다. ‘아버지의 씨’가 ‘엄마의 알에 끼워져’ 서로를 기쁘게 해주려 애쓰는 사랑의 순간 ‘매혹된 두 육체가 불쑥 달려들어’ 생명은 시작되는 것이라는 인식을 작품에 담아냈다. 결국 생명은 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함께 이루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생명 시작의 경이로움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식물이나 마찬가지이다. 배아와 태아가 최초의 모습이 한가지이듯이 각각 다른 듯하지만 결국은 하나라는 인식을 수필에 담아냈다.

배태의 순간을 형상화하는 과정 묘사는 허구인 듯하지만 허구가 아니다. 사실인 듯하지만 사실이라고 확인할 수도 없다. 수필적 상상은 서사와 묘사를 넘나든다. 진정성 있는 관찰이 있으니 진술도 품위 있고 가치 있다. 여기서 문학적 진실을 엿볼 수 있다. 작가의 수필적 상상은 시공을 초월한다. ‘엄마의 몸 위로 아버지가 나를 껴안은 것처럼 우리는 이렇게 서로의 몸을 지금도 끌어안고 또 끌어안는’다면서 탄생과 상생의 의미를 상상을 통하여 드러내면서 매혹적인 모습을 감춤 없이 묘사하였다. 여기서 수필에서 수용하기 어려운 섹슈얼리티의 표현을 품위 있게 드러내었다. 이러한 인식과 형상의 방법은 비단 <아버지의 비밀 정원> 뿐 아니라 곳곳에서 나타난다.

2. 변환과 성장

수필은 변환과 성장을 추구한다. 수필가는 작품 창작과정에서 소환한 체험을 해석하여 삶의 가치를 찾아낸다. 이러한 해석의 과정에서 철학적 인식이 성장한다. 실존적 존재로서 변환과 성장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수필의 수용자에게 전달하기 위한 형상화 과정에서는 작가의 미의식이 성장한다. 이와 같이 수필 창작 과정에서 성장과 변환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현정원의 《새꿈》에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생명 의식에 관한 깨달음이라 볼 수 있다. 작품 <카멜레온>에서 주변 환경에 따라 몸 색깔을 자주 바꾸는 카멜레온에 대하여 남다른 인식을 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카멜레온을 ‘믿지 못할 놈’ ‘기회주의자’ ‘변절자’로 부른다. 그러나 작가는 이것을 ‘남의 눈을 속여 함정을 파기 위함’이 아니라 연약한 자기 몸을 강자로부터 숨기려는 ‘가엾은 노력’이기에 ‘처세의 달인’ ‘임기응변의 왕’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그러한 인식도 바로 변환한다. 주변 환경에 자신을 동화시켜 ‘스스로가 환경이 되어버리는’ 것이라 평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카멜레온이 되는 상상을 한다. 자아의 변환을 꿈꾸는 것이다. 겁쟁이 파란색에서 욕망의 노란색으로, 존귀한 황금색으로, 붉은색으로 변환하는 상상에서 카멜레온과 동류의식을 갖게 된다. 생명에 관한 의식의 변환을 담아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결국 인간은 생태계의 주인도 아니고 특별한 존재도 아니라는 작가의 의식을 엿볼 수 있다.

그의 생태주의 의식은 <따비오름에서 다람쥐를 걱정하다>에서도 발견된다. 거대한 풍력 발전기 날개가 도는 그림자 안에 있는 다람쥐의 두려움을 상상한다. 거대한 ‘빛과 어둠의 교대’와 ‘해괴한 소리’에 무지막지한 공포를 느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의 운세>에서는 이웃으로부터 선물 받은 소라를 손질하면서 ‘이 어여쁜 것들을 몽땅 죽여야 하고 먹어야 하는 사태’를 난감해 한다. 그렇다고 그것을 먹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것은 생태계의 원리를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의식의 변환은 <환상 숲, 곶자왈>에서 모든 생명이 유기적으로 상생하면서 유지되는 현상을 발견하고 ‘자연의 일은 자연에 맡기면 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다. 이처럼 그의 새꿈은 제주라는 비밀정원에서 변환하고 성장한다.

3. 죽음의 미학

인간의 삶에는 죽음이 내재해 있다. 인간은 ‘산다’는 개념 안에 언제나 ‘죽는다’라는 예측불허의 사건을 내포하고 있다.

문학이 삶의 양상을 담는 그릇이라면, 그 그릇에는 필연적으로 죽음의 방식이 내재되어 있다. 현정원의 《새꿈》은 탄생에서부터 변환과 성장의 과정을 담았다. 생태계의 모든 개체가 그렇듯이 인간도 결국은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것이 작가가 주장하는 순환이라는 우주의 질서이다. 그의 죽음에 관한 의식도 생태계는 순환한다는 전제 아래 다가오는 갱년기를 청춘의 심적 상황과 닮아 있음을 발견하면서 안도한다.

그는 작품 <노년이라 불리는 심적 상황의 시작에 대하여>에서 갱년기의 전조를 발견한다. 온몸에서 땀이 나는 것을 ‘살갗을 통해서 흘리는 눈물’로 여기면서 갱년기 현상임을 깨닫는다. 이 작품에서는 갱년기 현상을 생의 순환 과정으로 인식한다. 사춘기, 청장년기, 갱년기는 각기 부모, 배우자로부터 차례로 벗어나 독립개체로 환원하는 시기이고 ‘성적 관계이든 정서적 관계’에서 유연해지는 관계라고 한다. 모습은 다르지만 인생의 절차임에 틀림없다는 인식에 이르게 된다.

노년에 이르면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작가는 작품 <좋은 곳으로 가라>에서 반려동물의 죽음을 통하여 자아의 죽음을 대리 경험한다. 반려동물이 숨을 거두는 과정 묘사를 통해 인간의 죽음의 과정, 자신의 죽음을 과정을 상상한다. 반려동물인 ‘해피’의 무덤을 정성스럽게 만들면서 ‘아주 좋은 곳으로’ 가기를 기원한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삶과 죽음은 순환한다는 작가의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유난히 맑고 파란 하늘’ ‘강아지 같은 구름’ 시끄럽게 지저귀는 ‘새’들을 통하여 죽음을 찬미하는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현정원의 수필집 《새꿈》은 꿈을 넘어 우리네 삶의 여정에서 품어야 할 바람직한 가치를 일깨워준다. 작가는 생명의 근원과 그 순환원리를 추구하면서 생태계의 모든 생명의 소중함은 물론 수평적으로 상생한다는 우주의 원리를 깨닫는다. 그러한 가운데 시대와 역사의 아픔을 생태계의 순환과 상생원리를 전제로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생태계에는 강자도 약자도 없이 순환과 상생만이 있다. 이러한 수평적 사고는 인류의 세계에서도 배워야 할 원리이고 가치이다. 자연에서 배운 이러한 삶의 원리는 21세기에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의 철학이라고 생각된다. 이것이 새꿈이 독자에게 주는 은은한 속삭임이다.

작가는 수필은 ‘당시의 마음과 순간의 감정들을 먼 훗날 들여다 볼 수 있’다고 했다. 그것은 작가만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도 함께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새꿈》의 독자가 얻는 문학의 효용성이라고 하겠다. (수필미학 2024년 여름호 서평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