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생활과 일상/삶과 문학

동주를 찾아가는 길

느림보 이방주 2023. 4. 23. 11:30

동주를 찾아가는 길

 

아침 식사를 마치고 용정으로 향했다. 용정은 이도백하시에서 연길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작은 도시이다. 용정으로 향하는 길목은 그냥 1970년대 우리 고향 마을을 지나는 것 같다. 길림성을 뒤덮었던 옥수수밭도 여기서는 뜸하다. 우리 고향 야산 같은 산에는 사과나 복숭아 과수원이 있고, 과수원 언덕을 내려오면 나지막한 초가집이나 기와집이 있고, 마당가에 헛간을 들이고, 울타리에는 덩굴강낭콩이 보랏빛 꽃을 피우는 그런 마을이다. 사립문으로 들어가는 오솔길에는 빨갛고 노란 백일홍이나 빨간 맨드라미가 피고, 뜰에는 분꽃이 피어 누나에게 저녁 보리쌀을 안칠 시간을 알려 주는 그런 마을이다.

텃밭에는 고추가 열리고 꽃대를 올린 상추가 자잘한 꽃을 피운다. 들로 나가면 이제 나락이 패어나기 시작할 것 같다. 볏논 언저리에 있는 콩밭도 바로 들어가 김을 매도 하나도 설지 않을 것 같다. 버드나무가 늘어선 개울에서 미꾸라지나 붕어를 잡던 옛날이 그립다. 방천둑에 서서 먼산을 바라보며 새김질하는 누렁소가 크고 검은 눈을 꿈적이는 모습조차 눈에 보이는 듯하다.

용정이 가까워지자 거리의 간판들이 모두 한글이다. 한글을 먼저 쓰고 중국어를 아래에 쓴 간판들이 즐비하다. 간판 뿐 아니라 정부에서 세워 놓은 이정표도 한글과 중국어를 병기했다. 우리나라 북쪽 지방 어디를 돌고 있는 기분이다. 사람들의 표정까지도 고향 사람들이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얘기소리가 다 우리말이다. 도로 보수하는 이들은 위통을 벗고 삽질하는 모습이 그냥 우리 이웃이다. 거기는 그냥 지난 세월에서 이어 내려오는 우리 민족이 살아온 터전이다. 그래서 더욱 이 땅을 중국에 넘겨 준 역사가 원망스럽다. 간도는 윤동주의 고향이 아니더라도 분명히 우리 땅이다.

1712년 조선과 청은 국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백두산에서 회담을 가졌다. 그해 5월 15일 ‘서쪽 국경은 압록강으로 하고 동쪽 국경은 토문으로 한다.(西爲鴨綠 東爲土門)’는 내용의 정계비를 세웠다. 하지만 토문강의 위치에 대해서는 해석상의 문제가 남아 있다.

조선은 두만강과 토문강 사이의 땅, 즉 간도를 개척하였으나, 토문강을 두만강이라고 여긴 청국은 간도를 개간한 조선인의 철수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1883년 조선에서는 어윤중을 보내어 정계비를 조사하게 하고, 9월에는 이중하를 보내어 간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주장하였다. 1902년에는 이범윤을 간도로 파견하여 주민을 위무하였고, 이듬해에는 그를 북간도 관리사로 임명하여 이를 주한청국공사에 통고하였다. 아울러 포병을 양성하고 조세를 거두는 등 계속해서 간도 영유권을 관철시켜 나갔다.

『지도로 보는 한국사』 김용만 김준수 지음

이렇게 잘 나가다가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일본에게 외교권을 박탈당하자 1909년 일본은 청과 간도협약으로 남만주의 철도부설권 등을 얻는 대가로 간도 지역을 중국에 넘겨주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 민족이 대다수 살고 있는 연변조선족자치주, 장백조선족자치현 등 동북지역은 우리가 일구어낸 되찾아야 할 우리 땅이다.

대성중학교에 도착했다. 윤동주 시비 앞에 섰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서시」이다. 한국인이면 다 들러 가는 이 시비 앞에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사실 그를 독립지사라고 하지만, 어떤 면에서 그를 독립지사라고 생각할까 참 궁금했다. 윤동주는 그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서시에서처럼 하늘을 삶의 기준으로 삼았다. 하늘을 향하여 바람에 부대끼면서 살아야만 하는 자신을 무수히 반성하면서 지식인으로서 자신이 소망하는 별을 갈구했다. 그러나 그의 별은 ‘오늘밤 바람에 스치운다’.

나는 동주의 「서시」를 다시 읽으며 ‘하늘, 바람, 별, 시’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했다. 그에게 하늘의 의미는 어떤 것일까. 삶의 근원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마는 것은 너무 단순하다. 하늘은 사유와 가치의 기준이다. 절대적 규범인 동시에 절대적 자유이다. 별과 바람은 소망과 시련으로 대척하기도 하겠지만, 함께 가야할 운명이다. 동주는 ‘오늘밤’이란 암울한 배경에 별과 바람을 함께 불러왔다. 별은 밤에 더욱 빛나지만 바람을 맞아야 빛이 더욱 곱다. 어차피 바람은 혼자 존재할 수 없기에 별에 스치움을 주지 않는 바람은 존재 의미가 없다. 그러나 동주에게 바람은 괴로운 것이고 별은 순결한 소망의 빛이기에 그 빛을 우러렀다. 시는 민중이 지닌 소망이고, 소망을 담은 주문(呪文)이다. 소박한 소망일지라도 노래로 부르면 그것은 성스러운 옷을 입는다. 힘센 자들이나 불의한 지배자가 볼 때 동주가 부르는 노래는 가엽고 유치했겠지만, 역사는 서시를 밤하늘에 별처럼 영롱하게 빛나게 했다.

나는 사실 부끄러운 나이를 맞아서 겨우 하늘의 의미를, 발 딛고 비벼야할 언덕배기인 땅의 의미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동주는 스물아홉 어린 나이에 죽어가면서도 이미 깨달은 하늘과 땅과 자연과 부대껴야 할 바람에 대한 삶의 줄기를 놓치지 않았다. 자신의 별이 바람이 스치울 때마다 지식인으로서의 부끄러움을 느꼈을 것이다. 나는 동주의 어깨인 양 시비를 짚고 서서 다시 한 번 서시를 읽었다. 하늘이 갑자기 흐려졌다. 사람들은 우르르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속 모르는 안내자는 나를 재촉했다.

끊임없이 순수를 지향했던 시인 동주는 지식인으로서 우리 민족에게 가져야할 사명이라는 철저한 규범의 틀 안에 자신을 쓸어 담지 못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꾸짖었다. 녹슨 청동경을 온몸으로 닦으면서 거기에 비친 자신의 부끄러운 얼굴을 수없이 참회했다. 결국은 생체 실험의 대상이 되어 조금씩 조금씩 생명의 에너지를 빼앗기며 죽어간 시인이다. 일제 치하라는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지식인으로써 고뇌를 견디지 못해 황량한 세상에서 방황을 거듭한 시인이다.

이 넓고 비옥한 땅을 잃어버린 역사 앞에서 나는 무엇을 변명해야 하는가? 그저 역사를 놓친 조상들만 원망해야 하는가? 해란강을 건너 멀리 일송정을 바라보면서 용정을 돌아 나오는 길이 착잡하기만 하다.

(2023. 4.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