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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태봉산성과 소구니산성은 큰 보루

느림보 이방주 2017. 4. 27. 15:49

태봉산성과 소구니산성은 큰 보루

 

  


학성산성을 뒤로 하고 구릉으로 내려섰다. 백제부흥군길 이정표를 보면서 태봉산성을 찾아간다. 태봉산성은 먼 곳이 아니다. 잡목과 마른 풀더미 속에 마치 커다란 성황당처럼 돌무더기가 있다. 그러나 석성의 일부가 분명하다. 학성산성의 성돌과 비슷한 돌이 흙과 낙엽 속에서 옛 모습 그대로 나뒹굴고 있다. 역사는 이렇게 풀섶에 나뒹굴기도 하는구나.

성돌은 다듬어 쌓았던 흔적이 뚜렷하다. 학성산성을 쌓으면서 함께 쌓았는지 같은 화강암이다. 규모는 크지 않아 학성산성의 보조 산성이거나 척후들이 경계를 서는 보루쯤으로 보였다. 당시에는 커다란 축성공사를 하면서 작은 보루 몇 개를 한꺼번에 쌓았나 보다.

보루치고는 규모가 큰 편이다. 적어도 1개 소대 규모는 주둔했을 것으로 보였다. 성은 축성의 양식을 전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너지고 흙으로 덮이고 잡목과 가시덤불이 무성하다. 감히 기와조각이나 토기조각을 찾아볼 엄두도 낼 수 없었다. 돌무더기를 파헤쳐 보면 분명 기와편이나 토기 조각들이 나올 것이다.

이곳 내포는 대륙의 산동반도와 매우 가까우며 내륙까지 해운이 이루어져 예나 지금이나 물자가 매우 풍부하다. 당은 신라와 연합하여 백제를 치면서 신라와는 다른 꿈을 꾸었을 것이다. 신라가 삼한통일이 꿈이었다면, 그들은 삼한 지배가 꿈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해운이 용이하고 물자가 풍부한 이곳 내포지방에 삼한 지배의 근거지를 건설하고자 했을 것이다. 만약에 그들의 꿈이 이루어지고 내포지방에 삼한 지배의 교두보가 건설되었다면 삼한통일은 애당초 물건너갔을 뿐만 아니라 당은 신라까지 넘보았을 것이 분명하다. 내포지방의 산성들은 부여 백제가 건재할 때 서해로부터 들어오는 적으로부터 수도인 사비나 웅진을 방어하는데 요새가 되었을 것이다. 백제가 멸망하고 부흥운동의 거점이 되었다가 신라가 당의 세력을 몰아내는 요새의 역할로 변화되어 갔다.

신라 통일 후에는 이 부근의 산성들이 크게 쓸모가 없어졌을 것이다. 패망한 나라의 역사는 이렇게 가시덤불 쑥구렁에 묻히는 것이 당연한가 보다. 수백 년 동안 성을 쌓느라 동원된 백성의 고통도, 수도 사비의 권력을 지키느라 바친 목숨도 결국은 모두가 공허한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쩌면 국가의 운명은 개인의 흥망성쇠와 맥을 같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성 돌을 밟고 서니 산 아래 천태저수지가 보인다. 가뭄 속에서도 물이 가득 출렁인다. 이 지역의 지리에 어둡기 때문에 여기서는 임존성을 찾을 수 없지만, 이제는 임존성에서 내려다보면 태봉산성이 어디쯤인가 알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 천태 저수지로 내려서면 바로 소구니고개가 나오고 고개에서 서쪽으로 소구니 산성이 있다고 지도에는 나와 있다. 태봉산성에서 천태저수지로 질러 내려오다가 길을 잃었다. 그냥 다시 돌아가서 행정리 마을로 내려오는 것이 훨씬 좋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아마도 학성산성이 방어하던 마을 모양도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내려와 버렸다. 가파른 산에서 가시덤불에 긁히고 찔리면서 내려왔다. 역사의 흐름도 때로 이렇게 가시밭길을 질러가야 할 때도 있으리라.

저수지를 돌아 소구니고개를 넘어 광시면 소재지로 돌아오는 길이 참 멀었다. 소구니 고개를 넘으면서 소구니산성의 이정표를 보았지만 너무 지치고 힘들어 그냥 지나쳤다. 소구니 산성은 태봉산성에서 직선거리 약 1.4km 정도 거리의 해발 232m 정상에 있는 석성이라고 한다. 소구니산성의 규모나 역사에 관한 정보는 얻기 어려웠다. 올라갔더라도 큰 소득은 없을 것 같았다.

태봉산성과 소구니 산성의 서쪽은 홍성읍 방향이고, 임존성이 홍성읍의 정동방에 있다면 이 산성의 줄기가 이어지면 바로 임존성에 닿게 된다. 임존성에서 내려다보면 바라보이는 예당저수지는 삽교천의 지류를 막아 이루어진 저수지이다. 홍성 예산 아산은 삽교천 중류로 넓은 평야지대이다. 아산만, 삽교호, 삽교천, 무한천, 곡교천을 따라 배가 자유롭게 드나들어 내포라는 지명이 생겼다. 옛날의 강은 오늘의 고속도로이다. 삽교천에 의해 아산만에 직접 닿는 이곳 내포지방은 교통이 편리하고 물자가 풍부했다. 백제는 이곳을 누구에게도 내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곳에서 땅뺏기 세력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역사적 특수성 때문에 요즘 홍성군이나 예산군에서 백제부흥군길이라는 이름으로 역사를 되새기며 걸을 수 있는 산책길을 개척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백제 부흥군길에 예산의 임존성과 홍성의 학성산성, 장곡산성이 있다. 지금까지 답사한 결과를 분석해 보면 임존성은 가장 규모가 크고 견고한데다가 사비성으로 직접 연결되어 요즘으로 치면 보병사단 사령부가 주둔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임존성에 이어 학성산성, 장곡산성도 이에 버금가는 큰 성이다. 그렇다면 태봉산성이나 소구니산성은 임존성에서 학성산성으로 이어지는 연결 보루가 되었을 것이다. 지금은 그 이름이 묻혀버렸지만 태봉산성도 소구니산성도 당시에는 얼마나 소중한 군사시설이었는지 짐작이 간다.

 

 

 

태봉산성

소재지 : 충남 홍성군 장곡면 천태리, 학성산성에서 직선거리 800m지점 해발 193m

시대 : 백제시대

문화재 지정 : 없음

개요 : 둘레 187m 테메식 석성 보루

 

소구니산성

소재지 : 충남 홍성군 장곡면 행정리 천태산과 학성산 사이 해발 232m 소구니산에 있음

시대 : 백제시대

개요 : 포곡식 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