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비성娘臂城 낭자곡성娘子谷城은 어디일까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부연2리, 토성리, 광암리에 걸쳐 있는 야산에 남아 있는 석축 테메식 산성인 낭비성娘臂城 혹은 娘子谷城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낭비성이란 이름의 성이 북이면 부연리 해발 250m 야산에 있는 산성일 가능성, 또 청주시 산성동 상당산성일 가능성, 충주에 있을 가능성,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에 있는 성일 가능성이 있다고 학자들마다 주장하고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 고장인 청주를 예로부터 낭비성, 낭자곡성, 낭성으로 불러 왔고, 지금도 낭성면이 있으며, 삼국사기 대동지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의 문헌에서 청주 지역을 낭비성이라 불렀고 현재의 상당산성보다 부연리 석축 테메식 산성이 그것일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삼국시대 쌓은 산성인 낭비성을 삼국 중 누가 쌓았는지에 관해서도 설이 많다. 고구려의 남하정책에 의해서 쌓았을 가능성도 있고, 고구려의 남하정책을 방어하기 위해 신라가 쌓았을 가능성도 있고, 백제가 신라로부터 한강 유역을 방어하기 위해서 쌓았을 가능성도 있어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태종무열왕의 아버지 김용춘 장군이 부장 김유신 장군과 함께 이곳에서 고구려의 군사 5000명을 목 베고 승리했다는 기록은 남아 있으며, 훗날 후백제의 견훤이 이곳에 진을 치고 구녀성에 주둔해 있던 궁예와 싸웠다는 기록도 삼국사기에 남아 있다.
아무튼 낭비성의 위치를 고증해내는 것은 역사가들의 일이고 그렇게 문제되는 성을 찾아가는 것이 내 몫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서 답사한다고 해서 여러 가지 학설 중에서 어느 하나가 맞는다고 고증해낼 능력은 없다. 다만 그런 역사 현장이 궁금하고 거기서 나는 어떤 생각이 나는지 직접 찾아가 보고 싶은 것이다. 역사적으로는 매우 중요한 배경이었던 낭비성이 특히 청주 역사의 근간이 된다고 여겨지는 성이 아직 확실하게 고증되지 못한 채 풀더미 속에 묻혀 있다는 것 자체가 안타까운 일이다.
점심을 간단히 먹고 내비게이션에 부연2리에 있는 작은 암자인 강선암을 입력하고 출발했다. 지도상으로 보면 강선암에서 산성의 들머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부연리 저수지 낚시터를 지나 꼬불꼬불 농로를 지나가니 부연2리 마을이 나왔다. 남향한 아담한 마을이다. 산성이 있을 법한 뒷산이 삼태기처럼 마을을 둘러싸고 있었다. 마을 경로당 겸 회관 앞에 주차하고 산성의 위치를 가늠해 보았다. 마을의 진산처럼 보이는 산의 정상 부분에 나무가 자라지 못한 테두리가 보였다. 산성의 위치는 짐작했으니 들머리를 찾아야 한다.
경로당 문을 두드렸다. 할머니 말씀대로 금방 공사를 했는지 색깔도 바래지 않은 아스콘포장길을 걸어서 절 쪽으로 올라갔다. 산 어귀에 다다르니 굴삭기가 파헤친 곳이 있다. 따라 올라가 보았다. 묘를 이장한 것 같다. 아, 지금은 윤달이다. 윤달에는 귀신들도 인간이 무얼 하는지 관심이 없단다. 그러니 고구려군 5천명이나 죽은 산성에 올라가도 아무도 관심이 없을 것이다. 안심해도 된다.
파묘 터를 지나자 길이 없어졌다. 성에 다니면서 묘를 만나면 길을 잃는 경우가 많다. 오늘도 그런가? 그런데 우거진 아카시나무 가지 속에 길이 있다. 아카시나무 가지 사이로 잡초가 누운 곳이 있다. 산불 감시원이 올라간 자국이다. 산에는 여름에도 겨울 눈 위처럼 발자국이 난다. 마지막 날망 가까이에 산소가 3기정도 또 있다. 산소 위에 쓰러진 고사목을 타고 넘으니 능선이다. 미국 자리공이 키를 넘을 듯하다. 나무지팡이를 하나 주워 자리공을 헤치며 산불 감시탑으로 가보았다. 아무도 없다. 삼각점과 기준점만 있다. 풀은 허리까지 올라온다. 나무들이 흰곰팡이병에 걸렸는지 온몸에 하얀 곰팡이를 뒤집어썼다. 산성은 흔적도 없다.
다시 내려와 동쪽 산봉우리로 향했다. 길은 없고 고사목만 무너져 등마루 길을 가로 막고 있다. 활엽수 낙엽이 떨어져 길을 다 덮어 버렸다. 여기도 성이 없나 보다. 다 땅 속에 묻혔나 보다. 정상 부분 아카시나무 숲을 꿰뚫고 산불감시 폐쇄회로 카메라가 눈을 부라리고 내려다본다. 이미 내 영상이 어느 기관에 전달되었을 것이다. 성을 못 찾았으니 이제 그만 돌아갈까 하는데 봉우리로부터 경사가 급한 비알에 돌이 굴러 있었다. 성석이다. 돌은 아주 무질서하게 굴러 제멋대로 흩어져 있고 그 위에 낙엽이 덮였다. 성의 윤곽을 전혀 짐작할 수 없다. 무너진 돌무더기를 밟으며 성벽 아래로 짐작되는 곳으로 걸어 보았다. 나뭇잎이 쌓여 성 돌을 거의 덮었으니 발을 바로 디딜 수가 없다. 잘못 디디면 크레바스crevasse에 빠지듯 아주 깊은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다. 아니면 발목이라도 골절될까봐 조심하며 기우뚱거리며 걸었다.
무너진 돌무더기로 봐서 성은 상당히 높았었나 보다. 아무래도 6~8m는 되지 않았을까. 돌은 검은색으로 산화된 화강암이다. 매우 단단하다. 크기는 일정하지 않다. 그러나 사람이 들고 나르기 좋은 30cm×40cm 정도 되는 자연석이다. 깎고 다듬은 흔적은 없으나 쌓기 좋은 면을 살려 쐐기돌을 박아가며 쌓았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축성의 방법을 짐작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보았으나 없다. 성석 사이에서 기와조각이라도 발견될까 해서 나뭇잎을 헤집어 보아도 찾을 수 없다. 선답자들이 이곳에서 기와조각과 토기조각을 찾았다 하니 참으로 행운이다.
성벽을 간신히 한 바퀴 돌고 성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봉우리가 없고 평평하다. 산봉우리를 다듬어 평평하게 만들고 그 곳에 건물을 지었을 것이다. 잡목이 우거져 헤아리기 어렵지만 대략 한 300~400평정도 되어 보였다. 생각보다 훨씬 평평하다. 건물이 얼마나 많이 들어서 있었는지 모르지만 이곳에서 체조도 하고 훈련도 가능했을 것 같다. 나무로 땅을 파보니 해마다 떨어진 낙엽이 30cm 이상 쌓여서 썪은 것 같다. 그 아래 지표조사를 하면 유물이 나올 것이다. 평평한 대지 위에 약간 움푹한 부분도 있다. 급수할 수 있는 곳이라 혼자 생각해 버렸다.
나무 사이로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마을은 예나 지금이나 평화롭다. 여기서 성을 한 바퀴 돌아보니 신라 김용춘 장군이 고구려 군사 5천을 베었다는 것은 아무래도 과장 같아 보인다. 아니면 상당산성을 낭비성이라 했을지도 모른다. 이 성은 성북토성의 세곡을 지키고, 청주 읍성을 방어하며, 와우산토성의 배후 산성이라 할 수 있는 상당산성을 방어하는 전초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옛 산성은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산성의 고리고 산성과 산성이 연결되어 있다. 그 연결 고리 역할을 하는 것이 성과 성 사이의 작은 석축 보루이다. 물론 석축 보루만 있는 것이 아니고 흙으로 쌓은 보루도 있었을 것이다. 옛 성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보루가 성과 성의 연결 고리라는 생각보다 자성子城으로서의 보조 역할만 생각한 것 같다. 숨어 있는 산성을 찾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역사서를 읽고 산성의 위치와 역할을 고증하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때로 기분 좋은 일은 산성에 문외한인 내가 추정한 내용을 고고학자들도 똑같은 견해로 해석한 글을 읽을 때이다. 고명한 학자의 이론에서 잃어버렸던 나의 영감을 발견하는 일만큼 기분 좋은 일은 없다.
성 안에 낙엽을 깔고 한참 앉아 있었다. 멧돼지도 고라니도 다 어디로 갔을까? 오늘은 까마귀도 짖지 않는다. 윤오월 썩은 달이라 그런가 보다. 산속에서는 고요가 사람을 더 소름 끼치게 한다. 내려오는 길을 찾았다. 강선암에 들렀으나 참배할 마음이 나지 않았다. 마을은 한없이 고요하다.
이제 낭비성도 다녀왔다. 낭비성은 보민용 산성이 아니라 청주지역을 방어하거나 공격하기 위한성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래서 그냥 여기가 낭비성이라 믿으려 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까 안내 표지판 하나 세워지지 않은 것이 매우 섭섭했다.
▣ 위치 :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부연2리, 토성리 (해발 250m)
▣ 시대 : 삼국시대
▣ 유형 : 테메식 석축산성
▣ 규모 : 둘레 238m
▣ 답사일 : 2017년 6월 25일
'여행과 답사 > 느림보의 山城 山寺 찾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72. 도심의 수도 도량 우암산 관음사 (0) | 2017.06.28 |
---|---|
71. 청주 문화의 원형질 와우산토성 (0) | 2017.06.28 |
69. 청주 정하동 마애비로자나불좌상 (0) | 2017.06.27 |
68. 팔결들에 남아 있는 정북토성 (0) | 2017.06.21 |
67. 구룡산 현암사懸巖寺의 수행 (0) | 2017.06.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