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꽃을 보면 목덜미가 아픈 이유를 안다
2016년 10월 7일
주중리 논둑에서
아, 오늘 목덜미가 또 아프다. 새벽 산책길 목덜미가 찌르르하더니 뾰족한 송곳으로 훑어 내리듯 등줄기를 타고 내려간다. 양쪽 어깨까지 찌릿찌릿 전기를 먹은 듯하다. 내 목은 왜 이렇게 가끔 아플까? 왜 감전된 것처럼 근육이 떨릴까? 목덜미를 만져보니 제3경추 부근 근육이 밤톨만 하게 툭 불거져 나왔다. 이런 이럴 수가 있나. 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우뚝 서서 양손을 뒤로 모아 엉덩이 부근에서 깍지를 끼고 어깨를 뒤로 젖혀 보았다. 통증이 좀 가시는 기분이다. 아예 자리를 잡고 서서 한 20여 번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물론 고개를 꺾어 숙이지 않고 얼굴은 정면을 바라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다시 걷는다. 그런데 내게는 잘못된 버릇이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고개를 꺾어 숙이고 발끝을 보며 걷고 있는 것이다. 새벽에 어둠 속이라 발끝에 뭐가 밟히는지 보이지도 않는데 꼭 고개를 꺾고 코밑을 보면서 걷고 있다. 참 못났다. 뭐가 못 미더워 운동화 코빼기를 보며 걷는가 말이다. 문득 함께 등산하는 친구가 블로그blog에 올린 내 사진이 생각났다. 열이면 열 모두 고개를 숙이고 걷는 것이다. 아예 고개를 꺾고 발끝을 보면서 걷는 모습이다. 꼭 바보처럼 말이다. 목덜미가 아픈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먼 데를 바라보자. 멀리 바라보면 목덜미는 아플 까닭이 없다. 고개를 당당히 들고 먼 미래를 바라보며 걷자. 생각해보니 평생 바로 코밑만 내려다보면서 살아온 것이 내 삶의 족적이다. 환갑을 다 지내고도 고개를 꺾고 살고 있으니 목덜미가 아플 수밖에 없다. 제3경추에 혹이 생길 만도 하다.
삶은 멀리 내다보면서 먼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멀리 보려면 고개를 들어야 한다. 스무 살 때는 예순 살 때에 시선을 두고 설계해야 한다. 스무 살 때 스무 살의 안주에 시선을 두어서는 안 된다. 스무 살에 고개를 숙이고 땅만 내려다봐서는 안 된다. 그렇게 살면 목덜미가 아플 수밖에 없다. 그러나 때로 스무 살에라도 미래를 위해서 꼭 필요하다면 기꺼이 고개를 숙였어야 했다. 그랬어야 나이 들어도 목덜미가 아프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쓸데없이 늘 고개를 숙이고 걸으면서 필요할 때는 오히려 더 꼿꼿하게 고개를 뻗치고 살았다. 그래서 목덜미가 아픈 것이다. 그날이 되어 모든 걸 다 이루었을 때에도 기꺼이 고개를 숙여도 된다. 저기 저 벼이삭을 보라. 꽃을 피웠을 때 빳빳하게 고개를 들지 않았는가? 그 대신 다 이루었을 때는 저렇게 고개를 숙이지 않았는가?
나처럼 숙여야 할 때는 숙이지 못하고 숙이지 않아야 할 때 숙인 사람은 목덜미가 아픈 것이다. 긴긴 인생의 역사를 설계하지도 못하고 환갑까지 살아온 나 같은 사람은 목덜미가 이토록 아픈 것이다. 해마다 볏논에서 꽃을 피우고 다 영글어야 비로소 고개를 숙이는 나락을 보면서도 섭리를 배우지 못하는 바보는 늘그막에 목덜미가 아픈 것이다. 역사를 바로 볼 줄 모르는 사람이 목이 성하기를 바라는 것은 정말 바보 같은 소망이다. 저 볏논을 보라. 고개를 들 때는 들고 숙일 때는 숙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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