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과 서재/문학과 수필평론

따뜻한 눈으로 그려낸 백제 역사의 열린 교과서

느림보 이방주 2017. 11. 2. 02:49

따뜻한 눈으로 그려낸 백제 역사의 열린 교과서

- 이방주 선생님의 가림성 사랑나무를 읽고-

 

이승애(수필가)

 


선생님의 열정과 땀으로 빚은 가림성 사랑나무가 탈고되었다. 나는 선생님의 귀한 초고를 읽을 수 있는 최초의 독자가 되었다. 청주교육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교실에서 지속되는 선생님과의 인연 덕분이다.

선생님은 내가 처음 만나기 전인 2008년부터 산성과 산사를 답사하고 있었다. 2014년 청주시에서 운영하는 일인 일책 만들기 프로그램에서 강사와 수강생으로 처음 만났을 때, 선생님은 이미 백제 속에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산성과 산사를 오르내리며 백제의 역사 속으로 잉큼잉큼 걸어가는 선생님을 뵐 때면 경건함마저 들었다. 그 아름다운 정신과 사상을 본받으며 글쓰기에 정진하였고 나도 수필가로 등단하게 되었다.

가림성 사랑나무는 끈기와 인내심으로 빚어낸 10년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곧 나도 백제와 어우러져 진탕 즐겨볼 수 있게 되었다. 설렘과 기대감으로 첫 장을 넘겼다. 서문부터 선생님 특유의 사람 냄새가 정감을 불러일으킨다.

    

 

남문지에서 동문지까지 약 700여 평 정도 되는 평지를 지나 동문지로 가다가 사랑나무를 되돌아보고 깜짝 놀랐다. 이 느티나무가 하트모양을 하고 있었다. 나무 전체의 모습은 역으로 하트모양이고 오른쪽 맨 아래 가지 모양이 남문과 더불어 바른 하트모양을 이루고 있었다. (중략)

조금 있으려니 젊은이들이 자전거를 끌고 올라왔다. 쌍쌍이는 아니라도 자전거 동호회에서 봄맞이 라이딩riding을 나온 모양이다. 여성회원 웃음소리가 크면 남성회원은 더 큰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쌍쌍이 데이트 코스로 잡은 젊은이들도 두세 쌍 되었다. 손잡고 사진 찍고, 얼굴 맞대고 셀카 찍고, 갖은 포즈를 다 취한다. 사진을 함께 보면서 한동안 행복할 것이다. 사랑나무 밑에 혼자 선 나는 잠시 외로웠다. 그러나 내게는 가림성이라는 사랑이 있으니까 성벽과 사랑을 속삭이면 된다. 성이 옆에 있으니 그와 성생활城生活을 하면 되는 것이다. (중략)

성벽이 흙무더기를 벗고 1500년 동안 감추었던 알몸을 내 앞에 드러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사랑나무보다 더 매혹적이다. 카메라를 들이대고 줄자로 성돌의 크기나 성벽의 높이를 재면서 성벽과 사랑을 나누었다. 행여 흙 한줌이라도 떨어질까, 쐐기돌 하나라도 훼손될까 나의 애무는 애면글면 조심스러웠다. 노년에 하는 익은 사랑, 참사랑은 바로 가림성 사랑이다.

- 권두수필<가림성加林城 사랑나무> 일부 -

 

선생님은 부여 성흥산 가림성에서 우뚝 솟아오른 느티나무가 하트 모양을 한 것을 우연히 발견하고 깜짝 놀란다. 그 놀람을 부추기듯 젊은 남녀 자전거 동호회원들과 몇 쌍의 연인들이 올라와 사랑나무 아래에서 다정하게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며 잠시 사랑의 감성에 젖기도 한다. 하지만 곧 본연의 자세로 돌아와 성곽을 살피며 역사의 의미를 찾는데 몰두한다. 선생님다운 모습이다.

가림성 사랑나무에는 선생님이 답사한 100여 개의 산성과 40여 개의 산사 중에서 백제사와 관련된 산성을 제재 47, 산사 제재 18편을 합하여 65편의 수필이 수록되었다. 1부 부흥백제의 운명 아니 오신 듯 다녀가소서-에는 백제 부흥운동에 관련된 세종시 운주산성으로부터 서천군의 건지산성까지 산성과 산사 답사 결과를 제재로 하였고, 2부 쟁패와 아픔의 현장 옥천에서 회인까지-에는 백제가 신라와 삼한일통을 놓고 경쟁하는 과정에서 뺏고 빼앗기는 역사에 관련된 산성과 산사를 제재로 하였으며, 3부 금강 지킴이 전월산에서 합강을 보다-에는 세종시 부강면의 합강을 중심으로 산성을 주요 제재로 하였으며, 마지막으로 제 4부 청주 나성 와우산 토성은 청주 나성-은 청주지방을 중심으로 하여 고구려 백제 신라가 경쟁하는 산성과 청주 사람들이 즐겨 찾는 산사를 제재로 하였다.

산성 제재 47편의 수필과 산사 제재 18편의 수필을 읽다보면 산성과 산사가 역사적으로 깊은 관련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제 1부 부흥백제의 운명에 산사 제재 작품이 많은 것은 산성이 민중의 한과 아픔의 현장이었다는 것을 대변하고 있다. 이곳의 산사는 산성에서 스러진 백성의 한을 아직도 보듬어 안고 있다는 것을 선생님은 발견한 것이다. 민중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것을 작가의 따뜻한 눈으로 찾아내어 빛을 보게 된 것이다.

따라서 가림성 사랑나무는 백제의 역사에 내재된 의미를 찾고, 자연을 완상하여 기록한 열린 교과서이다. 뿐만 아니라 문학적 감성, 해학과 위트, 풍자가 어우러져 흥미진진하면서도 격이 높은 수필이다.

 

비암사에서 금이성 가는 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순하다. 길은 지나간 사람의 발자국이다. 순한 길은 순한 사람의 흔적이다. 철옹성인 금이성을 지킨 사람들은 용감했겠지만, 마음은 순했기에 길도 순한 것이다. 길은 시대에 따라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지난 시대 사람의 발자국을 지우며 지나기도 한다. 순했던 길도 강한 사람에 의해 강하게 왜곡된다. 역사도 문화도 그렇게 강자의 발자국에 의해 바뀌는 것이다. 현대는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이 산기슭처럼 임도를 내고, 운주산성과 금이성의 이어진 지맥을 끊어 1번 국도를 내기도 했다. 끊어진 지맥을 잇듯 임도를 건너 비탈길을 오르니 금이성이다. 성안에는 잡목이 우거지고, 잡초가 무성하다. 무너진 곳도 있지만, 대부분 원형이 잘 남아 있다. 이렇게 원형이 잘 보존된 산성이 잡목에 묻혀 있는 것이 안타깝다. 성벽 위에 앉아 축성 모습을 살펴보았다. 외부는 돌을 조금씩 다듬어서 쌓았고 내부는 자연석을 그대로 박아 넣는 방식이었다. 축성에 쓰인 돌은 크기가 비슷한 직사각형이다. 문지門址가 남북으로 두 군데이고, 동쪽으로 수구水口도 보인다. 이 많은 돌을 어디서 어떻게 옮겨 왔을까? 동원된 백성 가운데는 장정도 있었겠지만, 노인도 부녀자도 어린 아이도 있었을 것이다. 굶주림과 병마에 시달리다 돌에 치어 죽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성돌 하나가 근동 백성의 생명이다. (중략)

지팡이로 여기저기를 파헤치니 와편과 토기편이 보인다. 건물도 있었고 사람도 상주했었다는 증거다. 와편은 물고기 가시 같은 줄무늬가 있고 토기편은 민무늬에 갈색을 띤다. 토기편에서 옛 사람의 젓가락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 <백제의 철옹성 금이성金伊城> 일부-

 

선생님은 예리한 직관력과 통찰력으로 사물을 관조하고 음미할 줄 아는 분이다. 성곽에서 발견된 그 어떤 것도 허투루 보지 않는다. 와편 조각 하나, 성벽 돌 하나, 흙 한 줌에서도 의미를 찾아내어 지나간 역사, 사라진 사람들에 대한 애환을 언어로 소생시킨다. 독자가 성하나 하나를 만날 때마다 그 시대를 유추하고 느낄 수 있도록 선명한 묘사와 맛깔스러운 형상화로 마음을 사로잡는다.

선생님은 굳이 혼자서 산성을 찾아가셨다. 그 이유는 오롯이 성과 마주하고 그 흔적들을 놓치지 않고 담아오려는 욕심 때문이었다. 성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되면 천하를 얻은 듯 흥분하여 들뜨기도 하고, 때로는 한 맺힌 혼불이 머무는 것 같은 괴괴함에 두려움마저 느끼기도 하였단다. 돌부리와 억센 풀에 걸려 상처투성이가 되는 일이 예사였고, 멧돼지와 맞닥뜨려 오금이 저린 날도 있었다. 그럼에도 선생님께서 이 일을 멈추지 않은 이유는 백제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대중에게 우리 옛 문화를 알리고 싶은 열망 때문이었다.

역사를 탐방하고 글을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길이 없는 길을 내는 일이다. 물론 학자들이 고증한 문헌들이 있지만, 그것을 토대로 새로운 역사를 발견하고 기록하는 일은 어렵고 힘든 일이다.

가림성 사랑나무는 어찌 보면 건조할 것 같은 성과 사찰이야기이지만 매우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백제 역사의 열린 교과서이다. 이 책을 통하여 많은 사람이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갖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