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키즈 칸 마당에 세종대왕이
말은 달리지 않는다. 칭키즈 칸 기마상은 언덕 위에서 은빛으로 빛나지만 그냥 멈추어 서 있다. 은빛 잔등에 8월의 볕이 부서진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금방 파란 물감을 마구 쏟아 부을 듯하다. 푸른 하늘이 있기에 칭키즈 칸은 눈부시게 보이는 것이다. 천진벌덕(Tsonjin Boldog) 벌판이 바로 여기이다. 칭키즈 칸이 전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행운의 황금 채찍을 발견했다고 알려진 벌판이다. 고향을 바라보고 우뚝 서있는 칸의 모습에 몽골인들은 감동한다.
칭키즈 칸의 마당이다. 초원을 건너온 바람이 언덕으로 몰아친다. 계단을 오르는데 옷깃을 여며야 할 정도로 바람이 차다. 칸이 밟고 있는 건물에 들어가면 화장실이 있고 말의 뒷다리 쪽으로 오르면 칸이 들고 있는 황금색 채찍 부분으로 나와 말머리에 서서 칸의 얼굴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가이드가 알려 주었다. 가이드의 안내 때문에 사람들은 바쁘다.
나는 두 계단씩 밟아 다른 사람보다 먼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엄청나게 큰 기마용 장화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250마리의 소가죽을 벗겨 만든 장화라고 한다. 테무진은 죽어서도 몽골의 자연과 인간을 지배하는구나. 사진을 찍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테무진이 질주하던 몽골의 초원을 내려다보고 싶었다. 그가 몽골의 벌판에 이루고 싶었던 사업은 무엇이었을까. 칸의 눈빛이 궁금했다. 엘리베이터에 내려서도 좁은 계단을 무릎이 아프게 올라가야 했다. 계단이 아주 좁다. 골격이 큰 몽골 사람들은 더 불편할 것 같았다.
말머리로 나가니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바람이 몰아친다. 초가을 바람은 벌판을 건너며 흥분한다. 갈기에 기대서서 칭키즈 칸의 눈을 바라보았다. 칭키즈 칸은 성웅일까, 영웅일까, 용장일까. 그를 칸으로 숭앙하는 겨레를 위해 무엇을 남겼을까. 1995년 워싱턴 포스트는 1206년에 몽골부족을 통일한 칭키즈 칸을 최근 천 년간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그 기준은 알 수 없지만, 치켜뜬 눈은 겨레의 미래를 지향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고향을 바라보는 낭만적인 눈길도 아니었다. 아름다운 초원을 바라보며 야망으로 불타오르는 듯했다. 초원을 경영하여 몽골인을 위해 나아가 세계 인류를 위해 평화를 심어야겠다는 덕은 발견할 수 없었다. 그는 그냥 정복자였다. 그의 본래 이름은 ‘보르지긴 테무진’이었다고 한다. 참말인지 모르지만 ‘테무진’은 그의 아버지가 정복한 장수의 이름을 빼앗아 지었다고 한다. 손에 핏덩이를 쥐고 태어나고 이름도 빼앗았으니 생태적 정복자가 아닌가 한다. 극심한 가난으로 유목민에게는 흔한 고기도 먹지 못하고 나무껍질과 풀뿌리로 연명하면서 야망을 다졌을 것이다.
칭키즈 칸이란 이름은 세계의 군주라는 의미라고 한다. ‘세계의 군주’는 사랑으로 이루는 것이지 칼로 이루는 것은 아니다. 그는 군사적으로 탁월한 재능을 지녔다. 강한 체력에다가 한번 세운 목표는 이루고야 마는 강철 같은 의지까지 타고 났다. 대개 그런 지도자들은 자기주장이 강하고 고집이 세게 마련인데 주변의 조언을 잘 듣는 장점까지 있었다니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게다가 계급을 폐하고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몽골에 일상화되었던 약탈혼까지 금지하였다니 그러한 정책이 세계 정복의 바탕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정복한 땅은 자식이나 친인척에게 나누어 통치하게 하여 권력 기반이 든든하였다. 인종을 차별하지 않았으나 적에게는 무자비했던 것은 핏덩이를 쥐고 태어난 배냇병이 아닌가 한다.
춥기도 해서 서둘러 말에서 내려왔다. 화장실에 들어갔다. 역시 매우 좁다. 손을 씻는데 누군가 ‘선생님 여기서 만나네요.’ 한다. 아 이재표 시인의 목소리다. 좋아하는 청주 시인을 칭키즈 칸의 말발굽 아래서 만난다. 우리는 손잡고 밖으로 나왔다. 테무진의 후예들의 초상이 걸려 있는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칭키즈 칸의 마당에서 청주의 시인과 수필가가 만난 것이다.
바람이 잠잠해지자 볕이 따사롭다. 주차장으로 내려서는 계단에 앉아 쉬고 싶을 만큼 포근하다. 주차장에는 낯익은 버스가 한 대 서 있다. 아 ‘서울버스’ 다. 내가 서울 갈 때 북청주 터미널에서 타는 그 서울버스가 몽골에 왔다. 뒷유리에 ‘북청주-서울 남부’ 한글 자모가 뚜렷하다. 청주에서 여기까지 달려 왔을까. 그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들여온 중고 자동차를 한글을 지우지 않고 그냥 사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유심히 보니 우리를 태우고 다니는 노랑버스 뒷유리에는 ‘아동보호차량’이 선명하다. 칭키즈 칸의 마당에서 한글 자모가 한결 귀하게 보인다.
세종대왕이 칭키즈 칸의 마당에 계시다. 칭키즈 칸의 마당에 한국의 시인이 와 있다. 우리 일행이 모여든다. 한국수필가협회 수필가 36명이 칭키즈 칸의 마당에 가득하다. 칭키즈 칸의 마당에 한국어가 한국문학이 한글이 가득하다. 그러고 보니 몽골의 마트에는 ‘비비고’도 있고 ‘햇반’도 있다. ‘신라면’도 있고 ‘현미비빔밥’도 있다. 세계는 지금 김치 맛에 매료되어 있다. BTS나 K-POP이 세계의 젊은이들을 열광의 도가니에 빠지게 한다. 피부색에 관계없이 『미나리』나 『기생충』에 가슴 먹먹해지는 것도 우리 문화의 덕이다.
세종대왕이 이룬 14세기 르네상스가 조선을 넘어 고비사막에 초록을 심는다. 성현의 예를 규범으로 백성을 다스렸다지만, 핏덩이보다 사랑을 안고 태어난 정치가이다. 우리는 오늘 순간순간을 세종대왕의 울력으로 살아간다. 수없이 날아드는 문자메시지는 아주 단순한 한글 자모로 해결한다. 언젠가 세계는 알파벳을 버리고 한글 자모를 빌려 쓰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아니 서둘러 빌려가는 나라가 문화성장을 빠르게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세종이 이룬 단순한 스물넉 자가 복잡한 현대의 개념을 담아낸다.
칼의 크기로 미래를 보장하지 못한다. ‘칭키즈 칸 공항’, ‘칭키즈 칸 광장’과 같은 허황된 자존심만 존재할 뿐이다. 인류에게 수평적인 사고로 문화와 문명을 일으킨 지도자가 진정한 지도자이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행복하다. 칼보다 사랑이 위대하다.
‘가장 좋은 삶이란 적을 쳐부수고 그들이 쓰러지는 것을 보며, 그들의 말과 재산을 빼앗고 그들의 여자들의 울음소리를 듣는 것이다’라고 했던 정복의 제왕도 말년에는 인간 테무진으로 돌아왔는지 ‘다시 태어난다면 평범한 사람으로 평범한 게르에서 살다가 평범하게 늙어 죽고 싶다’라며 회한을 토로했다고 한다. 지금쯤 자연인 보르지긴 테무진은 자연인 이도(李裪)의 삶을 부러워할지도 모를 일이다. 워싱턴 포스트의 평가는 수정되어야 한다. 최근 천 년간 미래를 위해 가장 훌륭한 씨앗을 심은 지도자는 세종대왕이다. 세종대왕의 후예들은 세계로 달려 나가는데 칭키즈 칸의 말은 미래를 향해 달리지 못하고 아직도 그 자리에 멈추어 서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