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청주와 청주 사람들

전통으로 가는 미래, 옥산 빵 굽는 마을

느림보 이방주 2023. 12. 19. 15:15

전통으로 가는 미래, 옥산 빵 굽는 마을

이방주

옥산에 있는 오래된 빵집을 찾아갔다. 청주 어느 일간지에 마을 생활문화를 취재하여 연재하는 김애중 수필가가 쓴 기사를 읽고 나의 구미가 발광을 했다.

미호강 옥산교를 건너 오산사거리부터는 빵 굽는 냄새가 내비게이션을 대신한다. 대도시 근교의 소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수한 건물이다. 문을 열고 매장에 들어서려면 잠시 기다려야 한다. 빵보다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빵 쟁반을 들고 질서 있게 진열대를 한 바퀴 돌기 때문에 빈틈을 노려 끼어들면 된다. 빵이 매진되는 건 걱정할 것 없다. 현장에서 굽는 빵이 계속 매장으로 들어온다. 새벽부터 오후 9시까지 계속 빵을 구워야 수요를 충족할 수 있단다. 과연 빵 굽는 마을이다.

진열된 빵은 종류를 헤아릴 수 없다. 처음 보는 것도 있고 빵인지 떡인지 구분할 수 없는 것도 있다. 식빵, 치즈 빵, 단팥빵, 도넛, 약과, 찹쌀떡, 호두파이, 무지개떡인지 무지개 빵인지, 전병, 꽈배기, 불고기피자케익 등 처음 보는 것들이 많다. 재료도 종류도 다양하다. 이름도 예쁘고 재미있다. 계피퐁당, 초코퐁당, 월악산영봉빵, 공갈빵, 국찌니, 약과꾸덕이, 녹차꾸덕이, 쌀롤, 무지개롤, 상투과자, 씨앗쿠키 등, 재료와 만드는 방법에 따라 재미있는 이름표를 달았다. 이름표만 보면 재료와 만드는 방법은 물론 맛까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고객도 빵만큼 다양하다. 칠순 할머니도 있고, 20대 큰애기도 있다. 어린이도 있고 40대 아빠도 있다. 고객이 다양해서 빵이 다양한 것인지 빵이 다양해서 고객이 다양한 것인지 따질 필요는 없다.

주인으로 보이는 청년은 한가할 틈이 없다. 체구에 어울리는 앞치마를 입고 가게를 누빈다. 손님이 없으면 금방 구운 빵을 받아 진열하고, 빵이 자리를 잡으면 손님이 빵 쟁반을 들고 결제를 기다린다. 궁금한 것을 물어볼 틈을 노리는데 내게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틈을 노려 날렵하게 청년 사장을 잡았다. 옥산 주인 격인 김애중 수필가를 팔아 나를 소개했다. 다행히 내게도 눈길을 준다. 아버지 배운식(55세) 아우 배소한(27세)과 함께 운영을 맡은 배지영 사장(29세)은 이 가게의 3대 후계자이다. 처음에 할아버지(78세)가 제빵기술을 익혀 창업하여 운영해 오던 가게를 아버지가 물려받아 정통으로 기술을 익혀 가게를 변화시켰다. 거기에 젊은 두 아들이 전문적인 제빵기술을 배워 오늘의 성황을 이루게 되었다. 창업 1세대인 할아버지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섰지만 제빵 과정에 대한 조언을 하고, 아버지는 아버지 세대에 맞는 빵맛내기를 책임지고, 두 아들은 신세대에 맞는 새로운 제품 개발에 연구를 거듭한다. 가업을 이어나가려는 젊은 세대의 의미 있는 결정 덕분으로 시민들은 세대를 초월하여 맛과 취향에 맞는 빵을 구할 수 있다. 처음에 망설였으나 부모님이 돈을 추구하기보다는 이웃과 함께 살아내기를 실천하는 사업 방향에 감동하여 희망을 가졌다고 한다. 어려운 이웃에게 사랑의 빵 나눔도 한다 하니 그 향이 더욱 짙어온다.

계속 들어오는 사람들을 피해 곁문으로 들어가니 여기는 카페이다. 구석에 고구마통가리라도 들어앉힐 법한 시골집 골방 같다. 다락방도 있다. 좌석은 몇 개 없는데 사람들은 가득하다. 초등학교 동창모임하기 좋은 수수한 사랑방 같다. 커피를 주문했다. 빵도 함께 주문했다. 사장이 빵 한 접시를 가져왔다. 음악이 흐른다. 요즘 한창 대세인 가수 임영웅의 노래다. 둘러보니 그의 팬덤 영웅시대가 가득하다. 사장의 모친은 영웅시대 광팬이라고 한다. 옥산의 영웅들이 모여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를 듣는다. 옥산에 애잔한 사랑이 꽃핀다.

커피 한 잔 마시는 동안 커피 향에 빵 굽는 향이 묻어난다. 전통과 미래가 소통하는 애잔한 사랑의 향기로 가슴이 촉촉해진다. 매장에는 향기를 따라온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2023.12.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