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과 서재/문학과 수필평론

철학적 속삭임으로 날아오른 일상

느림보 이방주 2017. 10. 30. 23:00

신금철 수필가의 호랑나비의 우화羽化

 

 

철학적 속삭임으로 날아오른 일상

 

이방주(수필가, 문학평론가)

       

   1. 들어가며


수필은 무엇으로 예술성을 지니는가? 수필은 문학이기에 현실에 대한 독창적 인식을 아름다운 언어로 형상한다. 수필은 그 태생이 시와 다르고 수필에 담기는 이야기도 소설과 다르다. 세상을 바라보는 수필가의 눈은 시인과 다르고, 인식을 전달하는 언어가 소설가와 다르다. 수필가는 일상에서 찾아낸 생활의 철학을 신에게 기구하는 것이 아니라 옆자리에 앉아 있는 인간에게 들려주는 속삭임이다. 시인의 인식과 언어가 일방적이라면 수필가는 상대적이고, 철학적이고 개성적인 언어로 들려주는 속삭임이다.



신금철 수필가의 제재는 일상이다. 그러나 그의 시선이 일상에 머물러 있었다면 그것은 예술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문학인은 수필을 신변잡기라 말하지만, 그는 신변을 이야기하면서도 잡기에 머물지 않고 우화하여 보편적 삶의 세계를 날아다니는 철학적 담화이다.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지만 가장 인상적인 메시지를 독자에게 던져 준다.

신금철의 두 번째 수필집 호랑나비의 우화羽化에는 총 61편의 작품이 주제별 6부로 나뉘어 수록되었다. 작품의 제재를 대별해 보니 가족, 일상, 인간관계, 자연과 삶의 환경, 세태비판, 삶과 죽음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의 시선이 제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신변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 보편적 진리로 승화한 철학적 담화이다. 다시 말하면 자연에서 삶의 섭리를 발견하고, 인간과 인간관계에서 따뜻한 인간애의 소중함을 드러내고, 일상의 세태를 깊은 종교적 사랑으로 바라보면서 삶의 의미로 승화한다. 그는 신변을 말하고 있지만 신변에 머무르지 않고 노년을 사는 철학적 사고를 재촉하면서 다음과 같은 화두를 던지고 있다.

 

부부에게 짊어진 삶의 무게가 한 치의 오차 없이 똑 같을 수는 없다. 그저 너그러운 마음과 용서로 조금 더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간다면 부부 사이에 불행한 선을 긋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늘 남편의 손을 잡고 살았기에 혼자가 두렵다. 황금빛 노을이 더욱 붉게 물든 숲 속의 아름다운 노부부의 그림처럼 남편의 손을 잡고 서로 의지하며 남은 날을 행복하게 살고 싶다.

행복한 삶은 누군가와 손잡고 함께 걸어가는 것이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행복한 삶은 누군가와 손잡고 함께 걸어가는 것이라고 생활인의 철학을 한 마디로 정의하였다. 삶의 행로에는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는 말에 수필의 장르적 특성을 담고 있다. 조동일 교수는 수필을 작품외적 세계의 개입으로 이루어지는 자아의 세계화라 규정하면서 세계의 자아화라는 시와 구별하였다. 자아를 세계화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존재가 중요하고 그와 손잡고 함께 걸어야 한다. 물론 걸어가는 길도 방향도 하나여야 한다. 호랑나비의 우화羽化의 작품 한편 한편마다 화자와 함께 걷는 누군가가 존재한다. 이것이 신금철 수필가의 삶이 수필처럼 아름답고 그의 수필이 삶처럼 풍요로운 지름길이 되었다 황금빛 노을이 붉게 물든 숲속의 아름다운 노부부의 그림을 꿈꾸면서 노년의 삶을 말하지만, 독자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그의 철학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작가는 은근한 가르침을 낮은 목소리로 강하게 심어줌으로써 수필문학이 지향하는 독자성을 드러내었다.

호랑나비의 우화羽化의 예술성은 작가의 철학적 인식과 문학적 형상화를 알아보는 것이 급선무이다.

 

2. 호랑나비의 우화羽化의 시선이 머무는 곳

 

(1) 굴절되지 않는 시선

 

작가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알아보는 것은 인식의 독창성에 중점을 둔다. 어떤 이는 신변을 제재로 의미를 찾아 예술성을 확보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수필이 문학성을 고양할 수 없으니 수필도 이제 신변에서 탈출하라고 한다. 그러나 신변을 벗어나려고 먼 여행을 했다면 이미 그곳이 신변이 된다. 주제를 정해 놓고 소재를 찾으러 신변을 떠나 창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허구이다. 그러므로 수필은 신변을 떠난 곳에서 얻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신변과 일상의 체험에서 독창적 인식과 사색으로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다. 수필은 재주로 쓰는 글이 아니다. 수필은 도닦는 마음으로 쓰는 글이다.

신금철 수필가의 눈은 투명하다. 그의 시선은 도를 닦는 길처럼 굴절되지 않는다. 소재를 직관하여 깨닫고 느끼는 진리를 물들이지 않고 진솔하게 술회한다. 그의 많은 작품들이 일상을 떠난 곳에서 제재를 얻었다. 그러나 일상을 떠나도 바로 그곳을 일상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그의 수필은 소재에서 발견하는 의미를 진솔하게 술회하였을 뿐 주제를 염두에 두고 소재를 찾아 나서지 않는다.

 

융단처럼 펼쳐진 황금빛 구들장 논과 아직은 물들지 않은 연두색의 조화, 모든 시름과 걱정을 잊고 오직 피사체를 향해 몰두하는 남편의 모습 역시 청산도를 빛나게 하는 아름다운 정경의 일부였다.

나는 길게 숨을 토해냈다. 때 묻은 양심, 가득 찬 탐욕, 미움과 질투, 짜증과 분노 모두를 털기 시작했다. 푸른 바다에, 맑은 바람에 실리어 날아갔을 나의 모든 것들 대신에 내 깊숙한 곳에 이제 남은 시간은 욕심도 없고 미움도 없이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내 마음의 밭에 코스모스를 잔뜩 심어놓았다

- <아름다운 청산도>에서-

 

작품 <아름다운 청산도>의 일부이다. 작가는 일상을 탈출하여 소시민의 이상세계라고 할 수 있는 청산도에 가 있다. 그러나 이상세계는 바로 일상으로 돌아가 버린다. 아름다운 자연과 하나가 된 남편이란 일상이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진작가인 남편은 정화된 세계를 피사체로 촬영을 한다. 그러나 작가의 눈에 남편은 함께 할 누군가가 되어 정화된 청산도 자연의 일부가 되어 버린다. 이와 같이 작가는 일상을 굴절되지 않은 투명한 눈으로 바라본다. 여기서 자아는 곧 세계화한다. 정화된 자연, 아름다운 이상세계, 그 일부가 된 남편을 바라보며 마음 밭에 코스모스를 심어 놓는다.’ 정화된 세상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작가는 일상을 떠나지만 주제를 정해놓고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도달한 세계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 이렇게 수필문학의 예술성을 구현하였다.

 

(2) 자연에 관한 인식

 

호랑나비의 우화羽化의 많은 작품이 자연을 제재로 하였다. 자연은 인간의 삶의 현장이며, 때로는 현실을 떠나 돌아가 의지하고 싶은 귀의의 대상이다. 자연은 두려움의 존재이기도 하고,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기도 한다. 자연의 변화를 바라보며 인간은 섭리를 발견하고 삶의 순환원리를 깨닫는다.

 

담쟁이가 상수리나무를 열심히 기어오른다. 덩굴손으로 나무를 붙잡고 기어오르는 모습이 힘겨워 보인다. 담쟁이가 벽이나 나무를 타고 오르는 모습에서 생명의 끈질김과 자연의 신비를 느낀다. 그러나 남의 집에 둥지를 틀고 마음 편치 않은 새처럼 상수리나무를 휘감은 담쟁이가 애처롭다.

나는 어머니라는 나무에 잔뜩 들러붙어 어미를 힘들게 하는 담쟁이였다. 직장생활을 핑계로 어머니께 집안 살림과 세 녀석이나 되는 손자들을 보살피는 힘든 일을 떠맡기고도 어머니의 건강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병원 침대에 눕기 전까지 오직 딸의 행복을 위해 휘어지고 부러지면서도 딸이 업히도록 등을 내주신 어머니에게 죄송하고 감사하여 눈물을 흘린다.

담쟁이는 스스로 서서 자라지 못하고 다른 나무의 몸을 빌어서 자란다. 담쟁이도 답답함을 참으며 기꺼이 몸을 내주는 상수리나무에게 감사하고 죄송하다는 마음을 안고 살아가겠지 생각하니 기대어 사는 그의 삶이 안타깝다. 내 어머니 같은 상수리나무에게 감사의 인사를 한다.

- <숲의 선물>에서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소중하다. 작은 나비도 이렇듯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데, 하물며 열 달을 자기 몸속에 품었다가 세상 밖으로 나온 귀한 자식을 어찌 학대하고 목숨까지도 빼앗을 수 있을까?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자격 없는 일부 부모들이 저지르는 잔인한 행동에 화가 난다.

번데기가 허물을 벗고 나비가 되어 하늘을 나는 것을 우화羽化라고 한다. 나비는 우화 할 때 가장 위험해서 우화 도중 잘못하여 땅에 떨어지면 날개가 펴지지 않고 굳어버려 살아나지 못한다. 일부 인면수심의 어른들이 자녀들의 가냘픈 날개를 찢어서 세상을 날아보지도 못하고 추락하는 슬픈 일이 더 이상 없기를 바란다.

-<호랑나비의 우화羽化>에서-

 

꽃들은 크거나 작거나 화려한 색이거나 소박하거나 모두 아름답다. 아마도 욕심을 버리고 비와 햇볕과 바람까지도 골고루 나누며 내면까지도 아름다움으로 가꾸기 때문인 것 같다. 해바라기와 채송화처럼 큰 대조를 이루는 꽃들 중에서 어느 꽃이 더 예쁘고 가치 있는 가를 말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두 꽃 다 축복받은 생명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났고 보호받아야할 당당한 권리가 있으며 각각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꽃들은 크다고 교만하지 않고 작다고 주눅 들지 않으며 시기도 욕심도 없다.

사람도 이 세상에 존재의 가치를 공평하게 부여받고 태어났다. 소유의 많고 적음에 따라 가치가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해바라기와 채송화>에서-

 

작가는 <숲의 선물>에서 담쟁이가 상수리나무를 기어오르면서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살아온 날을 돌아본다. 대부분 사람들은 담쟁이의 끈질긴 생명력을 삶의 귀감으로 삼겠지만, 작가는 담쟁이가 스스로 살지 못하고 상수리나무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모습을 애처롭게 생각한다. 그것은 곧 자신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어머니에게 자녀 양육을 맡긴 죄송스런 마음을 드러낸 것이다. 담쟁이를 자신의 객관적 상관물로 상수리나무를 어머니로 생각하게 된다. 자연에서 자신의 삶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다.

<호랑나비의 우화>에서는 손자가 호랑나비를 기르는 모습에서 자식을 사랑하는 법을 깨닫는다. 호랑나비가 우화하는 순간이 호랑나비의 일생에 가장 위험한 것처럼 사람도 세상에 태어날 때 보살핌을 받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자연의 섭리는 곧 인간의 생로병사와 같은 것이므로 순간마다 보호받고 도움을 받아야 함을 강조하였다.

<해바라기와 채송화>에서는 두 꽃이 키가 크고 작음에 관계없이 가치의 유무는 별개인 것이라는 진리를 말하였다. 인간은 그의 크고 작음에 따라 가치가 평가되어서도 안 되고 차별을 받아서도 안 되는 것이다. 누구나 공평하고 축복받은 생명임을 두 꽃을 통하여 깨달은 진리를 담담하게 기술하였다. 자연의 순환원리를 교훈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우리나라 문학에 나타난 전통적인 자연관이다.

 

(3) 사랑으로 충만한 인간관계

 

호랑나비의 우화羽化에 특히 두드러지게 등장하는 것은 따뜻한 인간애이다. 작가가 만나는 사람들은 주로 가족이다. 그의 가족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외롭게 살아왔기에 가족에 대한 애정이 유별나다.

현대사회는 1차 산업이 요구되는 공동체집단에서 벗어나 핵가족화, 개인화하고 있다. 가족의 기능이 대개 가정 밖의 사회로 대부분 이전되었고, 자녀 양육의 기능도 많이 약화되었다. 그런 관계로 결속은 약화되고 대화와 사랑이 단절되었다. 가정이 사회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면 가정 내의 갈등과 여러 가지 문제는 곧 사회문제로 발전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족의 해체와 붕괴가 현대사회의 자연스런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작가의 가정은 이러한 현대 가족관계의 문제를 사랑으로 해결하고 있다. 호랑나비의 우화羽化에 드러난 가족 관계는 부모, 남편, 자녀와 손자이다. 중심에는 작가가 있다. 트레이 파커Trey Parker가족은 누구의 핏줄이냐가 아니라 누구를 사랑하느냐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가족은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아버지라는 호칭을 한 번도 사용할 수 없었다. 첫돌이 되기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부를 대상이 없었던 것이다. 지금도 내겐 아버지란 말이 어색하다. 스무 살 중반에 청상이 된 어머니는 오직 나 하나만을 위해 사셨다. 돌도 안 된 딸을 두고 남편을 잃은 어머니가 겪으신 슬픔의 웅덩이는 너무 깊어서 평생 동안 그 무엇으로도 메울 수가 없으셨을 것이다.

가끔 주전자를 들고 아버지의 막걸리 심부름을 가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아버지의 사랑은 어떤 것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내게 다른 아이들처럼 온전한 부모의 사랑을 채워주시느라 많은 고생을 하셨다. 훌륭한 어머니 덕분에 나는 아버지의 부재不在를 잘 이겨냈다. 그러나 아버지의 역할까지 하시느라 버거워 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볼 때면 아버지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져 그리움에 잠겼다.

-<아버지>에서-

 

우리 집도 형편이 좋지 않아 시계라고는 한 개도 없었기에 어머니는 기차통학을 하는 나의 아침밥을 지으시기 위해 중학교 3, 고등학교 3년을 거의 밤잠을 주무시지 못했다. 그러나 시계가 없어도 어머니가 늦잠을 주무셔서 아침을 굶고 간 적이 한 번도 없던 기억에 혼자 소리 없는 웃음을 자아낸다.

그렇게 갖고 싶었던 시계를 교사 발령을 받고도 몇 개월이 자난 후에야 사서 찰 수 있었고 어머니에게도 적금을 부어 목돈을 마련하여 시계를 사드려 어머니는 무척이나 기뻐하셨고 자랑스럽게 시계를 차고 다니셨다.

-<시계>에서-

 

노추산 계곡은 어느 새 가을이 깊어 돌탑 사이로 낙엽이 수북이 떨어져 쌓이고 단풍이 막바지에 이르러 만추의 운치가 절정이었다. 돌탑 하나하나엔 눈물과 슬픔이 배인 어머니의 한 어린 모습이 가슴을 울렸다.

어머니가 위대한 존재임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러나 전설이 아닌 실화라는 점에서 어머니의 위대함을 가슴 깊이 느끼며 그 분이 생전에 살았던 흔적이 있는 움막을 드려다 보자 가슴이 뭉클하였다.

전설과 사연이 얽히지 않은 산이 없지만 자식을 위해 모정탑을 쌓느라 힘들었을 어머니의 위대함에 절로 존경심이 솟구쳤다.

-<모정탑母情塔>에서-

 

<아버지>는 아주 어렸을 때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을 그렸다. 아버지는 우리나라 전통적인 가족제도에서 가정의 우두머리이다. 부계중심 친족사회에서 아버지는 가장이고 부인에겐 남편이고 자식에겐 바로 아버지이다. 가계의 존속을 강조하는 우리나라의 가족제도에서 가장은 시조로부터 수많은 세대의 아버지가 끊임없이 이어온 것이고, 단절되지 않고 후세에 이어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렇게 아버지는 어느 먼 과거에서 시작되어 미래로 이어지는 연결 고리이다. 한국 사회에서 아버지의 역할이 다양하기 때문에 가족 구성원 중에서 호칭도 가장 다양하다. 국어에서 어린이가 아버지를 부르는 아빠라는 호칭은 아랍어에서는 ‘abba’라고 한다. 그리스도 시대에 팔레스티나에서 아버지를 애정과 친근감을 담아 이렇게 불렀던 것 같다. 그래서 기독교에서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는지도 모르겠다. 힌두교의 경전인 베다에서는 영원한 신과 같은 존재로 아버지를 피트리pitri라 했다고 한다.

기독교인들이 하느님 아버지하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하느님은 아버지와 같은 존재’ ‘아버지는 하느님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다. 작가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부재를 어른이 되면서 어머니를 남편의 부재로 이해한다. 그래서 슬픔의 웅덩이를 그 무엇으로도 메우지 못했을 것으로 어머니와 아픔을 공유한다. 어찌 아버지의 막걸리 심부름만 부러웠을까? 작가는 나이 들어가면서 어머니에게서 보이는 아버지의 빈자리를 통하여 막연한 그리움을 더한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존경심은 더해진다. <모정탑母情塔>에서 어머니의 위대함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였다.

전통사회 가부장제도 아래에서 남편은 아내의 배우자라는 의미 이상의 개념이었다. 그러나 사회 제도가 변화하면서 남편의 의미는 많이 축소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가족 제도에서 남편의 권위가 약화 내지 축소된 것은 아내인 여성의 지위 상승과 원인을 같이 한다. 농경 생활 중심이었던 전통사회와 달리 경제활동을 함께하는 현대 생활양식은 남편의 강력한 권위를 뒷받침해 주지 않는다. 그러나 가정마다 모두 이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내 인생의 봄날>에서 엿볼 수 있다.

 

젊은 시절, 부모님께 받은 유산 없이 자수성가하고 아이들 키우며 직장 생활하느라 힘들었던 세월을 혹독한 겨울로 생각하며 이제 남은 인생의 계절은 그와 나의 영원한 환희의 봄이라 느끼며 살고 싶다. 고희를 맞는 남편에게 가족을 위해 수고한 감사의 메시지를 들려주고, 그의 건강을 위한 기도와 영원한 사랑의 약속을 선물로 주어야겠다.

살다보면 찬바람 부는 겨울이 오기도 하겠지만 긍정의 힘으로, 비우는 마음으로, 겸손으로 감싸주고 사랑하며 사노라면 봄의 환희처럼 밝은 웃음이 우리 곁에 함께 해주리라 믿는다.

아직 계절의 봄소식은 멀었지만 내 마음은 벌써 섬진강의 매화꽂이 만발한 봄의 동산에서 활짝 웃으며 그의 카메라 앞에 서 있다.

-<내 인생의 봄날>에서-

 

이 작품에서 작가는 남편의 과거를 이해하고 현재의 고통을 함께하며 다가오는 미래에 영원한 사랑을 고희를 맞은 남편에게 가족을 위해 수고한 감사의 메시지를 들려주고 건강을 위한 기도와 영원한 사랑의 약속을 선물할 것이라며 마음속 깊이 다짐한다. 현대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상승하고 부부가 대등한 관계가 형성된 것은 여성의 경제활동에 기인한다. 신금철 수필가처럼 부부가 함께 경제활동을 하면서 전통 사회의 남편에 대한 개념을 유지하는 가정도 많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서 가정과 가족을 인식하는 작가의 시선이 남다름을 엿볼 수 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어머니에 대한 존경심, 남편에 대한 존경과 사랑은 작가가 인간을 사랑하는 심성의 발로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가족사랑은 며느리 사랑이나 손자 사랑으로 발전한다.

 

며느리 셋이 제사음식을 준비한다. 여름휴가를 함께 즐기고 한 달 만에 만난 그들은 밀린 이야기꽃을 피운다. 그들의 다정한 모습도 눈에 선하다.

며느리 셋은 키도 얼굴도 많이 닮았다. 내 보기에 늘씬한 키에 탤런트 못지않은 미인들이다. 지혜롭고 심성도 곱다. 직장생활과 육아로 힘들겠지만 내색하지 않고 명절을 지내기 위해 정성을 다 한다.

나는 며느리들의 일손을 덜어주려고 며칠 전부터 김치를 담그고 밑반찬을 준비한다. 제사 음식은 푸짐한 것보다 정성이 더 중요하다고 여겨 손이 많이 가고 까다로운 제사 음식을 피하고 힘이 덜 들도록 메뉴를 정한다. 아들들은 쓰레기를 분리하여 내다 버리고, 아이들을 보살피며 설거지를 도와주고, 남편은 제사상을 차리고 청소기를 돌린다.

-<추석이 남긴 것>에서-

 

내 인생도 중요하여 취미생활도 하고 건강도 지키기 위해 일찌감치 아이들을 어린이 집에 맡기고 편히 지내는 것도 좋지만 정성과 사랑으로 아이를 키우는 게 부모의 도리이며 즐거움임을 함께 생각해 보아야겠다.

나는 취미생활을 잠시 미루고 내 어머니께서 손자들을 정성껏 키워주신 것처럼 예솔이에게 직장에 나간 엄마의 빈자리를 사랑으로 채워주기 위해 나도 세 살이 되어 함께 소꿉놀이를 하고 맛있는 간식도 챙겨주며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육아 지식을 동원하여 아기가 행복하도록 돌보아줄 생각이다.

-<소꿉놀이>에서-

 

<추석이 남긴 것>에서 작가의 숨길 수 없는 며느리 사랑이 드러나 있다. ‘탤런트 못지않은 미인’ ‘심성도 곱고’ ‘지혜롭고’ ‘명절을 위한 정성으로 극찬 받는 며느리들은 정말로 아름답고 지혜롭고 훌륭하기도 하겠지만 아무리 훌륭해도 바라보는 시어머니의 눈초리에 따라 좌우되기 마련이다. 여기서 작가가 며느리를 사랑하는 시선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미리 김치를 담그고 밑반찬을 준비한다. 작가의 가정은 이 작품의 결미 부분에서 밝힌 것처럼 서로 나누고 도와주어 추석이 남긴 아름다운 추억들이 다음의 명절을 기다리는 가슴 설레는 명절이 될것이라고 믿는다. 지나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시선이 바로 수필문학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향이 아닌가 한다.

 

(4) 역사와 시대에 대한 시선

 

호랑나비의 우화羽化는 신변과 일상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가족과 가정에 머물러 있는 것 같지만 이 시대의 역사문화와 사회 문제에 대한 걱정도 많다. 한 세대를 살아오면서 많은 제자를 길러낸 착한 선생님 부부가 은퇴하여 자손을 돌보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인자한 시선을 발견할 수 있다.

 

요즘 사회적으로 화제가 된 재벌가의 다툼을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음은 그들이 피를 나눈 형제이기 때문이다. 그들 형제뿐만 아니라 주위에서나 매스컴을 통해 재산으로 인한 부모, 자식, 형제간의 치열한 싸움을 볼 때마다 서글픈 생각이 든다.

돈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여 그 가치를 무시해버릴 수는 없지만 혈연간에 사투를 벌일 만큼 귀한 존재는 아닐 것이다. 신이 인간에게 가장 공평하게 나누어준 것은 죽음이다.그 귀하다는 돈도 인간의 죽음은 막을 수 없기에 돈을 많이 쥐었던 부호들도 언젠가는 놓고 떠나야한다.

-<형제>에서-

 

손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아주 소중한 신체의 일부다. 좋은 일에 사용되는 손은 기쁨과 보람과 감사의 손이 되지만, 죄를 짓는 손으로 인하여 가슴 아픈 세상이다. 노동의 고통 없이 거액의 뇌물을 받아 챙기는 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인체에 해를 입히는 것을 만들고, 남의 것을 빼앗고, 심지어는 사람을 죽이는데 사용하는 나쁜 손이 날이 갈수록 늘고 있다.

감자를 캐시던 할머니와 감자를 까시던 할머니처럼 검버섯이 돋아나고 주름이 가득하여 곱지 않은 손이 되더라도 부끄러운 손이 되지 않아야겠다. 열심히 살아온 흔적을 남기는 떳떳한 손이 되도록 착한 일을 하는 손이 많은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에서-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는 것, 그토록 웃음을 안겨주던 나뭇잎들은 이제 숲을 걷는 내 발밑에서 마지막 노래를 부른다. 인간이 아기로 태어나 병들고 나이 들어 죽음에 이르듯 그토록 싱싱하고 무성하던 나뭇잎은 계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엔 떨어져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간다.

온갖 몸부림을 치며 얻은 권세權勢, 명예名譽, 도 언젠가는 허무하게 사라져버린다는 누구나 다 아는 진리를 되뇌며 단풍놀이를 끝냈다.

-<오늘은 나 내일은 너>에서-

 

<형제>에서 재산을 놓고 형제간의 다툼이 일어나는 오늘날의 현실에 대하여 자신의 일처럼 걱정하고 있다. 인생행로의 모든 선택 앞에서 가장 먼저 전제되어야 할 것은 곧 죽음이다. 삶을 기름지고 값지게 하는 것은 자신의 죽음을 전제로 선택했을 때 가능하다. 국가나 사회에 커다란 역사의 성이 있다면 그것은 곧 개인의 역사라는 작은 벽돌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역사의식은 개인의 삶을 선택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교직 40여년의 원로로서 사회에 던지는 일침이다.

<>은 최근의 사회 풍조를 보면서 손의 향방에 따라 달라지는 손의 가치를 토로하였다. 검버섯이 있는 손이라도 부끄러운 손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가치 선택의 기로에 선 젊은이들에게 결정적인 교훈은 <오늘은 나 내일은 너>에서 시사하고 있다. 인류 역사는 순환하여 언젠가는 내일의 너오늘의 나가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수필은 철학과 문학의 사이에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수필에서 작가의 세계에 대한 인식은 그의 생활 철학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신금철 수필가가 호랑나비의 우화羽化를 통하여 세계를 인식하는 가장 기본적인 철학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가정을 사랑하고 부모, 남편, 아들 며느리와 손자에 대한 사랑이 사회와 국가 인류문화에 대한 사랑으로 우화羽化하여 한지에 먹물처럼 작품에 스며들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3. 제재의 예술적 형상화


수필을 신변잡기적이라고 한다. 또 어떤 이는 수필은 일상을 제재로 한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신변 제재를 탈출하는 것이 수필의 문학성을 제고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다 옳은 말일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신변을 탈출한 제재를 작품화하더라도 대상에 대한 본질을 추구하여 완전한 앎의 경지에 이른 다음 자신만의 눈으로 새롭게 인식하지 못하면 예술과는 거리가 먼 단순한 이야기로 전락한다. 그래서 격물格物과 치지致知를 수필의 첫 단계라 말한다. 독창적 인식이 이루어진 다음에도 인상적으로 그려내지 못하면 또한 이야기 수준에 머물러 잡기라는 평가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문학적 형상화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다.

호랑나비의 우화羽化의 예술적 형상화 방법을 간단히 알아보기로 한다.

 

(1) 묘사와 비유

 

문학적 형상화 방법에서 묘사와 비유를 뺄 수는 없다. 그런데 묘사는 대부분 비유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비유는 인상적 묘사에 가장 큰 도구라고 할 수 있다. 비유는 전혀 다른 두 사물의 관념을 공유하는 언어의 소통과 공감이다. ‘내 마음은 호수이다.’라 은유했다면 전혀 다른 마음과 호수가 의미를 공유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가장 고급스러운 언어 표현이고 인상적 묘사의 방법이다.

 

산을 내려오면서 홀로 무엇이든 잘 할 수 있다는 이기심에서 이제는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도움을 받아야 살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며 나도 누군가를 위해 힘이 되는 지팡이 같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남편이 내게 지팡이를 내밀며 걱정 해주듯 나도 남편을 위한 마음의 지팡이가 되어 그가 힘들 때 힘이 되어주고 그에게 위로가 필요할 때 의지가 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준비하리라.

-<지팡이>에서-

 

해바라기와 채송화처럼 큰 대조를 이루는 꽃들 중에서 어느 꽃이 더 예쁘고 가치 있는 가를 말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두 꽃 다 축복받은 생명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났고 보호받아야할 당당한 권리가 있으며 각각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꽃들은 크다고 교만하지 않고 작다고 주눅 들지 않으며 시기도 욕심도 없다.

-<해바라기와 채송화>에서-

 

여리디 여린 봄이 하늘을 뿌옇게 칠한 미세 먼지를 이기느라 힘이 들지만 두터운 땅을 뚫고 뾰족 뾰족 얼굴을 내밀며 새 생명의 모습을 드러내려 안간 힘을 쓰고 있다. 창을 열고 먼지를 털어내며 추운 겨울을 잘 이겨내고 소생하는 새싹들에게 찬사와 감사를 보낸다.

-<결혼>에서-

 

<지팡이>에서 작가는 부부간에 서로를 지팡이에 비유하여 부부간에 서로 힘이 되는 관계를 뚜렷하게 보여 주었다. 이러한 묘사의 기법은 <해바라기와 채송화>에서 더욱 인상적으로 표현되었다. 카가 큰 해바라기와 작은 채송화는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으므로 똑같이 소중하고 똑같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작가의 생각을 비유어를 통하여 뚜렷하게 전달하였다. <결혼>에서는 그림을 그리듯이 선명하게 묘사의 기법으로 봄의 정경을 그리고 있다. 단순히 생동하는 자연을 그린 듯하지만, 새로운 세대의 성장하는 모습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비유와 묘사는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2) 수필적 상상

 

수필은 사실과 체험의 문학이라고 하지만 상상적 기법이 없으면 문학적 아름다움을 구현하기 어렵다. 그러나 수필적 상상이란 인상적 전달을 위한 분위기나 소재의 묘사 등에 국한되어야지 존재하지 않는 사건을 만들어서 삽입한다면 수필의 범주에서 벗어난 허구가 될 것이다.

 

들판의 곡식을 알알이 영글게 하는 따가운 햇살을 안고 논두렁도 거닐고 얼굴 하나 가득 씨알을 품은 해바라기 밭도 기웃거리며 나는 마치 가을 여인이 된다.

파란 가을 하늘에 잘 어울리는 해바라기를 바라보다 어릴 적 우리 집 마당 한 구석 작은 화단 가에 심겨진 해바라기와 채송화를 떠올린다. 해바라기는 그 색이 너무도 밝아서 태양의 꽃이라 불리며 꽃말은 숭배, 그리움, 기다림이다. 어릴 적 키가 작은 나는 긴 목으로 담장 밖을 내다 볼 수 있는 키 큰 해바라기가 무척 부러웠다. 또한 투명한 잎줄기 끝에서 샛노랗고 짙은 핑크빛 꽃을 피우는 꽃말이 순진, 가련한 채송화가 피어나면 어찌 그리도 예쁘고 귀엽던지…….

담장에 탐스럽게 누워있던 누런 호박과 키 큰 해바라기와 앙증스러운 채송화는 사이좋게 어울려 우리 집을 예쁘게 꾸며주었고 가을의 풍성함을 더해주었다

-<해바라기와 채송화>-

 

이 글은 사회적 강자의 이른바 갑질을 비판한 글이다. 어린 시절의 해바라기와 채송화의 모습을 주제에 맞추어 대조적으로 묘사했다. 이와 같이 거짓 없이 인상적으로 묘사하기 위해서 수필적 상상 기법이 필요하다. 호랑나비의 우화羽化는 상상적 묘사에 의해 작품성이 돋보인다.

 

(3) 의미화 과정

 

제재를 관찰하고 작가의 독창적인 시선으로 인식한 다음 반드시 필요한 것이 의미화의 과정이다. 미국의 극작가이며 시인인 오스카 햄머스타인Oscar Hammerstein은 그의 시에서 종은 누가 울리기 전에는 종이 아니다라 했다. 울리지 않으면 종으로서 무의미하다는 말이다. 수필문학에서도 의미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것은 이야기이고 잡기이다. 작품 <내손을 잡아요>를 통하여 의미화 과정을 분석해 본다.

 

베테랑 정비사인 남편은 실명한 아내 손을 잡고 울트라 마라톤에 참가한다.

622km 거리를 150시간이나 달리며 사람들의 박수를 받는다.

마라톤을 완주한 그들 부부에 박수를 보내며 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가슴과 등의 내 손을 잡아요.’라는 구호가 남편에게 불평한 나를 부끄럽게 했다.

손을 잡고 인생길을 달리는 부부가 행복한 삶을 살도록 하느님의 은총을 기도한다.

-<내 손을 잡아요> 화소話素-

 

이 작품의 의미화의 과정을 사실의 체험() 체험의 심화() ⇒ 사색 및 해석과정() 사실 및 해석 심화() 의미화와 주제()의 단계로 분석할 수 있다. 여기서 화소話素 는 자아의 체험이 세계의 보편적 가치와 타협하여 세계화하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세계의 현실을 바라보며 감동한 결과 자아가 충만해 가는 과정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독자는 작가와 체험을 공유하고 공감하며 긍정적인 세계관을 형성해 나가는 것이다. 여기에 수필의 독자성을 확실하게 확보되는 것이다.

 

4. 휘갑치기

 

신금철 수필가는 부부가 함께 40여년 교직에 있으면서 모범적인 삶을 살았다. 그의 수필은 그의 모범적인 부부생활, 모범적인 가정생활, 모범적인 사회생활의 모습이 그의 독창적 시선과 언어에 의해 예술성이란 날개를 달고 문학으로 승화되었다.

그의 아름다운 삶과 아름다운 작품에 대학의 후배로서, 수필문학을 함께 공부하는 문우로서 분부를 어기지 못하여 둔한 붓끝으로 비단에 얹어놓은 말씀이 꽃은 되지 못하더라도 검불이나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무쪼록 한층 더 행복한 가정 이루시고, 노년이라 하지 마시고 지도와 창작에 더욱 열중하시어 사회에 더욱 큰 힘을 보태시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