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과 상상을 엮으며
수필은 일상의 철학적 해석이다.
이렇게 말하면 ‘일상’이란 말이 걸리겠다. 우리네 삶은 일거수일투족이 다 일상이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동안 체험한 사실에 대해 작가 나름대로 받아들이고 따져서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해석이다. 수필은 매우 주관적인 문학이라고 하지만, 작가의 개성이 넘치는 인식과 해석도 보편적인 삶의 진리로 개념화되어야 독자에게 공명을 일으킬 수 있다. 철학적으로 해석하여 개념화해야 한다는 말이다.
수필가는 체험한 사실을 대상으로 끊임없이 본질을 추구한다. 소재가 된 대상에 대해 앎을 극대화해야 한다. 격물格物하여 치지致知하면 곧 자기만의 독창적인 인식에 이르게 된다. 심오한 진리를 발견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남들이 다 보는 것은 작품의 제재로서 가치가 없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어야 독창적 인식에 이르고 그것이 작품에 수용될 때 독자의 감동을 불러올 수 있다.
수필은 체험과 사실에 대한 작가의 해석을 수필적 상상으로 형상화해야 한다.
이 말은 참 아이러니한 말이다. 사실의 문학이란 말은 작가적 상상을 가미할 수 없다는 의미로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상이 없이 어떻게 예술이 될 수 있을까. 작가적 상상이 없이 예술적 미감을 형상화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수필이 허구를 수용해야 한다는 말이 있지만, 수필에 허구를 받아들이는 순간 독자성을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다만 기억에 의해 소환된 체험을 재구성하여 작가의 상상의 세계를 가미하는 것은 미적 울림을 위해 가능하고 이것은 허구라 할 수 없다. 격물하여 치지에 이르렀다 해도 견색見賾(심오한 세계를 보다)한 독창적인 세계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면 전략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수필적 상상이다. 수필적 상상은 격물의 과정에서 전략적으로 개입되기도 한다. 먼저 대상에 대해 물질적, 물리적으로 본성을 추구한다. 오감五感으로 알아보기이다. 이 과정에 작가의 과학적, 인문학적 온갖 지식이 동원될 수 있을 것이다. 물리적 본질이 밝혀지면 거기에 자신을 비춰보게 된다. 자아성찰이다. 자신의 모순을 발견하고 모순을 해결하고 통찰을 통하여 통합된 새로운 세계로의 도약을 꾀한다. 이와 같은 변증법적 상상의 과정에서 작가의 개인적 체험이나 주관적인 인식은 삶의 하나의 유형으로 개념화된다. 이러한 수필적 상상의 과정은 수필의 예술적 울림을 더하게 될 것이다.
한국의 수필은 전통 수필의 맥을 이어야 한다.
체험과 사실을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구조는 수필의 현대화 과정이나 서구의 에세이가 수입되는 과정에서 처음 생긴 것이라 보기도 하는데 이런 견해는 매우 잘못된 자기 비하이다. 고대 수필에서 이미 그러한 구조의 수필이 발견된다. 중국 둔황 천불동 석굴에서 발견한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보면 이계異界인 오천축국을 오가며 체험한 사실에 대하여 자신의 불교적 지식을 바탕으로 해석을 덧붙이는 구조이다. 고려 말의 이규보나 이곡의 수필도 사실 체험을 진술한 부분과 사실에 대하여 해석과 의미를 덧붙이는 부분으로 양분할 수 있을 정도로 뚜렷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사실·체험+해석’의 구조는 조선으로 넘어와 박지원을 비롯한 문인들의 수필에서 더욱 진화된 형태로 수용되었다. 고려의 수필이 사실·체험+해석으로 양분하는 구조였다면 박지원을 비롯한 조선 수필의 대부분은 일화마다 유연성 있게 의미화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수필의 영역에 포함시킬 수 있는 한국한문학의 설說, 기記, 서序, 서書, 시화詩話, 제문祭文, 소疏 등을 봐도 사실과 체험,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과 개념화 과정으로 구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20년대 현대수필이 싹트기 시작할 무렵에 서구의 에세이가 굴절과 변용을 통하여 우리 수필에 영향을 미치기는 했지만, 맨땅에 에세이를 그대로 이식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1920년대 이후 에세이와 전통수필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던 한국 수필이 최근 들어 우리의 정서와 철학에 맞는 한국 전통 수필의 구조로 돌아서고 있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수필과 관련한 우리의 사고체계가 이미 전통수필의 구조에 젖어 있어서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21세기 수필은 생태문명이라는 패러다임paradigm으로 전환을 꾀하고 있다.
21세기 수필문학이 지향하는 세계는 자연을 대상으로 음풍농월吟風弄月하는 낭만적인 풍류에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또 가족사나 주변의 일에 머물러 늘어놓는 넋두리의 울타리를 넘어서지 못하면 문학으로 대우받지 못할 것이다. 새로운 세계에 새로운 대중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람’과 ‘치유’이다.
지난 세기는 산업 중심 사회에서 벗어나 정보문화가 지배하는 사회였다. 그러나 21세기는 생태주의 문명이 인간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사회로 이행하고 있다. 생태주의ecologism는 기존의 환경주의에 비해, 보다 적극적이고 근본적인 심층적 사고이다. 생태주의는 인간이 생태계에 주인으로서 자연환경을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인간은 생태계의 중심이 아니라 생태계의 한 구성원이며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는 다른 종種들과 동일하다는 수평적 사고를 가지고 대해야 한다는 의식이다. 예를 들어 문화적 생태여성주의cultural ecofeminism는 남성 중심주의 사회에서 폄하된 여성적 가치 즉, 감성이나 영성을 통해 여성주의의 문제와 환경문제를 함께 풀어나가려 한다. 자연은 생명체를 생성하고 부양하기 때문에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므로 여성과 동일시된다. 자연에 대한 인식에 에코페미니즘ecofeminism 같은 새 시대의 사고를 바탕으로 하면 인간이 자연을 대할 때 수평적으로 대하게 되고, 남성이 여성을 대할 때도 수평적으로 대하게 될 뿐 아니라 모성적 원형성까지 느끼게 될 것이다. 이러한 사고가 수필에 수용될 때 아픔과 고통을 치유하는 치유의 문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 수필의 새로운 방향은 인식의 방법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형상의 방법에서도 연구할 과제가 있다. 실제로 시, 소설, 동화, 극의 표현 방법을 수필 창작에 적용하는 경우도 종종 발견되고 있다.
특별히 비평을 공부한 적은 없다.
수필이 좋아서 수필을 쓰면서 어떻게 써야 좋은 수필이 될 수 있을까를 궁리했다. 체험을 어떻게 형상화해야 독자의 공명을 받아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늘 궁금했다. 2014년 목성균 수필가의 《누비처네》를 읽고 감동을 접어 둘 수 없어 감상인지 평론인지 자신 없는 글을 썼는데, 감사하게도 계간 《창조문학》에서 문학평론가라는 이름을 달아주었다. 그 후 수필에 대한 평론만 주로 쓰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수필 평론가가 되어가는 기분이다. 그러는 동안 서평, 작품론, 월평을 청탁받아 발표한 글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부끄럽지만 묶어두기로 했다. 그리고 첫 수필집 《축 읽는 아이》를 낼 때 스승이신 최운식 교수님이 발문을 주셨는데 선생님의 글도 부록에 함께 묶기로 했다. 2021년 수필선집 《덩굴꽃이 자유를 주네》로 제26회 신곡문학상 대상을 받을 때 유한근 교수께서 써 주신 작품론도 역시 부록에 함께 담기로 했다. 내 이름으로 내는 평론집에 두 분의 글을 넣는 것이 예에 어긋나는 건지는 잘 알지 못하지만, 작은 욕심을 내어 두 분의 승낙을 받았으니 흉보지 말았으면 좋겠다. 은사님이신 최운식 교수님과 좋은 작품론을 써 주신 유한근 교수님께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린다.
처음으로 펴내는 평론집이고 평론 등단 이전에 쓴 글도 있어서 어눌하기 짝이 없다. 수필 창작 이론에 어둡고 비평에 대한 이론이 정립되지 못한 상태에 쓴 글이라 혼란스럽게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런데도 귀하게 쓴 작품을 내어주고 평을 하도록 허락해 준 수필가들에게 감사드린다. 둔한 붓으로 작품에 누가 되지나 않았으면 좋겠다. 특히 계간 《수필미학》 주간이신 신재기 교수께서 부족한 글을 게재해 주시고 격려해 주신 데 감사드린다. 이 평론을 읽고 수필 감상과 창작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무한한 영광으로 알겠다. 도와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수름재 서재에서 2021년 이른 가을에
緩步 이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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