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물밥(삶과 죽음)

모기소리

느림보 이방주 2015. 10. 19. 21:49

모기 소리

 

 

미호천 자전거길을 달린다. 가을볕이 따사롭다. 둔치에는 억새꽃과 갈대가 한꺼번에 피어 오후의 기우는 태양빛에 반짝인다. 미호천美湖川이란 이름만큼 아름답다. 바람이 상쾌하다기어를 최대로 올렸다속도가 빨라지니 얼굴에 스치는 바람이 아직은 푸른 버들잎에서 푸름을 묻혀오는지 더 시원하다. 그런데 자전거가 '우잉우잉'하며 모기소리를 낸다. , 낡은 기계에서는 모기소리가 나는 것인가. 바로 그 모기 소리다.

 

젊은 나이였던 마흔다섯쯤에 왼쪽 귀에서 모기소리가 났다밤이나 낮이나 '우잉우잉'하고 울어대는 모기소리가 성가셨다. 그로부터 10년은 족히 이비인후과에 다녔다귓속에 살림을 차린 모기들은 겨울에도 죽지 않고 울어댔다. 병원에 다녀오는 날은 오히려 더 심했다. 모기 가족이 '우잉우잉 오엥오엥 윙윙'하고 야단법석을 열었다쉰 넷에 이르러 이 나라 최고 명의만 모여 살아간다는 대학병원 젊은 여의사에게 귀를 보였다. 꼭 칠성판 모양의 수레에 태워 불가마 같기도 하고 굴속 같기도 한 곳에 들여 넣고 온갖 사진을 다 찍어대더니 하는 말이 기막혔다.

 "그냥 사세요. 연세도 있으신데……. 신경이 죽었네요. 재생 불가예요."

 '겨우 그 말하려고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며 찍어댔냐?' 내게는 낯선 '연세'라는 말이나 무책임한 그냥이라는 말에 따지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래! 덜 들으며 그냥 살자들어도 못들은 체해야 하는 나이가 아니냐? 누구 말마따나 연세도 있는데……. 오른쪽 귀로 오른 소리만 듣고 살자. 아니 옳은 소리만 듣는 거야. 나는 오른 소리와 옳은 소리를 혼동하기는 했지만 절망적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을 때는 빨리 수긍하는 것이 낫다성깔을 죽이며 착하게 살았다.

 

세월이 지나고 또 지나 환갑을 넘기니 이번에는 왼쪽 눈앞에 모기 두세 마리가 날아다닌다. 처음에는 왼손을 들어 쫓으려 했지만 손짓만으로 쫓겨날 모기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점점 왼쪽이 잘 보이지 않는다시내에서 제일 용하다는 안과를 찾아갔다진짜 원장님은 만나지도 못하고 서른을 갓 넘은 젊은 원장을 만났다. 내 하소연을 듣고 복잡한 기계에 눈을 대게하고 잠깐 들여다보더니 너무나 가볍게 한 마디로 선고를 내린다.

 "그냥 사세요. 연세도 있으신데……. 치료 방법이 없어요. 그냥 사세요."

 

사명감 없는 교사가 학생을 '문제아'로 낙인찍듯이 책임감 없는 의사들은 '연세'를 핑계로 그냥이란 처방을 내린다. 그래덜 보며 대충 살자. 오른쪽 눈으로 오른쪽만 보고 살자. 아니 옳은 것만 보는 거야. 나는 또 오른쪽 것과 옳은 것을 혼동하기는 했지만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보이는 것도 보지 못한 것처럼 순하게 살았다. 그야말로 귀도 눈도 착하디착한 이순耳順이라는 연세가 된 것이다

 

이렇게 살다가 오른쪽 소리만 들리고 오른쪽 세상만 보이면 어쩌지? 아니, 왼쪽 소리도 왼쪽 세상도 다 오른쪽 세상으로 인식되면 어쩌나 하는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그것이 이순耳順이라는 연세 값을 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균형을 잃다가는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쓰러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되기 시작했다이순의 나이에 철이 든 사람처럼 순하게 사는 것도 좋겠지만 균형을 잃고 쓰러지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았다. , 그래서 나이가 들면 자전거를 타는구나.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사는 법을 배우려고 자전거를 타는구나나도 자전거를 한 2년 타 보았다. 종아리가 탱탱해지고 허벅지도 탄력이 생겼다. 왼쪽 눈앞에 어른거리던 모기가 오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왼쪽 귀에 살림 살던 모기소리도 드물어졌다. 자연스럽게 균형 잡는 일에 더욱 몰두하게 되었다.

 

무심천이 미호천에 합류하여 호수가 된 까치내에 거꾸로 잠긴 억새꽃 갈대꽃이 가을 오후의 햇살을 받아 윤이 난다기어를 최대로 올리고 허벅지에 힘을 주어 페달을 밟으며 균형 잡는 방법을 배운다. 인제는 어느 정도 속력을 낼 수 있다. 곧은길에서는 더 세게 밟는다. 낡은 자전거가 새것보다 더 부드럽게 속력을 낸다. 그런데 자전거가 '우잉우잉 오엥오엥' 모기 울음소리를 낸다모기란 놈은 연세 드신 자전거에까지 따라와 운다. 나 때문에 낡아버린 자전거가 안쓰럽다이놈의 모기, 때려잡으려다가 갑자기 삼십년 전 쯤 어느 일간지 이규태 칼럼에서 읽은 적이 있는 '모기 시아버지와 모기 며느리' 이야기가 생각나서 그만 두었다.

 

옛날에 모기 시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모기 며느리가  있었다. 하루는 저녁때가 다 되었는데 시아버지가 외출을 준비하면서 며느리에게 일렀다.

"아가 내 저녁일랑 차리지 마라."

"왜요? 아버님"

"좋은 사람을 만나면 실컷 빨아 먹어 배가 터질 테고, 모진 놈을 만나면 맞아서 배가 터져 죽을 테니, 저녁상이 무슨 소용이겠느냐?"

시어머니와 남편까지 모진 놈에게 맞아 사별한 며느리는 시아버지의 외출을 말렸다.

"아버님 언짢으시면 나가지 말고 집에서 드셔요." 

시아버지 모기가 운명에 순응하는 모습도 그렇고, 며느리의 효심도 그렇고, 하찮은 모기소리에 이런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것도 다 나를 스산하게 한다.

 

요즘 신세대 못된 모기 며느리 같으면 뭐라고 대답했을까?

'알겠어요. 연세도 있으신데 그냥 나가셔요. 어차피 맞아죽는 게 모기 운명인걸요.'

아니면 연세로 진단하여 그냥으로 처방하는 의사라면 또 뭐라고 대답했을까?

'그럼 그냥 나가 보셔요. 연세도 있으신데.'

아마도 이렇게 답했을지도 모르겠다. 가슴이 서늘하다맞아, 나이도 있는데 그냥 살자. 웬만한 건 보려 하지도 들으려 하지도 말자. 차라리 들리지 않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마음의 귀를 열고 눈을 돌리자. 그리고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모기소리 같은 것에서 의미를 찾자. 이순이 아니냐. 위대한 이순耳順…….

(2015. 10. 20.)


한국수필 2016년 1월호 게재  --2월호 월평


한국수필 20162월호

 

합평작품


1.김수자 <가장 쉬운 셈법>

2. 이방주 <모기소리>

3. 정하정 <내일   사람처럼>


합평위원

류인혜 한국문협이사

김성숙 미래수필문학회 회장

진행 권남희 편집주간


권남:. 이방주의 <모기소리> 나이 들어가면서 겪는 신체의 변화를 ‘모기소리 형상화하여 위트 있게 서술했다. 100 시대 심신 모두 자신 있고 생기 있게 나이 들어가는 일에 대한 글쓰기는 특히 작가로서 도전적으로 숙고할 장르이다상투적이지 않도록 노년 소재를 쓰려면 어떤 장치가 필요한가요?


류인:수필모기소리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면 나이가 들어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기보다 작가 신체의 특성에 의한 이상 징후를 의사들이 보편화시킨 결과라고   있습니다뚜렷한 치료방법이 없는 병에 시달리게 되는 사람이 많아지자 의사도 그런 환자들에 시달리다 못해 “그냥사세요.”라는 처방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온갖 검사를 거쳐도 결국은 그냥 불편함을 감내하며 살아야 되는 결과에 낙심을 하고 수용하게 되는 내용을 읽으며 독자는 작가와 함께 갈등을 하게 됩니다모기소리를 쫓으려고 운동으로 타는 자전거마저 낡아서 모기소리를 내고 있으니  딱한 마음이 들어요.

모기의 예화는 작가와 함께 답답한 독자의 갈등을 해소시키는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효심이 많은 며느리 모기가 밖으로 나가려는 시아버지 모기를 말리는 것만으로 수필이 마무리 되었다면 수필의 재미가 반감 되었을 것인데 신세대 며느리를 데리고 와서 어차피 맞아 죽을 모기의 운명과 귀와 눈의 이상 징후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마무리가 능숙합니다 수필은 능숙함이 지나쳐서 가볍게 여겨질 수도 있는 느낌이 단점이라고   있습니다.

수필을 대하는 작가의 연륜에서 오는 자신감이랄까나이 들어가면서 나타나는 증상을 글로 표현하는 일에는 일단 성공했습니다 심란한 내용을 읽게 되는 독자의 공감을 어떻게 얻을  있는가는 어떤 형식으로 요리를 하느냐에 달렸다는 것을 알려주는 수필입니다.


김성이방주 작가의 <모기소리> 낡은 자전거에서 나는 ‘우잉우잉 ’소리를 모기소리라고 표현한 부분이 꽤나 흥미로웠어요또한 귀속에서 나는 이명을 모기소리와 연결지으면서 낡은 것들에서는 모기소리가 난다는 표현은 작가다운 기발한 표현이었습니다

이명으로 고생하던  의사가 “연세도 있으신데 그냥사세요라고 말했을  의사의 처방은 “그냥이었다라는 표현도 역시 좋았습니다 부분에서 씁쓸하게 자조 하는 모습을   있어서 좋았고의사가 너무 무책임한  아닌가하는 반감이 들기도 했어요불현듯 전자제품은 10년만 지나도 단종이 돼서 부품이 없다고 수리 불가라고 하던데몸이 60년이 지났으니 수리 불가인 것도 말이 되는구나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그러면서도 아직 젊은데 나이 들어감을 실감하게 되는 작가의 마음이 공감되었습니다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면서 살아가야겠구나이제는 이순이니’ 라고 표현  부분에서는 작가의 초연함을 느낄  있었습니다순응하면서도 젊고 활기차게 살아가려고 자전거를 시작하고 건강을 조금씩 되찾아 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노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은 느낌이었습니다또한 작가의 경험을 읽으면서 의술도 어찌   없는 부분을 운동을 통해  스스로의 치유력을 키우면 놀랍도록 변화해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전거가 내는 모기소리에 불현듯 떠올랐다는 모기 며느리 이야기는 인터넷에서 흔히   있는 이야기의 인용으로 이글과  떨어지는 느낌에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었습니다특히 현대 며느리라면 으로 시작되는 부분은 작가로써 하지 말아야 하는 선입견에서 나오는 오류를 범한 듯 하네요요즘 며느리에 대한 전체적인 시선은 부정적인 측면이 두드러져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하지만  부정적인 시선을 모두가  그렇다는 주관적인 시선으로 바꾸는 것은 작가이기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하는 표현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다수의 독자에게 반감을 살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100 시대에이순은 어쩌면 노년도 장년도 아니지만 나이 들어간다고 느끼게 되는 나이이지요

노년으로 가는 길목에서 나이 들어가면서 느끼는 것들을 쓰는 작가로써 상투적이지 않으면서 감동을 주는 글을 쓰려면  나이만이 보여   있는 것들이 분명 있을  같습니다젊은이들이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글로 보여   있다는 장점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그런 것들을 부각해서 쓴다면 다양한 연령층의 독자들에게 공감과 감동을   있는 좋은 글을 많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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